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전집 20: 부집(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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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을 둘러싼 모든 것을 한눈에 보여 주는 참고자료
『루쉰전집』 전체의 참고자료로, 루쉰 연보, 전집 편목색인, 전집 주석색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루쉰전집』 전체의 참고자료로, 루쉰 연보, 전집 편목색인, 전집 주석색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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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루쉰 연보'는 그의 행적과 함께 저서와 각종 글, 번역서 등에 관한 기록을 상세히 정리하였다. '전집 편목색인'은 전집에 수록된 루쉰의 글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밝혀 가나다순으로 정리했으며, '전집 주석색인'은 전집 전체에 걸쳐 있는 루쉰전집번역위원회의 풍부한 주석을 인명, 서명, 사건명 등으로 분류하여 꼼꼼히 정리하였다. 루쉰이라는 인물뿐 아니라 그를 둘러싼 인물, 사건, 맥락 등을 한눈에 보여 주는 귀중한 참고자료다.
목차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루쉰 연보
루쉰 연보
루쉰 사후 저·역서 간행 개황
루쉰전집 편목색인
전집 편목색인
루쉰 필명 찾아보기
전집 주석색인
인명 찾아보기
서명, 편명, 총서명, 작품명 등 찾아보기
신문, 잡지, 부간 등 정기간행물 찾아보기
국가, 민족, 지명, 기관, 단체, 유파 등 찾아보기
당대 사건, 사회 사항, 루쉰 행적 등 찾아보기
고적, 고사, 풍속, 인용 등 찾아보기
기타 사항 찾아보기
루쉰 연보
루쉰 연보
루쉰 사후 저·역서 간행 개황
루쉰전집 편목색인
전집 편목색인
루쉰 필명 찾아보기
전집 주석색인
인명 찾아보기
서명, 편명, 총서명, 작품명 등 찾아보기
신문, 잡지, 부간 등 정기간행물 찾아보기
국가, 민족, 지명, 기관, 단체, 유파 등 찾아보기
당대 사건, 사회 사항, 루쉰 행적 등 찾아보기
고적, 고사, 풍속, 인용 등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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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루쉰
저자 루쉰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자는 위차이(豫才)이며, 루쉰은 탕쓰(唐俟), 링페이(令飛), 펑즈위(豊之餘), 허자간(何家幹) 등 수많은 필명 중 하나이다.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 등 잇따른 불행을 경험했고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몰락해 가는 집안의 풍경을 목도했다.
1898년부터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과 광무철로학당(?務鐵路學堂)에서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했고,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고분학원(弘文學院)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귀국 이후 고향 등지에서 교원 생활을 하던 그는 신해혁명 직후 교육부 장관 차이위안페이(蔡元培)의 요청으로 난징 중화민국 임시정부의 교육부 관리를 지냈다.
그러나 불철저한 혁명과 여전히 낙후된 중국 정치·사회 상황에 절망하여 이후 10년 가까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 [아Q정전], [쿵이지], [고향]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산문집,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 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등질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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