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대전쟁사 2: 사상 최대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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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역사고전연구소 소장 임용한의 『한국고대전쟁사』 제2권 <사상 최대의 전쟁>. 우리 학계에 전쟁은 물론, 전략, 전술에 대한 부족한 현실 속에서 한국고대전쟁사를 풍부하고 전문적으로 생생하게 기술한다. 탁월한 지략과 용맹을 펼쳐낸 전쟁영웅 등 숙명적 전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특히 동서양의 전쟁사를 참조하여 우리 역사 기록의 약점이라고 할만한 전투 장면뿐 아니라,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서술도 가능한 한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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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 편의 영화를 보듯이……
우리 전쟁사에 다소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임용한의 『전쟁과 역사』시리즈를 기억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삼국편, 거란·여진과의 전쟁, 고려후기편까지 총 3권이 출간되었는데, 2001년 선을 보인 첫 번째 권은 기존의 우리 전쟁사 서술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서양과 중국 전쟁사에 대한 방대하고 심도 깊은 지식, 엄격한 역사적 상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절묘한 균형, 쉽고 명쾌하며 간결한 글쓰기, 마치 카메라로 장면 장면을 찍어 보여주는 듯한 비주얼 넘치는 서술 방식을 견지하여 그동안 영성한 자료에 극히 평면적인 서술에만 그쳤던 우리 고대 전쟁사를 신선하고 풍부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문적인 지식 없어도 누구나 쉽고 재밌게 정말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전쟁사를 일단 써보자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충동'에 1권 삼국편을 전광석화처럼 저술하였는데, 한 권의 책에 방대한 내용을 빡빡하게 담아내느라 아무래도 생략하고 건너뛰고 상세함을 결한 부분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속권을 내면서도 계속 1권의 "주 내용이 삼국항쟁에서 수당전쟁과 삼국통일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도 그렇고, 1권을 쓸 때는 생활이 빠듯했던 시절이라 현장에 가보지 못하고 쓴 부분도 꽤 있었던 것, 무엇보다 당시에는 전쟁과 군제에 대한 지식이 진짜 건전한 상식선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었던 것도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커져 갔던" 저자는 몇 년을 벼르며 온전한 고대 전쟁사의 저술을 준비하였다.
전 3권으로 기획된 『한국고대전쟁사?는 10년 전 『전쟁과 역사』삼국편에서 저술의 출발점을 고구려 장수왕 63년 시점으로 잡았던 것(이 부분은 새로 출간된 책 1권의 제5장에 해당한다)에서 훨씬 거슬러 올라가 고조선으로 앞당기고, 삼국 통일전쟁 이후 부분은 백제부흥군과 나당전쟁을 추가하고, 후삼국의 항쟁도 대폭 보완했다. 현지 답사와 중국과 만주 지역에 대한 답사도 크게 보강했다. 동서양의 전쟁사를 참조하여 우리 역사 기록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서술도 가능한 한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재현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3권으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1권 〈전쟁의 파도〉, 2권 〈사상 최대의 전쟁〉, 3권 〈부흥운동과 후삼국〉).
신라에 성장 에너지를 제공한 화랑도의 진짜 힘은 지배층의 양보와 통합
1권에 이어 이번에 출간된 2권은 신라의 성장 에너지가 된 화랑도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보며 막을 열고,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동원한 수당의 계속된 고구려 침략과 이를 격퇴한 고구려의 탁월한 힘과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신라의 급성장과 백제와 고구려의 좌절과 멸망까지 피비린내 나는 7세기의 전쟁 이야기를 숨 가쁘게 다루었다.
저자는 신라사회의 지배층의 파워 싸움에 기원을 둔 화랑도가 신라에 성장 에너지의 강력한 풀이 되어 가는 과정을 특히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던 '문노'라는 인물을 통해 제시해 보였다.
예컨대 신라의 편협한 구체체에 위기감을 느낀 청년들,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휘하고 그에 합당한 보답을 받기를 원하던 젊은이들이 담장 틈에서 자라는 화랑도라는 넝쿨을 보고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여기에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고귀한 신분의 출신자들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문무왕의 사위인 김흠운인데, 그는 문노의 낭도가 되었다가 나중에 전쟁터에서 전세가 불리해 후퇴하자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진하여 몇 명의 적을 죽이고 전사하여 다른 군인들에게 솔선수범의 예를 보인 인물이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당시 팽배해 있던 "귀족 장교가 적에게 잡히면 나라의 수치가 된다"는 발상을 일찌감치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군인"이라는 가치관으로 바꾼, 아니 오히려 신분이 높기에 더욱 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인 인물로 평하고 있다. 화랑도는 어진 재상과 명장, 좋은 장수와 용맹한 병사를 배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후대인과 전체주의자들이 이해했던 것처럼 세속오계나 집체훈련 덕분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각과 변화의 산물이었고, 바로 이런 변화가 끝내 신라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화랑도의 기능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린 인물로는 특히 문노에 주목하였는데, 전쟁에서 이미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수차례의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우고서도 신분의 차이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서도 부하들의 불평을 잠재우며 시기를 기다렸다. 화랑도를 신분별로 분류하여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고위 신분자들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삼국항쟁이 격렬해지면서 화랑도의 군사적 비중이 높아져 가고 주로 낮은 계층이 속한 문노파와 군사반이 전투에서 빛을 발하면서 이들 집단이 인정을 받게 되고 명성을 얻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고귀한 신분 중에서도 명예와 모험을 동경하는 청년들이 문노의 휘하로 몰려들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문노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국력을 강화시키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것이 화라으이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신라에 성장 에너지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최대의 공적은 바로 차별과 정치적 대립, 분노로 분열 직전까지 갔던 신라정계를 화해시키고, 치졸했던 신라인의 가슴을 넓혀 놓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삼국통일이 완성된 뒤 김유신이 문노의 초상을 포석정의 사당에 봉안하고, 그를 최고 공로자라고 추켜세운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대와 싸워 이긴 고구려의 힘과 탁월한 인물 분석
〈2장 폭군의 침공〉과 〈3장 최강의 군대〉는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으로, 중국사의 여러 기록에 도움을 받으면서도 역시나 작가의 탁월한 역사지식과 상상력이 보태져 나온 한 편의 파노라마다. 기존의 고대전쟁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려주는데 특히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백미다. 612년 200만 대군을 동원한 수 양제의 침입은 출발부터 우리가 알던 상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예컨대 과장이 섞였다 해도 200만 대군이 갖는 가치, 5호16국시대를 거친 유능한 중국의 전쟁지휘관과 군인들, 곧잘 무식한 전술쯤으로만 오해받아 온 인해전술이 발휘하는 무서운 전략적 가치, 로마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중국의 공병술 등에 대한 설명은 당시 수군을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 쯤으로 설명하며 이를 고구려 승리의 원인으로 보았던 것을 사정없이 깨부순다. 후에 당나라가 고구려 침략군의 적절한 숫자로 30만을 들었는데 수 양제가 이처럼 대군을 동원했던 것은 다 그에 걸맞는 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니 그것이 바로 6·25전쟁의 경험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해전술이다.
"인해전술이라고 하면(사실 인해전술이란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포탄과 총알을 온몸으로 받으며,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달려드는 그런 전술로 알고 있다. 원래 인해전술이란 용어 자체가 그런 뜻으로 만든 용어다.
중공군의 병력이 엄청나고, 인명 손실을 각오하고 무식하게 밀어붙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중공군 전술의 외형만을 본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전술은 있을 수 없다. 정말 그런 작전이 가능했다면 중국군은 세계에서 제일 용감한 군대이거나 바보집단(하긴 둘은 동의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인해전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중국에서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진 전술이다.…… 소위 인해전술이란 일종의 포위전이다. 그냥 포위하여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넓게 포위하여 보급망을 차단한다. 다음에는 길목마다 혹은 적군의 사이 사이로 대부대를 내려보내 적을 잘게 쪼갠다. 보급줄을 끊어 적을 지치게 하고 적을 분열·고립시켜 전력을 약화시키는 작전이다. 이 전술을 수행하려면 은밀한 기동이 필수적인 기술이다. 중공군 병사들은 장비는 열악했지만, 1920년대부터 군벌전쟁과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군대라 기도비익과 은밀기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 실력으로 수십만 명이 미군에게 들키지 않고, 후방으로 파고들었다. 오죽하면 그들을 '그림자 없는 유령'이라고 불렀을까?
워낙 병력이 많아 칭칭 감고 있으므로 한두 군데 쳐서 내몬다 해도 보급로는 회복되지 않고, 이리저리 치고 다니다 보면 더욱 쪼개지고 분산될 수밖에 없다. 군이라는 게 둘로 분열되면 전력이 1/2로 떨어지고 넷으로 분열되면 1/4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포병과 보병, 전투부대와 수송대가 분리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분열된 부대는 전력 자체를 상실한다. 여기에 보급마저 안 되면 설상가상이다. 중국군은 상대를 이렇게 만든 후에 하나씩 공격해서 각개격파를 한다. 중일전쟁 때의 팔로군이나 한국전쟁 때의 중공군이 모두 이 전술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마지막 단계로 적을 향해 최후의 공격을 가할 때는 병력을 있는 대로 동원해 한판 승부를 벌였다.…… 그러나 이 전술이 20세기 들어서 중공군이 처음 창안한 전술이 아니다. 인해전술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무기나 장비, 작전 능력이 열악하고 머릿수만 많은 군대가 사용하는 전술이라는 생각이다. "약한 적은 집중 강타하고, 강한 적은 분열시킨다"는 것은 굳이 손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는 병법의 기본이다. 문제는 이 법칙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것인데, 유사 이래 세계 최대의 인구를 유지해 온 중국에서는 적이 강하든 약하든, 자신들의 장점인 월등한 병력을 활용해서 이 원칙을 실현하는 방법을 개발해 온 것이다.
고구려군도 처음에는 이런 인해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음은 물론이다. 살수대첩에 대한 설명 역시 상식을 깨는 것으로 대단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고구려군이 선택한 결정적 장소는 살수였다.…… 살수대첩에 관한 오래된 오해는 고구려군이 상류를 막았다가 수나라군이 강을 건널 때 둑을 터뜨려 수나라군을 수장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에 생긴 이야기다. 〈〈삼국사기〉〉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강에서 적을 수장시킬 정도의 물을 내보내려면 댐 하나는 쌓아야 한다. 그게 이 시대의 토목기술로는 가능한 공사가 아니다. 수량 여하를 떠나서 강의 본류를 막는 자체가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쌓을 시간이 없다. 댐을 건설하지 않고 통나무나 소가죽을 이용해서 약간 막았다가 터뜨리는 방법도 있다. 그정도 수량으로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또 그런 방법으로 강물에 들어가 있는 수군을 공격했다고 해도 효과가 생각처럼 크지 않다. 수군이 도하한 장소는 청천강 하류가 아니다. 이 시대의 물동량으로 보아 30만 대군을 날라줄 배가 청천강 유역에 비치되어 있었을 리 없다. 그들은 강폭이 좁은 중·상류로 와서 부교를 놓거나 여울목으로 건넜을 것이다. 당연히 도주할 때도 수군은 중·상류 지역으로 갔을 것이다.
이런 곳을 건널 때 30만 대군이 한꺼번에 물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여울목으로 건너려면 좁은 종대로 건너야 하고, 부교를 놓아도 마찬가지다. 보급품과 장비는 별도로 뗏목을 설치해서 건넌다. 그러므로 한 번에 강에 들어간 병력이 그리 많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느 나라 군대든 군이 행군할 때는 사방으로 수색대를 돌리고 첨병을 세운다. 정찰 기병은 최소한 40km 이내로 운용하는 것이 정상이다. 수군이 지치고 배고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해도, 도하작전은 언제나 기습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소한 사방에 경계병은 세운다. 그러므로 강을 막으려면 관측되지 않는 먼 곳에서 막아야 하고, 강물이 흘러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이 희생되었다고 해도 수공으로 30만 대군을 궤멸시키거나 전투력을 약화시킬 만한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고구려군이 결정적 타격 지점으로 살수를 택한 이유는 댐을 쌓아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하작전 동안에 병력이 분리된다는 전술 원칙에 의거한 것이다. 이는 수군도 뻔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도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장기판에서도 말의 이동 범위를 미처 보지 못해서 죽는 것은 하수에 속한다. 고수의 게임은 한수 두수 앞을 보고 판을 몰아가,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살수의 경우도 그런 것이었다.
고구려군은 수군이 반쯤 도하했을 때, 즉 병력이 둘로 분리되었을 때 후군을 공격했다. 1/3이나 1/4쯤 남았을 때가 아니라 절반의 병력을 공격한 것을 보면 수군의 상황이 그만큼 열악했고, 고구려군은 자신감이 넘쳤다는 이야기다.
지금껏 고구려군은 대형을 갖추고 싸우는 평지의 정규전에서는 수군을 이겨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수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날 수군의 후위를 맡은 부대는 우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의 부대였다.…… 신세웅 부대가 붕괴하자 수군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자신들이 얼마나 형편없이 약화되어 있는지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의 전우와 대형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고 깨달은 병사들은 대형, 즉 통제와 명령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는 연쇄 반응을 일으켜 수군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수군은 살수에서 압록강까지 밤낮으로 하루를 달려 도주했다고 한다. 부대고 대형이고 무시하고 마구 달아났다는 이야기다. 요하를 건넜던 9군 중에서 무사히 돌아온 부대는 형부상서였던 위문승의 1군뿐이었다. 위문승의 부대만 생환한 이유도 그들이 특별히 잘 싸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최후방에 주둔하면서 요동 동쪽 지역을 위무하는 역할을 맡았던 덕이었다. 출동한 병력 30만 5천 명 중에서 요동성으로 돌아온 자는 겨우 2천 700명이었다. 다만 실종된 30만 2천 명이 한꺼번에 살수에서 전사한 것은 아니다. 압록강까지 추격당하는 과정에서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위문승과 달리 고구려의 영토 안에서 도주하던 수나라 부대는 하나씩 하나씩 추격하는 고구려군에게 포위되어 섬멸되었다.…… 보통은 부대고 편제고 다 무시한 채 도주하다가 마구잡이로 살해되거나 항복했던 것 같다. 자랑스런 고구려의 철기병들은 이 추격전에서 말 그대로 제 세상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도 분노하고 흥분했을 테니까 고구려 측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날이 저물어 병사들이 진으로 돌아오는데 말과 인간이 모두 피를 뒤집어써서 아귀 같은 모습이었다는 서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수군은 워낙 대군이라 대오를 잃지 않았으면 아무리 지쳐 빠졌더라도 고구려군에 그렇게 쉽게 몰살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적을 심리적·물리적으로 압박해서 스스로 붕괴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쟁에서 최고의 기술이다. 이런 것은 한두 번의 기묘한 전략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같이 수많은 요소와 부대와 인물을 시기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군의 편제, 군기, 병참, 훈련, 연락체계, 지휘관의 능력, 사병의 사기 등 모든 요소가 받쳐 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고구려는 살수의 일전으로 수를 이긴 것이 아니라 요하에서 평양에 이르는 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장황해 보이는 것 같지만 단숨에 읽힐 만큼 흥미진진한 분석이다. 그의 글쓰기의 두드러진 장점은 무엇보다도 합리성과 함께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원인과 과정을 극히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점에 있는데 살수대첩 분석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는 안시성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당군 막사에서 벌어진 작전회의와 태종과 장손무기를 필두로 하는 지휘진의 마지막 결정이 불러온 엄청난 결과, 당군의 3개월에 걸친 안시성 포위전과 대군에 맞서 끈질기게 대항하여 결국 당군을 물리친 안시성군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비범한 전략과 전술, 전투 때마다 동원되는 공성구와 수성구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직접 전투를 담당한 '사람'들 이야기일 것이다.
"진정으로 강한 군대란 어떤 군대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병사 한명 한명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순간의 의무,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그런 의무를 피하지 않는 군대가 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 이 정의는 안시성의 병사들에게도 해당된다. 전투 장면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지만 당군에게 함락당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성을 지켰다는 것은 성벽을 지켰다는 것이고, 수비병이 성벽에서 물러나지 않고 육탄으로 적의 진입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공성전에서는 수비 측이 절대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재력과 물량, 건축술로 무장한 부대다. 충차나 사다리차는 쇠뇌와 화살을 날리며 다가와서 성벽과 사다리차 사이에 널판이나 사다리를 연결한다. 그것은 오늘날 탱크가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것만큼이나 위력적이다. 널판이 누구 앞으로 놓이는가도 조마조마한 일이다. 그것이 연결되면 보통 병사로는 상대할 수도 없는 무서운 용사가 선두에서 건너온다.
수비 측에서도 그를 상대할 장수나 위급한 지역에 투입하기 위한 특수부대를 편제해 둔다. 그러나 이 과정도 매우 치열하고 여러 대가 동시에 다가오므로 어느 쪽이 먼저 닿을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수비 측에서는 일단 널판이 연결된 다음에 상황을 봐서 무사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수비 측에서는 일반 병사가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에게는 죽음의 선고다. 그가 도망치면 수비대형에 구멍이 뚫리고 양 측면의 병사들도 연쇄적으로 도망할 것이다. 이 공간으로 용사 서너 명이 뛰어들어 생존하면 돌파구가 확보되는 것이다.
수비 측에서도 성벽을 이중으로 두거나 탑·누각을 두어 이런 곳을 저격하는 이중 삼중의 조치를 한다. 사다리차나 충차를 파괴하는 방법의 하나는 장대를 들고 대기하다가 그것들이 가까이 왔을 때 성벽과 사다리차 사이에 장대를 끼우거나 여럿이 장대로 밀어서 넘어뜨리는 것이다. 밀어 넘어뜨리려면 그것이 최대한 근접해야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대를 끼우거나 밀려면 적의 사수에게 몸을 노출해야 한다. 널판을 막거나 장대를 끼우는 짧은 동작 하나하나가 병사 한명 한명의 생명을 요구한다.
어느 집단이나 의무감과 희생정신이 강한 인간과 이기적인 인간이 있다. 공격이 반복되면 그 1분 동안의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던 용감한 병사들은 하나하나 전사하고, 결국은 약하고 겁많은 병사들의 비율이 높아진다. 공성군이 지속적으로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수비군을 지치게 하는 목적도 있지만 이들의 비율을 줄여 나가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록 안시성은 약하고 비겁해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당군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장비 손실을 입었다. 마침내 당군은 단기전술을 포기하고 장기전술로 전환했다. 성의 동남쪽에 커다란 토산을 쌓기 시작했다."
이 다음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지라 생략하겠지만, 고대의 전쟁 장면을 이렇게 영화처럼 숨막히게 실감나게 묘사한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저자는 안시성군의 결사항전의 의지에 대해서도 매우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전개한다. 예컨대 당시는 연개소문의 쿠데타와 갈등으로 고구려의 단결력이 결코 예전 같지 않았음에도 적어도 태종이 7월 안시성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그때까지 써온 인군의 탈을 벗고 성을 함락하면 약탈을 허용하고 다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저자는 오히려 이 선언이 안시성군에게 결사항전의 의지를 북돋워 주었다고 보았다. 안시성은 백암성처럼 내분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아마도 과거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반기를 든 일이 있어서 이 성에 중앙군이나 연개소문파 군대를 파견하지도 못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당나라에 항복한 고연수는 태종에게 안시성을 놔두고 평양으로 직공하라고 조언하면서 "안시성 사람들은 그 집을 돌보고 아끼어 스스로 싸우니 빠른 시간에 함락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안시성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가정적이었을 리 없다. 저자는 이 지적을 안시성 수비군이 바로 안시성에 집과 가족을 거느린 토착병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만큼 다른 성과 달리 내부 갈등이 없고 단결력이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방어전에서는 가족과 주종관계를 주축으로 하는 토착적 집단이 타지에서 온 부대보다 월등한 투지를 발휘한다. 살다보면 별 사소한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중시한다. 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려면 최소한 자신의 생명보다 귀중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태종의 약탈 선언은 장소를 잘못 골랐다. 부인과 딸을 겁탈하고 아이는 종으로 끌고 가겠다는 적과 싸우는 병사들만큼 항전 목표가 분명한 군대가 어디 있겠는가?"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저자가 가히 천재적인 전략가라고 표현한 당 태종에 대한 평가도 주목할 만한다. 예컨대 저자는 태종이 구사한 전략의 최대 장점으로서 '신속한 돌격과 악착같은 추격'을 들었는데, 그 비밀을 갑옷 양을 절반으로 줄인 기병부대의 새로운 창출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갑옷과 기병전술과의 상관관계, 그것이 역사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물론 이러한 장비개량과 전술의 창안이라는 진보를 가능케 한 최고 공로자는 중국 병법의 표준을 마련했다는 이정(李靖)이라는 인물이다. 저자는 일러스트까지 동원하여 이정의 새로운 병법이 갖는 장점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이정의 공이 크다 해도 그 때문에 태종의 공이 절대 작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평이다. 즉 지도자가 꼭 모든 것을 다할 필요는 없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새로운 기술의 가치와 능력 있는 부하를 알아보는 안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능력을 갖추고 새로 배운 전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도 알았던 태종은 탁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저자의 모든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뛰어난 인물 분석과 관련이 있는데, 이 책 구석구석에서 삼국시대의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저자의 빛나는 평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구려 수상으로서 당의 진지를 용감히 찾아간 을지문덕에 대해 "우리 역사에는 상전을 위해 죽은 부하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소민은 많아도,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지도자, 자신의 권리와 특권 못지않게 자신의 의무와 책임에도 충실한 그런 정치가는 정말 찾기 힘들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 그렇고, 1장에서 문노와 사다함을 평가하면서 뛰어난 인품과 탁월한 매력으로 똘똘 뭉친 사다함의 유일한 단점으로 "그 모든 것을 담는 그릇, 그의 인간성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것"을 들어 애석해한 것은 역시 객관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정도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이러한 인물 분석은 당연히 역사적 안목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저자가 이 책 1권에서 경보병의 등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찍이 그리스에서 경보병의 무한한 장점이 입증되었음에도 이것이 채택되지 않은 궁극적인 이유로 부유한 상층시민으로 구성된 중장보병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데 있었다고 한 점을 기억하자. 저자의 표현을 빈다면 "사회적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승리가 어디 있겠는가"다. 거기에서 그리스 상층시민의 이러한 좁은 이기주의와 지역성을 극복한 인물로서 경보병을 적극 활용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를 들고, 광개토왕과 장수왕을 언급하여 과거의 부족연합군이나 귀족군대의 한계를 넘어선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군대를 인솔하고 대정복전에 나선 인물로 평가하고 그것이 삼국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2권에서는 1장의 문노에 이어 연개소문, 김유신, 김춘추, 의자왕 등에 대한 인물 분석이 등장하는데 반드시 꼼꼼하게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와 상상이 만나 창조를 빚는다
이와 함께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던 것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안목에서 새로이 분석하고 짚어보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김유신 개인으로서는 최후의 전역이 된 고구려군과의 충돌을 다룬 호로고로 성 전투가 그것이다.
백제 멸망 후 고구려 공격에 집중하던 662년 2월 소정방군이 평양성 근처에서 고구려군에 의해 고립되었을 때 김유신·김인문·김양도가 지휘하는 신라군이 2천 대의 수레에 쌀 4천 석과 벼 2만 2천 500석을 싣고 북상길에 올라 죽을 고생 끝에 식량과 구호품을 당군에게 전달하고 신라로 되돌아오는 데 기적처럼 성공하는데, 그 클라이막스가 바로 바로 호로고로 성 앞 여울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저자는 신라군이 호로하를 건넌 지점으로 추정되는 여울과 그 주변의 지형 사진을 싣고 이 전투를 이끈 연로한 김유신이 자신의 최후의 전역이자 가장 위험한 임무를 어떻게 완수하였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동족의 나라를 침공한 이민족 군대를 지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행군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이 작전은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것은 신라의 성공이 단지 외세와 행운에만 의지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라군은 고구려·백제에 비해 물자와 병력 수에서는 달렸을지 몰라도 군의 조직·훈련·전술 운영 능력에서 다른 어느 군대와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삼국 간의 오랜 전쟁은 전력의 상승평준화를 이루어 냈던 것이다"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이 책에는 익히 알려진 너무도 유명한 사건과 인물들뿐 아니라 창과 방패와 활을 든 이름없는 병사들 한명 한명까지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진과 그림자료도 대단히 풍부하다. 그 중 일부는 쉽게 구해보기 어려운 것들로서 당시대의 전쟁을 이해하는 데는 하나같이 중요한 것들이다. 실제로 눈으로 확인 가능한 이 그림들은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머리에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역사상 유명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전략·전술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무기의 실상조차 알기 어렵게 되어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은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쓰기가 갖는 매력, 딱 부러지는 산뜻한 어투, 온갖 것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비주얼적인 설명, 어느 대목에서나 일관되는 인간을 중심에 둔 서술은 일단 책을 잡으면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지금 우리를 그토록 열광케 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그 바탕이 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실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라고 치부하지 말고 우리 고대전쟁사의 진짜 고전에 한 번 빠져보라. 거기에는 무한한 창조성과 가능성의 세계가 열려 있을 것이다.
2권에 이어 곧 고대전쟁사를 마무리하는 3권 '부흥운동과 후삼국'도 독자들에게 찾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전쟁사에 다소라도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임용한의 『전쟁과 역사』시리즈를 기억하실 것이다. 지금까지 삼국편, 거란·여진과의 전쟁, 고려후기편까지 총 3권이 출간되었는데, 2001년 선을 보인 첫 번째 권은 기존의 우리 전쟁사 서술에서는 본 적이 없다고 해야 할 정도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탁월한 역사적 안목과 서양과 중국 전쟁사에 대한 방대하고 심도 깊은 지식, 엄격한 역사적 상식과 자유로운 상상력의 절묘한 균형, 쉽고 명쾌하며 간결한 글쓰기, 마치 카메라로 장면 장면을 찍어 보여주는 듯한 비주얼 넘치는 서술 방식을 견지하여 그동안 영성한 자료에 극히 평면적인 서술에만 그쳤던 우리 고대 전쟁사를 신선하고 풍부하게 그려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문적인 지식 없어도 누구나 쉽고 재밌게 정말 읽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하는 전쟁사를 일단 써보자는,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다분히 '아마추어적인 충동'에 1권 삼국편을 전광석화처럼 저술하였는데, 한 권의 책에 방대한 내용을 빡빡하게 담아내느라 아무래도 생략하고 건너뛰고 상세함을 결한 부분이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후속권을 내면서도 계속 1권의 "주 내용이 삼국항쟁에서 수당전쟁과 삼국통일로 한정되어 있었던 것도 그렇고, 1권을 쓸 때는 생활이 빠듯했던 시절이라 현장에 가보지 못하고 쓴 부분도 꽤 있었던 것, 무엇보다 당시에는 전쟁과 군제에 대한 지식이 진짜 건전한 상식선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것이 장점이 되었던 것도 같지만, 개인적으로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커져 갔던" 저자는 몇 년을 벼르며 온전한 고대 전쟁사의 저술을 준비하였다.
전 3권으로 기획된 『한국고대전쟁사?는 10년 전 『전쟁과 역사』삼국편에서 저술의 출발점을 고구려 장수왕 63년 시점으로 잡았던 것(이 부분은 새로 출간된 책 1권의 제5장에 해당한다)에서 훨씬 거슬러 올라가 고조선으로 앞당기고, 삼국 통일전쟁 이후 부분은 백제부흥군과 나당전쟁을 추가하고, 후삼국의 항쟁도 대폭 보완했다. 현지 답사와 중국과 만주 지역에 대한 답사도 크게 보강했다. 동서양의 전쟁사를 참조하여 우리 역사 기록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 장비와 무기에 대한 서술도 가능한 한 충실하고 구체적으로 재현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분량이 3권으로 늘어나게 되었던 것이다(1권 〈전쟁의 파도〉, 2권 〈사상 최대의 전쟁〉, 3권 〈부흥운동과 후삼국〉).
신라에 성장 에너지를 제공한 화랑도의 진짜 힘은 지배층의 양보와 통합
1권에 이어 이번에 출간된 2권은 신라의 성장 에너지가 된 화랑도의 진정한 의미를 짚어보며 막을 열고, 당시 세계 최강의 군대를 동원한 수당의 계속된 고구려 침략과 이를 격퇴한 고구려의 탁월한 힘과 어두운 그림자, 그리고 신라의 급성장과 백제와 고구려의 좌절과 멸망까지 피비린내 나는 7세기의 전쟁 이야기를 숨 가쁘게 다루었다.
저자는 신라사회의 지배층의 파워 싸움에 기원을 둔 화랑도가 신라에 성장 에너지의 강력한 풀이 되어 가는 과정을 특히 탁월한 능력을 갖추었던 '문노'라는 인물을 통해 제시해 보였다.
예컨대 신라의 편협한 구체체에 위기감을 느낀 청년들,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발휘하고 그에 합당한 보답을 받기를 원하던 젊은이들이 담장 틈에서 자라는 화랑도라는 넝쿨을 보고 그곳으로 몰려들었고, 여기에 변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고귀한 신분의 출신자들까지 여기에 가세했다.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이 문무왕의 사위인 김흠운인데, 그는 문노의 낭도가 되었다가 나중에 전쟁터에서 전세가 불리해 후퇴하자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전진하여 몇 명의 적을 죽이고 전사하여 다른 군인들에게 솔선수범의 예를 보인 인물이다. 저자의 표현에 의하면 당시 팽배해 있던 "귀족 장교가 적에게 잡히면 나라의 수치가 된다"는 발상을 일찌감치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맡은 자리에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진정한 군인"이라는 가치관으로 바꾼, 아니 오히려 신분이 높기에 더욱 더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모범을 보인 인물로 평하고 있다. 화랑도는 어진 재상과 명장, 좋은 장수와 용맹한 병사를 배출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이는 후대인과 전체주의자들이 이해했던 것처럼 세속오계나 집체훈련 덕분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각과 변화의 산물이었고, 바로 이런 변화가 끝내 신라의 운명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화랑도의 기능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린 인물로는 특히 문노에 주목하였는데, 전쟁에서 이미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여 수차례의 전투에 참전하여 공을 세우고서도 신분의 차이로 제대로 된 보상을 받지 못하고서도 부하들의 불평을 잠재우며 시기를 기다렸다. 화랑도를 신분별로 분류하여 조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고위 신분자들에게 유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막상 삼국항쟁이 격렬해지면서 화랑도의 군사적 비중이 높아져 가고 주로 낮은 계층이 속한 문노파와 군사반이 전투에서 빛을 발하면서 이들 집단이 인정을 받게 되고 명성을 얻고 주도권을 쥐기 위해 고귀한 신분 중에서도 명예와 모험을 동경하는 청년들이 문노의 휘하로 몰려들었다. 그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문노가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국력을 강화시키자고 주장했다고 한다. 이러한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겠지만 적어도 이것이 화라으이 변화와 발전에 기여하고 신라에 성장 에너지를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그의 최대의 공적은 바로 차별과 정치적 대립, 분노로 분열 직전까지 갔던 신라정계를 화해시키고, 치졸했던 신라인의 가슴을 넓혀 놓았다는 것이다. 나중에 삼국통일이 완성된 뒤 김유신이 문노의 초상을 포석정의 사당에 봉안하고, 그를 최고 공로자라고 추켜세운 것도 모두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강의 군대와 싸워 이긴 고구려의 힘과 탁월한 인물 분석
〈2장 폭군의 침공〉과 〈3장 최강의 군대〉는 고구려와 수·당과의 전쟁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으로, 중국사의 여러 기록에 도움을 받으면서도 역시나 작가의 탁월한 역사지식과 상상력이 보태져 나온 한 편의 파노라마다. 기존의 고대전쟁사에 대한 오해와 편견들을 여지없이 무너뜨려주는데 특히 살수대첩과 안시성 전투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백미다. 612년 200만 대군을 동원한 수 양제의 침입은 출발부터 우리가 알던 상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예컨대 과장이 섞였다 해도 200만 대군이 갖는 가치, 5호16국시대를 거친 유능한 중국의 전쟁지휘관과 군인들, 곧잘 무식한 전술쯤으로만 오해받아 온 인해전술이 발휘하는 무서운 전략적 가치, 로마도 따라잡을 수 없다는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중국의 공병술 등에 대한 설명은 당시 수군을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 쯤으로 설명하며 이를 고구려 승리의 원인으로 보았던 것을 사정없이 깨부순다. 후에 당나라가 고구려 침략군의 적절한 숫자로 30만을 들었는데 수 양제가 이처럼 대군을 동원했던 것은 다 그에 걸맞는 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니 그것이 바로 6·25전쟁의 경험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해전술이다.
"인해전술이라고 하면(사실 인해전술이란 용어는 잘못된 것이다) 포탄과 총알을 온몸으로 받으며,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달려드는 그런 전술로 알고 있다. 원래 인해전술이란 용어 자체가 그런 뜻으로 만든 용어다.
중공군의 병력이 엄청나고, 인명 손실을 각오하고 무식하게 밀어붙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중공군 전술의 외형만을 본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무모하고 말도 안 되는 전술은 있을 수 없다. 정말 그런 작전이 가능했다면 중국군은 세계에서 제일 용감한 군대이거나 바보집단(하긴 둘은 동의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인해전술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중국에서는 지극히 고전적이고 오랜 역사적 연원을 가진 전술이다.…… 소위 인해전술이란 일종의 포위전이다. 그냥 포위하여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적을 넓게 포위하여 보급망을 차단한다. 다음에는 길목마다 혹은 적군의 사이 사이로 대부대를 내려보내 적을 잘게 쪼갠다. 보급줄을 끊어 적을 지치게 하고 적을 분열·고립시켜 전력을 약화시키는 작전이다. 이 전술을 수행하려면 은밀한 기동이 필수적인 기술이다. 중공군 병사들은 장비는 열악했지만, 1920년대부터 군벌전쟁과 중일전쟁으로 단련된 군대라 기도비익과 은밀기동은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그 실력으로 수십만 명이 미군에게 들키지 않고, 후방으로 파고들었다. 오죽하면 그들을 '그림자 없는 유령'이라고 불렀을까?
워낙 병력이 많아 칭칭 감고 있으므로 한두 군데 쳐서 내몬다 해도 보급로는 회복되지 않고, 이리저리 치고 다니다 보면 더욱 쪼개지고 분산될 수밖에 없다. 군이라는 게 둘로 분열되면 전력이 1/2로 떨어지고 넷으로 분열되면 1/4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포병과 보병, 전투부대와 수송대가 분리되었다고 생각해 보라. 분열된 부대는 전력 자체를 상실한다. 여기에 보급마저 안 되면 설상가상이다. 중국군은 상대를 이렇게 만든 후에 하나씩 공격해서 각개격파를 한다. 중일전쟁 때의 팔로군이나 한국전쟁 때의 중공군이 모두 이 전술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다만 마지막 단계로 적을 향해 최후의 공격을 가할 때는 병력을 있는 대로 동원해 한판 승부를 벌였다.…… 그러나 이 전술이 20세기 들어서 중공군이 처음 창안한 전술이 아니다. 인해전술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는 무기나 장비, 작전 능력이 열악하고 머릿수만 많은 군대가 사용하는 전술이라는 생각이다. "약한 적은 집중 강타하고, 강한 적은 분열시킨다"는 것은 굳이 손자를 들먹일 필요도 없는 병법의 기본이다. 문제는 이 법칙을 어떻게 실현하느냐 하는 것인데, 유사 이래 세계 최대의 인구를 유지해 온 중국에서는 적이 강하든 약하든, 자신들의 장점인 월등한 병력을 활용해서 이 원칙을 실현하는 방법을 개발해 온 것이다.
고구려군도 처음에는 이런 인해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음은 물론이다. 살수대첩에 대한 설명 역시 상식을 깨는 것으로 대단히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다.
"고구려군이 선택한 결정적 장소는 살수였다.…… 살수대첩에 관한 오래된 오해는 고구려군이 상류를 막았다가 수나라군이 강을 건널 때 둑을 터뜨려 수나라군을 수장시켰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에 생긴 이야기다. 〈〈삼국사기〉〉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강에서 적을 수장시킬 정도의 물을 내보내려면 댐 하나는 쌓아야 한다. 그게 이 시대의 토목기술로는 가능한 공사가 아니다. 수량 여하를 떠나서 강의 본류를 막는 자체가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가능했다고 하더라도 쌓을 시간이 없다. 댐을 건설하지 않고 통나무나 소가죽을 이용해서 약간 막았다가 터뜨리는 방법도 있다. 그정도 수량으로 얼마나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또 그런 방법으로 강물에 들어가 있는 수군을 공격했다고 해도 효과가 생각처럼 크지 않다. 수군이 도하한 장소는 청천강 하류가 아니다. 이 시대의 물동량으로 보아 30만 대군을 날라줄 배가 청천강 유역에 비치되어 있었을 리 없다. 그들은 강폭이 좁은 중·상류로 와서 부교를 놓거나 여울목으로 건넜을 것이다. 당연히 도주할 때도 수군은 중·상류 지역으로 갔을 것이다.
이런 곳을 건널 때 30만 대군이 한꺼번에 물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여울목으로 건너려면 좁은 종대로 건너야 하고, 부교를 놓아도 마찬가지다. 보급품과 장비는 별도로 뗏목을 설치해서 건넌다. 그러므로 한 번에 강에 들어간 병력이 그리 많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느 나라 군대든 군이 행군할 때는 사방으로 수색대를 돌리고 첨병을 세운다. 정찰 기병은 최소한 40km 이내로 운용하는 것이 정상이다. 수군이 지치고 배고파 그렇게 하지 못했다고 해도, 도하작전은 언제나 기습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소한 사방에 경계병은 세운다. 그러므로 강을 막으려면 관측되지 않는 먼 곳에서 막아야 하고, 강물이 흘러 내려오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이 희생되었다고 해도 수공으로 30만 대군을 궤멸시키거나 전투력을 약화시킬 만한 타격을 주기는 어렵다.
고구려군이 결정적 타격 지점으로 살수를 택한 이유는 댐을 쌓아 두었기 때문이 아니라, 도하작전 동안에 병력이 분리된다는 전술 원칙에 의거한 것이다. 이는 수군도 뻔히 아는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도하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장기판에서도 말의 이동 범위를 미처 보지 못해서 죽는 것은 하수에 속한다. 고수의 게임은 한수 두수 앞을 보고 판을 몰아가,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살수의 경우도 그런 것이었다.
고구려군은 수군이 반쯤 도하했을 때, 즉 병력이 둘로 분리되었을 때 후군을 공격했다. 1/3이나 1/4쯤 남았을 때가 아니라 절반의 병력을 공격한 것을 보면 수군의 상황이 그만큼 열악했고, 고구려군은 자신감이 넘쳤다는 이야기다.
지금껏 고구려군은 대형을 갖추고 싸우는 평지의 정규전에서는 수군을 이겨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때 수군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날 수군의 후위를 맡은 부대는 우둔위장군 신세웅(辛世雄)의 부대였다.…… 신세웅 부대가 붕괴하자 수군은 공황 상태에 빠졌다. 자신들이 얼마나 형편없이 약화되어 있는지 눈으로 보게 된 것이다. 이제 그들의 전우와 대형이 더 이상 자신을 지켜줄 수 없다고 깨달은 병사들은 대형, 즉 통제와 명령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도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는 연쇄 반응을 일으켜 수군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
기록에 의하면 수군은 살수에서 압록강까지 밤낮으로 하루를 달려 도주했다고 한다. 부대고 대형이고 무시하고 마구 달아났다는 이야기다. 요하를 건넜던 9군 중에서 무사히 돌아온 부대는 형부상서였던 위문승의 1군뿐이었다. 위문승의 부대만 생환한 이유도 그들이 특별히 잘 싸워서가 아니라 그들이 최후방에 주둔하면서 요동 동쪽 지역을 위무하는 역할을 맡았던 덕이었다. 출동한 병력 30만 5천 명 중에서 요동성으로 돌아온 자는 겨우 2천 700명이었다. 다만 실종된 30만 2천 명이 한꺼번에 살수에서 전사한 것은 아니다. 압록강까지 추격당하는 과정에서 살해되거나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위문승과 달리 고구려의 영토 안에서 도주하던 수나라 부대는 하나씩 하나씩 추격하는 고구려군에게 포위되어 섬멸되었다.…… 보통은 부대고 편제고 다 무시한 채 도주하다가 마구잡이로 살해되거나 항복했던 것 같다. 자랑스런 고구려의 철기병들은 이 추격전에서 말 그대로 제 세상을 만났을 것이다. 그들도 분노하고 흥분했을 테니까 고구려 측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면, 날이 저물어 병사들이 진으로 돌아오는데 말과 인간이 모두 피를 뒤집어써서 아귀 같은 모습이었다는 서술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수군은 워낙 대군이라 대오를 잃지 않았으면 아무리 지쳐 빠졌더라도 고구려군에 그렇게 쉽게 몰살당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렇게 적을 심리적·물리적으로 압박해서 스스로 붕괴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전쟁에서 최고의 기술이다. 이런 것은 한두 번의 기묘한 전략으로 달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케스트라의 지휘와 같이 수많은 요소와 부대와 인물을 시기적절하게 조화시키고 사용함으로써, 그리고 군의 편제, 군기, 병참, 훈련, 연락체계, 지휘관의 능력, 사병의 사기 등 모든 요소가 받쳐 줌으로써 가능한 것이다. 고구려는 살수의 일전으로 수를 이긴 것이 아니라 요하에서 평양에 이르는 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다."
장황해 보이는 것 같지만 단숨에 읽힐 만큼 흥미진진한 분석이다. 그의 글쓰기의 두드러진 장점은 무엇보다도 합리성과 함께 하나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원인과 과정을 극히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점에 있는데 살수대첩 분석에서도 여지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는 안시성 전투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당군 막사에서 벌어진 작전회의와 태종과 장손무기를 필두로 하는 지휘진의 마지막 결정이 불러온 엄청난 결과, 당군의 3개월에 걸친 안시성 포위전과 대군에 맞서 끈질기게 대항하여 결국 당군을 물리친 안시성군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비범한 전략과 전술, 전투 때마다 동원되는 공성구와 수성구 이야기들도 흥미진진하지만 역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직접 전투를 담당한 '사람'들 이야기일 것이다.
"진정으로 강한 군대란 어떤 군대일까? 여러 의견이 있겠지만, 병사 한명 한명이 자신에게 떨어지는 순간의 의무, 자신의 목숨과 바꾸어야 하는 그런 의무를 피하지 않는 군대가 그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 이 정의는 안시성의 병사들에게도 해당된다. 전투 장면에 대한 기록은 전혀 없지만 당군에게 함락당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한다. 성을 지켰다는 것은 성벽을 지켰다는 것이고, 수비병이 성벽에서 물러나지 않고 육탄으로 적의 진입을 저지했다는 것이다.
공성전에서는 수비 측이 절대 유리할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재력과 물량, 건축술로 무장한 부대다. 충차나 사다리차는 쇠뇌와 화살을 날리며 다가와서 성벽과 사다리차 사이에 널판이나 사다리를 연결한다. 그것은 오늘날 탱크가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것만큼이나 위력적이다. 널판이 누구 앞으로 놓이는가도 조마조마한 일이다. 그것이 연결되면 보통 병사로는 상대할 수도 없는 무서운 용사가 선두에서 건너온다.
수비 측에서도 그를 상대할 장수나 위급한 지역에 투입하기 위한 특수부대를 편제해 둔다. 그러나 이 과정도 매우 치열하고 여러 대가 동시에 다가오므로 어느 쪽이 먼저 닿을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수비 측에서는 일단 널판이 연결된 다음에 상황을 봐서 무사를 투입할 수밖에 없다. 이 짧은 시간 동안 수비 측에서는 일반 병사가 그들을 상대해야 한다. 그에게는 죽음의 선고다. 그가 도망치면 수비대형에 구멍이 뚫리고 양 측면의 병사들도 연쇄적으로 도망할 것이다. 이 공간으로 용사 서너 명이 뛰어들어 생존하면 돌파구가 확보되는 것이다.
수비 측에서도 성벽을 이중으로 두거나 탑·누각을 두어 이런 곳을 저격하는 이중 삼중의 조치를 한다. 사다리차나 충차를 파괴하는 방법의 하나는 장대를 들고 대기하다가 그것들이 가까이 왔을 때 성벽과 사다리차 사이에 장대를 끼우거나 여럿이 장대로 밀어서 넘어뜨리는 것이다. 밀어 넘어뜨리려면 그것이 최대한 근접해야 효과가 있다. 그러나 장대를 끼우거나 밀려면 적의 사수에게 몸을 노출해야 한다. 널판을 막거나 장대를 끼우는 짧은 동작 하나하나가 병사 한명 한명의 생명을 요구한다.
어느 집단이나 의무감과 희생정신이 강한 인간과 이기적인 인간이 있다. 공격이 반복되면 그 1분 동안의 의무를 회피하지 않았던 용감한 병사들은 하나하나 전사하고, 결국은 약하고 겁많은 병사들의 비율이 높아진다. 공성군이 지속적으로 전투를 계속하는 것은 수비군을 지치게 하는 목적도 있지만 이들의 비율을 줄여 나가는 목적도 있다.
그러나 3개월이 지나도록 안시성은 약하고 비겁해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사이에 당군도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장비 손실을 입었다. 마침내 당군은 단기전술을 포기하고 장기전술로 전환했다. 성의 동남쪽에 커다란 토산을 쌓기 시작했다."
이 다음 이야기는 너무도 유명한지라 생략하겠지만, 고대의 전쟁 장면을 이렇게 영화처럼 숨막히게 실감나게 묘사한 것을 본 적이 거의 없다. 저자는 안시성군의 결사항전의 의지에 대해서도 매우 설득력 있는 논지를 전개한다. 예컨대 당시는 연개소문의 쿠데타와 갈등으로 고구려의 단결력이 결코 예전 같지 않았음에도 적어도 태종이 7월 안시성의 맹렬한 저항에 부딪히자 그때까지 써온 인군의 탈을 벗고 성을 함락하면 약탈을 허용하고 다 죽이겠다고 선언했다. 저자는 오히려 이 선언이 안시성군에게 결사항전의 의지를 북돋워 주었다고 보았다. 안시성은 백암성처럼 내분이 발생하지도 않았는데, 아마도 과거 안시성주가 연개소문에게 반기를 든 일이 있어서 이 성에 중앙군이나 연개소문파 군대를 파견하지도 못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또 당나라에 항복한 고연수는 태종에게 안시성을 놔두고 평양으로 직공하라고 조언하면서 "안시성 사람들은 그 집을 돌보고 아끼어 스스로 싸우니 빠른 시간에 함락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사실 안시성 사람들이라고 특별히 가정적이었을 리 없다. 저자는 이 지적을 안시성 수비군이 바로 안시성에 집과 가족을 거느린 토착병을 주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만큼 다른 성과 달리 내부 갈등이 없고 단결력이 강하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방어전에서는 가족과 주종관계를 주축으로 하는 토착적 집단이 타지에서 온 부대보다 월등한 투지를 발휘한다. 살다보면 별 사소한 자존심에 목숨을 거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목숨을 중시한다. 이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하려면 최소한 자신의 생명보다 귀중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태종의 약탈 선언은 장소를 잘못 골랐다. 부인과 딸을 겁탈하고 아이는 종으로 끌고 가겠다는 적과 싸우는 병사들만큼 항전 목표가 분명한 군대가 어디 있겠는가?"
단순한 것 같지만 매우 중요한 지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저자가 가히 천재적인 전략가라고 표현한 당 태종에 대한 평가도 주목할 만한다. 예컨대 저자는 태종이 구사한 전략의 최대 장점으로서 '신속한 돌격과 악착같은 추격'을 들었는데, 그 비밀을 갑옷 양을 절반으로 줄인 기병부대의 새로운 창출로 설명하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갑옷과 기병전술과의 상관관계, 그것이 역사에 미친 영향 등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물론 이러한 장비개량과 전술의 창안이라는 진보를 가능케 한 최고 공로자는 중국 병법의 표준을 마련했다는 이정(李靖)이라는 인물이다. 저자는 일러스트까지 동원하여 이정의 새로운 병법이 갖는 장점을 자세히 설명하였는데, 이정의 공이 크다 해도 그 때문에 태종의 공이 절대 작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평이다. 즉 지도자가 꼭 모든 것을 다할 필요는 없다.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새로운 기술의 가치와 능력 있는 부하를 알아보는 안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런 능력을 갖추고 새로 배운 전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줄도 알았던 태종은 탁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저자의 모든 저서에서 찾아볼 수 있는 뛰어난 인물 분석과 관련이 있는데, 이 책 구석구석에서 삼국시대의 다양한 인물 군상에 대한 저자의 빛나는 평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고구려 수상으로서 당의 진지를 용감히 찾아간 을지문덕에 대해 "우리 역사에는 상전을 위해 죽은 부하나 나라를 위해 희생한 소민은 많아도, 국가와 백성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한 지도자, 자신의 권리와 특권 못지않게 자신의 의무와 책임에도 충실한 그런 정치가는 정말 찾기 힘들기 때문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 그렇고, 1장에서 문노와 사다함을 평가하면서 뛰어난 인품과 탁월한 매력으로 똘똘 뭉친 사다함의 유일한 단점으로 "그 모든 것을 담는 그릇, 그의 인간성이 너무나 인간적이라는 것"을 들어 애석해한 것은 역시 객관적으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낼 정도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질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해주는 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저자의 이러한 인물 분석은 당연히 역사적 안목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저자가 이 책 1권에서 경보병의 등장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찍이 그리스에서 경보병의 무한한 장점이 입증되었음에도 이것이 채택되지 않은 궁극적인 이유로 부유한 상층시민으로 구성된 중장보병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데 있었다고 한 점을 기억하자. 저자의 표현을 빈다면 "사회적 기득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어야 하는 승리가 어디 있겠는가"다. 거기에서 그리스 상층시민의 이러한 좁은 이기주의와 지역성을 극복한 인물로서 경보병을 적극 활용하여 대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더를 들고, 광개토왕과 장수왕을 언급하여 과거의 부족연합군이나 귀족군대의 한계를 넘어선 체계화되고 표준화된 군대를 인솔하고 대정복전에 나선 인물로 평가하고 그것이 삼국전쟁의 판도를 바꾸었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2권에서는 1장의 문노에 이어 연개소문, 김유신, 김춘추, 의자왕 등에 대한 인물 분석이 등장하는데 반드시 꼼꼼하게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실제와 상상이 만나 창조를 빚는다
이와 함께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던 것들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안목에서 새로이 분석하고 짚어보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김유신 개인으로서는 최후의 전역이 된 고구려군과의 충돌을 다룬 호로고로 성 전투가 그것이다.
백제 멸망 후 고구려 공격에 집중하던 662년 2월 소정방군이 평양성 근처에서 고구려군에 의해 고립되었을 때 김유신·김인문·김양도가 지휘하는 신라군이 2천 대의 수레에 쌀 4천 석과 벼 2만 2천 500석을 싣고 북상길에 올라 죽을 고생 끝에 식량과 구호품을 당군에게 전달하고 신라로 되돌아오는 데 기적처럼 성공하는데, 그 클라이막스가 바로 바로 호로고로 성 앞 여울에서 벌어진 전투였다. 저자는 신라군이 호로하를 건넌 지점으로 추정되는 여울과 그 주변의 지형 사진을 싣고 이 전투를 이끈 연로한 김유신이 자신의 최후의 전역이자 가장 위험한 임무를 어떻게 완수하였는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동족의 나라를 침공한 이민족 군대를 지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 행군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그러나 순수하게 군사적 측면에서 보면 이 작전은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것은 신라의 성공이 단지 외세와 행운에만 의지한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신라군은 고구려·백제에 비해 물자와 병력 수에서는 달렸을지 몰라도 군의 조직·훈련·전술 운영 능력에서 다른 어느 군대와 견주어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냈다. 삼국 간의 오랜 전쟁은 전력의 상승평준화를 이루어 냈던 것이다"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이 책에는 익히 알려진 너무도 유명한 사건과 인물들뿐 아니라 창과 방패와 활을 든 이름없는 병사들 한명 한명까지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이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사진과 그림자료도 대단히 풍부하다. 그 중 일부는 쉽게 구해보기 어려운 것들로서 당시대의 전쟁을 이해하는 데는 하나같이 중요한 것들이다. 실제로 눈으로 확인 가능한 이 그림들은 책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머리에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역사상 유명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전략·전술은 물론이고 기본적인 무기의 실상조차 알기 어렵게 되어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이 책은 귀중한 자료가 되어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글쓰기가 갖는 매력, 딱 부러지는 산뜻한 어투, 온갖 것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비주얼적인 설명, 어느 대목에서나 일관되는 인간을 중심에 둔 서술은 일단 책을 잡으면 놓지 못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지금 우리를 그토록 열광케 하는 컴퓨터 시뮬레이션도 그 바탕이 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역시 실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고리타분한 옛날 이야기라고 치부하지 말고 우리 고대전쟁사의 진짜 고전에 한 번 빠져보라. 거기에는 무한한 창조성과 가능성의 세계가 열려 있을 것이다.
2권에 이어 곧 고대전쟁사를 마무리하는 3권 '부흥운동과 후삼국'도 독자들에게 찾아가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제1장 순수비가 서까지 10
1. 달빛 스토리 14
2. 검과 사랑 32
제2장 폭군의 침공 52
1. 피할 수 없는 전쟁 56
2. 무모한 황제 60
3. 그들만의 전술 70
4. 위험한 여름 95
5. 자멸의 길 109
제3장 최강의 군대 116
1. 중원의 영웅 118
2. 다섯 자루의 칼 132
3. 전쟁 전야 140
4. 출정 143
5. 4월의 기습 150
6. 주필산 전투 175
7. 평양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198
8. 막다른 골목 209
제4장 서라벌의 선택 216
1. 서동요 218
2. 진화하는 위기 227
3. 백옥 같은 남자 240
4. 최후의 승부 249
제5장 660년 여름 266
1. 밀약 268
2. 백제 침공 271
제6장 반란과 혼돈 298
1. 희망 300
2. 두 번째 희망 307
3. 평양 포위되다 313
4. 백강의 불꽃 330
제7장 망향가의 시작 336
1. 임존성의 가을 338
2. 고구려의 멸망 347
주 362
1. 달빛 스토리 14
2. 검과 사랑 32
제2장 폭군의 침공 52
1. 피할 수 없는 전쟁 56
2. 무모한 황제 60
3. 그들만의 전술 70
4. 위험한 여름 95
5. 자멸의 길 109
제3장 최강의 군대 116
1. 중원의 영웅 118
2. 다섯 자루의 칼 132
3. 전쟁 전야 140
4. 출정 143
5. 4월의 기습 150
6. 주필산 전투 175
7. 평양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 198
8. 막다른 골목 209
제4장 서라벌의 선택 216
1. 서동요 218
2. 진화하는 위기 227
3. 백옥 같은 남자 240
4. 최후의 승부 249
제5장 660년 여름 266
1. 밀약 268
2. 백제 침공 271
제6장 반란과 혼돈 298
1. 희망 300
2. 두 번째 희망 307
3. 평양 포위되다 313
4. 백강의 불꽃 330
제7장 망향가의 시작 336
1. 임존성의 가을 338
2. 고구려의 멸망 347
주 362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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