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이야기: 글자책(루쉰문고 15)(루쉰문고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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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 약자를 위해 판형과 글자를 키운 큰글자책입니다.
중국이 낳은 세기의 대문호 루쉰을 만난다. 루쉰이 편집에 참여한 문집들과 루쉰 사후에 편집되거나 발견된 다양한 글들 중에 정수를 모은 문고본 '루쉰문고' 15권. <풍월이야기>에는 1933년 6월~11월 사이의 잡문 64편이 수록되었다.
주로 신문.잡지에 기고한 짧은 단편을 가리켜 잡문이라 일컫는데, 루쉰은 잡문집을 살아생전 14개나 편찬할 정도로 잡문을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활용했다.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할 때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짧지만 강렬한 은유와 풍자성을 띠고 있는 그의 잡문들은 지식인들에게는 논쟁적이었고, 당대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민중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중국이 낳은 세기의 대문호 루쉰을 만난다. 루쉰이 편집에 참여한 문집들과 루쉰 사후에 편집되거나 발견된 다양한 글들 중에 정수를 모은 문고본 '루쉰문고' 15권. <풍월이야기>에는 1933년 6월~11월 사이의 잡문 64편이 수록되었다.
주로 신문.잡지에 기고한 짧은 단편을 가리켜 잡문이라 일컫는데, 루쉰은 잡문집을 살아생전 14개나 편찬할 정도로 잡문을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활용했다.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할 때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짧지만 강렬한 은유와 풍자성을 띠고 있는 그의 잡문들은 지식인들에게는 논쟁적이었고, 당대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민중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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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중국이 낳은 세기의 대문호 루쉰을 만난다!
―'풍월'을 말하지 않는 풍월이야기
?1933년 6월~11월 사이의 잡문 64편이 수록된 『풍월이야기』
1933년 5월이 되면 『자유담』에 대한 국민당의 탄압도 거세져 편집인은 "앞으로는 풍월을 더 말하고 불평을 덜 드러내기를 호소한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당시 국민당이 가장 적절한 글로 간주한 원앙호접(鴛鴦胡蝶)류의 연애담이나 풍류에 중점을 두고 루쉰이 쓰는 것과 같은 시사 비판적 글은 자제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루쉰은 필명을 계속 바꿔 가며 풍월을 말하는 것과 비슷한, 즉 풍월에 준하는 이야기인 척하며 글을 발표한다. 박쥐를 비유로 들며 논적을 공격하는 것(「박쥐를 말하다」)처럼 우화를 활용하기도 하고, 독일의 상황을 중국과 비교하며 양국가를 모두 비판하기도 하며(286~292쪽), 지식의 과잉으로 인해 세계 경제공황과 같은 상황이 중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교묘히 비꼬기도 한다(「지식과잉」). 정치적 현안에 관한 평이 『거짓자유서』에 비해 줄어든 듯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세태 비평으로 비판의 칼을 휘두름에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치기'와 '발차기', '속임수'와 '뺑소니'로 민중이 죽거나 다치는 세태, 경멸과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타민(墮民)이 자유가 아닌 억압을 욕망하는 세태 등을 풍자한다. 이러한 민중들에 대한 풍자는 루쉰 스스로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그것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대중의 영혼'이 지금 나의 잡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풍월이야기』, 「후기」)라고 말한 것처럼 그 속에 숭고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것이다. 『자유담』에 기고를 하며 "적막한 이들을 위하여 소리치기 위해서"(「서문」)라고 했듯, 루쉰은 소외된 자들의 고달픈 삶을 드러내 보이며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주로 신문?잡지에 기고한 짧은 단편을 가리켜 잡문(雜文)이라 일컫는데, 루쉰은 잡문집을 살아생전 14개나 편찬할 정도로 잡문을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활용했다.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할 때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렇게 평생을 함께한 잡문을 가리켜 전기작가 왕스징은 "어둠 속에서 전투의 빛을 발하는 비수"였다고 말한다. 짧지만 강렬한 은유와 풍자성을 띠고 있는 그의 잡문들은 지식인들에게는 논쟁적이었고, 당대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민중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루쉰의 잡문집은 그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전사'였음을 보여 준다. 그는 권력의 무도하고 잔학한 행위에 분노했고, 그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는 무리에게 창끝을 겨누고 물러섬 없이 대결해 왔다.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서고자 했고, 특히 아이와 여성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5?4운동과 좌익작가연맹에서의 활동 등 새로운 근대 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도 쉼이 없었고, 청년작가들을 양성하고 판화운동을 펼치는 등 문화운동에도 투신했다. 이런 그를 마오쩌둥은 민족 영웅이라 극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우두머리 장수였다. 위대한 문학가였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였으며, 위대한 혁명가였다."
―'풍월'을 말하지 않는 풍월이야기
?1933년 6월~11월 사이의 잡문 64편이 수록된 『풍월이야기』
1933년 5월이 되면 『자유담』에 대한 국민당의 탄압도 거세져 편집인은 "앞으로는 풍월을 더 말하고 불평을 덜 드러내기를 호소한다"며 고충을 토로한다. 당시 국민당이 가장 적절한 글로 간주한 원앙호접(鴛鴦胡蝶)류의 연애담이나 풍류에 중점을 두고 루쉰이 쓰는 것과 같은 시사 비판적 글은 자제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루쉰은 필명을 계속 바꿔 가며 풍월을 말하는 것과 비슷한, 즉 풍월에 준하는 이야기인 척하며 글을 발표한다. 박쥐를 비유로 들며 논적을 공격하는 것(「박쥐를 말하다」)처럼 우화를 활용하기도 하고, 독일의 상황을 중국과 비교하며 양국가를 모두 비판하기도 하며(286~292쪽), 지식의 과잉으로 인해 세계 경제공황과 같은 상황이 중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교묘히 비꼬기도 한다(「지식과잉」). 정치적 현안에 관한 평이 『거짓자유서』에 비해 줄어든 듯하지만 여전히 도저한 세태 비평으로 비판의 칼을 휘두름에 변함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밀치기'와 '발차기', '속임수'와 '뺑소니'로 민중이 죽거나 다치는 세태, 경멸과 고통 속에서 다른 사람의 종노릇을 하는 타민(墮民)이 자유가 아닌 억압을 욕망하는 세태 등을 풍자한다. 이러한 민중들에 대한 풍자는 루쉰 스스로 "분명 사람들로 하여금 구역질나게 하지만, 이로 말미암아 그것의 중요성을 더욱 잘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 대중의 영혼'이 지금 나의 잡문 속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풍월이야기』, 「후기」)라고 말한 것처럼 그 속에 숭고한 인간애를 깔고 있는 것이다. 『자유담』에 기고를 하며 "적막한 이들을 위하여 소리치기 위해서"(「서문」)라고 했듯, 루쉰은 소외된 자들의 고달픈 삶을 드러내 보이며 중국인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주로 신문?잡지에 기고한 짧은 단편을 가리켜 잡문(雜文)이라 일컫는데, 루쉰은 잡문집을 살아생전 14개나 편찬할 정도로 잡문을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활용했다. 의학을 버리고 문학으로 전향할 때부터 죽기 바로 직전까지. 이렇게 평생을 함께한 잡문을 가리켜 전기작가 왕스징은 "어둠 속에서 전투의 빛을 발하는 비수"였다고 말한다. 짧지만 강렬한 은유와 풍자성을 띠고 있는 그의 잡문들은 지식인들에게는 논쟁적이었고, 당대 사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으며, 민중과 약자들에 대해서는 애틋함을 표현하고 있다.
루쉰의 잡문집은 그가 불의에 굴하지 않는 '전사'였음을 보여 준다. 그는 권력의 무도하고 잔학한 행위에 분노했고, 그 권력에 빌붙어 아첨하는 무리에게 창끝을 겨누고 물러섬 없이 대결해 왔다. 억압받는 민중의 편에 서고자 했고, 특히 아이와 여성의 해방을 부르짖었다. 5?4운동과 좌익작가연맹에서의 활동 등 새로운 근대 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노력에도 쉼이 없었고, 청년작가들을 양성하고 판화운동을 펼치는 등 문화운동에도 투신했다. 이런 그를 마오쩌둥은 민족 영웅이라 극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루쉰은 중국 문화혁명의 우두머리 장수였다. 위대한 문학가였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였으며, 위대한 혁명가였다."
목차
목차
서문 … 11
1933년
밤의 송가 … 16
밀치기 … 19
얼처우 예술 … 22
우연히 쓰다 … 25
박쥐를 말하다 … 29
'차오바쯔' … 33
'바이샹 밥을 먹다' … 37
중·독의 국수보존 우열론 … 40
중·독의 분서 이동론(異同論) … 43
'타민'에 대한 나의 견해 … 47
서문의 해방 … 52
불을 훔친 또 다른 사람 … 56
지식과잉 … 58
시와 예언 … 62
'밀치기'의 여담 … 66
묵은 장부 조사 … 69
신새벽의 만필 … 73
중국인의 기발한 생각 … 79
호언의 에누리 … 83
발차기 … 88
'중국 문단에 대한 비관' … 92
가을밤의 산보 … 97
'웃돈 쓱싹하기' … 100
우리는 어떻게 아동을 교육했는가? … 103
번역을 위한 변호 … 106
기어가기와 부딪히기 … 111
각종 기부금족 … 115
사고전서 진본 … 118
초가을 잡기 … 122
식객법 폭로 … 125
등용술 첨언 … 128
귀머거리에서 벙어리로 … 132
초가을 잡기(2) … 136
남성의 진화 … 141
동의와 설명 … 145
문인 침상의 가을 꿈 … 149
영화의 교훈 … 153
번역에 관하여(상) … 157
번역에 관하여(하) … 161
초가을 잡기(3) … 165
예 … 169
인상 물어보기 … 173
교회밥을 먹다 … 177
차 마시기 … 182
사용금지와 자체제작 … 185
마술구경 … 188
쌍십절 회고?민국 22년에 19년 가을을 돌이켜 보다 … 191
33년에 느낀 과거에 대한 그리움?1933년에 광서 말년을 기억하다 … 199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상) … 204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하) … 211
황화 … 216
돌진하기 … 220
'골계'의 예와 설명 … 224
외국에도 있다 … 229
헛방 … 233
'함께 보냄'에 대한 답변 … 247
중국 문장과 중국인 … 255
야수 훈련법 … 258
되새김질 … 262
후덕함으로 돌아가다 … 265
난득호도 … 269
고서에서 살아 있는 어휘 찾기 … 273
문호를 '협정하다' … 276
청년과 아버지 … 279
후기 … 283
해제_『풍월이야기』에 대하여(이보경) … 333
1933년
밤의 송가 … 16
밀치기 … 19
얼처우 예술 … 22
우연히 쓰다 … 25
박쥐를 말하다 … 29
'차오바쯔' … 33
'바이샹 밥을 먹다' … 37
중·독의 국수보존 우열론 … 40
중·독의 분서 이동론(異同論) … 43
'타민'에 대한 나의 견해 … 47
서문의 해방 … 52
불을 훔친 또 다른 사람 … 56
지식과잉 … 58
시와 예언 … 62
'밀치기'의 여담 … 66
묵은 장부 조사 … 69
신새벽의 만필 … 73
중국인의 기발한 생각 … 79
호언의 에누리 … 83
발차기 … 88
'중국 문단에 대한 비관' … 92
가을밤의 산보 … 97
'웃돈 쓱싹하기' … 100
우리는 어떻게 아동을 교육했는가? … 103
번역을 위한 변호 … 106
기어가기와 부딪히기 … 111
각종 기부금족 … 115
사고전서 진본 … 118
초가을 잡기 … 122
식객법 폭로 … 125
등용술 첨언 … 128
귀머거리에서 벙어리로 … 132
초가을 잡기(2) … 136
남성의 진화 … 141
동의와 설명 … 145
문인 침상의 가을 꿈 … 149
영화의 교훈 … 153
번역에 관하여(상) … 157
번역에 관하여(하) … 161
초가을 잡기(3) … 165
예 … 169
인상 물어보기 … 173
교회밥을 먹다 … 177
차 마시기 … 182
사용금지와 자체제작 … 185
마술구경 … 188
쌍십절 회고?민국 22년에 19년 가을을 돌이켜 보다 … 191
33년에 느낀 과거에 대한 그리움?1933년에 광서 말년을 기억하다 … 199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상) … 204
'과거에 대한 그리움' 이후(하) … 211
황화 … 216
돌진하기 … 220
'골계'의 예와 설명 … 224
외국에도 있다 … 229
헛방 … 233
'함께 보냄'에 대한 답변 … 247
중국 문장과 중국인 … 255
야수 훈련법 … 258
되새김질 … 262
후덕함으로 돌아가다 … 265
난득호도 … 269
고서에서 살아 있는 어휘 찾기 … 273
문호를 '협정하다' … 276
청년과 아버지 … 279
후기 … 283
해제_『풍월이야기』에 대하여(이보경) … 333
저자
저자
루쉰
魯迅 1881.9.25~1936.10.19)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일찍이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한 그는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아Q정전」, 「고향」 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본명은 저우수런(周樹人). 일찍이 서양의 신학문을 공부한 그는 1902년 국비유학생 자격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센다이 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의학으로는 망해 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음을 깨닫고 문학으로 중국의 국민성을 개조하겠다는 뜻을 세우고 의대를 중퇴, 도쿄로 가 잡지 창간, 외국소설 번역 등의 일을 하다가 1909년 귀국했다. 1918년 「광인일기」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그는「아Q정전」, 「고향」 등의 소설과 산문시집 『들풀』, 산문집 『아침 꽃 저녁에 줍다』, 그리고 시평을 비롯한 숱한 잡문(雜文)을 발표했다. 또한 러시아의 예로센코, 네덜란드의 반 에덴 등 수많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하고, 웨이밍사(未名社), 위쓰사(語絲社) 등의 문학단체를 조직, 문학운동과 문학청년 지도에도 앞장섰다. 1926년 3·18참사 이후 반정부 지식인에게 내린 국민당의 수배령을 피해 도피생활을 시작한 그는 샤먼(廈門), 광저우(廣州)를 거쳐 1927년 상하이에 정착했다. 이곳에서 잡문을 통한 논쟁과 강연 활동, 중국좌익작가연맹 참여와 판화운동 전개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중국의 현실과 필사적인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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