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의 서상과 정치(양장본 HardCover)
『한국 고대의 서상과 정치』는 한국 고대사에서 서상이 가진 의미를 국가 사회와 연결하여 분석한 책이다. 서상은 상서로운 징조로, 고대 중국에서 처음 나타난 개념이다. 우리나라 고대에 있어 서상의 출현과 봉헌은 왕권의 위상 강화와, 천재지변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왕권의 쇠퇴 등 정치적인 불안과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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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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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성왕 3년 봄 3월에 황룡(黃龍)이 골령(?嶺)에 나타났다. 가을 7월에 경운(慶雲)이 골령 남쪽에 나타났는데, 그 빛이 푸르고 붉었다."(『삼국사기』 권13)
"온조왕 25년 2월에 왕궁의 우물물이 갑자기 넘쳤다. 한성 인가의 말이 소를 낳았는데 머리는 하나이며 몸은 둘이었다. 日官이 말하기를, '우물물이 갑자기 넘친 것은 대왕이 발흥할 징조요, 소가 一首二身인 것은 대왕이 이웃나라를 병합할 징조'라고 하였다. 왕이 듣고 기뻐하여 드디어 진한?마한을 병탄할 생각을 품게 되었다."(『삼국사기』 권23)
"무열왕 6년 9월에 하슬라주(何瑟羅州)에서 백조(白鳥)를 바쳤다. 공주 기군강 가운데에서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백척이나 되고 먹은 자는 죽고 말았다."(『삼국사기』 권5)
이 책은 한국 고대사에서 서상(瑞祥)이 가진 의미를 국가 사회와 연결하여 분석한 책이다.
서상은 상서로운 징조로, 고대 중국에서 처음 나타난 개념이다. 이 개념은 통치자가 성덕(聖德)을 백성들에게 베풀면, 하늘이 자연의 특이한 징조를 그 나라에 보내준다는 것이다. 서상은 하늘과 연결된 통치자에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서상이 고구려와 백제?신라에서도 모두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삼국이 중국의 서상관념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며, 서상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은 고대 삼국의 왕들이 하늘과 연결된 존재였음을 말한다. 곧 삼국의 왕들은 그들의 권력을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독자적인 존재로 부각시키는 데에, 용과 우물과 백조와 백마 등을 결부시킨 것이다.
서상이 많이 나타나는 시기는 '왕권'의 강화 추이와 비례하며, 왕권이 약화된 시기에는 서상이 없거나 '흉조'기록만 보이고 있다. 백제의 경우, 한성(漢城) 시기에는 서상기록이 많이 나오지만, 웅진천도 이후에는 서상기록이 거의 없었던 점, 그리고 의자왕 말에 '흉조'가 집중된 점은 이런 관계를 잘 보여준다. 또한 우리 고대 삼국에서 보이는 독자적 서상들은 고구려?백제?신라의 역사를 중국왕조의 종속국으로 보며, 왕들을 중국 황제의 신하로 보는 중국의 주장이 잘못된 것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 통일신라의 정치와 서상 관계
필자 신정훈 박사는 이러한 서상이 고구려와 백제?신라에서 모두 나타나며, 정치 특히 왕권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밝힌 위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의 정치적 상황을 검토하고 있다.
"문무왕 17년 봄 3월에 왕이 강무전 남문에서 활쏘기를 관람하였다. 처음으로 좌사록관을 두었다. 소부리주에서 흰매(白鷹)를 바쳤다."(『삼국사기』 권7)
"원성왕 10년 봄 2월에 지진이 있었다. 태자 의영이 돌아갔다. 가을 7월에 비로소 봉은사를 창건하였다. 한산주에서 백조를 바쳤다. 망은루를 궁의 서쪽에 세웠다."(『삼국사기』 권10)
"애장왕 5년 …삽량주에서 백작(白鵲)을 바쳤다. 임해전을 중수하고 동궁과 만수방을 새로 지었다. 우두주의 난산현에서 엎드린 돌이 일어났다. 웅천주 소대현 부포(釜浦)의 물이 피로 변하였다. 9월에 망덕사의 두 탑이 싸웠다.(『삼국사기』 권10)
먼저 문무왕 17년(677)은 당나라를 몰아내고 신라가 완전히 삼국을 통일한 다음해이며, 소부리주는 백제지역이었기에, 서상이 거기서 바쳐졌음은 통일신라의 지배력이 안정되었음을 의미한다.
신라 하대의 첫 왕인 원성왕 경우, 지진에 이어 태자가 죽었고, 이후 다시 백조가 바쳐졌음은 흉조 이후 왕권 재강화를 위한 정치적 제스처의 의미가 짙다.
애장왕대의 흉조는 왕의 숙부 언승이 섭정을 하다, 왕이 친정을 행한 이후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이 기록 이후인 애장왕 10년에는 마침내 애장왕이 시해되고 김언승이 헌덕왕이 된다. 양 세력의 정치적 다툼이 그대로 서상과 재이(災異)에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외에도 문무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신문왕은 원자 탄생일에 발생한 천재지변을 발양하기 위해, 조묘(祖廟)에 대신을 보내어 5대 조상왕들의 영(靈)에 빌었던 자료를 보고, 자신의 직계를 신성화하려는 정치적 의미가 담겨 있음을 분석하고, 통일신라의 전성기로 알려진 성덕왕대(702~737)에 태자를 책봉할 때와 왕후를 출궁하고 새로 책봉할 무렵에 유성이 달을 범하는 등 잦은 천재지변이 나타났음을 주목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고대에 있어 서상의 출현과 봉헌은 왕권의 위상 강화와, 천재지변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왕권의 쇠퇴 등 정치적인 불안과 필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동아시아 삼국뿐 아니라, 인도 및 아라비아, 유럽에 이르기까지 전세계 고대에 걸쳐 신화와 민담 속에 묻힌 서상 및 천재지변과 사회변동과의 연관성을 추적하고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하는 작업 등을 다음 작업으로 필자에게 기대해 본다.
목차
목차
제1부 고구려ㆍ백제의 서상과 왕권
제1장 고구려의 서상물이 지닌 성격
Ⅰ. 머리말
Ⅱ. 고구려의 서상물과 그 특징
Ⅲ. 맺음말
제2장 고구려의 서상이 가진 정치적 의미
Ⅰ. 머리말
Ⅱ. 고구려의 서상과 정치적 의미
Ⅲ. 고구려의 서상에 대한 해석
Ⅳ. 맺음말
제3장 백제의 서상과 왕권
Ⅰ. 머리말
Ⅱ. 백제의 서상과 정치적 의미
Ⅲ. 백제의 서상에 대한 해석
Ⅳ. 맺음말
제2부 신라의 서상과 왕권
제1장 신라 중대의 서상과 정치적 의미
Ⅰ. 머리말
Ⅱ. 태자책봉과 서상
Ⅲ. 왕비책봉과 서상
Ⅳ. 국가의 경사(승전, 삼국통일)와 서상
Ⅴ. 정치적 의미와 서상
Ⅵ. 맺음말
제2장 신라 하대의 서상이 가진 정치적 의미
Ⅰ. 머리말
Ⅱ. 신라 하대 서상기록의 분석
Ⅲ. 신라 하대 서상기록과 정치적 의미
Ⅳ. 맺음말
제3부 신라 중대의 정치적 성격
제1장 신라 중대의 대사와 은전이 가지는 정치적 의미
Ⅰ. 머리말
Ⅱ. 신라 중대의 대사와 은전
Ⅲ. 대사와 은전이 가지는 의미
Ⅳ. 맺음말
제2장 신라 효소왕대의 정치적 변동
Ⅰ. 머리말
Ⅱ. 상대등과 중시의 교체
Ⅲ. 조공이 가진 의미
Ⅳ. 맺음말
제3장 신라 성덕왕대의 정치적 변화와 성격-성정왕후의 출궁과 소덕왕후의 입궁에 대하여-
Ⅰ. 머리말
Ⅱ. 성정왕후의 출궁과 천재지변
Ⅲ. 소덕왕후의 입궁과 천재지변
Ⅳ. 맺음말
제4장 통일신라시기 진골의 독점관직과 승진과정
Ⅰ. 머리말
Ⅱ. 상대등과 시중의 승진관계
Ⅲ. 진골독점관직과 승진
Ⅳ. 맺음말
제5장 청주 운천동 신라사적비 재검토
Ⅰ. 머리말
Ⅱ. 비의 특징과 판독
Ⅲ. 삼면비와 사면비의 문제
Ⅳ. 김원태와 김원정
Ⅴ.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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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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