루쉰전집 17: 일기(1)(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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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일상과 시대상이 공존하는 촘촘한 사실의 기록
이 책은 루쉰의 베이징 생활이 시작되는 1912년부터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샤먼 등지로 떠나는 1926년 사이의 일기이다. 루쉰 일기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기록으로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짧고도 명료하게 사실만 나열하고 있어 루쉰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내면의 내밀한 기록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절제된 형태를 띠고 있어 루쉰의 마음을 바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건조한 기록 틈새에 보이는 루쉰의 가치관과 일어난 일에 관한 감상이 언뜻 언뜻 보이며, 이것이 루쉰 일기를 읽는 즐거움이다.
이 책은 루쉰의 베이징 생활이 시작되는 1912년부터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샤먼 등지로 떠나는 1926년 사이의 일기이다. 루쉰 일기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기록으로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짧고도 명료하게 사실만 나열하고 있어 루쉰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내면의 내밀한 기록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절제된 형태를 띠고 있어 루쉰의 마음을 바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건조한 기록 틈새에 보이는 루쉰의 가치관과 일어난 일에 관한 감상이 언뜻 언뜻 보이며, 이것이 루쉰 일기를 읽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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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12년부터 1926년까지의 루쉰 일기
루쉰의 일상과 시대상이 공존하는 촘촘한 사실의 기록
이 책은 루쉰의 베이징 생활이 시작되는 1912년부터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샤먼 등지로 떠나는 1926년 사이의 일기이다. 루쉰 일기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기록으로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짧고도 명료하게 사실만 나열하고 있어 루쉰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내면의 내밀한 기록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절제된 형태를 띠고 있어 루쉰의 마음을 바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건조한 기록 틈새에 보이는 루쉰의 가치관과 일어난 일에 관한 감상이 언뜻 언뜻 보이며, 이것이 루쉰 일기를 읽는 즐거움이다.
루쉰의 인생은 크게 초기(1881~1909), 전기(1909~1918), 중기(1918~1927), 후기(1927~1936)의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는 루쉰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유학 시기를 포함하며, 전기는 귀국 후 교육자의 길과 교육부 관리의 길을 걷는 시기를 포함한다. 중기는 1918년 「광인일기」 발표 이후 작가로서의 활동과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시절을 포괄한다. 즉 '일기 1'은 전기와 중기의 루쉰 행적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 공무를 보며 고서와 탁본, 고문물 등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 여러 문인을 만나며 어울리고 작품을 발표하는 일, 다사다난한 가정사 같은 일상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소소해 보이는 루쉰의 일상 속에 신해혁명 이후와 5.4운동, 학제와 화폐제, 도서관과 박물관 설립, 내전과 재해 등 당대의 시대상을 진하게 깔고 있으므로 루쉰의 일기는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루쉰의 일상과 시대상이 공존하는 촘촘한 사실의 기록
이 책은 루쉰의 베이징 생활이 시작되는 1912년부터 베이징 생활을 마치고 샤먼 등지로 떠나는 1926년 사이의 일기이다. 루쉰 일기의 특징은 자기 자신을 위해 쓴 기록으로서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단편적으로 정리했다는 점이다. 짧고도 명료하게 사실만 나열하고 있어 루쉰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내면의 내밀한 기록이나 감정의 동요 없이 절제된 형태를 띠고 있어 루쉰의 마음을 바로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다만 건조한 기록 틈새에 보이는 루쉰의 가치관과 일어난 일에 관한 감상이 언뜻 언뜻 보이며, 이것이 루쉰 일기를 읽는 즐거움이다.
루쉰의 인생은 크게 초기(1881~1909), 전기(1909~1918), 중기(1918~1927), 후기(1927~1936)의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는 루쉰의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 유학 시기를 포함하며, 전기는 귀국 후 교육자의 길과 교육부 관리의 길을 걷는 시기를 포함한다. 중기는 1918년 「광인일기」 발표 이후 작가로서의 활동과 베이징여자사범대학 시절을 포괄한다. 즉 '일기 1'은 전기와 중기의 루쉰 행적을 보는 데 도움이 된다. 공무를 보며 고서와 탁본, 고문물 등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일, 여러 문인을 만나며 어울리고 작품을 발표하는 일, 다사다난한 가정사 같은 일상이 사실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소소해 보이는 루쉰의 일상 속에 신해혁명 이후와 5.4운동, 학제와 화폐제, 도서관과 박물관 설립, 내전과 재해 등 당대의 시대상을 진하게 깔고 있으므로 루쉰의 일기는 기록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목차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임자일기(1912년)
계축일기(1913년)
갑인일기(1914년)
을묘일기(1915년)
병진일기(1916년)
정사일기(1917년)
무오일기(1918년)
기미일기(1919년)
일기 제9 (1920년)
일기 제10 (1921년)
일기 제12 (1923년)
일기 제13 (1924년)
일기 제14 (1925년)
일기 제15 (1926년)
『일기 1』에 대하여
임자일기(1912년)
계축일기(1913년)
갑인일기(1914년)
을묘일기(1915년)
병진일기(1916년)
정사일기(1917년)
무오일기(1918년)
기미일기(1919년)
일기 제9 (1920년)
일기 제10 (1921년)
일기 제12 (1923년)
일기 제13 (1924년)
일기 제14 (1925년)
일기 제15 (1926년)
『일기 1』에 대하여
저자
저자
루쉰
저자 루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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