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양장본 Hardcover)
장석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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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한 평론가는 민중적 전망이 압도한 1980년대 한국 시를 돌아보며 세계의 본질을 투시하고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어온 대문자 ‘시’의 좌표를 망각 저편에서 일깨우려 한 바 있다(남진우, 「신성한 숲 1」, 『신성한 숲』, 1993, 민음사). 그때 잠시 화려한 불꽃으로 타올랐다 유성처럼 사라져간 ‘신성한’ 계보의 제일 첫머리에 언급되는 작품이 장석의 1980년 신춘문예 등단작 「풍경의 꿈」이다. 그 글에서 초월과 합일의 시적 비전을 에로스적 열망의 불길로 장엄하게 채색하고 있는 장석의 시는 ‘신성한 숲’을 향한 시의 가능성으로 한껏 충만한 한편, 얼마간 (억압적 시대와의 불화로부터 말미암았을) 나르시시즘의 위험 또한 감지된다. 그러나 “이제 삶은 신성한 정지이며,/그의/그림자인 풍경만이 변모한다”(11연)에서 보듯 장석 시는 유다른 형이상학적 깊이를 가진 채 부풀어 오를 것이었으되, 단 한 편의 시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림으로써 스스로 망각의 운명을 택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만인 2020년 봄 장석 시인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 두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상재하면서 돌아온다. 생각보다 훨씬 긴 은일과 망각으로부터 귀환한 두 권의 시집에 부친 글에서 남진우는 말한다. “세계를 향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그의 사랑의 전언에는 여전히 순결한 자아에 대한 갈망과 현상적 질서 너머의 본질을 투사하고자 하는 은밀한 열망이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그는 이 언어를 버려두고 아니 쌓아두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한 시절 한 세상을 탕진해왔던 것일까.” ‘탕진’이라는 애정 어린 역설의 언어에 응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장석 시인은 세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앞선 두 권의 시집 출간 후 꼬박 두 해에 걸쳐 쓴 시들이다. 그 시들을 읽으며, 이른바 ‘탕진’의 화살은 정작 시인 내부에서 더 철저하고 벼려지고 아프게 겨누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만인 2020년 봄 장석 시인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 두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상재하면서 돌아온다. 생각보다 훨씬 긴 은일과 망각으로부터 귀환한 두 권의 시집에 부친 글에서 남진우는 말한다. “세계를 향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그의 사랑의 전언에는 여전히 순결한 자아에 대한 갈망과 현상적 질서 너머의 본질을 투사하고자 하는 은밀한 열망이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그는 이 언어를 버려두고 아니 쌓아두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한 시절 한 세상을 탕진해왔던 것일까.” ‘탕진’이라는 애정 어린 역설의 언어에 응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장석 시인은 세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앞선 두 권의 시집 출간 후 꼬박 두 해에 걸쳐 쓴 시들이다. 그 시들을 읽으며, 이른바 ‘탕진’의 화살은 정작 시인 내부에서 더 철저하고 벼려지고 아프게 겨누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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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오래전 한 평론가는 민중적 전망이 압도한 1980년대 한국 시를 돌아보며 세계의 본질을 투시하고 우주와의 합일을 꿈꾸어온 대문자 '시'의 좌표를 망각 저편에서 일깨우려 한 바 있다(남진우, 「신성한 숲 1」, 『신성한 숲』, 1993, 민음사). 그때 잠시 화려한 불꽃으로 타올랐다 유성처럼 사라져간 '신성한' 계보의 제일 첫머리에 언급되는 작품이 장석의 1980년 신춘문예 등단작 「풍경의 꿈」이다. 그 글에서 초월과 합일의 시적 비전을 에로스적 열망의 불길로 장엄하게 채색하고 있는 장석의 시는 '신성한 숲'을 향한 시의 가능성으로 한껏 충만한 한편, 얼마간 (억압적 시대와의 불화로부터 말미암았을) 나르시시즘의 위험 또한 감지된다. 그러나 "이제 삶은 신성한 정지이며,/그의/그림자인 풍경만이 변모한다"(11연)에서 보듯 장석 시는 유다른 형이상학적 깊이를 가진 채 부풀어 오를 것이었으되, 단 한 편의 시만 남기고 홀연히 사라져버림으로써 스스로 망각의 운명을 택한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만인 2020년 봄 장석 시인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 두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상재하면서 돌아온다. 생각보다 훨씬 긴 은일과 망각으로부터 귀환한 두 권의 시집에 부친 글에서 남진우는 말한다. "세계를 향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그의 사랑의 전언에는 여전히 순결한 자아에 대한 갈망과 현상적 질서 너머의 본질을 투사하고자 하는 은밀한 열망이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그는 이 언어를 버려두고 아니 쌓아두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한 시절 한 세상을 탕진해왔던 것일까." '탕진'이라는 애정 어린 역설의 언어에 응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장석 시인은 세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앞선 두 권의 시집 출간 후 꼬박 두 해에 걸쳐 쓴 시들이다. 그 시들을 읽으며, 이른바 '탕진'의 화살은 정작 시인 내부에서 더 철저하고 벼려지고 아프게 겨누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삶에 늘 가래가 끓어
젊음에서 낡아가던 내 가난의 전성기
비켜 갔던 허다한 장소
돌아가며 외면한 숱한 일
나는 가느다란 내 시에 매달린 어릿광대였다네
-「오월은 마흔 번이 넘게 나를 깨웠네」 부분
시의 제목에 눈길이 머물게 되거니와, "빗소리처럼 네 노래처럼 나를 흔들었"던 '오월'은 '마흔 번'의 숫자를 통해 "거룩함이 비천함을 눕히고/죽음이 죽임을 이겨 이루어낸 사랑의 성소"로서 '1980년 오월'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나는 한낮의 하늘에 부조되는 장엄한 무늬를/보았다"로 시작되는 「풍경의 꿈」을 비롯하여 그의 많은 시가 알려주듯 장석 시의 구성 원리에는 세계를 성(聖)과 속(俗)의 긴장 속에서 파악하고 겪어내려는 지향이 있다. 이는 애초에 엘리아데식 세계 이해에 얼마간 빚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가령 '우주' '하늘' '별' '대지' '바다'와 같은 세상의 경계를 자연적 실재와는 다른 의미 공간으로 들어 올리는 감각은 초기 시부터 근작까지 거의 일관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고유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석 시의 토대를 이루어온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거룩함의 나타남, 성현(聖顯, hierophany)의 순간적 광휘는 무엇보다 속(俗)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시의 언어적 노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 비속하면 비속한 대로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시간 안에서 모색되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자각 또한 장석 시의 출발선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앞서 인용한 글에서 나르시시즘의 근거로 지목되기도 했던 "나는 부끄러워 눈물 흘렸다. 내 꿈은/나에게 입 맞추어주었다"(「풍경의 꿈」 6연)는 시적 진술은 그와 같은 성속의 변증법이 시인이 시에 투신하려던 저 1980년대 초입에 이미 전혀 쉽지 않은 무게로 다가와 있었다는 사실의 역설적 표명, 막막하고 두려운 예감의 휩싸임으로 읽을 수도 있다. 「풍경의 꿈」의 후반부는 "삶을 준비하는 자가 새를 날려보냈다. 어둠 속으로"로 시작되고 있는데, 첫번째 새는 "무너진 너의 슬픔 위로 떨어"지고 있으며 두번째 새는 "지상의 어두운 골목에서" "차갑게 불타고 있"다. "노아의 세번째 비둘기"만이 "황금빛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왔다……"고 진술되는데 여기서 '노아'가 '삶을 준비하는 자'와 동일한 인물인지도 모호하거니와, 저 말줄임표의 침묵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새의 귀환은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멀고 먼 전설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이제 삶은 신성한 정지"이고 "그림자인 풍경만이 변모한다"는 시의 대답은 그 어조의 당당함으로 오히려 닿을 길 없는 막막한 거리를 환기한다. 해서는 시의 마지막에 '새'는 다시 한 번 "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진다. "새여,/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지는 푸른 입술이여……" '삶을 준비하는 자'가 세상에 날려보낸 첫번째 '새'이자 마침내 '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푸른 입술'의 운명은 마치 장석 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기 처벌'의 신성한 임무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장석 시의 오랜 침묵은 스스로가 만든 자각적 운명이며, 여기에는 적어도 '마흔 번'이 넘는 깨움이 필요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성소'로서 '오월'의 재발견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인데, '바다'는 장석 시의 원초적 장소라 할 만하다. 등단 시에서 '문법 바다'라는 관념의 외피를 두르고 처음 선을 보인 그곳은 시인의 유년기 기억이 잠복해 있는 부산 영도 남항과 순천만을 하나의 선으로 이은 뒤 시간의 진행이 만드는 또 하나의 선을 따라 통영 바다라는 꼭지점을 가지는 삼각형의 구조로 거듭 장석 시에 돌아온다. 그렇게 시간적으로 원근법의 삼각형을 이루는 바다는 공간적으로는 일제히 남쪽의 거의 동일 위도에 정렬해 있다. 여기에 바다에 인접한 언어군으로서 섬, 정박, 등대, 배, 어망, 닻, 청음초 등등 일련의 환유적 계열어들이 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원초적 장소인 만큼, 바다에 종종 '아이'가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심지어 시인은 도심의 횡단보도 세발자전거에 앉은 아이와 눈길을 나누면서도 바다에 있다("내 인생의 이 봄을/횡단보도에 정박한다", 「신호등」). 기실 '아이'는 '바다' 못지않게 장석 시의 테마를 형성하는 중요한 주어이며, 때로는 화자의 시선이 때로는 세계나 사물의 응시가 생성되고 교차하는 자리다. 장석 시는 아이를 통해 처음과 만나고 처음을 일깨우려 한다. 이때 아이는 '무구함'의 표상이라기보다는 '무명(無名/無明)'으로서 장석 시를 개시(開始/開示)하는 '타자'의 자리에 가까운 듯하다.
'영도 남항'은 "산파가 나를 받아주었던 집"이 있는 곳인데, 뻘에 묻힌 지 여러 날이 지나 거적 밖으로 나온 맨발로 처음 목도된 아이의 시신은 유년기 시인에게 거듭 가위눌린 무서운 꿈이 된 듯하다(「영도 남항」, 『우리 별의 봄』). 말하자면 '바다'는 시인에게 한 번도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변의 아이'는 돌아온다. 이번에는 "육지를 향해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다행히 "그 아이는 죽으면서 깨어났다/물속에서 눈을 떴다" 바다 쪽에서 온 아이는 받아줄 땅을 찾아 떠돌던 난민의 아이일 수도 있고, 다른 안타까운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시의 이야기 안에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은 모두의 마음일 테다. "이 아이는 돌아가고 싶을까/물론이지 물론이지/모든 것들이 대답한다" 그런데 아이는 바다 쪽에서 왔으므로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시인은 간절히 바란다. "낯선 관리들이 와 그 아이를 데려가기 전/파도와 썰물은 힘세어져/그의 얼굴을 바다를 향해 돌려주기를".
그래야만 그 아이는
이 일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
그 집의 마당이나 현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 터이니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걸음마 해서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부분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는 길. "뒷걸음질하는 아이는 없"으므로 아이는 앞으로 걸음마를 해야 한다. 그러나 바다는 뒤쪽에 있다. 누군가가 얼굴을 바다를 향해 돌려준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뒤를 보면서 앞으로 가기. 이상한 난경 안에서 시는 '영도 남항'과도 이어지는 세상의 깊은 슬픔이 되면서 동시에 얼마간 장석 시의 의지이자 자기 투영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장석 시와 함께 '바다'와 '아이'는 계속 돌아올 것이다. 그때 "한 송이만 더 열리면/떠오르리라"의 들뜬 예감과 "그리하지 않으려고 하루아침에 흩어버리는/흰 꿈"의 결단은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의 곤경을 마주 보고 기억하는 한에서 거듭 새롭게 열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는 장석 시가 자신의 시를 '마흔 번이 넘는' 망각으로부터 일깨운 '아이'에게 보내는 전언이자 다짐인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에는 그가 『우리 별의 봄』을 헌정한("벗에게/우리는 여전히 한 알의 씨앗에/함께 들어 있으므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시편들이 들어 있거니와(「아틀리에 봄」, 「아치울 견문」, 「이 세상 끝의 등대」), 부재하는 '벗'('벗'의 또 다른 현현이 '아이'이기도 할 것이다)의 "최고 희망"과 함께 일구어갈 장석 시의 "햇빛 가득한 안쪽"(「아틀리에 봄」)을 우리 역시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그로부터 정확히 40년 만인 2020년 봄 장석 시인은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 두 권의 시집을 한꺼번에 상재하면서 돌아온다. 생각보다 훨씬 긴 은일과 망각으로부터 귀환한 두 권의 시집에 부친 글에서 남진우는 말한다. "세계를 향해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는 그의 사랑의 전언에는 여전히 순결한 자아에 대한 갈망과 현상적 질서 너머의 본질을 투사하고자 하는 은밀한 열망이 가득 차 있다. 그동안 그는 이 언어를 버려두고 아니 쌓아두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며 한 시절 한 세상을 탕진해왔던 것일까." '탕진'이라는 애정 어린 역설의 언어에 응답하기라도 하려는 듯 장석 시인은 세번째 시집을 들고 우리를 다시 찾아왔다. 앞선 두 권의 시집 출간 후 꼬박 두 해에 걸쳐 쓴 시들이다. 그 시들을 읽으며, 이른바 '탕진'의 화살은 정작 시인 내부에서 더 철저하고 벼려지고 아프게 겨누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한다.
삶에 늘 가래가 끓어
젊음에서 낡아가던 내 가난의 전성기
비켜 갔던 허다한 장소
돌아가며 외면한 숱한 일
나는 가느다란 내 시에 매달린 어릿광대였다네
-「오월은 마흔 번이 넘게 나를 깨웠네」 부분
시의 제목에 눈길이 머물게 되거니와, "빗소리처럼 네 노래처럼 나를 흔들었"던 '오월'은 '마흔 번'의 숫자를 통해 "거룩함이 비천함을 눕히고/죽음이 죽임을 이겨 이루어낸 사랑의 성소"로서 '1980년 오월'을 명확히 가리키고 있다. "나는 한낮의 하늘에 부조되는 장엄한 무늬를/보았다"로 시작되는 「풍경의 꿈」을 비롯하여 그의 많은 시가 알려주듯 장석 시의 구성 원리에는 세계를 성(聖)과 속(俗)의 긴장 속에서 파악하고 겪어내려는 지향이 있다. 이는 애초에 엘리아데식 세계 이해에 얼마간 빚진 것일 수도 있겠으나, 가령 '우주' '하늘' '별' '대지' '바다'와 같은 세상의 경계를 자연적 실재와는 다른 의미 공간으로 들어 올리는 감각은 초기 시부터 근작까지 거의 일관되고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고유하고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석 시의 토대를 이루어온 듯하다. 그러나 동시에 거룩함의 나타남, 성현(聖顯, hierophany)의 순간적 광휘는 무엇보다 속(俗)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시의 언어적 노동이 아니면 안 된다는 사실, 비속하면 비속한 대로 현세적이고 현실적인 인간의 시간 안에서 모색되고 이루어져야 한다는 자각 또한 장석 시의 출발선에 분명히 존재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앞서 인용한 글에서 나르시시즘의 근거로 지목되기도 했던 "나는 부끄러워 눈물 흘렸다. 내 꿈은/나에게 입 맞추어주었다"(「풍경의 꿈」 6연)는 시적 진술은 그와 같은 성속의 변증법이 시인이 시에 투신하려던 저 1980년대 초입에 이미 전혀 쉽지 않은 무게로 다가와 있었다는 사실의 역설적 표명, 막막하고 두려운 예감의 휩싸임으로 읽을 수도 있다. 「풍경의 꿈」의 후반부는 "삶을 준비하는 자가 새를 날려보냈다. 어둠 속으로"로 시작되고 있는데, 첫번째 새는 "무너진 너의 슬픔 위로 떨어"지고 있으며 두번째 새는 "지상의 어두운 골목에서" "차갑게 불타고 있"다. "노아의 세번째 비둘기"만이 "황금빛 올리브 잎사귀를 물고 왔다……"고 진술되는데 여기서 '노아'가 '삶을 준비하는 자'와 동일한 인물인지도 모호하거니와, 저 말줄임표의 침묵은 어떻게 해석되어야 하는가. 새의 귀환은 '삶'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멀고 먼 전설의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이제 삶은 신성한 정지"이고 "그림자인 풍경만이 변모한다"는 시의 대답은 그 어조의 당당함으로 오히려 닿을 길 없는 막막한 거리를 환기한다. 해서는 시의 마지막에 '새'는 다시 한 번 "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진다. "새여,/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지는 푸른 입술이여……" '삶을 준비하는 자'가 세상에 날려보낸 첫번째 '새'이자 마침내 '슬픔의 첨탑' 위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푸른 입술'의 운명은 마치 장석 시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자기 처벌'의 신성한 임무처럼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장석 시의 오랜 침묵은 스스로가 만든 자각적 운명이며, 여기에는 적어도 '마흔 번'이 넘는 깨움이 필요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랑의 성소'로서 '오월'의 재발견과 함께 일어나고 있다.
이번 시집의 표제작이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인데, '바다'는 장석 시의 원초적 장소라 할 만하다. 등단 시에서 '문법 바다'라는 관념의 외피를 두르고 처음 선을 보인 그곳은 시인의 유년기 기억이 잠복해 있는 부산 영도 남항과 순천만을 하나의 선으로 이은 뒤 시간의 진행이 만드는 또 하나의 선을 따라 통영 바다라는 꼭지점을 가지는 삼각형의 구조로 거듭 장석 시에 돌아온다. 그렇게 시간적으로 원근법의 삼각형을 이루는 바다는 공간적으로는 일제히 남쪽의 거의 동일 위도에 정렬해 있다. 여기에 바다에 인접한 언어군으로서 섬, 정박, 등대, 배, 어망, 닻, 청음초 등등 일련의 환유적 계열어들이 따르기도 한다. 그리고 원초적 장소인 만큼, 바다에 종종 '아이'가 등장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심지어 시인은 도심의 횡단보도 세발자전거에 앉은 아이와 눈길을 나누면서도 바다에 있다("내 인생의 이 봄을/횡단보도에 정박한다", 「신호등」). 기실 '아이'는 '바다' 못지않게 장석 시의 테마를 형성하는 중요한 주어이며, 때로는 화자의 시선이 때로는 세계나 사물의 응시가 생성되고 교차하는 자리다. 장석 시는 아이를 통해 처음과 만나고 처음을 일깨우려 한다. 이때 아이는 '무구함'의 표상이라기보다는 '무명(無名/無明)'으로서 장석 시를 개시(開始/開示)하는 '타자'의 자리에 가까운 듯하다.
'영도 남항'은 "산파가 나를 받아주었던 집"이 있는 곳인데, 뻘에 묻힌 지 여러 날이 지나 거적 밖으로 나온 맨발로 처음 목도된 아이의 시신은 유년기 시인에게 거듭 가위눌린 무서운 꿈이 된 듯하다(「영도 남항」, 『우리 별의 봄』). 말하자면 '바다'는 시인에게 한 번도 추상이나 관념이 아니었다. 그러나 '해변의 아이'는 돌아온다. 이번에는 "육지를 향해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다행히 "그 아이는 죽으면서 깨어났다/물속에서 눈을 떴다" 바다 쪽에서 온 아이는 받아줄 땅을 찾아 떠돌던 난민의 아이일 수도 있고, 다른 안타까운 사정이 있을 수도 있다. 이 시의 이야기 안에서 아이가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는 것은 모두의 마음일 테다. "이 아이는 돌아가고 싶을까/물론이지 물론이지/모든 것들이 대답한다" 그런데 아이는 바다 쪽에서 왔으므로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 시인은 간절히 바란다. "낯선 관리들이 와 그 아이를 데려가기 전/파도와 썰물은 힘세어져/그의 얼굴을 바다를 향해 돌려주기를".
그래야만 그 아이는
이 일이 시작된 곳으로 돌아가
그 집의 마당이나 현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여자의 손을 다시 잡을 수 있을 터이니
뒷걸음치지 않고 앞으로 걸음마 해서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 부분
엄마가 있는 집으로 가는 길. "뒷걸음질하는 아이는 없"으므로 아이는 앞으로 걸음마를 해야 한다. 그러나 바다는 뒤쪽에 있다. 누군가가 얼굴을 바다를 향해 돌려준다고 해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뒤를 보면서 앞으로 가기. 이상한 난경 안에서 시는 '영도 남항'과도 이어지는 세상의 깊은 슬픔이 되면서 동시에 얼마간 장석 시의 의지이자 자기 투영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장석 시와 함께 '바다'와 '아이'는 계속 돌아올 것이다. 그때 "한 송이만 더 열리면/떠오르리라"의 들뜬 예감과 "그리하지 않으려고 하루아침에 흩어버리는/흰 꿈"의 결단은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의 곤경을 마주 보고 기억하는 한에서 거듭 새롭게 열릴 수 있으리라. 어쩌면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는 장석 시가 자신의 시를 '마흔 번이 넘는' 망각으로부터 일깨운 '아이'에게 보내는 전언이자 다짐인지도 모른다. 이번 시집에는 그가 『우리 별의 봄』을 헌정한("벗에게/우리는 여전히 한 알의 씨앗에/함께 들어 있으므로") '친구'를 떠올리게 하는 시편들이 들어 있거니와(「아틀리에 봄」, 「아치울 견문」, 「이 세상 끝의 등대」), 부재하는 '벗'('벗'의 또 다른 현현이 '아이'이기도 할 것이다)의 "최고 희망"과 함께 일구어갈 장석 시의 "햇빛 가득한 안쪽"(「아틀리에 봄」)을 우리 역시 오래 들여다보고 싶다.
목차
목차
벚꽃_ 9
못_ 10
단지 이런 일_ 11
미혹_ 13
나비와 태풍_ 15
성김_ 16
번지점프_ 17
아틀리에 봄_ 18
신호등_ 21
1아르의 만다라_ 22
칠월의 믿음_ 25
칠월 밤바다_ 26
침묵의 봄_ 27
수상시장_ 32
자전과 공전_ 35
빗방울의 얼굴_ 37
순천 외가 6_ 39
앎의 즐거움 4_ 41
숲지기_ 42
숲의 총조사_ 45
착지의 시간_ 47
숲의 죽은 나무_ 48
잎의 수목장_ 50
가을의 점자책_ 52
부리의 시_ 54
나의 노래_ 55
나는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가네_ 56
계단 3_ 59
죽음에 관한 농담_ 61
사랑의 몽유_ 62
단풍_ 63
눈매_ 64
은행잎 편지_ 66
아치울 견문_ 68
이 세상 끝의 등대_ 69
무명 연주자_ 70
시를 기르는 섬_ 71
눈의 눈_ 72
모과 심장을 가진 푸른 그림자_ 74
겨울의 주조_ 76
극광의 시계_ 77
사물의 질서_ 79
겨울 까치집_ 81
사랑의 타종_ 83
눈송이, 서성이다_ 85
겨울 연가_ 87
다리_ 90
순례의 해_ 92
꽃잎 위에 뿌리다_ 94
숫자가 중요할 때_ 95
오월은 마흔 번이 넘게 나를 깨웠네_ 97
풀베기_ 101
오월 이일의 노래_ 103
꽃의 유가족_ 104
오월의 끝날_ 105
안개_ 106
별자리 오류_ 107
버찌의 길_ 109
박각시 오지 않는 저녁_ 111
해변의 폐허_ 113
시 빚기_ 116
시집, 지옥에나 가라_ 118
나비 우표_ 122
꽃의 말_ 124
새벽 바다_ 125
폭염_ 126
나쁜 날씨여, 바다에 침을 뱉어라_ 127
꺼내는 일_ 130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_ 131
해설 | 정홍수
'바다'와 '아이'가 동행하는 '형이상학적 서정'의 깊이_ 134
시인의 말_ 154
못_ 10
단지 이런 일_ 11
미혹_ 13
나비와 태풍_ 15
성김_ 16
번지점프_ 17
아틀리에 봄_ 18
신호등_ 21
1아르의 만다라_ 22
칠월의 믿음_ 25
칠월 밤바다_ 26
침묵의 봄_ 27
수상시장_ 32
자전과 공전_ 35
빗방울의 얼굴_ 37
순천 외가 6_ 39
앎의 즐거움 4_ 41
숲지기_ 42
숲의 총조사_ 45
착지의 시간_ 47
숲의 죽은 나무_ 48
잎의 수목장_ 50
가을의 점자책_ 52
부리의 시_ 54
나의 노래_ 55
나는 오동나무 아래를 지나가네_ 56
계단 3_ 59
죽음에 관한 농담_ 61
사랑의 몽유_ 62
단풍_ 63
눈매_ 64
은행잎 편지_ 66
아치울 견문_ 68
이 세상 끝의 등대_ 69
무명 연주자_ 70
시를 기르는 섬_ 71
눈의 눈_ 72
모과 심장을 가진 푸른 그림자_ 74
겨울의 주조_ 76
극광의 시계_ 77
사물의 질서_ 79
겨울 까치집_ 81
사랑의 타종_ 83
눈송이, 서성이다_ 85
겨울 연가_ 87
다리_ 90
순례의 해_ 92
꽃잎 위에 뿌리다_ 94
숫자가 중요할 때_ 95
오월은 마흔 번이 넘게 나를 깨웠네_ 97
풀베기_ 101
오월 이일의 노래_ 103
꽃의 유가족_ 104
오월의 끝날_ 105
안개_ 106
별자리 오류_ 107
버찌의 길_ 109
박각시 오지 않는 저녁_ 111
해변의 폐허_ 113
시 빚기_ 116
시집, 지옥에나 가라_ 118
나비 우표_ 122
꽃의 말_ 124
새벽 바다_ 125
폭염_ 126
나쁜 날씨여, 바다에 침을 뱉어라_ 127
꺼내는 일_ 130
해변에 엎드려 있는 아이에게_ 131
해설 | 정홍수
'바다'와 '아이'가 동행하는 '형이상학적 서정'의 깊이_ 134
시인의 말_ 154
저자
저자
장석
1957년 부산생. 평북 영변 출신으로 함흥과 부산에서 성장하고 수학한 아버지와 전남 순천이 고향인 어머니 사이의 2남 1녀 중 둘째다. 서울대학교 국문과 졸업. 198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시집 『사랑은 이제 막 태어난 것이니』 『우리 별의 봄』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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