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나여경 소설집
나여경 소설가의 세 번째 소설집이다.?인간 내면의 상처와 치유에 천착해 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통하여 타자에게로 더 깊이 다가가고자 한다.?여섯 편의 단편 모두 현재 우리 사회가 지닌 모순들을 날카롭게 드러내면서?그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안타까운 삶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운세 운명을 믿지 않는 청년의 아이러니한 죽음,?배달 중 쏟아진 붉은 피 흘리는 아귀찜을 주워 담는 투잡 청년의 고단한 삶,?관계의 어긋남으로 빚어진 방화사건,?참담한 사고의 기억을 온전히 망각하기 위해 노력하는 두 친구,?각기 다른 양상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시장 사람들,?독처럼 스민 질투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우리네 공동체 삶에 관한 서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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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서른두 살의 젤러가 세상을 떠났다. 젤러는 생전 남편 셋을 죽였다. 치명적인 요부로 회자 되었다. 매력적인 여성 스파이 마타하리 본명에서 따온 젤러라는 이름만 봐도 그 실체가 상상된다. 예쁜 눈과 반듯하고 현란한 몸매, 고혹적인 자태로 수많은 수컷의 구애를 받던 젤러의 사망 소식을 들은 건 오늘 아침이다.
"별일 없지?"
아침부터 전화로 젤러의 사망 소식을 전하던 유경이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묻는다. 그녀는 눈을 뜬 후 제일 처음 접하는 소식으로 그날 일진을 점쳤다. 나는 애써 태연한 척 목소리 높여 말한다.
"무슨 일, 나야 항상 이상 무지!"
이상 무, 라고 말은 하지만 오늘 내 기분은 모든 장기가 녹아 사라진 것처럼 공허하고 쓸쓸하다. 어제의 비보를 유경에게 털어놓으면 속이 후련할 텐데, 참는다. 감이나 운세, 운명 따위에 유달리 집착하는 유경에게 그 소식을 전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지 뻔하기 때문이다. 내 기분도 기분이지만 그녀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지면 내 마음은 깜깜한 어둠에 잠긴다.
"오늘도 무사히!"
항상 쪽, 하는 키스 소리로 통화를 마무리하던 그녀가 오늘 내게 건넨 인사말이다.
숨이 막힌다. 기도를 통해 들어온 공기가 허파를 태우는 느낌이다. '후유' 더운 숨을 뱉는다. 쏟아낸 몸 안 화기에 라이터를 켜면 불이 붙을 것 같다. 며칠째 계속되는 마른장마 탓도 있지만 불편한 속내 때문에 더 후끈후끈하다. 작업자들 역시 늘어난 티셔츠처럼 축 처져 있어 분위기가 영 말이 아니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지시사항을 전달하던 팀장이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는 내 얼굴을 살피다 어깨를 툭툭 치며 한마디 한다.
"마음은 아프지만, 어쩌겠나, 오늘까지 마무리 잘하고 며칠 쉬세. 이럴 때일수록 정신줄 잘 챙겨야 하는 거 알지?"
팀장 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정신줄뿐 아니라, 줄을 잘 챙겨야 한다. 우리 일이라는 게 잠시 딴생각하는 사이 목숨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더울 때도 추울 때도 기분이 좋아도 나빠도 항상 긴장해야 한다.
젠다이에 발을 올려놓을 때 특히 정신줄을 팽팽히 당겨야 한다. 산만해지면 안 된다. 젠다이에 올라앉는 순간이 가장 위험하기 때문이다. 물론 옭매듭으로 단단히 묶은 로프 끝부분을 클립으로 체결해서 건물의 튼튼한 구조물에 연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젠다이라 불리는 달비계에 매달려 일하는 시간이 더 많으므로 타는 순간부터 일이 끝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안 된다.
젠다이에 연결된 로프 외에 또 하나의 보조 로프에 안전대를 연결하면 젠다이 로프가 풀어지거나 끊어진다 해도 추락사 하는 일은 없다. 안전을 생각하면 백번 천번 로프를 하나 더 연결하고 안전대를 매야겠지만 일하는 처지에서는 노 땡큐다. 우리는 안전대를 믿는 게 아니라 실수하지 않을 자신을 믿는다. 우리가 일터에서 젠다이라 부르는 달비계를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신 곤돌라를 사용한다. 달비계를 사용할 때보다 작업 속도가 거의 다섯 배나 늘어나는 곤돌라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빨리 빨리'를 구호로 외치는 이 나라에선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속전속결의 위대한 나라 아닌가.
나는 젠다이에 안전하게 올라앉으면 제일 먼저 핸드폰에 저장된 음악을 재생시킨다. 유경이 저장해 놓은 음악이다. 이상하게 그녀가 저장해 놓은 음악을 듣게 되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간혹 밤에 쓴 편지의 감상에 화들짝 놀라 아침에 찢어버리듯 손발이 오그라드는 노래 선택에 소름이 돋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언제 들어도 좋은 음악들이다. 좋은 음악,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유경이 저장해 놓은 음악은 난해하고 처음 들을 땐 몹시 거부감이 일었다. 감이나 운명에 집착하는 그녀를 이해하는 일만큼이나 그 음악과 친해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얼마 전부터는 습관처럼 제목도 모른 채 그녀가 저장해 놓은 음악을 듣는다.
'우아한 유령' 오늘 내가 들을 곡이다. 유경이 내 핸드폰에 저장해 놓은 곡들은 제목과 곡들이 너무 길고 어려운데 이 곡만은 쉽게 느껴지면서 귀에 잘 들어온다. 내가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동료들은 짜증을 내면서 집어치우라고 아우성친다. 잘 되던 작업도 망친다는 것이다. 그들의 성화에 나는 실없이 웃고 만다. 사실 우리가 듣는 음악은 주로 트로트이다. 트로트 중에서도 너무 빠른 음악은 제외한다. 빠른 노랫가락의 박자를 따라가다 보면 오히려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뽕짝이야말로 우리들의 작업 능률을 올리는 데 큰 몫 한다.
세상 시끄러운 소리와 개미처럼 옴짝옴짝 움직이는 이들의 모습은 음악이 뜨는 순간 사라지고 나만의 세상이 펼쳐진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 눈에는 천 사이로 드러난 환부만 보이듯 내 눈에는 뿌옇게 흐린 창만 보인다. 소음과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두 신경 쓴다면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 그건 또 다른 사고로 직결되기도 한다. 집중 또 집중해서 작업을 마칠 수 있는 건 모두 그녀의 노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아한 유령'이 흘러나온다. 이로써 작업이 시작된다.
나는 로프공이다. 로프공? 축구공 탁구공도 아니고 로프공은 뭐예요? 내 직업을 말했을 때 십 중 여섯 명 정도는 그렇게 되묻는다. 특히 여자들이 그렇게 묻는다. 나머지도 내 직업을 딱히 알아서 안 물어보는 건 아닌 것 같다. 나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씩 웃고 만다. 로프공은 건물의 외벽, 유리창, 간판 청소, 실리콘 작업뿐 아니라 유리나 패널 교체, 타일 보수 심지어 고층 건물에 글씨 붙이는 작업 등 높은 곳에 올라가는 작업은 모두 한다. 따지고 보면 로프공들도 우리나라 엄마들이 저 높이 올려놓는 직업인 의사, 판사, 교수만큼 높은 위치에 있다. 그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바닥으로 다시 내려온다는 것이다.
로프공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차피 우리 모두 엄마 뱃속에서부터 외줄에 기대 태어난 목숨 아니냐, 천지 분간 못 하던 생명체일 때도 배꼽과 연결된 외줄에 기대 열 달이나 살았는데, 이제 어느 정도 세상 물정 다 아는 처지에 뭐 그리 두려울 게 있겠느냐,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내게 거는 주문에 불과하다.
이 바닥에서 베테랑으로 불리는 이들도 순간순간 심연의 바다로 추락하는 듯한 두려움을 토로할 때가 많다. 특히 동료가 작업 도중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해진다. 로프공들의 사고는 예기치 않은 경우가 별로 없다. 문제는 하나, 안전에 부주의한 탓이다. 누구나 초보자일 때는 주 로프와 보조 로프를 매고 안전대도 착용한다. 그러다가 두 줄이 한 줄이 되고 안전대 착용도 소홀해지게 된다. 그야말로 줄 하나에 목숨을 매달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정신줄 뺏기는 아찔한 순간은 부지불식간에 유령처럼 찾아온다.
친구 찬식의 죽음도 그랬다. 어제 찬식이 매달려 있던 로프가 끊어져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작업 현장을 얼어붙게 했다. 그 생각을 하니 불가마를 집어삼킨 듯 또다시 속이 화끈화끈하고 메슥거린다.
대학 동기인 찬식은 꽤 열정적이고 성실한 친구였다. 내가 로프공이 된 것도 찬식이 때문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적당한 일자리를 못 찾아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을 때 그가 내게 인터넷에서 복사한 전단 한 장을 내밀며 말했다. 같이 일해 볼래? 전단 광고 내용은 몹시 황당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청소 기술을 보유한 업체. 국가관 직업관 윤리관이 철저한 분. 금슬 좋고 효성이 지극하며 형제간에 우애가 돈독하여 평화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는 분>
유별난 광고 문구에 픽, 하며 웃다 거창한 마지막 구절을 읽고 나서 찬식과 나는 결국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세계 청소 시장을 제패할 야망 품은 분!
찬식과 나는 그 당시 별로 웃을 일이 없었는데 우리에게 잠시나마 큰 웃음을 선사한 '달인 청소대행업체'에 입사하기로 했다. 광고전단을 처음 봤을 때 웃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직업이나 윤리관이 투철한 사람, 가정사가 원만한 사람을 뽑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특히 우리처럼 매 순간 위험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건 큰 위안이기 때문이다.
찬식은 타고난 성실성과 안전하고 신속하게 작업을 잘 처리하는 실력을 인정받아 이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돼 청소대행업체를 인수하여 대표가 되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내게도 항상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라는 말을 주문 외우듯 했다.
찬식의 사인은 달비계를 연결하는 로프 절단으로 인한 추락이었다. 로프공들 중에 로프를 결속할 지지물이 부실할 경우 옥상에 못을 몇 개 박아 묶거나 건물 계단 틀에 줄을 매달기도 하지만 찬식은 일을 안 하면 안 했지, 그런 위험천만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 친구였다. 로프 지지철물인 앵커볼트 상태에서부터 로프의 손상과 부식, 달비계의 연결, 접속 부 상태 등 모든 일에 철저한 친구였다. 달비계를 연결하고 있던 그 지점에 로프를 갉아먹은 뾰족한 철판 조각이 있을 줄은 아무도 몰랐다.
이럴 땐 불현듯 운명론자인 유경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에 우연이 얼마나 많은가. 찬식의 일도 어쩌다 우연히 일어난 사고였을 뿐이다.
유경의 방 한쪽 벽에는 커다란 얼룩말 사진이 붙어 있다. 국내 유일한 그레비얼룩말로 이름은 젤러다. 아기자기하거나 화려하게 또는 귀엽게 단장하는 여자들 방과는 다른 분위기다. 유경과 함께 간 동물원에서 본 젤러는 뭐라 표현하기 힘든 말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이 정도가 맞을 것 같다.
"동물도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구나."
유경은 아름다운 겉모습과 달리 슬픈 사연을 간직한 젤러를 좋아했다. 젤러는 합방을 시도하던 남편 얼룩말 세 마리를 뒷발로 차서 모두 쇼크사시켰다. 팜므파탈에서 따온 '팜므파말'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이기도 했다. 어찌어찌해서 두 번째 남편과 합방에 성공해 아들을 낳았지만, 그 아들마저 죽고 말았다.
"젤러가 왜 수컷을 쇼크사시켰는지 알아?"
"왜?"
"그건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뭐, 운명, 푸하하하하 무슨 되지도 않은 말을…."
"여러 수컷 중 한 마리를 선택하는 야성의 습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래. 젤러에겐 임의대로 인간이 그렇게 수컷을 붙여주면 안 되는 거였어. 젤러의 선택권을 인간이 빼앗아 버린 거지. 그래서 애꿎은 수컷만 목숨을 잃게 된 거고."
"멋지네, 운명을 거슬러 개척하는 말이라니."
말을 마친 내가 일부러 호탕하게 웃었지만 유경은 고개를 돌렸다.
나 역시 젤러의 남편 말들처럼 유경에게 수없이 차였다.
"한 번만 더 그런 쪼다 같은 소리 하면 가만 안 둬!"
화가 날 때마다 내가 유경에게 퍼붓는 소리였다. 자신과 엮이면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이유로 나를 거부하던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냥 싫다고 해라,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걸로 사람을 무안하게 하느냐, 라며 으르렁댔지만, 그녀의 입에서 내가 싫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것이면 족했다.
유경의 말에 의하면 자신을 가까이하면 내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하고 결혼을 약속했던 두 번째 남자마저 교통사고로 잃고 난 후 생긴 트라우마였다. 나는 그런 되지도 않은 소리를 들을 때마다 속에서 울화통이 터졌다. 참으려고 해도 저절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내게 생기는 안 좋은 일 그 어떤 것이라도 다 감수한다. 외줄 타는 내 인생에 너는 또 하나의 내 목숨줄이다," 라는 내 말에 그녀가 마음을 돌리기까지 3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운명이나 운세 따위의 이야기가 나오면 예민해지기 일쑤였다.
할당된 작업량을 시간 안에 마치기 위해 손을 빠르게 놀린다. 물과 10:1로 희석된 불산이 들어있는 말통을 젠다이 오른쪽 고리에 걸고 왼쪽에는 작업용 도구를 건다. 밧줄의 고를 늦추면서 천천히 젠다이를 아래로 내린다. 유리창에 불산 섞인 물을 뿌리기 위해 창틀을 지지대 삼아 발을 고정한다. 불산은 유리창을 광나게 닦기 위해 쓰는데 빠르게 물로 씻지 않으면 유리도 녹일 수 있다. 나는 손 빠르게 오래 쌓이고 쌓인 먼지 위에 물을 뿌리고 세척을 시작한다. 잠시의 작업으로도 온몸이 비 맞은 듯 땀으로 흠뻑 적는다. 끈적하고 불쾌한 유리창 먼지가 내 몸으로 옮겨붙는 느낌이다.
뿌옇게 안개 낀 듯 보이지 않던 유리창이 서서히 묵은 때를 벗기 시작한다. 4개 동 중 작업이 마무리된 3개 동이 유난히 햇빛을 받아 말끔하게 보인다. 눅진하게 들러붙은 불쾌함이 잠시 가시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건물 외벽은 사람 피부와 같다. 관리받은 피부와 방치해 버린 피부는 상태가 다르듯 건물도 관리 여부에 따라 수명이 늘어난다. 건물 외벽이 사람 피부라면 유리창은 눈이다. 맑고 또렷한 눈에 마음이 끌리듯 유리창이 맑은 건물을 보면 기분이 저절로 좋아진다. 산성비나 눈, 황사와 자동차 매연, 미세먼지 때문에 더러워진 건물 외벽과 유리창은 숨을 쉬지 못하는데, 우리 로프공들은 그런 건물을 치료하는 의사나 마찬가지다. 소문난 의사에게 진료받고 싶은 환자가 줄을 잇듯 건축물 의사로서 소문 난 로프공의 주가 역시 높다. 나도 그중 하나다. 원래 성실한 근성을 가지고 태어난 것도 있지만 다른 로프공보다 더욱더 최선을 다해서 일 한 덕분이다.
-「줄」
[작품 평]
나여경의 소설에는 안전대를 믿는 게 아니라 실수하지 않을 자신을 믿는 청춘들이 있다. 다시 바닥으로 내려오지만 냉정한 세상을 탓하지 않는다. 닿을 수 없는 저 너머를 응시하며 망설임없이 '줄'을 놓을 뿐이다.
청춘들은 외롭고 고독하다. 독인줄 알면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들은 차라리 독을 품는다. 아버지를 위해 가자미 미역국을 끓이는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의 나의 무심함 속에는 참혹한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 고요한 비명이 절절하게 묻어있다.
하지만 혼자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청춘들이 나여경의 인물들이다. 외롭지만 욕망하는 인물들인 것이다. 열망하지만 실패하고마는 신산함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을 나여경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시치미 떼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나여경은 나와 타자가 서로 의지하고 연대하는 존재임을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 기억이 온전히 자리를 잡아야 망각도 가치 있다고 말하는 그녀는 '행복은 나 혼자 만들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임을 분명히 한다. 그러므로 섣불리 희망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해피버스와 불꽃놀이 사이의 아이러니함을 나여경은 서두르지 않고 가슴 먹먹하게 그려내어 불행 속에 드리워진 진정성을 독자 스스로 확인하게 만든다. 우리네 인생이 가진 슬픔과 분노를 포착하여 이처럼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 때문일 것이다.
-박향(소설가)
[발문 중에서]
자식이 쓴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좋게 묘사되는 일 없다. (아주 수준 낮은 소설이라면 멋지게 등장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때의 아버지는 상처받는다. 그도 사람이니까. 결핍을 선사 받은 딸과 그 딸로 인해 상처받는 아버지. 우리가 보듬고 있는, 그래서 창작의 질료가 되는, 집구석 문제들.
그 책을 읽은 아버지의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너는 글을 열심히 써라, 나는 술을 열심히 마실 테니."
내가 들어본, 그녀 아버지 발언 중 최고이다. (물론 이 한마디밖에 못 들어봤지만) 딸도 멋있고 아버지도 멋있다. 집구석 문제는 생물체 같아서 의식이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그 명제를 내포하고 있는 저 발언에서 나는 작가 기질의 DNA를 발견하게 된다. 그 DNA 안에 박혀있는, 극도의 외로움까지 감수해버리는 확고한 자아自我, 순결하기까지 한 어떤 처절함, 거룩하기까지 한 지난함. (…)
나여경 작가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반응도가 매우 높은 것이다. 소재 자체에 자신이 먼저 아파한다. ('소설가가 아니었으면 나는 누군가를 죽이고 교도소에 가있을 것이다.'라는 말) 이 정서는 '당신도 같이 아프면 좋겠다' 지점까지 확산한다. 왜? 해결해야 하니까. 최소한 기억해야 하니까. 기억하려면 최소한 기록해놓아야 하니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누가 힘들다 하면 해결해주지 못해 내가 힘들어진다."
이게 그녀의 기본자세이고 작가인 이유이다.
-한창훈(소설가)
목차
목차
줄
내 기타는 죄가 없어요, 아버지!
독毒
산책하는 고양이
네버엔딩 스토리
즐거운 인생
발문_ 그녀가 작가인 이유는? 한창훈(소설가)
저자
저자
2001년 ≪경인일보≫ 신춘문예 등단 후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두 권의 소설집 「불온한 식탁」, 「포옹」과 여행 에세이 「기차가 걸린 풍경」을 발간했다.
제11회 부산작가상, 제8회 요산창작지원금, 제10회 백신애문학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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