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의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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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최인훈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와 기억의 글쓰기
고영범의 장편소설 『느릅나무의 자리』는 뉴욕에서 맞이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봉쇄된 상황에서 홀로 고립된 '나'의 생존기로 시작된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학교와 기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걸었고, 모든 사회적 활동이 정지되고 거리는 텅텅 비어버렸다. '나'가 맞닥뜨린 것은 세계가 이렇게 "허무하게 질서를 잃고" 무너져내리는 "터무니없는 사태"였다. '나'는 악보를 읽으면서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며 속수무책의 무방비를 홀로 버틴다. 정지된 시간 속의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이웃 노인 로지와의 뜻밖의 비접촉 친교 말고는 대부분 혼자만의 뜬금없는 몽상과 상념이 이어졌고, 아파트의 중정에 심긴 오래된 느릅나무의 발견과 상상도 거기에 덧붙는다. 그러던 중 '나' 앞에 무언가가 던져진다. 한국에서 포스터전을 열기로 한 망명 미술가 리덕수를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 '나'는 리덕수와 만났던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그를 소개하는 글을 '단편소설: 리덕수 약전-필로우 북'이라는 제목으로 쓰게 된다. 『느릅나무의 자리』의 한중간에 끼어 자리잡고 있는 이 「리덕수 약전」은 그저 단순한 삽입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느릅나무의 자리』 전체의 주제를 부각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작품의 핵이다. 「리덕수 약전」은 우선 시간적으로는 각각 코로나의 정점과 그 이후를 다루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 기능하고, 지리적으로는 뉴욕에서 시작해 서울, 대구, 교토, 캘리포니아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관통하는 '기억'이라는 화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단편소설의 부제로 빌려온 '필로우 북'이라는 텍스트가 있다. '나'가 쓴 소설 「리덕수 약전」을 포함해 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버전의 '필로우 북'들의 연쇄는 따져보면 일종의 메타포다. 무엇에 대한? 그것은 외부와 단절된 팬데믹의 봉쇄를 홀로 버티며 "가장 작고 사적인 시간"과 "혼자만의 기억" 속으로 침잠하는 '나'의 의식의 궤적과 조응한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기 밖의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나'는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으로, "작고 좁고 막힌, 이미 잘 알고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말한다. "지나간 일을 정리하는 것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묘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사물들의 흔적을 상상하고 사물들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면서 가장 작고 사적인 세계 속에서 발견하는 자기만의 의미에 몰두한다. 낡은 아파트 중정의 느릅나무도 그렇게 자기 안의 세계에 들어앉는다. 원고 청탁을 받고 리덕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런 자기의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는지를 암시한다.
리덕수는 이런 식의 혼자만의 기억의 영역을 '필로우 북'이라고 불렀다. 베갯속, 혼자만의 세계. 그때도 그게 무슨 말인지, 어떤 세계인지 대충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파트라는 이름의 절벽 안 구멍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면벽, 아니 면창수도로 보내고 난 지금은 그 의미가 더 선명해져 있었다.(68쪽)
리덕수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하면서 '나' 앞에 던져진 것은 "누군가의 평생"에 대한 기억이다. 이때 글쓰기란 곧 그 누군가의 평생을 나의 기억 위에 얹어놓는 일이다. 이때 "문밖으로 나가 좀 넓은 곳에 서봐야겠다"는 말은 일종의 비유로 읽힌다. 기억이란 가장 작고 사적인 시간에 속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누군가의 평생이 얹히게 될 때, 기억의 공간이 '문밖의 넓은 곳'으로 넓혀질 때, 혼자만의 '필로우 북'의 세계는 또 다른 형질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렇게 "세계 밖의 세계"로 나아가 "이 주어진 연쇄와 인과관계의 사슬 바깥의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에 형체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나'에 따르면 그것만이 대안이다. '나'가 리덕수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도, 이어 중정의 '느릅나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이다. 그것은 "세계 밖으로" 나가 "없는 길로 들어가는" 일이다.
'나'가 아버지 묘소의 이장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펼쳐지는 『느릅나무』 후반부의 여정은 바로 이 글쓰기가 어떤 것이 될지를 암시하는 이야기다. '나'는 수습한 아버지의 유분이 담긴 상자를 등에 메고 오래전 신의주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월남한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녔던 통학길을 되짚으며 걷는다. 원래 계획에 없던 이 '노제'는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부침을 통과해온 아버지의 삶의 자취, 동시에 (등에 짊어진 아버지의 유분처럼) '나' 위에 얹힌 아버지의 시간을 반추하는 기억의 여행이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의 서울과 '나'의 서울, 서울의 역사와 사람들, 서울을 배경을 한 텍스트들의 기억이 한데 포개져 있는 무수한 기억의 축적 속을 걷는 일이기도 하다.
기나긴 기억의 여행을 끝내고 뉴욕의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그렇게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 사이에 마침 중정의 느릅나무도 베어져 사라져버렸다. '나'의 글쓰기는 사라진 그 '느릅나무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쓴다.
나는 이 장면을 현재형으로 서술한다. 지금, 이곳, 말고는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러니, 그러므로 여기에서 무엇이든 무언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59쪽)
모든 발판이 무너져내리고 세계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리게 만든 코로나 이후, 글쓰기의 출발점은 어찌 됐든 '나'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곳이 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무언가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고영범의 장편소설 『느릅나무의 자리』는 뉴욕에서 맞이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봉쇄된 상황에서 홀로 고립된 '나'의 생존기로 시작된다. 확진자와 사망자가 폭증하면서 학교와 기업체는 모두 문을 닫아걸었고, 모든 사회적 활동이 정지되고 거리는 텅텅 비어버렸다. '나'가 맞닥뜨린 것은 세계가 이렇게 "허무하게 질서를 잃고" 무너져내리는 "터무니없는 사태"였다. '나'는 악보를 읽으면서 음악을 듣거나 넷플릭스 시리즈를 보며 속수무책의 무방비를 홀로 버틴다. 정지된 시간 속의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이웃 노인 로지와의 뜻밖의 비접촉 친교 말고는 대부분 혼자만의 뜬금없는 몽상과 상념이 이어졌고, 아파트의 중정에 심긴 오래된 느릅나무의 발견과 상상도 거기에 덧붙는다. 그러던 중 '나' 앞에 무언가가 던져진다. 한국에서 포스터전을 열기로 한 망명 미술가 리덕수를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은 것. '나'는 리덕수와 만났던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그를 소개하는 글을 '단편소설: 리덕수 약전-필로우 북'이라는 제목으로 쓰게 된다. 『느릅나무의 자리』의 한중간에 끼어 자리잡고 있는 이 「리덕수 약전」은 그저 단순한 삽입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느릅나무의 자리』 전체의 주제를 부각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작품의 핵이다. 「리덕수 약전」은 우선 시간적으로는 각각 코로나의 정점과 그 이후를 다루는 전반부와 후반부의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주는 연결 고리로 기능하고, 지리적으로는 뉴욕에서 시작해 서울, 대구, 교토, 캘리포니아를 거쳐 다시 뉴욕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관통하는 '기억'이라는 화두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단편소설의 부제로 빌려온 '필로우 북'이라는 텍스트가 있다. '나'가 쓴 소설 「리덕수 약전」을 포함해 그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러 버전의 '필로우 북'들의 연쇄는 따져보면 일종의 메타포다. 무엇에 대한? 그것은 외부와 단절된 팬데믹의 봉쇄를 홀로 버티며 "가장 작고 사적인 시간"과 "혼자만의 기억" 속으로 침잠하는 '나'의 의식의 궤적과 조응한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근본부터 흔들리는 상황에서 자기 밖의 세계를 더 이상 믿지 않게 된 '나'는 자기만의 내밀한 공간으로, "작고 좁고 막힌, 이미 잘 알고 있는 곳"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나'는 말한다. "지나간 일을 정리하는 것과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묘사하는 것, 이 두 가지가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나'는 사물들의 흔적을 상상하고 사물들의 리듬에 자신을 맞추면서 가장 작고 사적인 세계 속에서 발견하는 자기만의 의미에 몰두한다. 낡은 아파트 중정의 느릅나무도 그렇게 자기 안의 세계에 들어앉는다. 원고 청탁을 받고 리덕수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나'는 그런 자기의 일상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이었는지를 암시한다.
리덕수는 이런 식의 혼자만의 기억의 영역을 '필로우 북'이라고 불렀다. 베갯속, 혼자만의 세계. 그때도 그게 무슨 말인지, 어떤 세계인지 대충 안다고 생각했지만, 아파트라는 이름의 절벽 안 구멍에서 일 년이 넘는 시간을 면벽, 아니 면창수도로 보내고 난 지금은 그 의미가 더 선명해져 있었다.(68쪽)
리덕수에 관한 소설을 쓰기로 하면서 '나' 앞에 던져진 것은 "누군가의 평생"에 대한 기억이다. 이때 글쓰기란 곧 그 누군가의 평생을 나의 기억 위에 얹어놓는 일이다. 이때 "문밖으로 나가 좀 넓은 곳에 서봐야겠다"는 말은 일종의 비유로 읽힌다. 기억이란 가장 작고 사적인 시간에 속하는 것이지만 거기에 누군가의 평생이 얹히게 될 때, 기억의 공간이 '문밖의 넓은 곳'으로 넓혀질 때, 혼자만의 '필로우 북'의 세계는 또 다른 형질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렇게 "세계 밖의 세계"로 나아가 "이 주어진 연쇄와 인과관계의 사슬 바깥의 무언가를 상상하고 그것에 형체를 부여해주는 것"이다. '나'에 따르면 그것만이 대안이다. '나'가 리덕수에 대한 소설을 쓰는 것도, 이어 중정의 '느릅나무 이야기'를 시나리오로 쓰는 것도 모두 이런 맥락이다. 그것은 "세계 밖으로" 나가 "없는 길로 들어가는" 일이다.
'나'가 아버지 묘소의 이장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면서 펼쳐지는 『느릅나무』 후반부의 여정은 바로 이 글쓰기가 어떤 것이 될지를 암시하는 이야기다. '나'는 수습한 아버지의 유분이 담긴 상자를 등에 메고 오래전 신의주에서 할아버지를 따라 월남한 아버지가 서울에서 다녔던 통학길을 되짚으며 걷는다. 원래 계획에 없던 이 '노제'는 분단과 전쟁으로 이어진 역사의 부침을 통과해온 아버지의 삶의 자취, 동시에 (등에 짊어진 아버지의 유분처럼) '나' 위에 얹힌 아버지의 시간을 반추하는 기억의 여행이다. 그것은 또한 아버지의 서울과 '나'의 서울, 서울의 역사와 사람들, 서울을 배경을 한 텍스트들의 기억이 한데 포개져 있는 무수한 기억의 축적 속을 걷는 일이기도 하다.
기나긴 기억의 여행을 끝내고 뉴욕의 아파트로 돌아온 '나'는 그렇게 다시 글쓰기를 시작한다. 그 사이에 마침 중정의 느릅나무도 베어져 사라져버렸다. '나'의 글쓰기는 사라진 그 '느릅나무의 자리'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나'는 이렇게 쓴다.
나는 이 장면을 현재형으로 서술한다. 지금, 이곳, 말고는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그러니, 그러므로 여기에서 무엇이든 무언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259쪽)
모든 발판이 무너져내리고 세계에 대한 믿음마저 흔들리게 만든 코로나 이후, 글쓰기의 출발점은 어찌 됐든 '나'가 서 있는 바로 지금, 이곳이 될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 무언가가 시작되어야 한다.
이 소설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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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p〉무엇보다 이 소설은 최인훈의 소설이 끝나고 한 세대를 격한 자리에서, 그와 방불하게도 '세계 바깥의 세계'에 존재의 집을 지으려는 글쓰기의 욕망이 소설의 담화 속에서 생성되는 장면을 조용하지만 드라마틱하게 보여준다. 특히 영화와 소설, 시나리오와 일기, 음악과 포스터 등 여러 형식의 텍스트들이 서로를 반사하고 포개지고 교차하면서 전개되는 이 소설의 자기반영적 글쓰기는 기존의 한국소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지적 사유의 부피와 질감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내성적 담화의 곳곳에서 고개를 드는 유머도 있다.〈/p〉〈p〉마지막으로, 약간의 비유가 허용된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이 소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서울 출신 미국 이민자 버전의, 르네상스적 글쓰기 버전의 『화두』다.〈/p〉〈p〉〈strong〉'해설'에서_ 김영찬(문학평론가·계명대 교수)〈/strong〉〈/p〉〈p〉 〈/p〉〈p〉중심은 도처에 있다. 집단은 어디에나 있다. 〈/p〉〈p〉주변부의 개인이 다른 주변부의 개인을 본다. 접촉을 최소화한다. 코비드의 생존 방식이다. 〈/p〉〈p〉개입하지 않는다. 거리를 좁히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본다. 다른 이들을 보는 주변부의 개인의 삶의 방식이다. 〈/p〉〈p〉전적인 이해를 도모하지 않는다. 극적인 화해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저 본다. 흘러가는 물을 그저 보듯 무심한 듯 흐르는 문장들로. 그저 보는 것으로 타자들의 삶이 복원된다. 〈/p〉〈p〉이 소설은 프루스트를 떠올리게 한다. 그 시간에 있던 것들을 그저 기록하는 것으로 시간 속에 있던 존재들이 복원되듯이.〈/p〉〈p〉〈strong〉박현욱(소설가)〈/strong〉〈/p〉
목차
목차
느릅나무의 자리 7
해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 | 김영찬(문학평론가·계명대 교수) 260
작가의 말 282
해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화두 | 김영찬(문학평론가·계명대 교수) 260
작가의 말 282
저자
저자
고영범 평안북도 신의주 출신 실향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 희곡 「태수는 왜?」 「이인실」 「방문」 「에어콘 없는 방」 「서교동에서 죽다」, 장편소설 『서교동에서 죽다』, 기행전기 『레이먼드 카버-삶의 세밀화를 그린 아메리칸 체호프』를 썼다.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펄프헤드』 『레이먼드 카버의 말』 『우리 모두』 『스웨트』 외 다수를 번역했다. 「에어콘 없는 방」으로 제6회 벽산예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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