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전집 18: 일기(2)(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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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마지막 10년 일상의 기록
‘일기 2’는 1927년부터 1936년 10월 19일 사망 전날까지 루쉰이 쓴 삶의 기록이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서 쉰여섯 살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베이징 군벌의 수배를 피해 남방을 떠돈 샤먼 시기와 광저우 시기, 그리고 마지막 삶의 현장인 상하이 시기를 포괄한다. 루쉰의 마지막 10년을 담고 있는 이 일기는 루쉰의 붓이 가장 치열하게 담금질되던 시기의 일상들이다.
‘일기 2’는 1927년부터 1936년 10월 19일 사망 전날까지 루쉰이 쓴 삶의 기록이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서 쉰여섯 살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베이징 군벌의 수배를 피해 남방을 떠돈 샤먼 시기와 광저우 시기, 그리고 마지막 삶의 현장인 상하이 시기를 포괄한다. 루쉰의 마지막 10년을 담고 있는 이 일기는 루쉰의 붓이 가장 치열하게 담금질되던 시기의 일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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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927년부터 1936년까지의 루쉰 일기
루쉰의 마지막 10년 일상의 기록
'일기 2'는 1927년부터 1936년 10월 19일 사망 전날까지 루쉰이 쓴 삶의 기록이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서 쉰여섯 살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베이징 군벌의 수배를 피해 남방을 떠돈 샤먼 시기와 광저우 시기, 그리고 마지막 삶의 현장인 상하이 시기를 포괄한다. 루쉰의 마지막 10년을 담고 있는 이 일기는 루쉰의 붓이 가장 치열하게 담금질되던 시기의 일상들이다.
"18일 흐림. 아침 일찍 스헝에게 편지를 부쳤다. 오전에 왕멍자오가 징유린의 편지와 진중이의 원고를 건네주었다. 오후에 우치야마서점에 가서 『세계미술전집』 1본을 샀다. 1위안 6자오 5펀. 저녁에 수칭의 편지를 받았다. 8일에 부친 것이다. 밤에 비가 조금 내렸다."
이렇게 장부 정리를 하듯 건조하게 사실을 서술한 루쉰의 일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정확한 시간의 흐름과 날씨의 분위기, 사람들과의 만남, 물자의 교류(편지, 서적, 원고, 작품), 금전 출납 상황, 장소 및 지명 등이 필수이고, 몸 상태, 몸무게, 목욕, 음식과 약, 시 전문, 간단한 감상 등 행적과 관련한 사항들이 부가되어 있다. 이런 점을 통해 루쉰과 그 당대인들의 일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루쉰 일기는 기록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또 금전출납부와 같이 돈의 들고 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루쉰의 꼼꼼한 경제관념과 변화하는 중국의 경제상황을 함께 보여 주는 측면이 있고, 원고와 작품 등이 다른 문인이나 출판사에 연결되는 부분들은 당시의 문화적 상황들을 잘 보여 준다. 요컨대 루쉰의 일기는 생활사 연구의 주요 원천이다.
루쉰의 마지막 10년 일상의 기록
'일기 2'는 1927년부터 1936년 10월 19일 사망 전날까지 루쉰이 쓴 삶의 기록이다. 그의 나이 마흔일곱에서 쉰여섯 살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베이징 군벌의 수배를 피해 남방을 떠돈 샤먼 시기와 광저우 시기, 그리고 마지막 삶의 현장인 상하이 시기를 포괄한다. 루쉰의 마지막 10년을 담고 있는 이 일기는 루쉰의 붓이 가장 치열하게 담금질되던 시기의 일상들이다.
"18일 흐림. 아침 일찍 스헝에게 편지를 부쳤다. 오전에 왕멍자오가 징유린의 편지와 진중이의 원고를 건네주었다. 오후에 우치야마서점에 가서 『세계미술전집』 1본을 샀다. 1위안 6자오 5펀. 저녁에 수칭의 편지를 받았다. 8일에 부친 것이다. 밤에 비가 조금 내렸다."
이렇게 장부 정리를 하듯 건조하게 사실을 서술한 루쉰의 일기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정확한 시간의 흐름과 날씨의 분위기, 사람들과의 만남, 물자의 교류(편지, 서적, 원고, 작품), 금전 출납 상황, 장소 및 지명 등이 필수이고, 몸 상태, 몸무게, 목욕, 음식과 약, 시 전문, 간단한 감상 등 행적과 관련한 사항들이 부가되어 있다. 이런 점을 통해 루쉰과 그 당대인들의 일상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루쉰 일기는 기록문학으로서의 가치가 높다.
또 금전출납부와 같이 돈의 들고 남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루쉰의 꼼꼼한 경제관념과 변화하는 중국의 경제상황을 함께 보여 주는 측면이 있고, 원고와 작품 등이 다른 문인이나 출판사에 연결되는 부분들은 당시의 문화적 상황들을 잘 보여 준다. 요컨대 루쉰의 일기는 생활사 연구의 주요 원천이다.
목차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일기 제16 (1927년)
일기 제17 (1928년)
일기 제18 (1929년)
일기 제19 (1930년)
일기 제20 (1931년)
일기 제21 (1932년)
일기 제22 (1933년)
일기 제23 (1934년)
일기 제24 (1935년)
일기 제25 (1936년)
[부록] 1922년 일기 단편
『일기 2』에 대하여
일기 제16 (1927년)
일기 제17 (1928년)
일기 제18 (1929년)
일기 제19 (1930년)
일기 제20 (1931년)
일기 제21 (1932년)
일기 제22 (1933년)
일기 제23 (1934년)
일기 제24 (1935년)
일기 제25 (1936년)
[부록] 1922년 일기 단편
『일기 2』에 대하여
저자
저자
루쉰
저자 루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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