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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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냐 혁명이냐,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 로자 룩셈부르크의 투쟁!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 ‘혁명의 예리한 검이자 불꽃’ 이라 불린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은 그녀의 핵심 사상을 간명하고 다룬 입문서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작고한 지도자 토니 클리프가 열정적 투사이자 뛰어난 사상가로서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역사적 기여를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을 추리고 때때로 비판적 논평도 가하며 룩셈부르크 사상의 정수를 소개한다.
저자는 룩셈부르크를 사회주의 전통 핵심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는다. 또한 그녀의 저작 전체가 ‘개혁주의에 맞서는 투쟁’이라 평가하며 자본주의 타도가 아닌 수정하려한 노동운동의 목표를 축소한 개혁주의에 맞선 룩셈부르크의 날카로운 공격을 소개한다. 그녀의 저작과 생애를 통해 자본주의로 엄청난 빈곤과 불평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룩셈부르크의 통찰이 더욱 빛난다.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 ‘혁명의 예리한 검이자 불꽃’ 이라 불린 로자 룩셈부르크,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은 그녀의 핵심 사상을 간명하고 다룬 입문서이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작고한 지도자 토니 클리프가 열정적 투사이자 뛰어난 사상가로서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역사적 기여를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을 추리고 때때로 비판적 논평도 가하며 룩셈부르크 사상의 정수를 소개한다.
저자는 룩셈부르크를 사회주의 전통 핵심인물 중 한 사람으로 꼽는다. 또한 그녀의 저작 전체가 ‘개혁주의에 맞서는 투쟁’이라 평가하며 자본주의 타도가 아닌 수정하려한 노동운동의 목표를 축소한 개혁주의에 맞선 룩셈부르크의 날카로운 공격을 소개한다. 그녀의 저작과 생애를 통해 자본주의로 엄청난 빈곤과 불평등을 겪고 있는 오늘날 룩셈부르크의 통찰이 더욱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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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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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한 책 소개
이 책은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로 불린 혁명적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작고한 지도자 토니 클리프가 그 정수를 뽑아 알기 쉽게 설명한 입문서다.
저자는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개혁주의자들에 맞서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 즉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전통을 옹호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투쟁을 소개하며 자본주의의 근본 변혁을 위한 전망을 제시한다. 아울러 민족 문제와 혁명 조직의 성격 같은 문제에서 보인 약점을 비판하면서도 룩셈부르크가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고 20대에는 독일로 건너가 노동운동에 참여했으며 1919년 47세로 반혁명 세력에게 살해당해 죽는 날까지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열정적 투사이자 뛰어난 사상가로서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역사적 기여를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을 추리고 때때로 비판적 논평도 가하며 룩셈부르크 사상의 정수를 소개한다.
저자인 토니 클리프는 1917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혁명운동에 참여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현재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했고 2000년에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과 조직 건설에 헌신했다.
클리프는 1959년에 처음 이 책을 썼는데 당시는 스탈린주의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좌파 세력이었고, 스탈린주의를 거부한 사회주의자들은 대부분 서유럽의 사회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했다. 그는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주의가 비슷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질식시킨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핵심 사상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상, 즉 노동자들이 스탈린주의 관료나 사회민주당 의원에 기대는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 해방한다는 사상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이 책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썼다(1972년 가장 권위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 전기인 파울 프뢸리히의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과 실천》 영어판이 출간될 때, 프뢸리히 부인의 요청으로 머리말을 쓰기도 했다).
저자는 룩셈부르크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에 있는 핵심 인물로 꼽는다. 클리프는 룩셈부르크의 저작 전체가 "개혁주의에 맞서는 투쟁"이라고 평가하며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게 아니라 수정하는 것으로 노동운동의 목표를 축소한 개혁주의에 맞서 룩셈부르크가 펼친 날카로운 공격을 소개한다. 1898~99년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 이론가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사상을 반박하며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옹호한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며 클리프는 이 사상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대중파업과 혁명의 관계를 다룬 룩셈부르크의 저작 《대중파업》을 소개하며 노동계급의 혁명적 주도력에 대한 굳은 신념과 계급투쟁에 관한 예리한 통찰력을 높이 산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다룬 《대중파업》에서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대중의 투쟁과 창조성을 진정한 사회변혁의 핵심 특징으로 봤고, 개혁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혁명적 시기에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또, 독일 사회민주당과 제2인터내셔널 내 기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지로 기울며 국제 노동운동의 대의를 배신한 데 맞서 룩셈부르크가 국제주의 원칙을 지키며 싸운 용기 있는 투쟁도 소개한다.
클리프는 룩셈부르크가 노동계급의 주도력과 자발성을 옹호하고 계급투쟁에 관한 통찰력을 보여 주고 국제주의를 고수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룩셈부르크 사상의 약점을 비판하는 것도 삼가지 않는다. 그는 민족 문제와 혁명 조직의 성격 같이 실천상 아주 중요한 문제에서 룩셈부르크가 드러낸 약점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그러면서도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초판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모든 것을 의심하라'를 좌우명으로 삼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신을 따라 클리프는 "룩셈부르크를 존경하면서도 비판하는 정신으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룩셈부르크 사상의 약점을 비판했지만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룩셈부르크의 저작과 생애를 "우리가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만 하는 사상과 경험의 풍부한 원천"으로 꼽기 주저하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세계적 위기를 겪으며 엄청난 불평등과 대규모 빈곤, 제국주의 전쟁과 분규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 한 세기도 더 전에 의회를 통해 자본주의를 인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 룩셈부르크의 통찰은 더욱 빛난다. 룩셈부르크는 뛰어난 예지력으로 인류의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이냐 아니면 야만 시대로의 복귀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 우리는 제국주의의 승리와 고대 로마처럼 모든 문화의 쇠퇴, 즉 파괴, 황폐화, 퇴보, 입 벌린 무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의 승리, 즉 제국주의와 그 방책인 전쟁을 의식적으로 공격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승리를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것은 세계사적 선택의 기로다. 주사위는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가 던질 것이다."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 "혁명의 예리한 검이자 불꽃"으로 불린 로자 룩셈부르크의 핵심 사상을 간명하게 다룬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은 한국의 독자들이 룩셈부르크가 남긴 귀중한 유산에 접근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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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계급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심화시킨 사고를 따라,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대중이 사회주의를 의식적 목표로 삼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믿었다. …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은 사회주의적 목표와 이를 성취하는 방법을 자각해야 하는 한편, 자신들을 지도할 혁명적 정당도 필요하다. …
혁명적 정당은 자신의 지도적 구실을 자각해야 하는 한편, 노동계급은 자발성 없는 수동적 대중이고 정당은 무오류의 사상과 행동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계급의 창조력은 강조하면서도(이 점은 전적으로 옳다), 보수적 조직이 대중 투쟁에 끼칠지도 모르는 퇴보적이고 해로운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룩셈부르크는 대중 봉기가 일어나기만 하면 운동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고 그런 지도부쯤은 제쳐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민족 문제에 대한 태도
국수주의적인 폴란드 사회당에 맞서 벌인 투쟁은 민족 문제 일반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태도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사회당의 민족주의에 반대하다가 너무 나아가, 룩셈부르크는 당 강령에서 민족자결권을 언급하는 것마저 반대했다. 바로 이 때문에 룩셈부르크의 당인 폴란드리투아니아왕국사회민주당은 일찍이 1903년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과 분열했고 그 후에도 결코 볼셰비키와 조직적 결합을 하지 않았다.
레닌은 룩셈부르크가 폴란드 사회당에 반대하는 것에 동의했고,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민족독립이나 러시아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폴란드 노동자들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룩셈부르크와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억압 민족의 일원인 레닌은 옳게도 민족 문제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대大러시아 국수주의에 이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따라서 폴란드 노동자들은 민족국가 수립 요구를 피할 수 있고 또 피해야 하는 한편,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폴란드인들이 원한다면 자신들의 분리된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
민족 문제에 관한 레닌과 룩셈부르크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시작했으므로 민족 문제에 냉소적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던 반면,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처지가 다르므로 똑같은 문제에 대한 태도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이해했다. 상이하고 상반되는 상황에서 출발한 그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민족자결의 문제를 계급투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해 버린 반면, 레닌은 (민주주의 투쟁을 모두 일반적인 혁명 투쟁의 무기로 이용한 것과 똑같이) 민족자결 문제를 계급투쟁에 종속시켰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족 문제에 대한 레닌의 접근 방식의 원천은 변증법이었다. 즉, 레닌은 민족 억압에서 대립물의 통일을 봤고, 부분(민족 독립 투쟁)을 전체(사회주의를 향한 국제적 투쟁)에 종속시켰다.
《자본의 축적》
룩셈부르크는 주요한 이론적 저작인 《자본의 축적: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 설명》(1913)을 쓰게 됐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잘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저작은, 룩셈부르크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론》 이후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이며 독창적인 저작이다.
자연과학자가 중력의 법칙을 진공 상태에서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분석할 때 자본주의에서 모든 비자본주의 요인들을 제외했다.
룩셈부르크가 다룬 문제는 다음과 같다. 비자본주의 나라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자본가와 노동자 이외의 다른 계급들이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순수한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확대재생산, 즉 생산 규모가 증대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는 그럴 수 있다고 가정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경제 일반을 분석하려면 비자본주의 요인들을 제외하는 게 정당하지만, 확대재생산 문제를 다룰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문제는 순수한 자본주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순전히 이론적인 문제다. 자본주의가 전前자본주의 영역을 침범해 온 동안에는 (자본주의 나라 자체에서 농민과 장인 등을 파멸시키면서 봉건제 내로 침투하거나 완전히 농업적인 전자본주의 나라 안으로 침투함으로써) 확대재생산이 항상 일어났다.
자본주의가 단 한 번도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 적 없었다면, 순수한 자본주의에서 확대재생산이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가 어떤 중요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결국, 마르크스도 룩셈부르크도 전자본주의 구조가 모두 철폐될 때까지 자본주의가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비자본주의 영역이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나 완화에 미치는 영향과 자본주의를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몰고 가는 요인들을 상당 정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독자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2권의 표식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비판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유일한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단기간에 내적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추론 과정에 전부 또는 일부 동의하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비자본주의 영역이 자본주의의 안정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 것은 룩셈부르크의 엄청난 기여임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위상
마르크스의 전기 작가인 프란츠 메링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라고 말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지적 능력만을 노동계급 운동에 바친 것은 아니었다. 룩셈부르크는 모든 것, 곧 정열, 강인한 의지, 삶 자체를 바쳤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무엇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와 교사 중에서도 룩셈부르크는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개혁주의가 '복지국가'를 꿈꾸고 자본주의를 어설프게 고쳐 쓰려 애쓰면서 사회주의 운동을 퇴보시켰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본주의 시종들에 대한 혁명적 비판이었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생기 넘치고 정력적이며 비숙명론적인 역사관(역사를 인간 활동의 소산으로 파악했다)으로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모순을 폭로했으므로,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피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가는 대기실일 수도 있고 야만 상태로 가는 문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핵폭탄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이 경고를 받아들여 행동의 자극제로 사용해야 한다. …
진리를 추구하는 룩셈부르크의 열정은 어떤 독단적 사상도 배격한다.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교조로 만들고 사상을 황폐화시킨 시기에 룩셈부르크의 저작은 마르크스주의에 활력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었다. 룩셈부르크는 '무오류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제자로서 스승에게서 독립해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 사상의 정신을 포착하면서도 단순히 마르크스의 말을 반복하지 않고 그것이 변화된 상황에 적합한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잃지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적 독립성은 언제 어디서나 사회주의자들을 고무했다. 따라서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저작을 성경처럼 추앙하려 하거나 자신을 '무오류의 권위'로, 어떤 학파의 지도자로 만들려 한다면 누구보다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
이 책은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로 불린 혁명적 사회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작고한 지도자 토니 클리프가 그 정수를 뽑아 알기 쉽게 설명한 입문서다.
저자는 룩셈부르크가 독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제2인터내셔널의 개혁주의자들에 맞서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 즉 노동계급의 자기 해방 전통을 옹호하기 위해 벌인 치열한 투쟁을 소개하며 자본주의의 근본 변혁을 위한 전망을 제시한다. 아울러 민족 문제와 혁명 조직의 성격 같은 문제에서 보인 약점을 비판하면서도 룩셈부르크가 국제 노동계급 운동에 귀중한 유산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871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사회주의 운동에 적극 뛰어들었고 20대에는 독일로 건너가 노동운동에 참여했으며 1919년 47세로 반혁명 세력에게 살해당해 죽는 날까지 혁명적 사회주의자로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이 책은 열정적 투사이자 뛰어난 사상가로서 국제 사회주의 운동에 역사적 기여를 한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핵심을 추리고 때때로 비판적 논평도 가하며 룩셈부르크 사상의 정수를 소개한다.
저자인 토니 클리프는 1917년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나 혁명운동에 참여하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영국으로 건너가 혁명적 사회주의 조직(현재 사회주의노동자당)을 건설했고 2000년에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과 조직 건설에 헌신했다.
클리프는 1959년에 처음 이 책을 썼는데 당시는 스탈린주의가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좌파 세력이었고, 스탈린주의를 거부한 사회주의자들은 대부분 서유럽의 사회민주당을 대안으로 생각했다. 그는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주의가 비슷한 방식으로 왜곡하고 질식시킨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핵심 사상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사상, 즉 노동자들이 스탈린주의 관료나 사회민주당 의원에 기대는 게 아니라 투쟁을 통해서 스스로 해방한다는 사상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고 그 일환으로 이 책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을 썼다(1972년 가장 권위 있는 로자 룩셈부르크 전기인 파울 프뢸리히의 《로자 룩셈부르크: 사상과 실천》 영어판이 출간될 때, 프뢸리히 부인의 요청으로 머리말을 쓰기도 했다).
저자는 룩셈부르크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트로츠키와 함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전통에 있는 핵심 인물로 꼽는다. 클리프는 룩셈부르크의 저작 전체가 "개혁주의에 맞서는 투쟁"이라고 평가하며 자본주의를 타도하는 게 아니라 수정하는 것으로 노동운동의 목표를 축소한 개혁주의에 맞서 룩셈부르크가 펼친 날카로운 공격을 소개한다. 1898~99년에 독일 사회민주당의 주요 이론가인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의 사상을 반박하며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옹호한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며 클리프는 이 사상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대중파업과 혁명의 관계를 다룬 룩셈부르크의 저작 《대중파업》을 소개하며 노동계급의 혁명적 주도력에 대한 굳은 신념과 계급투쟁에 관한 예리한 통찰력을 높이 산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다룬 《대중파업》에서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대중의 투쟁과 창조성을 진정한 사회변혁의 핵심 특징으로 봤고, 개혁주의자들의 생각과 달리 혁명적 시기에는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의 장벽이 무너진다고 날카롭게 지적했다. 또, 독일 사회민주당과 제2인터내셔널 내 기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지지로 기울며 국제 노동운동의 대의를 배신한 데 맞서 룩셈부르크가 국제주의 원칙을 지키며 싸운 용기 있는 투쟁도 소개한다.
클리프는 룩셈부르크가 노동계급의 주도력과 자발성을 옹호하고 계급투쟁에 관한 통찰력을 보여 주고 국제주의를 고수한 것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룩셈부르크 사상의 약점을 비판하는 것도 삼가지 않는다. 그는 민족 문제와 혁명 조직의 성격 같이 실천상 아주 중요한 문제에서 룩셈부르크가 드러낸 약점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파악한다. 그러면서도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저자가 초판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모든 것을 의심하라'를 좌우명으로 삼은 로자 룩셈부르크의 정신을 따라 클리프는 "룩셈부르크를 존경하면서도 비판하는 정신으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룩셈부르크 사상의 약점을 비판했지만 한국어판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룩셈부르크의 저작과 생애를 "우리가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만 하는 사상과 경험의 풍부한 원천"으로 꼽기 주저하지 않았다. 자본주의가 세계적 위기를 겪으며 엄청난 불평등과 대규모 빈곤, 제국주의 전쟁과 분규가 끊이지 않는 오늘날, 한 세기도 더 전에 의회를 통해 자본주의를 인간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반대한 룩셈부르크의 통찰은 더욱 빛난다. 룩셈부르크는 뛰어난 예지력으로 인류의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르주아 사회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이냐 아니면 야만 시대로의 복귀냐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 우리는 제국주의의 승리와 고대 로마처럼 모든 문화의 쇠퇴, 즉 파괴, 황폐화, 퇴보, 입 벌린 무덤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사회주의의 승리, 즉 제국주의와 그 방책인 전쟁을 의식적으로 공격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승리를 택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이것은 세계사적 선택의 기로다. 주사위는 계급의식적 프롤레타리아가 던질 것이다."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 "혁명의 예리한 검이자 불꽃"으로 불린 로자 룩셈부르크의 핵심 사상을 간명하게 다룬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은 한국의 독자들이 룩셈부르크가 남긴 귀중한 유산에 접근하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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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계급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심화시킨 사고를 따라,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대중이 사회주의를 의식적 목표로 삼는 것이야말로 사회주의를 성취하기 위한 필수 전제 조건이라고 믿었다. …
하나의 계급으로서 노동계급은 사회주의적 목표와 이를 성취하는 방법을 자각해야 하는 한편, 자신들을 지도할 혁명적 정당도 필요하다. …
혁명적 정당은 자신의 지도적 구실을 자각해야 하는 한편, 노동계급은 자발성 없는 수동적 대중이고 정당은 무오류의 사상과 행동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노동계급의 창조력은 강조하면서도(이 점은 전적으로 옳다), 보수적 조직이 대중 투쟁에 끼칠지도 모르는 퇴보적이고 해로운 영향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룩셈부르크는 대중 봉기가 일어나기만 하면 운동 자체가 심각한 타격을 입지 않고 그런 지도부쯤은 제쳐 버릴 것이라고 믿었다.
민족 문제에 대한 태도
국수주의적인 폴란드 사회당에 맞서 벌인 투쟁은 민족 문제 일반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태도 전체에 영향을 끼쳤다. 사회당의 민족주의에 반대하다가 너무 나아가, 룩셈부르크는 당 강령에서 민족자결권을 언급하는 것마저 반대했다. 바로 이 때문에 룩셈부르크의 당인 폴란드리투아니아왕국사회민주당은 일찍이 1903년에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과 분열했고 그 후에도 결코 볼셰비키와 조직적 결합을 하지 않았다.
레닌은 룩셈부르크가 폴란드 사회당에 반대하는 것에 동의했고, 폴란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는 민족독립이나 러시아로부터의 분리가 아니라 폴란드 노동자들과 러시아 노동자들의 국제적 단결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룩셈부르크와 한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억압 민족의 일원인 레닌은 옳게도 민족 문제에 대한 냉소적 태도가 대大러시아 국수주의에 이용되는 것을 경계했다. 따라서 폴란드 노동자들은 민족국가 수립 요구를 피할 수 있고 또 피해야 하는 한편,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은 폴란드인들이 원한다면 자신들의 분리된 국가를 세울 수 있는 권리를 옹호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
민족 문제에 관한 레닌과 룩셈부르크의 차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룩셈부르크는 폴란드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시작했으므로 민족 문제에 냉소적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던 반면,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처지가 다르므로 똑같은 문제에 대한 태도도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현실적으로 이해했다. 상이하고 상반되는 상황에서 출발한 그들은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 노동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라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 둘째, 룩셈부르크는 민족자결의 문제를 계급투쟁과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취급해 버린 반면, 레닌은 (민주주의 투쟁을 모두 일반적인 혁명 투쟁의 무기로 이용한 것과 똑같이) 민족자결 문제를 계급투쟁에 종속시켰다. 로자 룩셈부르크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족 문제에 대한 레닌의 접근 방식의 원천은 변증법이었다. 즉, 레닌은 민족 억압에서 대립물의 통일을 봤고, 부분(민족 독립 투쟁)을 전체(사회주의를 향한 국제적 투쟁)에 종속시켰다.
《자본의 축적》
룩셈부르크는 주요한 이론적 저작인 《자본의 축적: 제국주의에 대한 경제적 설명》(1913)을 쓰게 됐다. 이 책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잘 알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저작은, 룩셈부르크의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의심의 여지 없이, 《자본론》 이후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에 대한 가장 중요한 기여 가운데 하나이며 독창적인 저작이다.
자연과학자가 중력의 법칙을 진공 상태에서 연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운동 법칙을 분석할 때 자본주의에서 모든 비자본주의 요인들을 제외했다.
룩셈부르크가 다룬 문제는 다음과 같다. 비자본주의 나라들이 존재하지 않거나 자본가와 노동자 이외의 다른 계급들이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순수한 자본주의의 조건에서 확대재생산, 즉 생산 규모가 증대할 수 있는가? 마르크스는 그럴 수 있다고 가정했다. 룩셈부르크는 자본주의 경제 일반을 분석하려면 비자본주의 요인들을 제외하는 게 정당하지만, 확대재생산 문제를 다룰 때는 그렇게 하는 게 정당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 문제는 순수한 자본주의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순전히 이론적인 문제다. 자본주의가 전前자본주의 영역을 침범해 온 동안에는 (자본주의 나라 자체에서 농민과 장인 등을 파멸시키면서 봉건제 내로 침투하거나 완전히 농업적인 전자본주의 나라 안으로 침투함으로써) 확대재생산이 항상 일어났다.
자본주의가 단 한 번도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 적 없었다면, 순수한 자본주의에서 확대재생산이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여부가 어떤 중요성이 있는가 하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결국, 마르크스도 룩셈부르크도 전자본주의 구조가 모두 철폐될 때까지 자본주의가 계속 존재할 것이라고 가정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비자본주의 영역이 자본주의 모순의 심화나 완화에 미치는 영향과 자본주의를 제국주의적 팽창으로 몰고 가는 요인들을 상당 정도 설명해 줄 수 있을 것이다. …
독자들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2권의 표식에 대한 룩셈부르크의 비판에 동의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지배적인 것일 뿐 아니라 유일한 것이라면 필연적으로 자본주의는 단기간에 내적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추론 과정에 전부 또는 일부 동의하거나 전혀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어쨌든, 비자본주의 영역이 자본주의의 안정에 미치는 효과에 주목한 것은 룩셈부르크의 엄청난 기여임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위상
마르크스의 전기 작가인 프란츠 메링이 로자 룩셈부르크를 마르크스 이후 최고의 사상가라고 말한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지적 능력만을 노동계급 운동에 바친 것은 아니었다. 룩셈부르크는 모든 것, 곧 정열, 강인한 의지, 삶 자체를 바쳤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무엇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위대한 지도자와 교사 중에서도 룩셈부르크는 독특한 역사적 위치를 점한다.
개혁주의가 '복지국가'를 꿈꾸고 자본주의를 어설프게 고쳐 쓰려 애쓰면서 사회주의 운동을 퇴보시켰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자본주의 시종들에 대한 혁명적 비판이었다. …
로자 룩셈부르크는 생기 넘치고 정력적이며 비숙명론적인 역사관(역사를 인간 활동의 소산으로 파악했다)으로 자본주의의 뿌리 깊은 모순을 폭로했으므로,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피하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자본주의는 사회주의로 가는 대기실일 수도 있고 야만 상태로 가는 문턱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핵폭탄의 위협 속에 살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이 경고를 받아들여 행동의 자극제로 사용해야 한다. …
진리를 추구하는 룩셈부르크의 열정은 어떤 독단적 사상도 배격한다. 스탈린주의가 마르크스주의를 교조로 만들고 사상을 황폐화시킨 시기에 룩셈부르크의 저작은 마르크스주의에 활력을 주고 생기를 불어넣었다. 룩셈부르크는 '무오류의 권위'에 굴복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룩셈부르크는 마르크스의 진정한 제자로서 스승에게서 독립해 사고하고 행동할 수 있었다. 마르크스 사상의 정신을 포착하면서도 단순히 마르크스의 말을 반복하지 않고 그것이 변화된 상황에 적합한지 아닌지, 옳은지 그른지를 비판적으로 보는 눈을 잃지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사상적 독립성은 언제 어디서나 사회주의자들을 고무했다. 따라서 룩셈부르크는 자신의 저작을 성경처럼 추앙하려 하거나 자신을 '무오류의 권위'로, 어떤 학파의 지도자로 만들려 한다면 누구보다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
목차
목차
들어가며
한국어판 머리말
머리말
1장 로자 룩셈부르크의 간략한 전기
2장 개혁이냐 혁명이냐
3장 대중파업과 혁명
4장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
5장 당과 계급
6장 로자 룩셈부르크와 민족 문제
7장 권력을 장악한 볼셰비키에 대한 비판
8장 《자본의 축적》
9장 로자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위상
추천 도서
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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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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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개혁이냐 혁명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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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제국주의와 전쟁에 맞선 투쟁
5장 당과 계급
6장 로자 룩셈부르크와 민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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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자본의 축적》
9장 로자 룩셈부르크의 역사적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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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주
저자
저자
토니 클리프
저자 토니 클리프 Tony Cliff (1917~2000)는 러시아 혁명이 일어난 1917년에 팔레스타인에서 태어났다. 1930년대에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가 됐고 트로츠키 지지자가 됐다. 팔레스타인에서 소규모 혁명 조직을 건설하다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의해 투옥된 직후 영국으로 이주했다. 1950년대에 소련과 동유럽을 깊이 연구한 후 이 사회들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국가자본주의'라고 주장하며 정설 트로츠키주의와 결별했다. 그가 창설한 사회주의평론그룹은 1960년대에 국제사회주의자들IS이 됐고 1970년대에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으로 발전해 영국에서 가장 큰 급진 정당이 됐다. 자서전 A World to Win이 출간되기 직전인 2000년 4월에 사망했다. 레닌 평전 4부작과 트로츠키 전기 4부작을 포함해 많은 책을 썼다. 국내에 번역된 저서로는 《소련은 과연 사회주의였는가?》(책갈피),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책갈피, 공저), 《여성해방과 혁명》(책갈피), 《새로운 세대를 위한 마르크스 정치학 가이드》(책갈피), 《트로츠키 사후의 트로츠키주의》(책갈피), 《마르크스주의와 노동조합 투쟁》(책갈피, 공저) 등 1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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