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전집 16: 서신(4)(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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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의 루쉰 서신,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서신 4’는 루쉰 생애 마지막 해인 1936년에 보낸 서신과 1920년대부터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쉰의 서신은 다른 산문에 비해 ‘관계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식적 글에 비해 사적인 감상, 속마음이 좀더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서신이 당대 문인, 학자, 나아가 외국인사에게까지 닿아 있어 그 당시 루쉰이 맺은 다양한 관계와 문화의 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서신 4’는 루쉰 생애 마지막 해인 1936년에 보낸 서신과 1920년대부터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쉰의 서신은 다른 산문에 비해 ‘관계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식적 글에 비해 사적인 감상, 속마음이 좀더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서신이 당대 문인, 학자, 나아가 외국인사에게까지 닿아 있어 그 당시 루쉰이 맺은 다양한 관계와 문화의 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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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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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다양한 네트워크와 상호작용을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자료
'서신 4'는 루쉰 생애 마지막 해인 1936년에 보낸 서신과 1920년대부터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쉰의 서신은 다른 산문에 비해 '관계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식적 글에 비해 사적인 감상, 속마음이 좀더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서신이 당대 문인, 학자, 나아가 외국인사에게까지 닿아 있어 그 당시 루쉰이 맺은 다양한 관계와 문화의 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청년 작가, 예술가들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모습, 국민당의 끊임없는 검열과 만행에 괴로워하면서도 다양한 필명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문학계가 사그라지지 않도록 잠행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외국인사와의 서신을 보면, 마스다 와타루, 야마모토 하쓰에, 우치야마 간조, 에팅거, 프루셰크 등과 우정을 나누며 문학과 고전, 번역, 판화예술 등을 가지고 교유했다. 특히 루쉰의 『중국소설사략』을 번역하는 마스다 와타루와 깊이 있게 서신을 교환하는 모습은 국적을 뛰어넘는 진실한 우정 관계를 보여 준다.
'서신 4'는 루쉰 생애 마지막 해인 1936년에 보낸 서신과 1920년대부터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쉰의 서신은 다른 산문에 비해 '관계 속에서'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다는 특징이 있다. 공식적 글에 비해 사적인 감상, 속마음이 좀더 잘 드러난다. 뿐만 아니라 서신이 당대 문인, 학자, 나아가 외국인사에게까지 닿아 있어 그 당시 루쉰이 맺은 다양한 관계와 문화의 장을 살펴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청년 작가, 예술가들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모습, 국민당의 끊임없는 검열과 만행에 괴로워하면서도 다양한 필명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문학계가 사그라지지 않도록 잠행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외국인사와의 서신을 보면, 마스다 와타루, 야마모토 하쓰에, 우치야마 간조, 에팅거, 프루셰크 등과 우정을 나누며 문학과 고전, 번역, 판화예술 등을 가지고 교유했다. 특히 루쉰의 『중국소설사략』을 번역하는 마스다 와타루와 깊이 있게 서신을 교환하는 모습은 국적을 뛰어넘는 진실한 우정 관계를 보여 준다.
목차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1936년
360105① 차오징화에게
360105② 후펑에게
360107 쉬마오융에게
360108① 황위안에게
360108② 선옌빙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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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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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012① 쑹린에게
361012② 자오자비에게
361015① 차오바이에게
361015② 타이징눙에게
361017 차오징화에게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201214(일) 아오키 마사루에게
261231(일)가라시마 다케시에게
310303(일) 야마가미 마사요시에게
320105(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20116(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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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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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928(체코) 야로슬라프 프루셰크에게
361005(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61011(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61014(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61018(일) 우치야마 간조에게
부록 1 | 예사오쥔에게 / 어머니께 / 가오즈에게 / 류셴에게 / 첸싱춘에게 / 유빙치에게 / 류웨이어에게 / 차오쥐런에게 / 돤무훙량에게 / 키진스키 등에게 / 곤차로프에게 / 크랍첸코에게
부록 2 | 마스다 와타루의 질문 편지에 대한 답신 집록 / 『중국소설사략』에 관하여 / 『세계 유머 전집 - 중국편』에 관하여 / 『루쉰전집』과 「소품문의 위기」에 관하여
부록 3 | 루쉰, 마오둔이 홍군에게 보내는 축하 편지
『서신 4』에 대하여 / 편지 수신인 찾아보기
1936년
360105① 차오징화에게
360105② 후펑에게
360107 쉬마오융에게
360108① 황위안에게
360108② 선옌빙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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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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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1012① 쑹린에게
361012② 자오자비에게
361015① 차오바이에게
361015② 타이징눙에게
361017 차오징화에게
외국인사에게 보낸 서신
201214(일) 아오키 마사루에게
261231(일)가라시마 다케시에게
310303(일) 야마가미 마사요시에게
320105(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20116(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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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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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928(체코) 야로슬라프 프루셰크에게
361005(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61011(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61014(일) 마스다 와타루에게
361018(일) 우치야마 간조에게
부록 1 | 예사오쥔에게 / 어머니께 / 가오즈에게 / 류셴에게 / 첸싱춘에게 / 유빙치에게 / 류웨이어에게 / 차오쥐런에게 / 돤무훙량에게 / 키진스키 등에게 / 곤차로프에게 / 크랍첸코에게
부록 2 | 마스다 와타루의 질문 편지에 대한 답신 집록 / 『중국소설사략』에 관하여 / 『세계 유머 전집 - 중국편』에 관하여 / 『루쉰전집』과 「소품문의 위기」에 관하여
부록 3 | 루쉰, 마오둔이 홍군에게 보내는 축하 편지
『서신 4』에 대하여 / 편지 수신인 찾아보기
저자
저자
루쉰
저자 루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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