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당 박세화의 단식 순도일기: 창동일기(양장본 HardCover)
『창동일기(昌東日記)』는 구한말의 대유학자인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1834~1910)가 77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일제(日帝)에 대항하여 약 한 달여 동안에 걸쳐서 진행한 단식을 통한 순절(殉節) 과정을 소상하게 서술한 일기다. 이 책은 이를 현대어로 번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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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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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도 통해 도의 회복 염원한 구한말의 대유학자
『창동일기(昌東日記)』는 구한말의 대유학자인 의당(毅堂) 박세화(朴世和, 1834~1910)가 77세라는 고령의 나이에 일제(日帝)에 대항하여 약 한 달여 동안에 걸쳐서 진행한 단식을 통한 순절(殉節) 과정을 소상하게 서술한 일기다. 박세화는 당시 화서학파?간재학파 등과 같은 학파와 정족할 만한 세를 형성한 의당학파를 창시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세화의 역사적 존재감은 여러 가지 사정이 복합적인 원인으로 뒤얽어 지금까지 세상에 제대로 알려지지 못한 상태다. 함남 고원에서 출생한 박세화는 위정척사(衛正斥邪) 계열로 분류되는 정통 주자학자로서, 『자경록』과 『계산문대』 등의 저서를 남겼다. 실제 저술 작업보다는 도덕적 실천을 더 중요시하였던 박세화가 남긴 이 두 권의 저서는 18세에 성인(聖人)을 배우겠노라는 원대한 포부를 수립한 이후로, 치열한 학문적 연마를 거듭해 왔던 박세화의 사상적 심화 과정을 잘 전시해 주고 있다. 박세화는 1962년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으며 묘소는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박세화는 44세 때 고향땅을 벗어나서 인근한 함경도 안변으로 거처를 옮긴 뒤로부터 점차적인 남하(南下)를 시도하였고, 이러한 추이에 병행하여 본격적인 강론(講論) 활동을 단계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차후 박세화는 안변에서 다시 강원도 양구?삼척과 충주 석오ㆍ제천ㆍ영월 등지로 이거하였고, 마침내 월악산 권역인 청풍군 일대 지역에 정착하게 된다. 특히 박세화는 60세 때에 청풍군 장선 지역의 병산정사(屛山精舍)에서 강론 활동을 재개하면서, 학문하는 큰 규모인 주경(主敬)ㆍ거사(去私)ㆍ구인(求仁)을 학적 강령으로 삼는 의당학파의 출현을 내외에 천명하기에 이른다. 평소 절충적 학문 태도를 지향하였던 주자(朱子)를 학문하는 모델로 설정하였던 박세화와 그 문인들은, 현실 대처라는 측면에서도 중립 우호적 노선을 일관되게 견지함으로써 당시 여타의 학파들과 전혀 갈등ㆍ반목 관계를 형성하지 않아 그 뚜렷한 특징을 보여주었다. 한편 박세화가 평생 사업의 일환으로 줄기차게 영위해 왔던 강론 활동은 유학적 도(道)의 해명과 수호를 위한 자신의 지상과제를 동시에 실천하는 장(場)이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일제가 1910년에 자행한 경술합병(庚戌合倂)은 노년에 이른 박세화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치욕스러우면서도 또한 충격적인 사건으로 와 닿았다. 뿐만 아니라 경술합병은 도의 해명과 수호를 위해 일평생 부심하였던 박세화가 견지하였던 위대한 진리 세계의 정체성을 무참하게 짓밟고도 있었다. 이에 박세화는 마침내 1910년 8월 3일에 단식을 통한 자진(自盡)을 결심하기에 이르렀고, 약 한 달 뒤인 8월 28일에 충북 음성군의 창동정사(昌東精舍)에서 장엄하게 생을 마감하는 순도(殉道)를 실현하였다. 달리 살신성인(殺身成仁)으로도 평가되는 박세화의 단식을 통한 순도 행위는 평소 그가 견지해 온 의(義)에 입각한 이른바 자정노선(自靖路線)의 연장선에 놓여 있음과 더불어, 또한 진리 즉 도(道)의 세계를 향한 의당의 무한한 외경심을 누차 확인시켜 주고 있다.
『창동일기』는 박세화 사후에 그의 문인인 윤응선(尹膺善)ㆍ신현국(申鉉國) 등이 스승이 단식 기간중에 보여주었던 언행 일체와 건강 상태가 변화하는 양상, 그리고 내알한 손님들과 나눈 대화 내용 등을 추수적으로 채록ㆍ취합하여 편집한 일기체 형식의 저술이다. 이 책 속에서 박세화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신의 성장기 적의 일화들이나, 청년기 시절에 감내하였던 사상적 편력 과정 등도 술회해 두기도 하였다. 특히 박세화는 호흡의 기운이 희미하게 가물거리는 생애 마지막 순간까지도 그를 찾아서 내방한 문인들을 배려한 강론 활동을 지속함으로써, 이 책에 게재된 두 편의 절필시(絶筆詩)와 함께 독자들로 하여금 잔잔한 감동에 휩싸이게 한다. 실상 이 같은 장면들은 『창동일기』에 수록된 서술 단위들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국면을 형성하고 있다.
저술 『창동일기』는 박세화 생전에 그를 두고 유종(儒宗)ㆍ사표(師表)로 칭하곤 했던 세간의 평가들이 한갓 공치사에 머무는 식의 허황된 수사어가 아님을 생생하게 입증시켜 주고도 남음이 있다. 소위 사회지도층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언행 불일치가 당연한 것처럼 치부되는 오늘날, 박세화의 꼿꼿한 이러한 삶이 의미하는 바가 결코 작지 않기를 바래본다.
목차
목차
해 제
1. 『창동일기(昌東日記)』의 구성체계
2. 경술합병(庚戌合倂)과 『창동일기』
3. 강론(講論)_ 도 담론(道 談論)
4. 회고담_ 성인(聖人)을 배우는 길
5. 내알객(內謁客) 명단 및 <신종록(愼終錄)>
참고문헌
국역 창동일기
『창동일기(昌東日記)』
<신종록(愼終錄)>
<제자정록후(題自靖錄後)>
참고문헌
연보(年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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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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