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
일본 제국주의의 경계를 넘어간 일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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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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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기 위해 치러야 했던 혹독한 대가
그러나 제국에 저항하면서 그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인 대가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동경제국대학 출신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미야케 시카노스케는 반제국주의 운동과 조선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했다. 그가 겪은 사건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그것도 대학교수라는 지위에 있던 인물이 사상 사건과 관계하여 투옥된 희유의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그는 이후 평생에 걸쳐 자신과 가족의 총체적인 몰락과 불행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 육군 소위 출신으로 현직 공립학교 교장이었던 조코 요네타로는 조선인을 가르치는 한 사람의 교사로서 핍박받는 식민지 현실의 아이들과 조선인의 처지를 직시했다. 그래서 그는 교원노동자조합의 조선 지국을 조직하려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2년에 걸친 구치소 생활을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을 만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면서 무정부주의의 폭넓은 대중화를 지향했는데,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불령선인에 의한 비밀결사의 대역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그녀는 재판 과정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천황제에 도전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죽어서도 자신이 태어난 일본 땅에 묻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조선 땅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황군'에서 혁명가로 전환하여 '태평양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던 이소가야 스에지는 조직 구성원 400여 명과 함께 검거되어, 가혹한 고문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거의 9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전향하지 않고 형무소 생활을 마친 유일한 일본인이기도 했다.
희대의 천재 이단아로 성장하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인이 된 마키무라 고는 간도에서 벌어진 조선인의 반일 독립 투쟁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10연 183행에 달하는 장편시 「간도 빨치산의 노래」를 썼다.(이 책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에 처음으로 번역 전문을 실었다.) 그는 조선 독립 투쟁과 국제 연대를 위해 바친 활동으로 인해 투옥되었다가 3년 3개월 만에 망신창이가 되어 석방되었다.
이처럼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냉대와 멸시, 해고와 추방, 그리고 옥사와 같은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다양한 방식과 양태로 모국 일본에 저항하고 식민지 조선에 동조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대안의 근대와 동아시아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일 관계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일 관계는 여전히 역사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식민 지배에 대한 기억과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이들 5명의 일본인 이야기는 대립을 넘어선 상호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이끈다. 물론 과거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서 식민 지배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존재가 일본 제국주의의 죄를 씻어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자아의 성찰과 투쟁을 향한 의지, 그리고 연대의 노력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인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역사 문제, 영토 분쟁, 경제 갈등 등 많은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이들 5명의 일본인이 보여준 경계를 넘어선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들의 결단과 희생은 오늘날 두 나라의 민중이 과거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생각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동아시아는 여전히 냉전의 유산과 민족주의의 갈등 속에 놓여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사이의 역사 갈등은 지역의 협력과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선 동아시아 시민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들 5명의 일본인이 역사를 통해서 살아온 것처럼,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보편 가치로 가는 길은 쉽지 않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특히 미래를 만들어 갈 젊은 세대에게 울림이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제국에 저항하면서 그 경계를 넘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치명적인 대가를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동경제국대학 출신이자 경성제국대학 교수였던 미야케 시카노스케는 반제국주의 운동과 조선 공산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다가 체포되어 감옥 생활을 했다. 그가 겪은 사건은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인, 그것도 대학교수라는 지위에 있던 인물이 사상 사건과 관계하여 투옥된 희유의 사건"으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그는 이후 평생에 걸쳐 자신과 가족의 총체적인 몰락과 불행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 육군 소위 출신으로 현직 공립학교 교장이었던 조코 요네타로는 조선인을 가르치는 한 사람의 교사로서 핍박받는 식민지 현실의 아이들과 조선인의 처지를 직시했다. 그래서 그는 교원노동자조합의 조선 지국을 조직하려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2년에 걸친 구치소 생활을 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박열을 만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면서 무정부주의의 폭넓은 대중화를 지향했는데, 관동대지진 발생 직후 '불령선인에 의한 비밀결사의 대역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그녀는 재판 과정에서 죽음을 각오하고 천황제에 도전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형무소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했다. 그녀는 죽어서도 자신이 태어난 일본 땅에 묻힐 자리를 찾지 못하고 조선 땅으로 내몰리고 말았다.
'황군'에서 혁명가로 전환하여 '태평양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했던 이소가야 스에지는 조직 구성원 400여 명과 함께 검거되어, 가혹한 고문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거의 9년 동안 감옥에 있었다. 그는 식민지 조선에서 전향하지 않고 형무소 생활을 마친 유일한 일본인이기도 했다.
희대의 천재 이단아로 성장하다가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인이 된 마키무라 고는 간도에서 벌어진 조선인의 반일 독립 투쟁을 열렬히 지지하면서 10연 183행에 달하는 장편시 「간도 빨치산의 노래」를 썼다.(이 책 『제국과 식민지 사이에서』에 처음으로 번역 전문을 실었다.) 그는 조선 독립 투쟁과 국제 연대를 위해 바친 활동으로 인해 투옥되었다가 3년 3개월 만에 망신창이가 되어 석방되었다.
이처럼 이들이 감내해야 했던 냉대와 멸시, 해고와 추방, 그리고 옥사와 같은 고통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는 다양한 방식과 양태로 모국 일본에 저항하고 식민지 조선에 동조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대안의 근대와 동아시아
이들의 이야기는 오늘날 한일 관계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일 관계는 여전히 역사 문제로 갈등하고 있다. 식민 지배에 대한 기억과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현실에서 이들 5명의 일본인 이야기는 대립을 넘어선 상호 이해와 연대의 가능성으로 우리를 이끈다. 물론 과거에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고 해서 식민 지배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존재가 일본 제국주의의 죄를 씻어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역사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가장 어두운 시대에도 자아의 성찰과 투쟁을 향한 의지, 그리고 연대의 노력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인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두 나라의 배타적 민족주의는 역사 문제, 영토 분쟁, 경제 갈등 등 많은 문제들을 더욱 악화시킨다. 이런 현실에서 우리는 이들 5명의 일본인이 보여준 경계를 넘어선 공감과 연대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들의 결단과 희생은 오늘날 두 나라의 민중이 과거를 넘어 화해와 평화의 미래로 가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과거를 잊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생각하는 데도 의미가 있다. 동아시아는 여전히 냉전의 유산과 민족주의의 갈등 속에 놓여 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 사이의 역사 갈등은 지역의 협력과 평화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선 동아시아 시민들 사이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들 5명의 일본인이 역사를 통해서 살아온 것처럼, 민족이나 국가를 넘어 보편 가치로 가는 길은 쉽지 않고 결단과 희생을 요구한다. 이들의 이야기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특히 미래를 만들어 갈 젊은 세대에게 울림이 있기를 바란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1장 들어가며
2장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
식민주의와 식민자들
이주 일본인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3장 경계를 넘어간 일본인들
반식민지·반제운동과 조선 민족 해방
조선 거주 일본인과 치안유지법
식민지 인식의 내면세계
4장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1899~1982)
출생과 성장, 그리고 조선으로
실천 운동에의 투신과 체포
전향과 감옥 생활
출옥 이후
5장 조코 요네타로(上甲米太?, 1902~1987)
조선 이주와 교육 운동, 그리고 그 좌절
의식화한 삶과 귀환 이후
엇갈리는 삶, 두 가지 평가
6장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가족의 억압과 무적자로서의 차별
조선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
조선의 기억과 고통받는 민중의 삶
방황, 그리고 가족과의 결별
나를 찾는 여정
조선과의 재회, 의식의 각성
인간 선언, 죽음을 함께 하는 삶
법정, 사상투쟁의 장에서 '천황제'에 도전하다
여정의 끝에서 죽음을 통해 죽음을 넘다
7장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 1907~1998)
아사쿠사의 추억과 관동대지진
조선의 끝에서 '황군'을 거쳐 태로의 기치 아래
식민지 감옥의 유일한 일본인 비전향 장기수
출옥과 종전, 그리고 귀환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하여
식민자 좌익으로서의 기억 투쟁
8장 마키무라 고(?村浩, 1912~1938)
장래가 두려운 겁 없는 천재아
시대를 상징하는 두 학교를 거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희대의 이단아로서 반전 평화운동에 참여하다
고향을 떠나 조선인에게서 이름을 얻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인으로 첫걸음을 내딛다
간도 빨치산의 노래
조선 독립 투쟁과 국제연대를 위한 헌시
자주적, 창의적 지역 문화 운동을 위하여
옥중에서 유일한 비전향 시인으로 천황제와 투쟁하다
9장 나가며
부록 [별표1]~[별표3]
참고문헌
미주
1장 들어가며
2장 식민지 조선에 살았던 일본인들
식민주의와 식민자들
이주 일본인들은 어떻게 살았는가
3장 경계를 넘어간 일본인들
반식민지·반제운동과 조선 민족 해방
조선 거주 일본인과 치안유지법
식민지 인식의 내면세계
4장 미야케 시카노스케(三宅鹿之助, 1899~1982)
출생과 성장, 그리고 조선으로
실천 운동에의 투신과 체포
전향과 감옥 생활
출옥 이후
5장 조코 요네타로(上甲米太?, 1902~1987)
조선 이주와 교육 운동, 그리고 그 좌절
의식화한 삶과 귀환 이후
엇갈리는 삶, 두 가지 평가
6장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가족의 억압과 무적자로서의 차별
조선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다
조선의 기억과 고통받는 민중의 삶
방황, 그리고 가족과의 결별
나를 찾는 여정
조선과의 재회, 의식의 각성
인간 선언, 죽음을 함께 하는 삶
법정, 사상투쟁의 장에서 '천황제'에 도전하다
여정의 끝에서 죽음을 통해 죽음을 넘다
7장 이소가야 스에지(磯谷季次, 1907~1998)
아사쿠사의 추억과 관동대지진
조선의 끝에서 '황군'을 거쳐 태로의 기치 아래
식민지 감옥의 유일한 일본인 비전향 장기수
출옥과 종전, 그리고 귀환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하여
식민자 좌익으로서의 기억 투쟁
8장 마키무라 고(?村浩, 1912~1938)
장래가 두려운 겁 없는 천재아
시대를 상징하는 두 학교를 거치며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다
희대의 이단아로서 반전 평화운동에 참여하다
고향을 떠나 조선인에게서 이름을 얻다
프롤레타리아 혁명 시인으로 첫걸음을 내딛다
간도 빨치산의 노래
조선 독립 투쟁과 국제연대를 위한 헌시
자주적, 창의적 지역 문화 운동을 위하여
옥중에서 유일한 비전향 시인으로 천황제와 투쟁하다
9장 나가며
부록 [별표1]~[별표3]
참고문헌
미주
저자
저자
김경일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덕성여자대학교 교수를 거쳐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에서 정년을 맞았다. 뉴욕주립대(빙햄턴)와 파리 인간과학연구소(Maison des Sciences de L'Homme)에서 수학했고(박사후과정), 도쿄대학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과 워싱턴대학 교류교수 등을 역임했다. 긴 시간 한국 사회사, 사회사상, 역사사회학, 동아시아론 등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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