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김가경 소설집
김가경의 첫 소설집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2009년 부산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보리수 여인숙〉이,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홍루〉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가경은 2016년에 단편 〈첫눈〉으로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김가경은 마름질된 세상에서 점차 사라져가는 타자를 우리의 감성과 지성 안으로 끌어들인다는 점에서 우리 시대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작가다. 더구나 김가경이 그려내는 타자는 무플론이나 몰리모를 부는 사내처럼 참신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반하여 등장하기에 그 의의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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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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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도 이 사회의 교환 논리로부터 한 발짝 벗어나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다이아몬드 브리지」의 그는 경찰견 조련사로 일하며 셰퍼드를 조련하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없이 짱돌로 셰퍼드를 내리찍다가 그 모습이 인터넷에 퍼져 직장을 잃게 된다. 이후에는 조련 생활 십여 년 만에 동물학대죄로 조련협회에서 제명까지 당한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조련한 개를 죽게 만들었다는 누명을 뒤집어쓴다.
「홍루」는 이국적인 제목처럼, 우리 사회의 동일자와는 거리가 있는 타자들의 이미지로 가득한 작품이다. '홍루(紅樓)'는 늙은 기생의 방이라는 뜻으로 주인공 명자와 비슷하다. 명자는 P시의 외국인 거리에서 외국인을 상대하는 클럽 로즈에서 일한다. 예전에는 미군들이 드나들었고, 미군들이 떠난 이후에는 러시아 선원과 상인들이 주로 드나든다. 이 작품에는 명자의 연인인 이반, 명자와 함께 일하는 나타샤, 홍루의 중국 음식 요리사와 같은 이국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것 역시도 우리와 다른 존재들에 대한 관심을 크게 환기시킨다.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의 남자는 드물게도 단독성을 체현한 존재이며, 어떠한 비교로부터도 벗어난 아토포스(atopos: 어떤 장소에 고정되지 않은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에 해당한다. 그는 강태공과 같은 사람으로, 야시장에서 짝이 맞지 않는 신발을 팔고 있다. 남자는 돈과 착취의 세상 반대편의 기호들로 둘러싸여 있다. 피그미족들이 숲의 정령을 위로할 때 분다는 몰리모 역시 지금 세상의 교환 체계에서는 그 의미를 확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피그미족들은 이방인을 받아들일 때 그들의 재산이나 권력이 아니라, 바로 걷는 모습을 통해 판단한다. '너'는 남자가 연주하는 몰리모에서 "벚꽃 잎도 날리는 모습을 보"며 소설은 끝난다. 이제 '너'는 돈을 딸보다도 연인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새로운 세상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여러 타자적 기호들인 피그미족, 몰리모, 짝짝이 신발, 남자 등은 시대의 지배적인 가치를 내면화한 사람들의 저항과는 다른, 그 자체로 선명한 타자성의 실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첫눈」은 김가경식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작품이자, 추방된 타자가 다시 우리의 삶에 내속되는 감동의 순간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그와 산후조리원에서 영양사로 일하는 그녀가 등장한다. 둘은 모두 어린 시절의 상처를 지니고 있다. 상처는 첫눈의 이미지로 감각화되고 있는데, 이때의 첫눈은 세상의 고통스러움에 눈뜨는 첫번째 통과제의를 의미한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 또다시 첫눈이 내린다. 이때의 첫눈은 어린 시절에 내리던 첫눈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충만하다. 어린 시절의 첫눈이 세상의 비정함으로 가득했다면, 지금 내리는 첫눈 속에는 타인을 받아들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희망의 속삭임이 담겨 있는 것이다.
김가경 소설의 가장 독특한 점을 꼽자면, 동물이 빈번하게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동물은 서로 닮아가는 세상의 강력한 힘을 증명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닮아가는 세상의 새로운 탈주선처럼 기능하기도 한다.
동물이 이 가공할 폭력적 세상과 맞닿아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로 사용되는 것은 「비둘기를 키우는 시간」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녀가 마술사와 동거하며 보게 된 비둘기들의 모습은 이 시대의 인간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둘기의 간을 다른 비둘기의 먹이로 삼는 장면은 이 소설집에서 삶의 끔찍함을 나타내는 최고의 강렬도를 지니고 있다. 날개의 셋째 마디가 잘려져 마술사의 방을 벗어날 수 없는 비둘기는 '닮음의 쇠우리'를 벗어날 수 없는 우리 시대 인간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홍루」에도 밀크스네이크종의 뱀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때 명자가 자기 삶의 정착지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던 러시아인 이반은 뱀을 명자에게 남기고 떠난다. 이 뱀의 먹이는 새끼 쥐로서, 탈피를 하기 위해서는 냉동 먹이가 아닌 살아 있는 쥐를 먹어야만 한다. 이러한 뱀의 생리는 약육강식의 인간 사회와 그다지 멀어 보이지 않는다. 「첫눈」에서도 사무장이 엽총으로 쏘아 숲으로 떨어진 비둘기는 그녀와 동일시되어 세상의 무서운 폭력성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배회의 기술」에서는 무플론이라는 동물을 통하여 우리와는 다른 얼굴, 감각, 사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한다. 무플론은 치와와도 무서워할 정도로 순하고 여린 존재로 등장한다. 이러한 무플론은 우리 사회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목장에서 데려온 무플론을 아내는 집에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무플론은 공동 텃밭을 엉망으로 만들어 동네 사람들의 원성을 산다.
소설집에 실린 열 편의 소설은 자본의 논리만이 지배하는 세상의 폭력과 고통을 찬찬히 보여준다. 「배회의 기술」만 보더라도 일자(一者)의 독재로부터 벗어날 공간은 어디에도 없다. 옥상의 조그만 텃밭마저도 성과와 경쟁의 장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쇠우리에 자그마한 균열의 흠이라도 내기 위해서는 타자의 존재가 무엇보다 절실하다. 그것은 현대사회에 필요한 최소한의 숨구멍이자, 새로운 세상을 앞당기는 "고수레 이랑"(멧돼지 같은 유해동물들을 위해 방치하여 탄생하는 이랑)이 될 수도 있다. 무플론은 무용지용(無用之用)의 가능성으로 암시된다.
김가경은 단일한 가치만이 존재하는 무미하고 무의미한 세상에 윤기와 온기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그것은 이 시대가 멀리멀리 쫓아버린 "비밀로서의 타자, 유혹으로서의 타자, 에로스로서의 타자, 욕망으로서의 타자, 지옥으로서의 타자, 고통으로서의 타자"를 다시 불러오는 일이기도 하다. 김가경이 창조해낸 서늘한 감미로움 속에 떠오르는 여러 존재들은 바로 그 타자의 문학적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목차
목차
라인 블록
몰리모를 부는 화요일
배회의 기술
보리수 여인숙
비둘기를 키우는 시간
여가를 즐기는 방법
첫눈
홍루
회생 수련기
작품 해설 무플론과 함께 살기 이경재
작가의 말
수록 작품 발표 지면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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