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으로 이어진 대한제국, 성공과 좌절의 역사(양장본 HardCover)
이 책은 19세기 말 개항 전후 통신제도로부터 한일통신협정 강제 조인이래 변화된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 통신제도 도입에 관한 성공과 좌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조선의 전신망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태도와 더불어 전신제도를 행정과 군사 제도의 개혁뿐만 아니라 외교적, 재정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조선 정부의 움직임도 정리했다. 더 나아가 이 전기통신제도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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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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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9세기 말 개항 전후 통신제도로부터 한일통신협정 강제 조인이래 변화된 상황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대 통신제도 도입에 관한 성공과 좌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은 인터넷 강국으로 손꼽히지만, 이런 소통과 정보 교환을 위한 제도 및 도구 발달의 기원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조선이 사용했던 정보통신 방식은 지극히 전통적인 것이었지만 1880년대 이 체계가 운영되는 것을 본 서양인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매일 저녁 중앙정부를 향해 달려오는 봉화의 향연은 국가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지방정부와 소통하는 문건 수발은 국가 운영의 역원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역원은 이들 문건들이 무사히 오고가도록 길을 관리해야 했다. 비록 운영상의 문제가 심각하기는 했지만 제도적으로는 조선의 통신 체계는 완벽했다. 이들 통신제도는 조선이 중앙집권제를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토대였다.
통신제도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운영하고 있던 조선 정부로서는 개항으로 전신이라는 제도를 접하게 되자 그 도입을 서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 빠르고 더 안전하고 심지어 유지 경비가 싸며 관리에 크게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정부 개혁의 화두였던 부국강병과도 연결되는 방법으로 소개되었던 만큼 조선 정부는 이를 도입하기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이 어렵고 힘들고 낯선 전신제도 도입 과정을 좇아가며 살펴보았다. 조선의 전신망을 둘러싼 일본과 중국의 태도와 더불어 전신제도를 행정과 군사 제도의 개혁뿐만 아니라 외교적, 재정적으로 활용하려 했던 조선 정부의 움직임도 정리했다. 더 나아가 이 전기통신제도의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살폈다.
1880년 이래 조선 정부의 전신 사업 전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조선 정부가 자발적으로 전신 기술을 도입하려 했다는 점이다. 다른 전신 기술 수입국들이 대부분 전신 기술을 생산하는 서양 선진국의 소개 혹은 진입으로 전신 기술이 도입된 데에 반해, 조선 정부는 전신 기술 관련 정보 수집과 기술 인력 양성을 자발적으로 시도해 소수이지만 전신 기술을 습득한 인력을 확보했다. 또 다른 특징은 외세의 강한 간섭으로 전신 사업을 주도적으로 운영할 수 없었던 때에도 전신 사업을 포기하지 않고 주도권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는 점이다. 조선 정부는 당대의 현안이었던 군제 개편의 일환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전래의 군사통신망을 개혁해야 했는데, 전신 기술을 그 대안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이를 조선의 행정 체계내로 흡수되어 조선 군사통신망 및 행정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다. 전신체계를 관리하고 운영하는 전신 기술자 역시 행정 체계 내로 수용하여 관원의 지위를 확보했으며 전신 기술 인력을 잡과기술 인력 양성 방식으로 길러냈다. 전신 기술이 조선의 행정 체계내로 완전히 편입된 결과, 전신 제도는 국가 주권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따라서 전신 사업 주도권을 침탈하려는 시도는 곧 국가의 주권을 침탈하려는 것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져 조선 정부는 이를 수호하기 위해 힘쓸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말 조선의 전신 선로는 주요 도로를 좇아 가설되어 서쪽으로는 한성-개성-평양-의주에, 남쪽으로는 영?호남을 망라해 부산과 목포에, 그리고 북쪽으로는 원산과 함흥을 지나 경흥까지 도달했다. 이 전신 기간 선로는 서로전선을 제외하고는 모두 조선 정부가 설계한 것으로, 전통적인 역원과 봉수로 노선을 좇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영남과 호남 지방을 연결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전신 선로가 지나가는 지역은 대부분 예전부터 조선의 행정과 군사의 요충지였고 새롭게 개항한 항구들을 포함했다. 조선 정부는 한반도의 동서남북을 잇는 4개의 기간선로를 통해 한반도 전역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했다.
전신 사업의 확대는 전보사의 증설을 낳았고 이는 기술 인력의 증원을 필요로 했다. 기술 습득의 주요 통로는 청과 일본이었다. 이들 나라로 파견했던 유학생을 중심으로 전신학교를 설립, 운영하려 했던 조선 정부의 계획은 청의 전신 사업 주도권 점유로 무산되었지만, 전신 기술 인력을 확보하려는 노력 자체를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전신 사업에 관한 권한을 거의 갖지 못했던 시기에도 조선전보총국에서의 기술 인력 양성, 공무아문에서의 전보학교 운영 등 조선 정부는 기술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능한 노력을 지속했다. 이런 기술 인력 양성 노력은 1896년 전신 사업을 전면적으로 확대했던 시기에 큰 힘을 발휘했다. 당시 사회에서는 드물게 근대 과학기술을 훈련받고 자신들의 기술력에 자부심을 가진 약 150명의 전신기술자 집단이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05년 한일통신협정으로 한국인 전신 기술자들은 일본인 기술 집단으로 대체되었다. 그 결과 대한제국 정부의 기술 인력 확보 노력은 무산되었고 한반도에는 조선인 전신 기술 인력은 사라지게 되었다.
일본이 한국 전신 사업의 전권을 장악하게 되자 전신 체계를 형성하는 모든 요소들의 성격이 변했다. 전신 선로는 지방으로의 확장보다는 한반도 장악과 만주로의 진출을 위한 도구에 알맞은 구조로 바뀌었다. 한반도의 남북 선로가 보강되었고 전신 기술은 가설된 전신선의 효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전환되었다. 전신 이용자는 일본 정부와 통감부, 각 지역에서 항일의병을 저지하기 위해 활동하는 일본군, 조선 각지에서 활동하는 일본인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궁극적으로 전신 사업의 주도권은 국가의 주권과 깊은 연관이 있는데 전신 사업 주도권이 침탈당하는 상황은 곧 국가의 주권이 침탈당하는 상황을 반영했다. 세계 전신기술사에 대한 조선 전신기술의 기여는 미미했지만,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조선의 전신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조선은 만주와 러시아로 연결되는 통로였다. 따라서 조선에서의 전신선은 만주와 러시아로 연결되어 유럽과 아시아의 육로전신선을 완결시키는 핵심고리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곧 조선의 전신 선로가 시베리아의 전신선으로 연결되면 나가사키-부산 구간만을 제외하고는 굳이 비싸고 관리하기 힘든 해저선을 통해서가 아니라 육로전신선으로 연결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의 전신선은 전 세계 전신망에서 차지하는 위치에서 뿐만 아니라 청으로서는 일본의 대륙진출과 러시아의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그리고 일본으로서는 대륙으로의 진출을 위해서도 중요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차지하는 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전신선을 확보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지금까지 조선 및 대한제국 정부의 성공적 통신 사업은 개항 이래 식민지 이전까지의 정부에 대한 혹독하고 날선 평가에 묻혀 제대로 알려지기조차 않았다고 안타까워한다. 그 성공과 좌절의 면면들이 갑신정변의 발발 장소인 우정총국으로만, 혹은 연표에 한 줄 정도로만 기입되어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전신제도를 대한제국 근대 과학기술 도입 정책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살아있는 근대 기술로 재현하려 했다. 이를 위해 전신 사업을 둘러싼 여러 정치 외교적 움직임뿐만 아니라 이들 전신 체제를 실제 운용했던 전신 기술자, 그들의 훈련 프로그램 및 학습 방식, 그들이 활동했던 공간, 그들이 만졌던 기기, 그들의 구체적 업무와 이들을 관리했던 중앙 부처, 조직 관리 방식과 같은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들에 무게를 두려 했다. 사회와 상호 영향을 미쳤던 실제 운영과정을 고찰해 모두 꽤 두툼한 볼륨의 책을 완성했다. 그만큼 연표의 한두 줄로 기억되기에는 근대 전신기술의 한국사회와의 조응 과정이 녹록치 않았고, 파급력도 컸었음을 의미한다.
이 책을 통해 19세기 말 조선을 무능한 정부 통치와 식민지로의 전락사로만 보지 말고, 적어도 과학사의 관점에서 자주적 근대화 작업들이 두드러지게 진행되었고, 전통 조선사회도 상당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던 시대였음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목차
목차
서 론
제1장 전신 기술 도입 시도:1876~1884년
1. 전신 기술 도입을 위한 모색
2. 전신 기술의 도입
제2장 청에 의한 전신 사업 주도권 강점과 조선의 회복 노력:1885~1894년
1. 청에 의한 전신 체계의 형성
2. 조선 정부의 기간 선로 구축과 중앙 관리기구의 설립
제3장 일본의 전신 사업 주도권 점유 시도와 대응:1894~1896년
1. 청일전쟁 전후 조선 전신사업권을 둘러싼 한일갈등
2. 아관파천과 일본의 전신 사업 유지 방안
제4장 대한제국에 의한 전신 사업 전개:1896~1904년
1. 1896년 전신망 환수와 정비
2. 전신 사업 경영 실태
3. 대한제국의 전신 기술 인력 관리
4. 전신 기술 인력 양성 기관 재정비
제5장 일제의 전신 사업 주도권 침탈:1904~1910년
1. 러일전쟁과 대한제국의 전신 사업
2. 전신 사업권 이양 강요와 한일통신협정
3. 통신협정 체결 이후 대한제국 전신 체계의 변화
결 론
참고문헌
부록: 대한제국 전신 기술 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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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이화여자대학교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개항 이후 정부에 의해 도입한 근대 과학과 기술에 관한 책을 포함해 여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또 한국 전통 과학과 근대 과학 도입에 대한 어린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책들을 저술하기도 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국립고궁박물관 자문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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