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 수군활동사(양장본 HardCover)
해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신성재 교수는 임진왜란 이전까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활발한 해상 전투들이 벌어졌던 후삼국시대 수군과 해전의 실상과 의미들이 가려져있다고 보고, 그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그 시대상의 실체는 물론, 한국 해군의 역사적 뿌리의 일부를 우리 앞에 펼쳐보이고자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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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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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국 역사상 분열과 통합의 시기였던 후삼국시대를 배경으로 궁예(弓裔)가 세운 나라 태봉(泰封)과 그 뒤를 이은 고려(高麗), 그리고 견훤(甄萱)이 건국한 후백제(後百濟)가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상을 무대로 추진하였던 수군활동에 대해 전쟁사적인 관점에서 정리한 것이다.
해군사관학교에서 사관생도들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 신성재 교수(현역 해군중령)는 임진왜란 이전까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활발한 해상 전투들이 벌어졌던 후삼국시대 수군과 해전의 실상과 의미들이 가려져있다고 보고, 그 역사를 재구성함으로써 그 시대상의 실체는 물론, 한국 해군의 역사적 뿌리의 일부를 우리 앞에 펼쳐보이고자 하였다.
TV드라마 등으로도 널리 알려진 것처럼 태봉과 고려, 후백제는 서남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수군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태봉이 나주를 공략하여 후백제의 배후를 견제하는 전략거점으로 삼고,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반도의 서남해안 지방에 대한 해상권을 장악하였고, 왕건의 고려가 그 나주를 발판으로 진주까지 해상권을 확대하였던 것 등이 그 예이다.
우선, 태봉은 송악을 수군활동의 전략거점으로 삼은 뒤 나주 진출을 감행하였다. 나주 진출은 충청지역을 경계로 후백제와 대치한 정국에서 후백제의 북상과 신라로의 진출을 견제하고, 독자성이 강한 나주지역에 태봉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주 진출에 성공한 뒤 태봉은 신라와 후백제에 대한 대응 방안을 중심으로 확보한 지역을 안정적으로 지배하고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안변척경책을 만들었고, 이 방책에는 수군을 적극적으로 운용하면서 후삼국통일을 지향하는 수군전략이 포함되었다. 그 내용은 나주를 후백제의 배후를 강력하게 위협하는 수군활동의 전략거점으로 구축하고, 이곳을 기반으로 서남해상에 대한 해상권을 장악해가면서 통일전쟁의 군사·경제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태봉은 수군을 적극 운용하면서 서해상에 대한 해상권을 점진적으로 장악해 나아갔다. 또 소금과 말(馬)처럼 통일전쟁에 소요되는 군수물자와 재원 확보에도 수군을 적극 운용하였다.
후삼국통일의 주역인 고려는 태봉에게서 이어받은 서남해역에 대한 해상권을 계속 장악하기 위해, 또 해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군사·경제적인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수군활동을 적극 전개하였다. 고려가 수군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할 수 있었던 데는 태봉 말기에 추진된 일련의 수군력 증강 작업과 태봉 당대부터 후삼국통일을 목표로 실천하였던 수군전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태봉 말기의 수군력 증강은 전함의 증치와 이를 지휘·통솔할 장수 및 군관, 일반 병졸의 충원을 통해 이루어졌다. 무려 100여 척의 전함이 증치되었고, 보병으로 활약하던 장수와 호족세력 휘하의 인물, 연해민들이 수군으로 편성되었다. 고려 건국 초기의 수군전략은 서남해역 해상권 장악과 전쟁재원 확보를 계승·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추진될 것이었다. 고려는 이를 실현하기 위해 서남해역의 주요 해안지방에 대한 원정작전을 모색하였다. 고려가 해상권을 확대하기 위해 중시한 지방은 강주(진주)였다. 고려가 이 지역으로 해상권 확대를 추진한 이유는 남해안의 해상교통 요충지이자 신라 진출을 위해 대야성을 공략하던 후백제를 수군활동을 통해 견제할 수 있는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927년 4월, 고려는 강주를 비롯한 인근 해안지방을 공략하는 해상원정을 실행하였다. 하지만 같은해 9월 공산전투에서 패배한 이후 후백제의 수군이 나주로 통하는 서남해역 해상교통로를 6년 동안이나 통제하고, 예성강 수역에까지 침탈해오면서부터는 해상권 확대를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이제 고려의 수군전략은 해상권의 범위를 남해안 방면으로 확대하기보다는 송악과 나주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다. 왕도가 위치한 개성 앞바다까지 후백제의 수군이 진출하여 위협을 가해 오던 상황에서 고려의 해상권의 범위는 현실적인 수준에서 나주를 핵심으로 하는 서남해역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이러한 방향으로 집중한 해상교통 보장 노력에 따라 고려는 나주로 탈출하여 귀부를 요청해온 후백제왕 견훤을 호송해옴으로써 후삼국통일을 앞당길 수 있었다. 태봉 치하에서부터 추진해왔던 수군전략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가운데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하는 대업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후백제는 초기 태봉과의 해상 대결에서부터 수군을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보기병력을 동원하여 대응하거나, 보기병과 연대 혹은 이들 병력에 의존하는 전술로 해전을 수행한 점이 특징이다. 수군 조직 역시 독자적인 해상작전을 수행할 정도의 함대를 건설하거나 해전을 전담하는 수준으로 성장하지 못하였다. 수군운용과 관련하여 견훤 정권 전반기에 나타난 이러한 현상은 후백제가 보기병의 가치를 중시하는 군사운영체제를 유지하고, 이에 입각하여 수세적인 수군전략을 추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해전을 전담할 전문적인 수군의 양성과 수군조직의 정비는 더뎌질 수밖에 없었던 데 있다. 그 결과는 910년에 발발한 나주성 공방전과 912년 덕진포 해전에서의 후백제군의 패배였다.
이후 후백제는 수군을 주력으로 하는 공세적인 수군활동으로 변화를 꾀했다. 고려 수군이 927년 나주와 강주를 장악하면서 후백제의 신라 진출을 억제하고, 남해안까지 해상권의 범위를 확대해오던 상황에서 후백제의 수군운용 전략과 전술의 변화, 전략과 전술을 실천하는 수군의 양성과 수군력의 확보는 필연적이었다.
수군전략이 공세적인 성격으로 변화함에 따라, 보기병과 연대하는 전술을 탈피하여 수군이 독자적으로 서남해역의 주요 항로를 통제하면서 해상권을 장악하는 해상통제전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다. 전략과 전술을 무력적으로 뒷받침하는 전문적인 수군을 양성하면서 수군기지 또한 운영하였다. 하지만 공세적으로 추진하던 후백제의 수군활동도 935년 고려 유금필의 나주경략을 계기로 서남해역에 대한 해상권을 상실당한 이후로는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더구나 그해 신검 형제가 일으킨 정변으로 견훤이 금산사에 유폐되고, 이후 견훤이 고려로 귀부한 뒤로는 후백제가 추진하던 수군활동은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후백제가 공세적인 수군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지 못하였던 이유는 고려 수군의 반격과 견훤 정권 내부적으로 발발한 정변이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태봉 및 고려가 수륙군의 전략·전술적 가치를 중시하는 체제를 조기에 구축하였음에 비해, 후백제는 보기병 중심의 군사운영체제를 장기간 지속하였기 때문이었다.
후삼국시대 수군의 관직과 지휘체계 및 관부를 통해 볼 때, 이 시대의 수군은 단순히 임사설관적인 성격을 갖기보다는 전쟁의 시대에 걸맞게 수군을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체제를 유지 및 정비하고 있었다. 고려가 건국초부터 상층부에 해당하는 무직(武職)들이 이미 제도적으로 설치되었던 점에서 해군대장군과 해군장군, 부장 등의 임명은 단위함대를 통솔하는 상설직에 가까웠다. 해상에서의 전투 전술 역시 가급적 선상에서 발생하는 백병전을 최소화하면서 적선에 타격을 가하여 효과를 거두는 전술을 중시하였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시대는 육상에서의 전투와 동일한 방식으로 전개된 것으로 이해하는 입장이 지배적이었다. 직진, 충격, 돌격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백병전으로 마무리되는 전투방식은 육상의 전투 방법을 그대로 해상으로 옮긴 해상의 백병전이었던 것으로 보아왔다. 하지만 백병전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해전 방식은 군사들의 막대한 희생을 각오해야 하는 만큼 후삼국시대의 수군들은 이 전술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궁수의 전술적 이점을 활용하여 원거리 혹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사격의 효과를 높이는 전술을 구사하되, 근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일부 충각전술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궁수의 원거리 공격과 근접전, 충각전술이 병행되는 해전에서 선상 전투원과 전함을 운항하는 요원간의 팀워크는 대단히 중요하였다. 이들은 단위 함대를 중심으로 해상작전을 수행하는 체계 속에서, 각각의 전함에 설치된 무기체계를 운용하기에 적합하면서 동시에 해상에서의 전투 전술을 구사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조직화되고 전문화되었다. 당시 해전에 동원된 선박 역시 기본적으로 전함이었다. 물론 초기 상황에서는 해상세력이 보유하던 상선이 개조되어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점차 해전이 격화되는 시점에서부터는 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전함이 확충되어 주력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변화되었다. 서해와 남해상에 대한 해상권 장악을 둘러싸고 해전이 장기간에 걸쳐 격화되어 가던 상황에서, 태봉과 고려는 당대의 무기체계와 전술적 요건에 부합하도록 전문화된 전함을 확충 및 운영하였던 것이다.
후삼국시대는 한국역사에서 수군의 역량이 어느 시기보다도 왕성하게 발현된 시기였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전란의 시대에 태봉, 고려, 후백제가 추진한 수군전략의 개념을 이해하고 각국이 수행한 수군활동의 구체적인 실상과 특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각국이 추진한 수군전략에 따라 해상권의 귀속 여부에는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였고, 특정 해역에 대한 해상권 장악이 후삼국 통일전쟁의 흐름에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목차
태봉의 수군전략과 수군운용
1. 머리말
2. 송악 천도와 후삼국통일 지향
3. 나주 진출과 수군전략의 수립
4. 서해 해상권 장악과 전쟁재원 확보
5. 맺음말
태봉과 후백제의 덕진포해전
1. 머리말
2. 해전의 발발 시기
3. 양국 함대의 이동
4. 배치와 접근, 해전
5. 맺음말-해전의 결과와 영향
고려의 수군전략과 후삼국통일
1. 머리말
2. 태봉 말기의 수군력 증강 배경과 전략적 의미
3. 건국 초기 수군활동 기반 강화와 전쟁재원 확보
4. 해상권 확대 추진과 서남해역 해상교통 보장
5. 맺음말
후백제의 수군활동과 전략·전술
1. 머리말
2. 전반기의 수군활동과 전략·전술
3. 후반기 수군활동 변화와 그 의미
4. 맺음말
후삼국시대 수군의 운영체제와 해전
1. 머리말
2. 수군 관직과 지휘체계, 관부
3. 해전 전술과 무기체계
4. 병력의 편성과 전함의 운영
5. 맺음말
|보론|궁예와 왕건과 나주
1. 머리말
2. 『고려사』 관련 기록의 기초적 이해
3. 왕건의 수군활동과 태봉·궁예
4. 태봉의 나주 진출과 왕건·나주호족
5. 맺음말
|보론|고려전기 해군에 대한 시론적 고찰
1. 머리말
2. 후삼국전쟁과 해상원정군, 해군의 출현
3. 통일 이후 해군의 변화 양상과 그 특징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저자
주요 논저로는 「궁예정권의 나주진출과 수군활동」, 「태봉의 수군전략과 수군운용」, 「고려의 수군전략과 후삼국통일」, 「일리천전투와 고려태조 왕건의 전략전술」, 「고려와 후백제의 공산전투」, 「고려말 정지의 해방론과 수군활동」, 「한국 해군장교 정모휘장의 변천과 그 함의」, 『대한민국 건군의 주역 손원일 제독』(공저) 등이 있다. 관심분야는 한국의 중세시대 수군사와 전쟁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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