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한 13가지 중독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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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된 사람들로 넘쳐나는 지금, 중독의 시대를 그린 13편의 단편소설!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한 13가지 중독 이야기 『첨벙』. 한겨레출판 문학웹진 ‘한판’에 1년여 동안 ‘중독’을 소재로 연재했던 13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테마 소설집이다. 박솔뫼, 백수린, 이상우, 정지돈, 황현진 등 한국 문학을 이끌 젊은 소설가 13명이 참여한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에서 중독의 한복판 혹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새벽이면 첨벙첨벙 처절하게 헤엄을 치는 ‘이애정’이란 여자와 그녀의 헤엄을 지켜보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솔뫼의 소설 《수영장》, 다니던 미용실을 그만두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슴을 성형하고 같은 색 원피스를 사들이는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원 ‘나’의 이야기를 담은 윤민우의 소설 《원피스》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한 번은 중독되었거나 중독됐었다는 걸 인정하자고 말하고 있다.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한 13가지 중독 이야기 『첨벙』. 한겨레출판 문학웹진 ‘한판’에 1년여 동안 ‘중독’을 소재로 연재했던 13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테마 소설집이다. 박솔뫼, 백수린, 이상우, 정지돈, 황현진 등 한국 문학을 이끌 젊은 소설가 13명이 참여한 이 소설집에 담긴 작품에서 중독의 한복판 혹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새벽이면 첨벙첨벙 처절하게 헤엄을 치는 ‘이애정’이란 여자와 그녀의 헤엄을 지켜보는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박솔뫼의 소설 《수영장》, 다니던 미용실을 그만두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슴을 성형하고 같은 색 원피스를 사들이는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원 ‘나’의 이야기를 담은 윤민우의 소설 《원피스》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들 작품은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한 번은 중독되었거나 중독됐었다는 걸 인정하자고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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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불가사의하면서도 기묘한 13가지 중독 이야기
한국 문학을 이끌 젊은 소설가들이 그려낸
'중독'이란 이름의 13가지 몽타주, 테마 소설집 《첨벙》
우리 주위에는 '휴대전화', '게임', '책'에 중독되고, '섹스', '다이어트', '만화 캐릭터'에 중독된, 그밖에 많은 것들에 중독된 사람들로 넘쳐난다. 바야흐로, 중독의 시대다. 돌아보면, 예술가들도 다를 바 없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지독한 구강암 때문에 생전 30번이 넘는 수술을 해야 했음에도 담배를 끊지 못했고, 트루먼 커포티는 마약과 알코올에 빠진 채 살았으며, 너대니얼 호손은 숫자 64에 집착했고(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64년에 죽었다), 찰스 부코우스키는 자신은 물론 소설 속 주인공(헨리 치나스키)마저 알코올중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이번에 출간된 《첨벙》은 '중독'이라는 소재로 한겨레출판 문학웹진 〈한판〉에 1년여 동안 연재됐던 13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테마 소설집이다. 한국 문학을 이끌 젊은 소설가 13인(박솔뫼, 백수린, 송지현, 오한기, 윤민우, 이갑수, 이상우, 이주란, 정지돈, 조수경, 최정화, 최진영, 황현진)이 참여했다.
중독(addiction)의 어원은 라틴어 addicere로 '~에 사로잡히다', '~의 노예가 되다'라는 의미이다. 《첨벙》에 묶인 13편의 소설에도 무언가에 사로잡혔거나 마치 노예가 된 것처럼 집착적으로 그 행동을 반복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박솔뫼의 〈수영장〉에는 새벽이면 첨벙첨벙 처절하게 헤엄을 치는 '이애정'이란 여자애와, 그런 이애정의 헤엄을 지켜보는 '나'가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며, 윤민우의 〈원피스〉에는 불현듯 다니던 미용실을 그만두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슴을 성형하고 같은 색 원피스를 사들이는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원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수경의 〈오아시스〉에는 과거 연인이었던 '불행'에 중독되어 결국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는 '그녀'와 '그녀'에 중독되어 마약중독자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이 보여진다. 하지만 《첨벙》 속 인물들이 중독에 빠진 채 허우적대는 나약한 인간 군상을 뜻하는 건 아니다.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거나 나약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에는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일 뿐이다. 각 소설의 주인공들이 빠져 있는 중독이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허상이기도 하지만 '나'를 찾고 싶어 벌이는 하나의 시도에 더 가깝다. 어쩌면 《첨벙》 속 인물들이 그리고 있는 건 '첨벙' 하고 용기 내어 뛰어들었지만 '첨벙첨벙' 소리만 클 뿐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 수영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몽타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중독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
이대로 계속 첨벙대다 보면, 다른 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소설에 있어서 시대적으로 어떤 지배적인 양상이 있다면 지금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첨벙》의 소설들은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한 번은 중독되었거나 중독됐었다는 걸 인정하자고 말한다. 이상우의 〈888〉에서 옆자리의 여자는 "우리는 중독됐지"라고 말하고, 〈오아시스〉에서 나는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중독되어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이 책은 중독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왜 중독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중독된 채 계속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응시한다. 중독의 핍진성을, 바로 그 현장을 바라본다. 그건 중독에 몸을 맡긴 '나'가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고 있다는"(〈888〉) 느낌을 주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살아온 만큼 살아야 한다고"(이주란의 〈참고인〉) 믿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들은 우리가 어떻게 초라하고 고독한 어른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갇혔다"(최진영의 〈囚〉)고 말하고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갑수의 〈아프라테르〉)이라고 속마음을 얘기한다. 자신이 초라하고 고독한 어른이란 걸 인정한다. 어느 날 이들에게 "삶 속에 파마약처럼 배어 있는 불만들"(〈원피스〉)이 찾아오고, "비명 같은 위기감과 불안, 모멸감과 비참함"과 "더러운 과잉"(〈囚〉)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수치심 비슷한 것"(백수린의 〈높은 물때〉)이 찾아온다. 이들은 비로소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며 그 충동이 "일시적이거나 단순하지"(〈원피스〉)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건 중독에게로 자진해서 걸어가는 것이다. 《첨벙》 속 소설들에는 그런 변화의 시도가 '진짜 나' 혹은 '다른 나'로 표현된다. 그리고 소설 속 '나'들은 이대로 계속 첨벙대다 보면, 우리는 정말 '다른 나'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물론, 그 시도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인〉에서는 "혹시 노력하면 언젠가 나는 지금과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엄청난 노력을 하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노력?"이라고 수시로 되물으며, 결국 "진짜 나는 어디선가 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자위하고 만다. 송지현의 〈흔한, 가정식 백반〉에서는 "이곳이 진짜 집이고 모두가 진짜 가족인 양" 느끼지만, 그럼에도 여성전용사우나가 진짜 집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아프라테르〉에서처럼 '유미 누나'가 아니라 '아유미'에 만족해야 할 수도 있고, 오한기의 〈볼티모어의 벌목공들〉에서처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설의 지의류 맨폴필드가 썩은 불가사리로 재현될 수도 있다.
결국, 중독을 손에 쥐고 아무리 첨벙대더라도 우리는 '다른 나' 혹은 '진짜 나'가 될 수 없다. 〈888〉에서처럼 "진짜를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를 떠올"리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으며, 〈囚〉에서처럼 "누구 말이 진짜든 불행하긴 마찬가지지"라고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슬프게도 무언가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그저 초라하고 고독한 삶 그 자체에 중독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오아시스〉에서처럼 자신의 불행에 혹은 타인의 불행에 중독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열세 개의 아침과 열세 개의 밤 그리고 무한대의 중독
《첨벙》의 소설들은 타인의 불행을 지켜보는(혹은, 자신의 불행을 마주하는)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하기도 하지만,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사로잡은 무엇에서 벗어나는 것은, 질려서가 아니라 너무 한다 싶어서이며, 중독은 벗어나거나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각 소설의 주인공들은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기이한 열정이 있다는 것"과 "진짜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결국 '나'라는 것"(〈여행자들의 지침서〉)을 알고 있다. 불행(중독) 안에서 머무르는 것을 택하는 이들은 그런 선택이 뭔가 짜릿한 것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황현진의 〈보다 그럼직한 자세〉에서 '나'가 엄마의 손을 이끌며 강에 죽은 새를 보러 가자고 말하는 장면이나 최정화의 〈홍로〉에서 그녀가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50대의 허물을 마침내" 벗어던지는 장면은 '진짜 나'를 찾는 시도가 비로소 '나'를 찾는 시도로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진영의 〈囚〉에서 '나'가 정오의 갯벌에서 'ㅅㅏㄹㅁ'을 발견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놀랍다. '삶'으로 읽히는, 어쩌면 '사람'으로 읽힐지도 모르는 이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이상한 기품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무한대의 중독에서 흘러나온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감지해낸다.
13편의 소설은 중독의 한복판에서 혹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 나오라는 뻔한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며, 그건 우리의 일이며,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한다.
책속으로 추가
30년을 산 여자의 불쌍한 목소리. 그것이 진짜 나인가? 나는 그 목소리로 그런 말을 했던 게 나라는 게 싫었고 그러자 한 인간으로,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독립하고 싶었다. (…) 마치 처음부터 새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살아온 만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런 인간으로 자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같은 집에서 한 살 터울로 자란 언니는 저렇게 밝은데? 물론 셀프카메라를 너무 많이 찍는 것도 병이라지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나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혹시 노력하면 언젠가 나는 지금과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엄청난 노력을 하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노력? (217?218p)
_이주란, 〈참고인〉 중에서
진짜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너야. 사이먼이 말했다. 톰, 그러니까 너의 상태는 이렇게 요약돼. 너는 a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야. 바꿔 말하면 너는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지 않지 않은 것도 아니란 말이야. 너는 일종의 유빙(floating ice)이야. 깨어진 커다란 얼음 조각, 부서진 파편이자 찌꺼기, 녹아내리는 떠돌이 빙산. 욕망은 해류고 바다고 다른 빙산이며 심해고 북극곰이며 오로라야. 사이먼의 말에 톰은 뭔가 찌릿한 것을 느꼈다. 사이먼은 소설을 쓰는 것(또는 아무런 글이나)만이 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왜? 톰이 물었다. 써보면 알게 돼. 사이먼이 말했다. (239p)
_정지돈, 〈여행자들의 지침서〉 중에서
그녀로부터 벗어나 미국까지 날아왔지만 늘 어둡고 축축한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불행의 기운이 이곳까지 뻗칠 때면 나는 한없이 우울해져 광야로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황량한 곳에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죽고 싶은가 아닌가. 텅 빈 땅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그 사실에 안도했다. (271p)
_조수경, 〈오아시스〉 중에서
쉰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완벽하게 실용적인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50대였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50대처럼 걸었고 50대처럼 웃었고 50대처럼 잠자리를 했다. 그녀의 그런 면 때문에 그가 그녀를 선택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면 때문에 그가 그녀와 결혼까지는 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같이 사는 데는 나쁠 것이 없었으니까, 같이 살기만 하는 것이 좋다고 그는 생각했다. (293p)
_최정화, 〈홍로〉 중에서
사실 내가 기다리던 '때'라는 것이 대체 어떤 때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대로 늙으면 요양원에나 들어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나는 청춘을 팔아 요양원에 들어갈 돈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양원에도 못 들어가고 집도 가족도 없이 부랑자로 살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 월세가 자꾸 오른다. 대체 왜? 무리해서라도 은행 빚을 져야 하나? 다들 그런다고 하니 그래야 하나? 내 돈으로 집 얻나, 은행이 얻어주지. 은행 돈이 내 돈이지. 그렇게들 말한다. 은행이 무슨 구세군인가? 우리 모두 불우이웃인가? 이자와 월세가 뭐가 다르지? 빚을 져서 살 곳을 마련하는 게 언제부터 당연해졌지? 세상은 왜 이런 식으로 굴러가지? 요양원에는 나보다 부모님이 먼저 간다. 우선 그 돈을 마련해야 한다. 청춘을 팔아 부모님의 요양원비를, 중년을 팔아 코앞에 닥친 내 노년의 요양원비를 벌어야 한다. 황혼은 어떨까. 멋질까? (322p)
_최진영, 〈囚〉 중에서
우리 누나 미친년 맞는 것 같지? 재하가 낚싯대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내게 물어왔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헷갈렸다.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 둘을 구분해내지 않으면 어떤 대답도 진심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끄덕이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내가 누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자 나도 누나처럼 죽은 체 모래사장에 얼굴을 처박고 자빠지고 싶었다. (354p)
_황현진, 〈보다 그럼직한 자세〉 중에서
한국 문학을 이끌 젊은 소설가들이 그려낸
'중독'이란 이름의 13가지 몽타주, 테마 소설집 《첨벙》
우리 주위에는 '휴대전화', '게임', '책'에 중독되고, '섹스', '다이어트', '만화 캐릭터'에 중독된, 그밖에 많은 것들에 중독된 사람들로 넘쳐난다. 바야흐로, 중독의 시대다. 돌아보면, 예술가들도 다를 바 없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지독한 구강암 때문에 생전 30번이 넘는 수술을 해야 했음에도 담배를 끊지 못했고, 트루먼 커포티는 마약과 알코올에 빠진 채 살았으며, 너대니얼 호손은 숫자 64에 집착했고(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1864년에 죽었다), 찰스 부코우스키는 자신은 물론 소설 속 주인공(헨리 치나스키)마저 알코올중독자로 만들어버렸다. 이번에 출간된 《첨벙》은 '중독'이라는 소재로 한겨레출판 문학웹진 〈한판〉에 1년여 동안 연재됐던 13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테마 소설집이다. 한국 문학을 이끌 젊은 소설가 13인(박솔뫼, 백수린, 송지현, 오한기, 윤민우, 이갑수, 이상우, 이주란, 정지돈, 조수경, 최정화, 최진영, 황현진)이 참여했다.
중독(addiction)의 어원은 라틴어 addicere로 '~에 사로잡히다', '~의 노예가 되다'라는 의미이다. 《첨벙》에 묶인 13편의 소설에도 무언가에 사로잡혔거나 마치 노예가 된 것처럼 집착적으로 그 행동을 반복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박솔뫼의 〈수영장〉에는 새벽이면 첨벙첨벙 처절하게 헤엄을 치는 '이애정'이란 여자애와, 그런 이애정의 헤엄을 지켜보는 '나'가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가며, 윤민우의 〈원피스〉에는 불현듯 다니던 미용실을 그만두고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가슴을 성형하고 같은 색 원피스를 사들이는 '그녀'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상담원 '나'의 이야기가 나온다. 조수경의 〈오아시스〉에는 과거 연인이었던 '불행'에 중독되어 결국 사막으로 여행을 떠나는 '그녀'와 '그녀'에 중독되어 마약중독자가 되어가는 '나'의 모습이 보여진다. 하지만 《첨벙》 속 인물들이 중독에 빠진 채 허우적대는 나약한 인간 군상을 뜻하는 건 아니다. 외롭다거나 고독하다거나 나약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에는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 사람들일 뿐이다. 각 소설의 주인공들이 빠져 있는 중독이란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허상이기도 하지만 '나'를 찾고 싶어 벌이는 하나의 시도에 더 가깝다. 어쩌면 《첨벙》 속 인물들이 그리고 있는 건 '첨벙' 하고 용기 내어 뛰어들었지만 '첨벙첨벙' 소리만 클 뿐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 수영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몽타주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왜 중독된 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
이대로 계속 첨벙대다 보면, 다른 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소설에 있어서 시대적으로 어떤 지배적인 양상이 있다면 지금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첨벙》의 소설들은 우리 모두가 무언가에 한 번은 중독되었거나 중독됐었다는 걸 인정하자고 말한다. 이상우의 〈888〉에서 옆자리의 여자는 "우리는 중독됐지"라고 말하고, 〈오아시스〉에서 나는 "그녀와 나는 서로에게 중독되어 있었다"라고 고백한다. 이 책은 중독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가 왜 중독되었는지가 아니라 우리는 왜 중독된 채 계속 살아내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표를 응시한다. 중독의 핍진성을, 바로 그 현장을 바라본다. 그건 중독에 몸을 맡긴 '나'가 나를 "대신해서 살아주고 있다는"(〈888〉) 느낌을 주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살아온 만큼 살아야 한다고"(이주란의 〈참고인〉) 믿고 싶기 때문이다.
또한 이 소설들은 우리가 어떻게 초라하고 고독한 어른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서도 변명하지 않는다. "나는 갇혔다"(최진영의 〈囚〉)고 말하고 "이런 일을 하게 될 줄 알았다면, 이 회사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갑수의 〈아프라테르〉)이라고 속마음을 얘기한다. 자신이 초라하고 고독한 어른이란 걸 인정한다. 어느 날 이들에게 "삶 속에 파마약처럼 배어 있는 불만들"(〈원피스〉)이 찾아오고, "비명 같은 위기감과 불안, 모멸감과 비참함"과 "더러운 과잉"(〈囚〉)이,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수치심 비슷한 것"(백수린의 〈높은 물때〉)이 찾아온다. 이들은 비로소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느끼며 그 충동이 "일시적이거나 단순하지"(〈원피스〉) 않다는 걸 깨닫는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이들이 선택하는 건 중독에게로 자진해서 걸어가는 것이다. 《첨벙》 속 소설들에는 그런 변화의 시도가 '진짜 나' 혹은 '다른 나'로 표현된다. 그리고 소설 속 '나'들은 이대로 계속 첨벙대다 보면, 우리는 정말 '다른 나'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물론, 그 시도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참고인〉에서는 "혹시 노력하면 언젠가 나는 지금과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엄청난 노력을 하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노력?"이라고 수시로 되물으며, 결국 "진짜 나는 어디선가 되게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자위하고 만다. 송지현의 〈흔한, 가정식 백반〉에서는 "이곳이 진짜 집이고 모두가 진짜 가족인 양" 느끼지만, 그럼에도 여성전용사우나가 진짜 집이 될 수 없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아프라테르〉에서처럼 '유미 누나'가 아니라 '아유미'에 만족해야 할 수도 있고, 오한기의 〈볼티모어의 벌목공들〉에서처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전설의 지의류 맨폴필드가 썩은 불가사리로 재현될 수도 있다.
결국, 중독을 손에 쥐고 아무리 첨벙대더라도 우리는 '다른 나' 혹은 '진짜 나'가 될 수 없다. 〈888〉에서처럼 "진짜를 향해 추락하는 비행기를 떠올"리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으며, 〈囚〉에서처럼 "누구 말이 진짜든 불행하긴 마찬가지지"라고 중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슬프게도 무언가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 그저 초라하고 고독한 삶 그 자체에 중독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오아시스〉에서처럼 자신의 불행에 혹은 타인의 불행에 중독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열세 개의 아침과 열세 개의 밤 그리고 무한대의 중독
《첨벙》의 소설들은 타인의 불행을 지켜보는(혹은, 자신의 불행을 마주하는)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하기도 하지만, 불행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을 사로잡은 무엇에서 벗어나는 것은, 질려서가 아니라 너무 한다 싶어서이며, 중독은 벗어나거나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만두는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각 소설의 주인공들은 결코 그만두지 않는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기이한 열정이 있다는 것"과 "진짜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결국 '나'라는 것"(〈여행자들의 지침서〉)을 알고 있다. 불행(중독) 안에서 머무르는 것을 택하는 이들은 그런 선택이 뭔가 짜릿한 것을 느끼게 한다고 말한다. 황현진의 〈보다 그럼직한 자세〉에서 '나'가 엄마의 손을 이끌며 강에 죽은 새를 보러 가자고 말하는 장면이나 최정화의 〈홍로〉에서 그녀가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50대의 허물을 마침내" 벗어던지는 장면은 '진짜 나'를 찾는 시도가 비로소 '나'를 찾는 시도로 바뀌고 있음을 말해준다. 최진영의 〈囚〉에서 '나'가 정오의 갯벌에서 'ㅅㅏㄹㅁ'을 발견하는 장면은 그래서 더욱 놀랍다. '삶'으로 읽히는, 어쩌면 '사람'으로 읽힐지도 모르는 이 단어에서 우리는 어떤 이상한 기품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무한대의 중독에서 흘러나온 희망의 다른 이름임을 감지해낸다.
13편의 소설은 중독의 한복판에서 혹은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이들에게 그곳에서 나오라는 뻔한 이야기를 던지지 않는다. 그저,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며, 그건 우리의 일이며, 우리 모두의 일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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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을 산 여자의 불쌍한 목소리. 그것이 진짜 나인가? 나는 그 목소리로 그런 말을 했던 게 나라는 게 싫었고 그러자 한 인간으로, 말하자면 정신적으로 독립하고 싶었다. (…) 마치 처음부터 새로,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것과는 다르게 살아온 만큼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이런 인간으로 자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같은 집에서 한 살 터울로 자란 언니는 저렇게 밝은데? 물론 셀프카메라를 너무 많이 찍는 것도 병이라지만…….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 나는 나로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혹시 노력하면 언젠가 나는 지금과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엄청난 노력을 하면? 그러니까…… 그러니까 도대체 어떤 노력? (217?218p)
_이주란, 〈참고인〉 중에서
진짜 문제는 대상이 아니라 너야. 사이먼이 말했다. 톰, 그러니까 너의 상태는 이렇게 요약돼. 너는 a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야. 바꿔 말하면 너는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하고 싶지 않지 않은 것도 아니란 말이야. 너는 일종의 유빙(floating ice)이야. 깨어진 커다란 얼음 조각, 부서진 파편이자 찌꺼기, 녹아내리는 떠돌이 빙산. 욕망은 해류고 바다고 다른 빙산이며 심해고 북극곰이며 오로라야. 사이먼의 말에 톰은 뭔가 찌릿한 것을 느꼈다. 사이먼은 소설을 쓰는 것(또는 아무런 글이나)만이 톰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왜? 톰이 물었다. 써보면 알게 돼. 사이먼이 말했다. (239p)
_정지돈, 〈여행자들의 지침서〉 중에서
그녀로부터 벗어나 미국까지 날아왔지만 늘 어둡고 축축한 무언가가 내 발목을 잡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뿜어내는 불행의 기운이 이곳까지 뻗칠 때면 나는 한없이 우울해져 광야로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황량한 곳에 가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죽고 싶은가 아닌가. 텅 빈 땅의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살고 싶다는 욕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고 그 사실에 안도했다. (271p)
_조수경, 〈오아시스〉 중에서
쉰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자신의 삶이 완벽하게 실용적인 것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50대였을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50대처럼 걸었고 50대처럼 웃었고 50대처럼 잠자리를 했다. 그녀의 그런 면 때문에 그가 그녀를 선택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녀의 그런 면 때문에 그가 그녀와 결혼까지는 할 생각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같이 사는 데는 나쁠 것이 없었으니까, 같이 살기만 하는 것이 좋다고 그는 생각했다. (293p)
_최정화, 〈홍로〉 중에서
사실 내가 기다리던 '때'라는 것이 대체 어떤 때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대로 늙으면 요양원에나 들어가야 할 텐데 그렇다면 나는 청춘을 팔아 요양원에 들어갈 돈을 모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요양원에도 못 들어가고 집도 가족도 없이 부랑자로 살게 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 월세가 자꾸 오른다. 대체 왜? 무리해서라도 은행 빚을 져야 하나? 다들 그런다고 하니 그래야 하나? 내 돈으로 집 얻나, 은행이 얻어주지. 은행 돈이 내 돈이지. 그렇게들 말한다. 은행이 무슨 구세군인가? 우리 모두 불우이웃인가? 이자와 월세가 뭐가 다르지? 빚을 져서 살 곳을 마련하는 게 언제부터 당연해졌지? 세상은 왜 이런 식으로 굴러가지? 요양원에는 나보다 부모님이 먼저 간다. 우선 그 돈을 마련해야 한다. 청춘을 팔아 부모님의 요양원비를, 중년을 팔아 코앞에 닥친 내 노년의 요양원비를 벌어야 한다. 황혼은 어떨까. 멋질까? (322p)
_최진영, 〈囚〉 중에서
우리 누나 미친년 맞는 것 같지? 재하가 낚싯대를 발로 툭툭 건드리며 내게 물어왔다.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그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 말았다. 나는 헷갈렸다. 내가 누나를 좋아하는 것인지, 아니면 재하에게 누나가 있다는 사실을 부러워하고 있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힘들었다. 그 둘을 구분해내지 않으면 어떤 대답도 진심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고개를 한 번, 그리고 다시 한 번 끄덕이는 동안 나는 깨달았다. 내가 누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그러자 나도 누나처럼 죽은 체 모래사장에 얼굴을 처박고 자빠지고 싶었다. (354p)
_황현진, 〈보다 그럼직한 자세〉 중에서
목차
목차
수영장 박솔뫼
높은 물때 백수린
흔한, 가정식 백반 송지현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오한기
원피스 윤민우
아프라테르 이갑수
888 이상우
참고인 이주란
여행자들의 지침서 정지돈
오아시스 조수경
홍로 최정화
囚 최진영
보다 그럼직한 자세 황현진
높은 물때 백수린
흔한, 가정식 백반 송지현
볼티모어의 벌목공들 오한기
원피스 윤민우
아프라테르 이갑수
888 이상우
참고인 이주란
여행자들의 지침서 정지돈
오아시스 조수경
홍로 최정화
囚 최진영
보다 그럼직한 자세 황현진
저자
저자
박솔뫼
소설집 《그럼 무얼 부르지》, 장편소설 《을》, 《백 행을 쓰고 싶다》, 《도시의 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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