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불평등 기원론(세창클래식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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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가장 중요한 어떤 작품에서 나는 그 원칙을 완전히 발전시킬 기회를 가졌다. 내 생각으로 1753년 그해에 디종 아카데미에서 ‘인간 불평등의 기원’이라는 주제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큰 문제에 감명을 받은 나는 아카데미가 대담하게 그런 문제를 제안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더구나 아카데미가 그런 용기를 보여 주었으니 나도 그런 문제를 다루고 시도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구상하면서 원시 시대의 이미지를 찾아 숲속을 거닐었다. 인간이 문명의 발전과 사물의 진보에 따라 본성이 왜곡되고 불행에 빠져들기 이전에 살았던 자연 상태의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 생제르맹에서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그는 “인간의 완성 속에 그 불행의 진정한 원천이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 주려” 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디종 아카데미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루소는 1750년에 같은 아카데미에 『학문 예술론』을 제출하여 일등상을 수상했지만, 이번에는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구상하면서 원시 시대의 이미지를 찾아 숲속을 거닐었다. 인간이 문명의 발전과 사물의 진보에 따라 본성이 왜곡되고 불행에 빠져들기 이전에 살았던 자연 상태의 이미지를 발견하기 위해 생제르맹에서 일주일을 보낸 것이다. 그는 “인간의 완성 속에 그 불행의 진정한 원천이 있음을 그들에게 보여 주려” 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디종 아카데미는 물론 독자들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루소는 1750년에 같은 아카데미에 『학문 예술론』을 제출하여 일등상을 수상했지만, 이번에는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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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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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말
디종 아카데미, 루소를 깨우다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고, 자연법은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지금 보아도 쉽게 답할 수 없고, 우리 사회, 우리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듯한 이 질문은, 놀랍게도 1753년, 디종 아카데미가 제기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넘은 담대한 질문은, 철학자 루소를 깨우기에 충분한 질문이었다.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가 그처럼 담대한 질문을 제기한 이상, 자신 역시도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여겼다. 루소와 같은 철학자에게 그것은 일종의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숲속에서의 산책에서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성찰을 떠올려 냈다. 그는 그에 대한 논문,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에 관한 논문」을 제출했지만, 과거 일등상을 수상했던 『학문 예술론』과는 달리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후에 이 논문에 서문과 헌정사를 붙여 출판해 내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었다.
루소는 이 책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벗어날 것인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소의 성찰이 미완성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루소에게 있어 상당히 불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애초에 디종 아카데미가 제기한 질문 자체가 불평등의 해소법은 묻지 않았던 것이다. 루소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을 나름대로 성찰하였고, 자연법이 불평등을 허용하는가에 대해서도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 견해가 우리 시대에 비추어 마땅한지 그렇지 않은지, 또 아직도 남아 있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왜 불평등하게 살아가는지, 보다 엄밀히 말해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지 루소가 내놓은 성찰에 대해서 잠시 탐색해 보자.
우리는 왜 불평등하게 살아가는가?
루소는 인간들 사이에는 두 가지 종류의 불평등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자연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이다. 자연적 불평등이야 설명할 것조차 없다. 우리는 모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지만, 최근의 과학은 공부도 재능(DNA)이고, 심지어 노력조차 일정 정도는 재능(DNA)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과연 우리는 진정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루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자연적 불평등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더욱이 정치적 불평등과 자연적 불평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루소는 침묵을 택한다. 즉 루소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을 논하며, 자연적 불평등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정치적 불평등만을 논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소는 왜 그렇게 했을까? 그는 자연적 불평등이 아니라, 정치적 불평등이 현재 존재하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소가 볼 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있어, 자연적 불평등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은 오로지 모든 것을 자신에 비추어 바라봤기 때문에, 남이 힘이 세건, 아니건 그러한 여타의 사실은 그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즉 자연적 불평등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그런데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됐다.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 인간에게는 질투와 소유욕이 등장했다. 그리고 남보다 더 낫고 싶다는 이 감정은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인간들 사이 불평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질문을 보자. "자연법은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루소는 이미 이에 대해 답한 바 있다. 자연에는 분명 불평등이 있다. 그러나 자연법이 불평등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 사이 (자연적) 불평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근거로 인해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루소에게 다시 불평등을 묻다
인간의 근원적 모습을 고찰하려고 했던 루소의 시도는 현대에는 조금 틀린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인류학적·역사학적 연구는 과거의 인류가 루소적 인간보다는 홉스적 인간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의 발생 과정이나 진화 과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루소를 찾은 것이다. 그러므로 디종 아카데미의 질문에 대한 루소의 답을 정리해 보자.
루소에 따르면,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은 존재하나, 자연 상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 상태를 벗어나 사회를 만들면서 비로소 정치적 불평등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자연적 불평등은 존재하나 우리가 사회 속에서 그것으로 사람들 사이를 가르기 전에는 불평등이 아니다. 정치적 불평등은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창조한 불평등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자연이 아니라 사회이며, 자연법이 아니라 사회가 그것을 허용해 온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들 사이 불평등은 "인간의 본원적인 상태가 결코 아니며, 이처럼 우리의 모든 자연적인 성향을 변하게 하고 변질시키는 것은 오직 사회의 정신과 그것이 낳은 불평등"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이 말을 좀 더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 이미 앞에서도 나온 바 있듯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루소는 본원적인 상태인 자연으로 돌아가자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말을 그렇게만 해석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앞에서도 말했듯, 루소는 이러한 질문에 답해 주지 않으며,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기왕 루소의 지혜를 빌리고자 했으니, 그의 말을 이렇게 정리해 보자. 자연적이건 정치적이건 '불평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가 만든 것이지 인간의 본원적 상태가 아니므로, '당위가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런 결론이 나올 것이다. 평등은 존재가 아니라 당위이다.
디종 아카데미, 루소를 깨우다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고, 자연법은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지금 보아도 쉽게 답할 수 없고, 우리 사회, 우리 인간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을 담고 있는 듯한 이 질문은, 놀랍게도 1753년, 디종 아카데미가 제기한 질문이다. 그리고 이 시대를 넘은 담대한 질문은, 철학자 루소를 깨우기에 충분한 질문이었다.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가 그처럼 담대한 질문을 제기한 이상, 자신 역시도 그 질문에 답해야 한다고 여겼다. 루소와 같은 철학자에게 그것은 일종의 의무와도 같은 것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숲속에서의 산책에서 루소는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성찰을 떠올려 냈다. 그는 그에 대한 논문,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에 관한 논문」을 제출했지만, 과거 일등상을 수상했던 『학문 예술론』과는 달리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후에 이 논문에 서문과 헌정사를 붙여 출판해 내니,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었다.
루소는 이 책에서 어떻게 불평등을 벗어날 것인가를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루소의 성찰이 미완성된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루소에게 있어 상당히 불공정한 평가일 것이다. 애초에 디종 아카데미가 제기한 질문 자체가 불평등의 해소법은 묻지 않았던 것이다. 루소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을 나름대로 성찰하였고, 자연법이 불평등을 허용하는가에 대해서도 나름의 견해를 내놓았다.
그 견해가 우리 시대에 비추어 마땅한지 그렇지 않은지, 또 아직도 남아 있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왜 불평등하게 살아가는지, 보다 엄밀히 말해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지 루소가 내놓은 성찰에 대해서 잠시 탐색해 보자.
우리는 왜 불평등하게 살아가는가?
루소는 인간들 사이에는 두 가지 종류의 불평등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자연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평등이다. 자연적 불평등이야 설명할 것조차 없다. 우리는 모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라는 말을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지만, 최근의 과학은 공부도 재능(DNA)이고, 심지어 노력조차 일정 정도는 재능(DNA)이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과연 우리는 진정 "평등하게 태어났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루소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자연적 불평등에 대해 논하지 않는다. 더욱이 정치적 불평등과 자연적 불평등의 관계에 대해서도 루소는 침묵을 택한다. 즉 루소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을 논하며, 자연적 불평등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정치적 불평등만을 논한 것이다. 그렇다면 루소는 왜 그렇게 했을까? 그는 자연적 불평등이 아니라, 정치적 불평등이 현재 존재하는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소가 볼 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던 인간들에게 있어, 자연적 불평등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인간은 오로지 모든 것을 자신에 비추어 바라봤기 때문에, 남이 힘이 세건, 아니건 그러한 여타의 사실은 그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즉 자연적 불평등은 그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못했다. 그런데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면서 상황은 변하게 됐다. 인간이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된 인간에게는 질투와 소유욕이 등장했다. 그리고 남보다 더 낫고 싶다는 이 감정은 인간들 사이에 불평등을 만드는 계기가 됐다. 이때부터 인간들 사이 불평등이 시작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두 번째 질문을 보자. "자연법은 불평등을 허용하는가?"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루소는 이미 이에 대해 답한 바 있다. 자연에는 분명 불평등이 있다. 그러나 자연법이 불평등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들 사이 (자연적) 불평등을 드러나게 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타인의 시선'이기 때문이다. 루소에 따르면 이러한 근거로 인해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루소에게 다시 불평등을 묻다
인간의 근원적 모습을 고찰하려고 했던 루소의 시도는 현대에는 조금 틀린 것으로 보일지 모른다. 인류학적·역사학적 연구는 과거의 인류가 루소적 인간보다는 홉스적 인간에 가깝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인류의 발생 과정이나 진화 과정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이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루소를 찾은 것이다. 그러므로 디종 아카데미의 질문에 대한 루소의 답을 정리해 보자.
루소에 따르면, 자연적(신체적) 불평등은 존재하나, 자연 상태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자연 상태를 벗어나 사회를 만들면서 비로소 정치적 불평등이 만들어진다. 다시 말해, 자연적 불평등은 존재하나 우리가 사회 속에서 그것으로 사람들 사이를 가르기 전에는 불평등이 아니다. 정치적 불평등은 두말할 필요 없이 우리가 창조한 불평등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이 불평등의 기원은 자연이 아니라 사회이며, 자연법이 아니라 사회가 그것을 허용해 온 것이다.
루소에 따르면, 인간들 사이 불평등은 "인간의 본원적인 상태가 결코 아니며, 이처럼 우리의 모든 자연적인 성향을 변하게 하고 변질시키는 것은 오직 사회의 정신과 그것이 낳은 불평등"이다. 그런데, 이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이 말을 좀 더 간략하게 설명해 보자. 이미 앞에서도 나온 바 있듯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루소는 본원적인 상태인 자연으로 돌아가자고도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말을 그렇게만 해석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앞에서도 말했듯, 루소는 이러한 질문에 답해 주지 않으며, 이러한 질문은 우리가 답해야 할 문제다. 그러나 기왕 루소의 지혜를 빌리고자 했으니, 그의 말을 이렇게 정리해 보자. 자연적이건 정치적이건 '불평등은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회가 만든 것이지 인간의 본원적 상태가 아니므로, '당위가 아니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자. 그러면 이런 결론이 나올 것이다. 평등은 존재가 아니라 당위이다.
목차
목차
제네바 공화국에 헌정함
서문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에 관한 논문
서문
1부
2부
루소의 주석
옮긴이 후기
서문
인간들 사이 불평등의 기원과 근거에 관한 논문
서문
1부
2부
루소의 주석
옮긴이 후기
저자
저자
장 자크 루소
스위스 제네바 출생. 16세에 제네바의 성문이 닫혀 돌아갈 수 없게 되자 고향을 떠난다.
1750년 디종 아카데미 논문 공모에서 『학문 예술론』으로 일등상을 수상한다. 1761년 『신엘로이즈』가 출간되어 성공을 거두지만 『에밀』의 판매가 금지되고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다. 당대 학자들과의 불화와 세상 사람들의 오해, 특히 『에밀』에 가해진 박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고백』을 쓰기 시작한다. 말년에는 『에밀』에 가해진 박해와 생계의 어려움, 건강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 1778년 파리 근교 에름농빌에서 생을 마감하고 이듬해 팡테옹에 이장된다.
저서로는 『학문예술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엘로이즈』, 『에밀』, 『사회계약론』, 『고백』,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
1750년 디종 아카데미 논문 공모에서 『학문 예술론』으로 일등상을 수상한다. 1761년 『신엘로이즈』가 출간되어 성공을 거두지만 『에밀』의 판매가 금지되고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된다. 당대 학자들과의 불화와 세상 사람들의 오해, 특히 『에밀』에 가해진 박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자 『고백』을 쓰기 시작한다. 말년에는 『에밀』에 가해진 박해와 생계의 어려움, 건강 문제로 고통을 겪는다. 1778년 파리 근교 에름농빌에서 생을 마감하고 이듬해 팡테옹에 이장된다.
저서로는 『학문예술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신엘로이즈』, 『에밀』, 『사회계약론』, 『고백』,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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