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감국사집(한글본 한국불교전서 고려 2)(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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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감국사집』은 고려 후기에 국사로 활약한 충지 스님의 시문집으로서, 고려시대에 간행된 <원감국사가송(圓鑑國師歌頌)>을 기본으로 하여 <동문선>에 수록된 시문과, 스님의 산문을 모아놓은 <복암잡저(宓庵雜著)>까지 더하여 번역을 한 것이다. 원감국사의 다양한 시 작품 가운데 사회 현실에 대해 걱정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외에도 선취를 담은 시, 그리고 원나라에 이의를 제기하여 사원의 토지를 회복한 사연을 적은 산문들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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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승려로서 『동문선』에 가장 많은 작품이 수록된 고려국사 충지의 시문과 원나라와의 외교문서까지 총망라
『원감국사집』은 고려 후기에 국사國師로 활약한 충지?止 스님의 시문집으로서, 고려시대에 간행된 『원감국사가송圓鑑國師歌頌』을 기본으로 하여 『동문선』에 수록된 시문과, 스님의 산문을 모아놓은 『복암잡저宓庵雜著』까지 더하여 번역을 한 것이다.
원감국사의 다양한 시 작품 가운데 사회 현실에 대해 걱정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외에도 선취를 담은 시, 그리고 원나라에 이의를 제기하여 사원의 토지를 회복한 사연을 적은 산문들도 눈길을 끈다.
충지는 19세에 장원급제한 이후에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시는 물론이거니와 소疏나 표表 등 여러 문체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이런 문장 실력이 원나라와의 외교적 문서에서 특히 눈에 드러난다. 당시는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횡포가 극심하던 때였다. 총독부를 두고 세금과 노비 등을 수탈하였고, 일본을 정복한다는 구실로 전함의 축조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민생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세금의 수탈은 사찰의 전답까지도 징수하게 되었는데, 대사는 원나라 황제에게 표를 올려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현재 송광사)의 토전土田을 돌려달라고 청하였다. 원감국사의 표문으로 수선사의 전답은 다시 돌려받게 되었고, 원의 황제는 국사의 인품에 감복되어 그를 불러들여 크게 대접하고, 많은 예물까지 주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글로 쓴 표와 소도 문집에 실려 있다. 이런 표문들을 볼 때 교린交隣의 표문이 결코 사대의 비하가 아닌 자주국으로서의 주권적 언사의 관행이었음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출판사 리뷰>
원감국사는 장원급제한 이후에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시는 물론이거니와 소疏나 표表 등 여러 문체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이런 문장 실력이 원나라의 외교적 문서에서 발휘되곤 하였는데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므로 원 황제의 장수를 기리는 글들을 많이 쓰게 되었다. 한편 고려 왕의 장수와 복을 기리는 글도 많은데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원나라를 빈번하게 왕래할 수밖에 없었던 왕의 고단함과 이에 대한 신민臣民들의 걱정을 읽을 수도 있다.
당시는 원이 고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하던 때였다. 총독부를 두고 세금과 노비 등을 수탈하였고, 일본을 정복한다는 구실로 전함의 축조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민생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세금의 수탈은 사찰의 전답까지도 징수하게 되었는데, 대사는 원의 황제에게 표를 올려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현재 송광사)의 토전土田을 돌려달라고 청하였다. 원감국사의 표문으로 수선사의 전답이 다시 내려지고, 원의 황제는 국사의 인품에 감복되어 그를 불러들여 크게 대접하고, 많은 예물까지 내려주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글로 쓴 표表와 소疏도 문집에 실려 있다. 이런 표문들을 볼 때 교린의 표문이 결코 사대의 비하가 아닌 자주국으로서의 주권적 언사의 관행이었음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원감국사가송』이 고려 말엽의 국사로서의 승려의 시문집이기는 하나, 이는 당대를 대표할 한 사람의 시문집으로 문학사에 남을 만한 문집이다. 승려로서 선취적禪趣的 시품이 돋보임도 중요하지만, 외침으로 곤궁한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뇌상이 사회의 전면에서 민중을 계도해야 할 사대부보다 앞서 있다는 점도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하다 하겠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 가송집이 국내에서는 멸실되었다가 일본에서 17세기에 중간되고 그 중간본이 20세기 초에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서지학적 경로도 매우 희귀한 사례가 되겠다. 이 또한 국사의 법력의 후광이기도 하지만, 시가의 문학성의 우월성이 이미 외국에서 인정되었다는 방증에서도 다시 한 번 더 경하할 일이다.
『원감국사집』은 고려 후기에 국사國師로 활약한 충지?止 스님의 시문집으로서, 고려시대에 간행된 『원감국사가송圓鑑國師歌頌』을 기본으로 하여 『동문선』에 수록된 시문과, 스님의 산문을 모아놓은 『복암잡저宓庵雜著』까지 더하여 번역을 한 것이다.
원감국사의 다양한 시 작품 가운데 사회 현실에 대해 걱정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특히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외에도 선취를 담은 시, 그리고 원나라에 이의를 제기하여 사원의 토지를 회복한 사연을 적은 산문들도 눈길을 끈다.
충지는 19세에 장원급제한 이후에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시는 물론이거니와 소疏나 표表 등 여러 문체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이런 문장 실력이 원나라와의 외교적 문서에서 특히 눈에 드러난다. 당시는 고려에 대한 원나라의 횡포가 극심하던 때였다. 총독부를 두고 세금과 노비 등을 수탈하였고, 일본을 정복한다는 구실로 전함의 축조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민생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세금의 수탈은 사찰의 전답까지도 징수하게 되었는데, 대사는 원나라 황제에게 표를 올려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현재 송광사)의 토전土田을 돌려달라고 청하였다. 원감국사의 표문으로 수선사의 전답은 다시 돌려받게 되었고, 원의 황제는 국사의 인품에 감복되어 그를 불러들여 크게 대접하고, 많은 예물까지 주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글로 쓴 표와 소도 문집에 실려 있다. 이런 표문들을 볼 때 교린交隣의 표문이 결코 사대의 비하가 아닌 자주국으로서의 주권적 언사의 관행이었음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출판사 리뷰>
원감국사는 장원급제한 이후에 승려가 되었기 때문에 시는 물론이거니와 소疏나 표表 등 여러 문체를 자유롭게 구사하였다. 이런 문장 실력이 원나라의 외교적 문서에서 발휘되곤 하였는데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절이므로 원 황제의 장수를 기리는 글들을 많이 쓰게 되었다. 한편 고려 왕의 장수와 복을 기리는 글도 많은데 그 내용들을 살펴보면 원나라를 빈번하게 왕래할 수밖에 없었던 왕의 고단함과 이에 대한 신민臣民들의 걱정을 읽을 수도 있다.
당시는 원이 고려에 대한 횡포가 극심하던 때였다. 총독부를 두고 세금과 노비 등을 수탈하였고, 일본을 정복한다는 구실로 전함의 축조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민생이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다. 세금의 수탈은 사찰의 전답까지도 징수하게 되었는데, 대사는 원의 황제에게 표를 올려 조계산曹溪山 수선사修禪社(현재 송광사)의 토전土田을 돌려달라고 청하였다. 원감국사의 표문으로 수선사의 전답이 다시 내려지고, 원의 황제는 국사의 인품에 감복되어 그를 불러들여 크게 대접하고, 많은 예물까지 내려주었다. 이에 대한 감사의 글로 쓴 표表와 소疏도 문집에 실려 있다. 이런 표문들을 볼 때 교린의 표문이 결코 사대의 비하가 아닌 자주국으로서의 주권적 언사의 관행이었음도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원감국사가송』이 고려 말엽의 국사로서의 승려의 시문집이기는 하나, 이는 당대를 대표할 한 사람의 시문집으로 문학사에 남을 만한 문집이다. 승려로서 선취적禪趣的 시품이 돋보임도 중요하지만, 외침으로 곤궁한 당시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고뇌상이 사회의 전면에서 민중을 계도해야 할 사대부보다 앞서 있다는 점도 문학사의 한 장을 장식할 만하다 하겠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이 가송집이 국내에서는 멸실되었다가 일본에서 17세기에 중간되고 그 중간본이 20세기 초에 우리에게 전해졌다는 서지학적 경로도 매우 희귀한 사례가 되겠다. 이 또한 국사의 법력의 후광이기도 하지만, 시가의 문학성의 우월성이 이미 외국에서 인정되었다는 방증에서도 다시 한 번 더 경하할 일이다.
목차
목차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를 펴내며 / 5
원감국사집 해제 / 7
일러두기 / 28
원감국사어록 중간 서문 / 29
조계 원감국사어록 서문 / 32
해동 조계 제6세 원감국사가송 / 33
발문跋文 / 328
원감록圓鑑錄 인사印寫 발문跋文 / 330
원감시圓鑑詩 보유補遺 / 333
문편文篇 / 341
소편疏篇 / 351
표편表篇 / 429
부록附錄 / 441
복암화상잡저 보유 / 449
첨부 / 467
원감국사집 해제 / 7
일러두기 / 28
원감국사어록 중간 서문 / 29
조계 원감국사어록 서문 / 32
해동 조계 제6세 원감국사가송 / 33
발문跋文 / 328
원감록圓鑑錄 인사印寫 발문跋文 / 330
원감시圓鑑詩 보유補遺 / 333
문편文篇 / 341
소편疏篇 / 351
표편表篇 / 429
부록附錄 / 441
복암화상잡저 보유 / 449
첨부 / 467
저자
저자
충지
저자 충지(1226~1292)는 원감국사圓鑑國師 자호自號 복암宓庵. 19세에 장원급제하고 29세에 원오국사圓悟國師 천영天英에게 수계受戒하였다. 41세 때에 원오국사의 권유와 조정의 명령에 의하여 김해에 있는 감로사甘露寺의 주지가 되었다. 61세에는 원오국사의 뒤를 이어 수선사修禪社의 제6세주가 되었다. 승려들 가운데 『동문선』에 가장 많이 작품이 수록었고 작품성도 뛰어나 문학 쪽에서 연구가 많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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