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
고진하 산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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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행간을 들여다보며 전하는 여백의 아름다움!
『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던 고진하의 산문집이다. 수년 간 신문과 잡지에 ‘고 아무개’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던 글들로 채워져 있다. 자연을 경전으로 삼아 믿음의 삶에서 길어 올린 철학을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내었다. 낡은 허울을 벗고 믿음의 날개를 갖기를 소망하는 문장과 믿음의 지혜를 갈구하는 글들을 수록하였다. 평범하게 영위하였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축으로 두고 살아온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는 숭실대학교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역임하였던 고진하의 산문집이다. 수년 간 신문과 잡지에 ‘고 아무개’의 이름으로 발표하였던 글들로 채워져 있다. 자연을 경전으로 삼아 믿음의 삶에서 길어 올린 철학을 서정적인 언어로 풀어내었다. 낡은 허울을 벗고 믿음의 날개를 갖기를 소망하는 문장과 믿음의 지혜를 갈구하는 글들을 수록하였다. 평범하게 영위하였던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중심축으로 두고 살아온 흔적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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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ㆍ 이 책은
수도자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순례하는 고진하 목사의 산문집이다. 자연에서 깨달은 삶의 철학을 아름답고 진솔한 언어로 풀어냈다. 보는 것은 꽃과 새와 바람이지만 말하는 것은 예수와 교회와 사람이다. 오랜 침묵이 빚어낸 언어의 향연은 저자의 깊은 성찰에서만 가능하리라.
저자의 글
아담은 낙원을 떠나면서
낙원 한 조각을 가져갔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그가 가져갔던 낙원 한 조각이
메마른 이 세상에 대한 기억보다
훨씬 더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 비겐 구로얀,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에서
무슨 복인지 나는 시심(詩心)의 정원을 거닐며 살 수 있게 된 걸 늘 고마워한다.
이 강퍅하고 분주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삶의 행간(行間)을 들여다보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악보로 취해 노래하고, 우주의 가장 오랜 조형물인 침묵에 쪽문을 내어 들고나는 것도 시를 벗 삼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긴다.
지난겨울 나는 내설악 근처의 한 창작공간에서 지냈다. 산은 높고 물은 맑았다. 높은 산봉우리마다 눈은 켜켜이 쌓여 빛났고, 맑은 계류는 꽝꽝 얼어붙어 빛났다. 인적이 드문 물가에는 햇빛과 바람과 물에 씻긴 돌멩이들이 끼끗하게 빛났다. 글 쓰는 틈틈이 나는 얼어붙은 물가를 걷곤 했다. 맨날 보는 돌멩이들이지만 똑같은 돌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유일무이한 돌들, 저마다 오래된 균열과 상처로 꽃 핀 돌들. 어느 날 나는 잔돌 몇 개를 주워 창작공간으로 돌아오다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손에 들린 잔돌들이 저마다 '우주의 꽃'이란 생각이 사무쳤던 것이다. 잔돌들이 그렇다면 사람은…….
돌이켜보면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스스로 그러한 것들'(자연)에 자주 눈길을 주고 살았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은 스스로 그러함으로 스스로 그러하게 살지 못하는 나를 때때로 일깨워주었다. 나무, 새, 꽃, 바람, 흙, 구름, 하늘 등 스스로 그러한 것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혹은 침묵)로 내가 밥 빌어먹기 위해 쓰는 언어가 글꼴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혹 이 글들 가운데 읽을 만한 무엇이 있다면 '스스로 그러한 것들'이 곁님으로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의례적인 수사나 겸사가 아니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벗 삼는 동안, 나는 지구별 한 가족 운운하면서도 숱한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으뜸의 가르침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울타리를 치며 공생의 지혜로부터 멀어지는 종교간의 갈등과 다툼을 목도해야 했으며, 나와 너의 젖줄인 이 땅의 산하가 초토화되는 아픔을 멀건이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을 혼자 삭이곤 했다. 나는 글들로 무관심하지 않았으나 내 글들로는 무능했다. 그래도 내 글들의 무능을 스스로 달랠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이 내 무능을 무심코 지켜봐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벗 삼는 동안, 나는 지구별 한 가족 운운하면서도 숱한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으뜸의 가르침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울타리를 치며 공생의 지혜로부터 멀어지는 종교간의 갈등과 다툼을 목도해야 했으며, 나와 너의 젖줄인 이 땅의 산하가 초토화되는 아픔을 멀건이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을 혼자 삭이곤 했다. 나는 글들로 무관심하지 않았으나 내 글들로는 무능했다. 그래도 내 글들의 무능을 스스로 달랠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이 내 무능을 무심코 지켜봐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들은 몇 년 동안 고 아무개의 이름으로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글들이다. 글을 발표하던 때의 고 아무개는 이제 과거의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이 글들을 '내' 글이라 고집할 아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지구별의 오랜 관습이 있으니 고 아무개의 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 책 표지에도 그렇게 이름이 나가겠지. 아직 이름에 대한 욕망이 다 죽었다고 할 순 없다. 글쓰기도 이름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니까. 언제가 이 욕망도 내려놓을 날이 있겠지. 때가 되면 성욕(性慾 혹은 聖慾)도 내려놓고 식욕도 내려놓듯이.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봄. 작년의 봄이 아니다. 새봄이다. 새봄[新春]은 새로 봄[見]이다. 나도 새로 보고 싶다. 새로 쓰고 싶다. 비겐 구로얀의 말처럼 내 안에도 '낙원 한 조각'의 기억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꽃봄을 맞아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저마다 글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저 아득한 낙원의 기억을 솔솔 살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
- 고진하
수도자의 마음과 문학의 향기,
그리고 순례자의 시선
고진하 목사의 「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는 시인이자 예수를 믿는 그의 삶과 성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수행집이다. 수행집이라고 하면, 얼핏 뭔가 어려운 고담준론(高談峻論)이 펼쳐지는 듯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도의 근본을 길어 올리는 탁월한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눈길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 그가 응시하는 모든 대상은 새롭게 살아나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에게 어느새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복음이 된다.
달걀 하나가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매미의 허물이나 누에고치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찰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자연 에세이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생명이 자본과 탐욕으로 소멸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명백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 세상 전체가 다 배움의 길로 통하는 학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구학교'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까닭도 이 말 하나에서 그 이유가 정작 밝혀진다.
그렇다면 그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랑, 비움, 평화다. 그저 이렇게 말하면 너무 뼈대만 앙상하게 언급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그래서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다음이다. 우리는 고진하 목사의 글에서 수도자의 마음과 문학의 향기, 그리고 순례자의 시선을 읽게 된다. 아니, 그 안에 자기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가 그는 어느 것 하나도 그저 대하거나 버리는 법이 없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무수한 우화와 이야기, 그리고 여러 종교의 지혜에 대한 그의 폭넓은 지식과 이해는 한국 기독교의 편협성을 이미 건너 뛰어넘은 이의 삶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우주 전체가 우리 안에 하나하나 정돈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목사의 글에서 다른 종교의 경전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녹아드는 것은 경이롭다. 종교학적 논란의 현학적 과시와는 수준이 전혀 다르다. 인류가 함께 고뇌하고 파고들고 발견한 그 모든 깨우침이 도달한 지점에 대한 고진하의 탄성은 곧 우리의 탄성이 된다. 사실 이래야 정작 우리는 예수가 우리로 하여금 이르게 하시려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지혜의 길이 관통하고 있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렇게 무수한 순례의 경륜에서 나온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고진하라는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그는 예수가 '야생초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도 바로 그런 야생초의 사람이 되는 것을 아름답게 설득하고 있다. 아니, 설득이라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렇게 그의 육성을 듣다 보면, 우리 안에 그 야생초가 돋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름아닌 이것이 고진하의 글이 갖는 힘이다.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며 그래서 우리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그 생명의 영성이 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해준다. 왜 그럴까? 당연하다. 그는 일상의 세계 속에 담겨 있는 하늘을 우리에게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건 철저하게 예수의 방식이다. 예수는 풀 한 포기, 겨자씨 하나에서도 하늘을 보게 하시지 않았던가?
영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는 어느 날 작은 횟집에서 가을 전어를 누군가와 먹다가 그 친구가 횟집에서 죽은 전어를 내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런 작은 가게도 영성이 있어야 해요"이어지는 그 친구의 말에 그는 "아!" 한다. 거대한 자본을 가진 자들만이 아니라 작은 장사를 하는 이들도 인간에 대한 마음이 썩어 있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일 하나하나가 다 생명의 영성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의 삶이 갈수록 팍팍하고, 자본의 논리가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웃과 모르는 사람, 또는 원수로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로 빠져들고 있다. 탐욕은 이미 하나의 정상적인 윤리처럼 군림하고, 출세하는 것이 목표가 된 교육에서 이상한 괴물들이 양산되고 있는 판국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별 하나에서 하늘의 마음을 읽는 이는 드물어 가고 제 욕심 차리기 바쁜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고진하는 그렇다고 말한다. 반디는 폭풍이 불어도 빛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고진하의 책은 이 시대를 위한 위로다. 아니, 그 이상이다. 험악한 세상을 아름답게 열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한 수행자의 안내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산길에 접어들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영혼을 위한 순례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가다가 목마르면, 우리 안에 있는 우물에서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고진하의 책이 이 시대에 고맙기만 하다.
한종호 목사 (<기독교사상> 전 편집주간)
수도자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순례하는 고진하 목사의 산문집이다. 자연에서 깨달은 삶의 철학을 아름답고 진솔한 언어로 풀어냈다. 보는 것은 꽃과 새와 바람이지만 말하는 것은 예수와 교회와 사람이다. 오랜 침묵이 빚어낸 언어의 향연은 저자의 깊은 성찰에서만 가능하리라.
저자의 글
아담은 낙원을 떠나면서
낙원 한 조각을 가져갔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그가 가져갔던 낙원 한 조각이
메마른 이 세상에 대한 기억보다
훨씬 더 깊이 아로새겨져 있다
- 비겐 구로얀, <정원에서 하나님을 만나다>에서
무슨 복인지 나는 시심(詩心)의 정원을 거닐며 살 수 있게 된 걸 늘 고마워한다.
이 강퍅하고 분주하기 짝이 없는 세상에서 삶의 행간(行間)을 들여다보고, 여백의 아름다움을 악보로 취해 노래하고, 우주의 가장 오랜 조형물인 침묵에 쪽문을 내어 들고나는 것도 시를 벗 삼기에 가능한 일이라 여긴다.
지난겨울 나는 내설악 근처의 한 창작공간에서 지냈다. 산은 높고 물은 맑았다. 높은 산봉우리마다 눈은 켜켜이 쌓여 빛났고, 맑은 계류는 꽝꽝 얼어붙어 빛났다. 인적이 드문 물가에는 햇빛과 바람과 물에 씻긴 돌멩이들이 끼끗하게 빛났다. 글 쓰는 틈틈이 나는 얼어붙은 물가를 걷곤 했다. 맨날 보는 돌멩이들이지만 똑같은 돌은 하나도 없었다. 저마다 유일무이한 돌들, 저마다 오래된 균열과 상처로 꽃 핀 돌들. 어느 날 나는 잔돌 몇 개를 주워 창작공간으로 돌아오다가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내 손에 들린 잔돌들이 저마다 '우주의 꽃'이란 생각이 사무쳤던 것이다. 잔돌들이 그렇다면 사람은…….
돌이켜보면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스스로 그러한 것들'(자연)에 자주 눈길을 주고 살았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은 스스로 그러함으로 스스로 그러하게 살지 못하는 나를 때때로 일깨워주었다. 나무, 새, 꽃, 바람, 흙, 구름, 하늘 등 스스로 그러한 것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혹은 침묵)로 내가 밥 빌어먹기 위해 쓰는 언어가 글꼴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었다. 혹 이 글들 가운데 읽을 만한 무엇이 있다면 '스스로 그러한 것들'이 곁님으로 곁에 있어 주었기 때문이다. 의례적인 수사나 겸사가 아니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벗 삼는 동안, 나는 지구별 한 가족 운운하면서도 숱한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으뜸의 가르침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울타리를 치며 공생의 지혜로부터 멀어지는 종교간의 갈등과 다툼을 목도해야 했으며, 나와 너의 젖줄인 이 땅의 산하가 초토화되는 아픔을 멀건이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을 혼자 삭이곤 했다. 나는 글들로 무관심하지 않았으나 내 글들로는 무능했다. 그래도 내 글들의 무능을 스스로 달랠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이 내 무능을 무심코 지켜봐주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벗 삼는 동안, 나는 지구별 한 가족 운운하면서도 숱한 차별과 폭력이 난무하는 우리 현실에 가슴 아파했고, 으뜸의 가르침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높은 울타리를 치며 공생의 지혜로부터 멀어지는 종교간의 갈등과 다툼을 목도해야 했으며, 나와 너의 젖줄인 이 땅의 산하가 초토화되는 아픔을 멀건이 지켜봐야 하는 괴로움을 혼자 삭이곤 했다. 나는 글들로 무관심하지 않았으나 내 글들로는 무능했다. 그래도 내 글들의 무능을 스스로 달랠 수 있었던 건 내 안에 살아계신 분이 내 무능을 무심코 지켜봐주었기 때문이다.
이 글들은 몇 년 동안 고 아무개의 이름으로 신문과 잡지에 발표된 글들이다. 글을 발표하던 때의 고 아무개는 이제 과거의 사람이다. 죽은 사람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이 글들을 '내' 글이라 고집할 아무 이유도 없다. 하지만 지구별의 오랜 관습이 있으니 고 아무개의 글이라고 할 수밖에 없겠지. 책 표지에도 그렇게 이름이 나가겠지. 아직 이름에 대한 욕망이 다 죽었다고 할 순 없다. 글쓰기도 이름을 얻고자 하는 욕망이니까. 언제가 이 욕망도 내려놓을 날이 있겠지. 때가 되면 성욕(性慾 혹은 聖慾)도 내려놓고 식욕도 내려놓듯이.
아침부터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촉촉이 내린다. 봄. 작년의 봄이 아니다. 새봄이다. 새봄[新春]은 새로 봄[見]이다. 나도 새로 보고 싶다. 새로 쓰고 싶다. 비겐 구로얀의 말처럼 내 안에도 '낙원 한 조각'의 기억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일까. 꽃봄을 맞아 이 책을 읽는 이들도 저마다 글의 행간에 숨어 있는 저 아득한 낙원의 기억을 솔솔 살려낼 수 있으면 좋겠다.
- 고진하
수도자의 마음과 문학의 향기,
그리고 순례자의 시선
고진하 목사의 「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는 시인이자 예수를 믿는 그의 삶과 성품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수행집이다. 수행집이라고 하면, 얼핏 뭔가 어려운 고담준론(高談峻論)이 펼쳐지는 듯하지만 그는 일상에서 도의 근본을 길어 올리는 탁월한 정신세계를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눈길이 그저 스쳐 지나가는 대상은 하나도 없다. 그가 응시하는 모든 대상은 새롭게 살아나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 말은 우리에게 어느새 오늘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복음이 된다.
달걀 하나가 태어나는 것에서부터 매미의 허물이나 누에고치에 이르기까지 그의 성찰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자연 에세이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생명이 자본과 탐욕으로 소멸되어 가는 현실에 대한 명백한 대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에게는 이 세상 전체가 다 배움의 길로 통하는 학교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구학교'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까닭도 이 말 하나에서 그 이유가 정작 밝혀진다.
그렇다면 그가 배우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에게 나누어 주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랑, 비움, 평화다. 그저 이렇게 말하면 너무 뼈대만 앙상하게 언급하는 것 같아 불만이다. 그래서 그의 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 다음이다. 우리는 고진하 목사의 글에서 수도자의 마음과 문학의 향기, 그리고 순례자의 시선을 읽게 된다. 아니, 그 안에 자기도 모르게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가 그는 어느 것 하나도 그저 대하거나 버리는 법이 없다. 이 책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무수한 우화와 이야기, 그리고 여러 종교의 지혜에 대한 그의 폭넓은 지식과 이해는 한국 기독교의 편협성을 이미 건너 뛰어넘은 이의 삶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는 우주 전체가 우리 안에 하나하나 정돈되어 가는 느낌을 받는다.
목사의 글에서 다른 종교의 경전이 아무런 거부감 없이 녹아드는 것은 경이롭다. 종교학적 논란의 현학적 과시와는 수준이 전혀 다르다. 인류가 함께 고뇌하고 파고들고 발견한 그 모든 깨우침이 도달한 지점에 대한 고진하의 탄성은 곧 우리의 탄성이 된다. 사실 이래야 정작 우리는 예수가 우리로 하여금 이르게 하시려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지혜의 길이 관통하고 있는 정상에 오르는 것은 바로 이렇게 무수한 순례의 경륜에서 나온다. 그런 이유로 우리에게 고진하라는 이가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그는 예수가 '야생초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도 바로 그런 야생초의 사람이 되는 것을 아름답게 설득하고 있다. 아니, 설득이라기보다는 그저 담담하게 들려준다. 그렇게 그의 육성을 듣다 보면, 우리 안에 그 야생초가 돋아나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름아닌 이것이 고진하의 글이 갖는 힘이다. 그것은 눈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뭔가 새로운 것이 태어나는 경험을 우리에게 나누어 주며 그래서 우리 자신이 간절하게 바라는 그 생명의 영성이 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겪게 해준다. 왜 그럴까? 당연하다. 그는 일상의 세계 속에 담겨 있는 하늘을 우리에게 보게 하기 때문이다. 그건 철저하게 예수의 방식이다. 예수는 풀 한 포기, 겨자씨 하나에서도 하늘을 보게 하시지 않았던가?
영성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그는 어느 날 작은 횟집에서 가을 전어를 누군가와 먹다가 그 친구가 횟집에서 죽은 전어를 내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런 작은 가게도 영성이 있어야 해요"이어지는 그 친구의 말에 그는 "아!" 한다. 거대한 자본을 가진 자들만이 아니라 작은 장사를 하는 이들도 인간에 대한 마음이 썩어 있다면 어찌 될 것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사는 일 하나하나가 다 생명의 영성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우리의 삶이 갈수록 팍팍하고, 자본의 논리가 인간을 자본의 노예로 만들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고 이웃과 모르는 사람, 또는 원수로 지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로 빠져들고 있다. 탐욕은 이미 하나의 정상적인 윤리처럼 군림하고, 출세하는 것이 목표가 된 교육에서 이상한 괴물들이 양산되고 있는 판국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별 하나에서 하늘의 마음을 읽는 이는 드물어 가고 제 욕심 차리기 바쁜 세상이 되었다.
그런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까? 고진하는 그렇다고 말한다. 반디는 폭풍이 불어도 빛을 잃지 않으니 말이다. 고진하의 책은 이 시대를 위한 위로다. 아니, 그 이상이다. 험악한 세상을 아름답게 열어 갈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 주는 한 수행자의 안내다. 그의 손을 잡고 함께 산길에 접어들고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우리는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영혼을 위한 순례가 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가다가 목마르면, 우리 안에 있는 우물에서 생명의 물을 길어 올리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고진하의 책이 이 시대에 고맙기만 하다.
한종호 목사 (<기독교사상> 전 편집주간)
목차
목차
제1부 사랑을 배우는 지구학교
에그 모닝 13 꽃비, 지복의 꽃비 19 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 23 그대 나날의 삶이 성소인 것을 29 비단실을 토해 내는 인생 37 고라니 로드에서 봄을 기다리며 43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51 그대 영혼의 산정이 까마득해도 57 너구리를 땅에 묻어 주고 63 누가 뻐꾸기시계를 숲에 달아 놓았지 71 야생초 같은 예수의 젊음을 77
제2부 비움을 배우는 지구학교
당신은 어느 쪽인가 87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97 하나님은 명주실로 우리를 당기신다 107 영혼의 통풍을 위하여 117 비움을 배우는 지구학교 127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라 135 당신의 인생을 걸었는가 145 못난이 프란체스코에게 155
제3부 평화를 배우는 지구학교
반디는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171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175 시들지 않는 기쁨 181 고통에서 날개가 돋다 187 여행자의 마음으로 193 고양이 똥을 치우며 197 타작 201 내리막길에 보았네 207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 기쁨 211 날숨에 자비를 실어 215 돈을 씹어 먹고 살 수 있나 221 가을 전어와 영성 225 한옥에서 겨울나기 229 당나귀 등에 올라타라 235 새봄을 여는 톱질 소리 239
에그 모닝 13 꽃비, 지복의 꽃비 19 누가 우편함에 새를 배달했을까 23 그대 나날의 삶이 성소인 것을 29 비단실을 토해 내는 인생 37 고라니 로드에서 봄을 기다리며 43 허물을 벗은 매미처럼 51 그대 영혼의 산정이 까마득해도 57 너구리를 땅에 묻어 주고 63 누가 뻐꾸기시계를 숲에 달아 놓았지 71 야생초 같은 예수의 젊음을 77
제2부 비움을 배우는 지구학교
당신은 어느 쪽인가 87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있기를 97 하나님은 명주실로 우리를 당기신다 107 영혼의 통풍을 위하여 117 비움을 배우는 지구학교 127 잠깐 멈추고 생각해 보라 135 당신의 인생을 걸었는가 145 못난이 프란체스코에게 155
제3부 평화를 배우는 지구학교
반디는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171 연꽃을 만나고 가는 바람 같이 175 시들지 않는 기쁨 181 고통에서 날개가 돋다 187 여행자의 마음으로 193 고양이 똥을 치우며 197 타작 201 내리막길에 보았네 207 값으로 환산되지 않는 기쁨 211 날숨에 자비를 실어 215 돈을 씹어 먹고 살 수 있나 221 가을 전어와 영성 225 한옥에서 겨울나기 229 당나귀 등에 올라타라 235 새봄을 여는 톱질 소리 239
저자
저자
고진하
저자 고진하 목사는 강원 영월에서 태어났으며, 감리교신학대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시인으로 등단했고, 숭실대학 문예창작과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시집으로 <프란체스코의 새들>, <얼음수도원>. <수탉>, <거룩한 낭비> 등과 산문집으로 <신들의 나라, 인간의 땅: 고진하의 우파니샤드 기행>, <영혼의 정원사> 등이 있다. 김달진 문학상과 강원 작가상을 수상했고, 현재는 대학과 도서관 등에서 틈틈이 인문학 강좌를 하는 한편 한살림교회를 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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