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고려 말 왜구(양장본 HardCover)
동아시아의 파이렛츠와 코르세어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고려 말 왜구』는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기’ 동안 발생한 왜구의 침구 현상을 고려와 일본 양국의 역사에 입각해 고찰한 것이다. 1350년을 전후해 원제국의 통치 및 지배 질서가 동요하면서 발생하는 혼란이 고려 말에 침구해 온 왜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연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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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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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은 '병량미'의 확보와 일시적 도피,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일본의 내란 속에서 등장한 왜구를 서양의 '코르세어'적 해적으로 분석해낸 이영 교수의 인상적인 주장이 돋보이는 연구서 나와
지금 한ㆍ중ㆍ일 삼국 간에 독도와 센카쿠 열도(조어도) 등 해상영토의 귀속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중국의 급속한 군사ㆍ경제적 강대국화 및 해외팽창, 상대적으로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이 지역에서의 세력 퇴조(退潮), 그리고 미국의 역할을 대신하고자 하는 일본의 정치사회적 우경화(右傾化), 한국의 국력신장과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력 강화에 대한 반감과 경계심, 북한의 핵무장과 한ㆍ미ㆍ일 삼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중대한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으며 혹자는 이러한 상황을 구한말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와 아주 흡사하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러한 변동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상대적인 세력 퇴조와 중국의 급속한 강대국화다. 즉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의 동요'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현상이 약 660여 년 전에도 전개되고 있었다. '팍스 몽골리카(PAX MONGOLICA)의 동요'다. 팍스 몽골리카란 '원(元) 제국의 군사력을 바탕으로 성립?유지되어 온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는데, 이는 ① 팍스 몽골리카의 성립(1265~1349년) ②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1350~1368년) ③ 팍스 몽골리카의 붕괴(1369~1388년)로 나눌 수 있다.
동아시아 지역에서의 '팍스 몽골리카의 성립'은 두 차례(1274년과 1281년)에 걸친 여몽연합군의 일본 침공으로 인해 출현되었다. 몽골, 고려와 일본 간의 군사적 긴장관계가 고조되고 지속됨으로써 고려의 외교적 노력으로도 제압할 수 없었던 왜구가 전혀 침구하지 않는 소위 '왜구의 공백기(空白期)'를 이끌어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팍스 몽골리카의 성립은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왜구의 공백기'로 표출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란 몽골제국의 군사력에 바탕을 둔 동아시아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정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을 의미한다. 그 기간은 대략 1348년부터 시작되는 소위 '한인 군웅(漢人群雄)들의 거병과 1369년의 원(元)의 도주'까지로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중국대륙은 바야흐로 군웅이 할거하는 무대가 되어 갔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상을 목격한 고려는 공민왕 5년(1356) 마침내 1세기에 달하는 원의 간섭과 수탈에서 벗어나기 위한 반원자주(反元自主) 개혁을 단행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349년에 일본은 중앙정계에서 시작된 간노노조란(??の擾?)이 규슈 지역으로까지 번져서 마침내 1350년 2월부터 전란이 격화되었는데 같은 해 같은 달에 약 80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왜구의 공백기를 깨고 왜구가 다시 침구하기 시작한다. 이후, 시기에 따라 빈도와 규모에 변화는 있지만 왜구는 지속적으로 침구해 온다.
한인 군웅들의 반란 때문에 원나라 조정은 공민왕의 반원자주개혁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여유가 없었다. 그리고 고려조정도 원의 군사적 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국력을 북쪽 국경에 집중시켜야 했기 때문에 왜구의 침구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따라서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기'는 1349년 이후 원나라가 대도(大都: 北京)를 버리고 몽골 초원으로 도주하기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한다.
'팍스 몽골리카의 붕괴'는 명의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이 원의 대도를 점령한 1369년부터 북으로 도주한 원의 조정[北元]을 완전히 멸망시킨 1388년까지의 약 20년 동안의 기간이라 할 수 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고려 말 왜구』는 이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기' 동안 발생한 왜구의 침구 현상을 고려와 일본 양국의 역사에 입각해 면밀하게 고찰한 역작이다. 즉 경인년(1350)을 전후해 원나라 제국의 통치 및 지배 질서가 동요하면서 발생하는 혼란이 고려 말에 침구해 온 왜구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라는 문제의식에 입각한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경인년(1350) 왜구=쇼니 씨 배후'설의 재검토》에서는 1999년 도쿄 대학 출판회에서 출간한 ?倭寇と日麗?係史?에 대한 일본 연구자들의 비평에 대응하여 필자가 체계적으로 반론을 전개한 것이다.
《제2장 여말~선초 왜구의 배후세력으로서의 쇼니 씨》에서는 경인년(1350) 왜구의 발생 배후가 쇼니 씨였다는 사실을 여말~선초의 사료들을 통하여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가마쿠라 시대 초 이래로 쓰시마를 독점적으로 지배하고 있던 쇼니 씨가 규슈 본토에서의 전란을 앞두거나 또는 전투에 패한 뒤 그 휘하 세력이 이키와 쓰시마를 거쳐 '병량미의 확보'와 '일시적 도피'를 목적으로 침구해 왔고 그것이 여말선초 왜구 발생의 메커니즘이었음을 밝혔다.
《제3장 고려말 왜구='다민족?복합적 해적'설에 관한 재검토-후지타 아키요시(藤田明良)의 ?난수산(蘭秀山)의 난과 동아시아 해역세계?를 중심으로-》, 《제4장 '여말~선초의 한반도 연해도서=다민족 잡거지역'설의 비판적 검토》, 《제5장 공민왕 원년(1352)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왜구-'고려 해도민=왜구의 일원'설에 관한 한 고찰-》에서는 현재 일본의 중세 대외관계사 연구자들 사이에서 정설(定說)의 위치를 점하고 있는 여말선초 왜구의 실체에 관한 후지타 아키요시의 '다민족?복합적 해적'설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고 이 설이 한국사에 대한 편견과 오류로 점철되어 있으며 거기에 논리 전개상의 비약과 추정까지 더해짐으로써 역사적 사실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주장임을 입증하였다.
《제6장 '여말~선초 왜구=삼도(쓰시마?이키?마쓰우라) 지역 해민'설의 비판적 검토》에서는 그동안 일본 역사학계에서 왜구의 실체에 관한 학설로서 고전적인 위치를 점해 왔으며 한일 양국의 교과서에도 기재되어 있는 소위 '삼도(쓰시마?이키?마쓰우라) 해민'설을 꼼꼼히 검토하였다. 필자는 그 검토 결과 '삼도'는 일본 연구자들의 주장(삼도=쓰시마?이키?마쓰우라)과는 전혀 무관하며 사실은 "막부의 통치와 지배에서 벗어나 대립하던 규슈의 토착 호족세력으로서 왜구가 되어 침구해 올 위험이 있는 지역"을 의미한다는 것을 밝혔다.
《제7장 경인년(1350)~병신년(1356)의 왜구와 규슈 정세-쇼니 요리히사(少???)를 중심으로-》에서는 경인년(1350)부터 병신년(1356)에 걸쳐 고려를 침구해 온 왜구를 동 시기 규슈 지역의 최대 명문호족인 쇼니 요리히사를 중심으로 한 중앙 및 규슈 지역의 정세변동과 유기적인 관련 속에서 고찰하고, 당시 왜구의 침구 양상이 요리히사가 처한 군사 및 정치적인 상황과 밀접히 상호 대응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제8장 쓰시마 쓰쓰 다구쓰다마 신사 소재 고려 청동제 반자(飯子)와 왜구》에서는 쓰시마 쓰쓰의 다구쓰다마 신사 소재 청동제 대형 반자의 원명(原銘)과 추명(追銘)을 검토하여, 반자를 신사에 바친 오쿠라 쓰네테네는 경인년 왜구의 배후인 쇼니 요리히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으며 또 반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흥천사에 침구한 왜구의 배후에 역시 요리히사가 있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제9장 가라쓰(唐津) 가가미 신사(鏡神社) 소재 고려 수월관음도의 유래》에서는 일본 규슈의 가라쓰 시 소재 가가미 신사에 전해져 내려오는 고려의 수월관음도가 언제 어떤 경위를 거쳐 제작되었고 또 언제 어떻게 해서 일본으로 건너오게 되었는지를 고찰하여, 이 수월관음도가 1357년 9월 왜구가 흥천사에 들어와 충선왕 부처의 초상화와 함께 가지고 간 것임을 밝혔다.
《제10장 오호바루(大保原) 전투(1359)와 왜구-공민왕 6~8년(1357~1359)년의 왜구를 중심으로-》에서는 일본 남북조 내란기에 규슈에서 일어난 전투 가운데 최대 규모인 '오호바루 전투'에 대하여 고찰해, 이 전투를 전후하여 왜구의 침구가 늘어나고 또 침구지역이 한반도의 중부 서해안 지역에 집중되었음을 지적했다. 또 오호바루 전투가 일어나기 바로 전해인 1358년에 최초로 중국에 왜구가 침구한 것, 그리고 이 침구가 오호바루 전투를 앞두고 대량의 병량미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음을 밝혔다.
《보론(補論)_ 동아시아의 파이렛츠와 코르세어》에서는 서양사의 해적 분류에 입각해 왜구를 고찰한 글로, 한국사의 왜구 범주 중에서 '13세기의 왜구'와 '경인(년) 이후의 왜구'에 보이는 '완고한 백성'을 파이렛츠(pirates)로, 그리고 '난신'을 코르세어(corsairs)로 분류했다. 또 이러한 코르세어적인 왜구를 표현하는 것으로서 일본 무로마치 막부가 공식적으로 사용한 외교용어인 '포도(逋逃)'가 있으며, 이것이 왜구의 양면성, 즉 '정치적 성격을 띤 반란세력(포도)이 바다 섬을 근거로 하여 해적행위(왜구)를 자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해 주는 용어임을 밝혔다.
고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국대륙의 정세 변동이 항상 주변국의 정치 사회변동에 큰 영향을 미쳐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더욱이 역사상 세계 최대의 판도를 이룩했던 몽골제국의 성립과 대외팽창, 그리고 동요와 몰락 과정은 멀리 동유럽은 물론 한반도와 일본 열도에 엄청난 충격과 혼란을 초래했다. 왜구 문제도 거시적으로는 이러한 '원명(元明)의 교체'라고 하는 동아시아 국제질서 변동의 스펙트럼 속에서 재조명하고 재인식해야 했으며 또 그래야만 한다. 그런데 '삼도 해민'설이나 '다민족 복합적 해적'설로는 14세기 후반~15세기 전반의 동아시아 국제질서 및 교류의 역사는 물론, 동양 삼국의 정치사회적 변혁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기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를 방해하고 차단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이 두 설은 가장 우선적으로 극복되어야할 명제(命題)라 할 수 있다.
오랫동안 왜구 연구에 집중하며 여러 권의 왜구 관련 저서를 출간한 바 있는 이영 교수는 일본의 왜구 연구가 구축하고 제시해 온 고려 말~조선 초 왜구의 실상과 발생 배경에 관한 여러 설이 지닌 오류와 문제점을 명확히 지적해 내고 비판했다. 그리고 일본의 왜구 연구가 간과해 온 고려말 왜구를, 미시적(微視的)으로는 일본의 남북조 동란 특히 간노노조란 이후의 규슈 지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군사정치적 변동과 상호 밀접한 인과관계 속에서, 거시적(巨視的)으로는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 즉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변동이라는 스펙트럼 속에서 고찰함으로써 왜구에 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다고 하겠다.
목차
목차
제1부 연구사적 검토
제1장 '경인년(1350) 왜구=쇼니 씨 배후'설의 재검토
1. 서론
2. '경인년(1350) 왜구=쇼니 씨 배후'설의 비판에 대한 반론
3. 결론
제2장 여말선초 왜구의 배후세력으로서의 쇼니 씨
1. 서론
2. 덴류지(天龍寺)의 승려 도쿠소 슈사(德?周佐)의 서신
3. 대마도주(對馬島主) 소 사다시게(宗貞茂)의 서계(書契)
4.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의 서신
5. 규슈 지역의 내란과 왜구 발생의 상관관계
6. 결론
제3장 고려말 왜구='다민족?복합적 해적'설에 관한 재검토
-후지타 아키요시(藤田明良)의 〈난수산(蘭秀山)의 난과 동아시아 해역세계〉를
중심으로-
1. 서론
2. 14세기 후반 제주도를 둘러싼 국내외적 상황에 관한 인식의 문제
3. 14세기 후반의 중국정세와 고려의 대응에 관한 인식의 문제
4. 결론
제4장 '여말~선초의 한반도 연해도서=다민족 잡거지역'설의 비판적 검토
1. 서론
2. '다민족 잡거(多民族雜居)'설의 근거와 문제점
3. 연해도서민의 유이(流移)와 사민(徙民)
4. 결론
제5장 공민왕 원년(1352)의 동아시아 국제정세와 왜구
-'고려 해도민=왜구의 일원'설에 관한 한 고찰-
1. 서론
2. 공민왕 원년의 중국정세와 《원사》지정12년 8월 정미조의 검토
3. "日本國白, 高麗賊過海剽掠, 身稱島居民"의 일본국의 실체
4. 공민왕 원년(1352)의 일본 국내정세와 왜구 침구의 배경
5. 중부 서해안 지역의 군사 정치적 의미와 사절 파견의 배경
6. 겐코노란과 간노노조란 당시 쇼니 씨의 행동
7. 결론
제6장 '여말선초 왜구=삼도(쓰시마?이키?마쓰우라)지역 해민'설의 비판적 검토
1. 서론
2. '삼도 해민'설의 문제점
3. 삼도(三島)의 용례
4. 삼도(三島)의 정의
5. 결론
제2부 팍스 몽골리카의 동요와 규슈 내전(=왜구)의 발생
제7장 경인년(1350)~병신년(1356)의 왜구와 규슈 정세
-쇼니 요리히사(少???)를 중심으로-
1. 서론
2. 경인년(1350)~병신년(1356)의 왜구와 일본의 국내정세
3. 결론
제8장 쓰시마 쓰쓰 다구쓰다마 신사 소재 고려 청동제 반자(飯子)와 왜구
1. 서론
2. 기존 설의 재검토
3. 일본 전래 시기 및 경위
4. 오쿠라 씨 일족과 쇼니 요리히사
5. 결론
제9장 가라쓰(唐津) 가가미 신사(鏡神社) 소재 고려 수월관음도의 유래
1. 서론
2. 수월관음도의 원주(願主) 숙비(淑妃)
3. 숙비 김씨와 순비 허씨
4. 숙비 김씨와 흥천사
5. 가가미 수월관음도와 흥천사
6. 결론
제10장 오호바루(大保原) 전투(1359)와 왜구
-공민왕 6~8년(1357~1359)의 왜구를 중심으로-
1. 서론
2. 관련 사료의 검토
3. 쇼니 요리히사의 거병 시기
4. 오호바루 전투와 병량미
5. 결론
보론(補論) 동아시아의 파이렛츠와 코르세어
1. 서론
2. 한국사에서의 파이렛츠와 코르세어
3. 동아시아 삼국 간 외교문서에 보이는 '코르세어'적 왜구-'포도(逋逃)'
4. 결론
참고문헌
저자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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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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