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암유집(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조선 33)(양장본 Hardcover)
아암 혜장兒庵惠藏(1772∼1811)의 시문집 『아암유집兒庵遺集』. 『아암유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1920(大正 9)년 신문관新文館에서 연활자鉛活字로 발행한 활자본이다. 권수卷首에 하정 거사 여규형이 쓴 「아암유집서」가 있고, 권말에는 정약용이 지은 「동방 제15조 연파 대사 비명東方第十五祖蓮坡大師碑」과 「아암 스님을 애도함(輓兒菴)」과 쓴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암 화상 만사兒菴和尙輓詞」 등이 부록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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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현존하고 있는 『아암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1920(大正 9)년 신문관新文館에서 연활자鉛活字로 발행한 활자본이다. 권수卷首에 하정荷亭 거사 여규형呂圭亨이 쓴 「아암유집서兒庵遺集序」가 있다.
권1에는 시詩 16편 78수가 수록되어 있고, 권2에는 상량문·축문·비명·서書 등 문文 14종 31편이 수록되어 있으며, 권3에는 『주역』·『논어』·『능엄경』 등의 이치에 관한 문답을 적은 글 4종 5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말卷末에는 정다산丁茶山이 지은 「동방 제15조 연파 대사 비명東方第十五祖蓮坡大師碑銘」과 「아암 스님을 애도함(輓兒菴)」과 누가 지었는지 알 수 없는 「아암 화상 만사兒菴和尙輓詞」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서문에 의하면 "아암 상인은 머리를 깎고 계를 받은 뒤로부터 경전을 널리 섭렵하고 아울러 선과 교를 다 통달하였으며, 우뚝하게 치문의 종장이 되었다. 그가 시를 지음에 있어서는 스스로 일가를 이루었다고 말하였으나, 지나간 것은 생각을 두지 않았으므로 금시 지은 것조차 금방 잃어버려서 떨어진 비단과 조각난 명주처럼 세간에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가 시적示寂한 이후에 그의 문도들이 애써 찾아 모은 것이 몇 수에 지나지 않았는데, 소사小詞·사륙문(四六)·사기私記·편지(尺牘)를 함께 묶어 책을 간행하였다.
스님의 시를 살펴보면 곧 시의 격식을 갖추고 있어 절대로 스님들의 어투와 같지 않다. 소사·사륙문·『주역』·『노논어魯語論』에 대한 글은 몽둥이를 휘두르고(棒) 고함을 지르는(喝) 선가의 가풍과는 조금도 가깝지 않으니, 이런 까닭으로 그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이런 점이 아암이 된 이유이고, 이런 점이 바로 좋은 시문이 된 이유이다. 당대의 명사名士 정다산丁茶山(정약용)이나 김담연金覃硏과 같은 큰 학자들이 서로 오가면서 주고받은 편지에서 칭송해 마지않았던 것이 어찌 공연한 일이겠는가? 내전內典(佛經)의 여러 경전들과 게송의 어구는 대부분 4·5·7언言으로 글을 엮었으나 그것들은 시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시에 가깝지 않다."고 하여 시를 짓되 격식을 잘 갖추었고 문체가 활달豁達하여 스님이 아닌 유생으로 의심한 이들도 있을 정도였으며, 그런 까닭에 당시 명성 있는 유학자들이 빈번하게 교유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제3권의 내용을 보면 아암은 특히 『주역』과 『논어』 그리고 『능엄경』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그 부분에 남다른 견해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서문을 통해 보면 "지나간 것은 생각을 두지 않았으므로 금시 지은 것조차 금방 잃어버려서 떨어진 비단과 조각난 명주처럼 세간에 흩어져 있게 되었다."는 내용으로 보아 지금 전해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시문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암유집』은 3권 1책으로 되어 있으며, 1920(大正 9)년 신문관新文館에서 연활자鉛活字로 발행한 활자본이다. 권수卷首에 하정 거사 여규형이 쓴 「아암유집서」가 있고, 권말에는 정약용이 지은 「동방 제15조 연파 대사 비명東方第十五祖蓮坡大師碑」과 「아암 스님을 애도함(輓兒菴)」과 쓴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아암 화상 만사兒菴和尙輓詞」 등이 부록에 실려 있다.
권1은 시 16편 78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산에 살면서 생긴 여러 가지 흥미(山居雜興) 20수, 「장춘동 잡시長春洞雜詩」 12수, 「견흥遣興」 6수, 「총림행叢林行」, 「잠(睡」), 「평양 조진명이 찾아와서 나에게 시를 지어주기에 그 시운을 따서 화답함(趙平壤趙平壤(鎭明)枉駕相見贈余以詩奉和其韻)」 2수, 「승지 김이도가 영암에 유배되어 있을 때 여러 번 안부를 물어주는 호의를 입었는데, 풀려나는 경사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이별에 임하여 시를 지어 전송함(金承旨(履度)謫居靈巖數蒙問存聞有賜環之喜爲之就別副之以詩)」, 「금릉 현감 송응규공을 방문함(金陵知縣宋公應圭見顧)」, 「영암 군수 조 공 운영의 시운을 따서 지은 시를 편지로 보냄(次韻奉簡靈巖郡守趙公運永)」, 「강진 현감 조 공 홍진에게 시를 지어 편지로 보냄(奉簡康津知縣趙公弘鎭)」, 「운을 따서 지은 시를 동천여사에 보냄(次韻奉呈東泉旅舍)」 2수, 「동천여사에 편지를 보냄(奉簡東泉旅舍)」, 「운을 따서 지은 시를 유산에게 편지로 보냄(次韻奉簡酉山)」, 「황정 이 공 태승에게 편지로 보냄(奉簡黃庭李公台升)」, 「백련사에서 벽 위에 걸린 시의 운을 따서(白蓮社次壁上韻)」, 「동천의 곤괘 육효시의 운을 따서 시를 지어 화답함(奉和東泉坤卦六爻韻)」, 「어가오漁家傲」, 「보살만菩薩蠻」, 「장상사長相思」, 「여몽령如夢令」, 「수조가두水調歌頭」, 「낭도사浪陶沙」, 「중봉의 낙은사에 화답함(和中峰樂隱詞)」 16수, 「무안 현감 서 공 준보에게 편지로 부침(簡寄務安宰徐公)」, 「북암이라는 시의 운을 따서(次韻題北菴)」, 「색성과 자홍 두 비구에게 보여줌(示?性慈弘兩比丘)」이다.
이 중에 특이한 시의 형태로 사패의 이름으로, 아름답고 청신하고 신선하여 읽으면 기쁜 마음이 생겨나도록 하는 내용의 시사를 일컫는 「어가오」와 당나라 선종宣宗 때 여만국女蠻國에서 당나라에 조공을 바치러온 사자使者의 복장과 치장이 아름답게 늘어트린 머리에 황금빛 모자를 썼는데 모자의 양쪽으로 늘어트린 장식이 발끝까지 내려왔으니, 이는 불교에서 말하는 보살의 그림과 비슷하였고, 사자의 일행에 노래하고 춤추는 무희들이 있었으니 그 노래가 특이하고 아름다운 곡이었다 한다. 이후부터 많은 문인들이 사詞나 곡을 지을 때 보살만이라 이름 하였으며, 대부분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애타는 심경을 그린 것이라 하는 44자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보살만과, 악부樂府의 편명으로서 이 곡은 길이 서로 그리워하는 것을 주제로 한 것이며, 36자 또는 1백 자 또는 103자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장상사와, 당나라 장종莊宗 때 내원內院을 수리하다가 비석을 발견했는데, 그 비석에 노래가 실려 있었으므로 장종이 악공을 불러 그 노래를 불러보게 하고 이름을 붙였다는 33자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여몽령과, 사패詞牌의 이름으로 수조는 당나라의 악곡의 명칭이고 가두는 노래의 첫머리라는 말로 95자로 지어야만 한다는 수조가두와, 악부樂府의 곡사曲辭로서 28자 또는 54자의 쌍조雙調로 지어야만 한다는 낭도사와 같은 시격詩格이 엄격한 이런 종류의 시는 스님의 문집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처음 보이는 문사체들이다.
또한 견흥 6수는 『주역』의 괘(卦象 등을 읊은 시로 아암이 『주역』에 얼마나 능통했는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권2는 문文 14종 31편이 수록되었는데, 그 목차는 다음과 같다.
「두륜산 만일암 중건 상량문頭輪山挽日菴重建上樑文」, 「진도 쌍계사 시왕전 중수 상량문珍島雙溪寺十王殿重修上梁文」, 「대둔사 비각 다례 축문大芚寺碑閣茶禮祝文」, 「화악 대사 비명과 서문(華嶽大師碑銘?序)」, 「현해 선사 탑명과 서문(懸解禪師塔銘?序)」, 「동천에게 답함(答東泉)」 8편, 「윤 공 윤에게 답함(答尹公潤)」 6편, 「금호에게 답함(答琴湖)」 6편, 「수룡 색성에게 답함(答袖龍?性)」, 「기어 자홍에게 보냄(與騎魚?弘)」, 「백운 도인에게 보냄(與白雲道人)」, 「무안 현감 서 공 준보에게 올림(上務安宰徐公)」, 「대둔사 여러 승려들을 대신하여 무안 현감 서 공에게 올림(代大芚諸僧上務安宰徐公)」, 「정언 황기천에게 올림(上黃正言)」 등 서간문이 9종 26편이고, 비명과 탑명이 각 1편, 상량문이 2편, 축문이 1편이다.
권3은 시문약초詩文略? 2편, 「종명록鍾鳴錄」, 「능엄서언楞嚴緖言」, 「아암 장 공 탑명兒菴藏公?銘」의 총 5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 가운데 「종명록」은 수룡 색성袖龍?性과 기어 자홍騎魚慈弘의 질문을 받고 아암이 대답한 내용으로 『주역』의 괘변卦變·하도河圖·태극太極·양의兩儀·작괘법作卦法에 대한 문답과, 『논어』 가운데 수장首章인 「학이편學而篇」 제1장인 〈학이장學而章〉과 제2장인 〈유자장有子章〉, 「향당편鄕黨篇」 13장인 〈태묘장太廟章〉과 「팔일편八佾篇」 제17장인 〈곡삭장告朔章〉, 제20장인 〈관저낙이불음장關雎樂而不淫章〉, 「이인편里仁篇」 제4장인 〈빈여천시인지소오야장貧與賤是人之所惡也章〉과 제16장인 「군자유어의장君子喩於義章」 등에 대한 문답, 그리고 『능엄경』에 대하여 문답한 것으로서 원래는 18조항이었으나 지금 남아 있는 부분은 10조항 등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특히 『논어』의 문답 중에 "가난하고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정상적인 방법으로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버리지 않아야 한다(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고 한 종래의 학설에 대하여, 혜장은 "가난하고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이나 정당한 방법으로 벗어나는 기회를 얻지 않는다면, 군자가 가난하고 천함을 편안하게 여기고 구차스럽게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할 뿐(貧與賤。是人之所惡也。不以其道。得之不去也。)"이라고 해석하여, '불이기도득지不以其道得之'는 '정당한 방법으로 가난하고 천함을 얻은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라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빈천(貧賤)을 방도(方道)가 맞을 때는 버릴 수 있다고 보아, 주자의 학설에 다른 해석을 붙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말미에는 부록으로 3편의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정약용이 지은 「동방 제15조 연파 대사 비명東方第十五祖蓮坡大師碑」과 「아암 스님을 애도함(輓兒菴)」이라는 글과 그리고 누가 지었는지 알려져 있지 않은 「아암 화상 만사兒菴和尙輓詞」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손제자인 원응 계정(圓應戒定)이 지은 발문 등이 수록되어 있다.
가치
아암의 시문은 정약용 등 당시의 명사들과 교류가 깊어짐에 따라 선가의 상투적인 형식을 벗어나 일반 문인들의 시격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 특색이다.
게다가 그의 시 한 수가 일찍이 중국에까지 전해졌는데 당시 문장의 대가인 옹방강翁方綱 같은 분도 얻기 힘든 인재를 얻었다 하여 몹시 기뻐하였고, 서로의 형상을 잊고 교분을 맺을 뜻을 보였으며, 자신이 직접 그린 담계覃溪의 초상肖像과 동파東坡의 소(小像, 그리고 『복초재시집復初齋詩集』 6책, 직접 쓴 『금강경』 1부를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연경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편에 보내왔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법손인 원응 계정은 "학사學士들이 많이 찾아와 풍도風度를 듣고 서로 시문을 주고받았는데, 아무렇게나 내뱉어도 주옥) 같은 글이 되었으며, 뜻을 표현함이 맑고 심원할 뿐더러 꾸미거나 윤택하게 한 흔적이 전혀 없는데도 옛 사람의 경지에 들어갔다."고 표현하고 있다.
아암의 문장 중에서도 변려문騈儷文은 더욱 뛰어난 솜씨가 있어서 격식과 율법이 정밀하고 엄격하였다. 이 때문에 다산 정약용이 「대둔사비각다례문大芚寺碑閣茶禮文」을 읽고 찬양하며 말하기를 "이 작품은 바로 관각館閣의 큰 문장가의 솜씨 같으니, 이윤보李閏甫와 임이호林?好의 뛰어난 솜씨를 이을 만하다. 글자마다 도탕跳?하고 구절마다 기운이 용솟음침을 느낄 수 있으니, 나물과 죽순이나 먹는 사람의 입 기운이 아니다."라고 극찬할 정도였다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가 있는 스님의 시문집이라 할 수 있다.
참고자료
아암兒庵, 『아암유집』, 『한국불교전서』 제10책(서울 : 동국대학교출판부)
동국대학교 역경원, 『연담 대사 임하록』외 아암유집해제(동국대학교 역경원, 1997)
동국대학교불교문화연구소 편,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서울 :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 고서목록편찬위원회 편, 『고서목록』(보고사, 2006)
서상윤徐相潤 역, 『주역』(신한출판사, 1981)
우현민禹玄民 역, 『논어』(신한출판사, 198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한국인명대사전 편찬실 편, 『한국인명대사전』(신구문화사,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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