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성호학파의 자연학(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 3)(양장본 Hardcover)
Regular price
$44.94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조선후기 과학사상사의 핵심, 성호학파의 자연학이 주자학적 자연학에 대해 심층적 비판을 가하다!
이 책은 조선시기 과학사상사 분야를 수십 년간 연구해 온 구만옥 경희대 교수의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저자가 이번 책에서 다루는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을 사표(師表)로 삼는 성호학파(星湖學派)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학파 가운데 하나이며, 자연학(自然學) 분야에서 가장 풍부한 논의를 생산한 집단이다.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비롯한 그의 방대한 저작을 통해 전통사회에서 ‘과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가학(家學)을 통해 그의 학문을 계승한 여주이씨(驪州李氏) 가문의 자제들, 그리고 성호학파의 일원으로서 그의 훈도를 받은 여러 학자들이 이익의 학문적 성과로부터 지적 자극을 받아 사유의 너비와 깊이를 더해 갔다. 조선후기 과학사상사는 성호학파로 인해 한층 풍요로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자연학에 대한 탐구는 조선후기 과학사상사의 전개 과정을 밝히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의리(義理)란 천하의 공물(公物)이다!”, “스승을 섬기는 데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찍이 이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후기 사회 현실을 ‘성인(聖人)의 도(道)가 끊어진 세상’이라고 비관하였다. 당시의 양반사대부들이 입으로는 성현(聖賢)의 학문을 담론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우러르거나 존경하는 뜻이 전혀 없고, 오로지 그에 가탁하여 사사로운 이욕(利慾)을 추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그와 같은 양반사대부들은 ‘양묵(楊墨)의 죄인’, 즉 양주(楊朱)나 묵적(墨翟)과 같은 ‘이단’만도 못한 존재였다.
이익을 비롯한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의리(義理)란 천하의 공물(公物)”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무릇 ‘의리’라면 그것은 옛날과 지금의 구분도 없고, 너와 나의 구분도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공공재여야 했다. 그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생각은 주자학 일변도로 흐르는 조선후기의 학문 경향, 이른바 주희와 주자학을 절대화하는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에 반기를 든 것이었고, 그와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서인-노론 계열의 위선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 기초하여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기존의 경전 주석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였다. 주희의 주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학문적 자세가 “스승을 섬기는 데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사무은(事師無隱)’의 의리에 따른 것이지, 일부러 색다른 논의를 만들어 예전의 현인을 능가하려 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치의(致疑: 의심을 둠)’를 통해 ‘자득(自得: 스스로 터득함)’을 추구하는 성호학파의 학문관은 이와 같은 인식의 기초 위에서 구축될 수 있었다.
“이미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그것이 옛날과 다르다고 하여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후기 자연학의 전개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서학(西學)’이다. 서학의 전래에 따라 유입된 새로운 자연지식은 조선후기 자연학의 전개에 지적 자극을 주었고 자연학의 내용과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서학과 서교(西敎)를 분리해서 사고하였다. 서학에 대해서는 적극적 긍정과 수용의 태도를 보인 반면 서교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서학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시헌력(時憲曆)을 비롯한 서양 과학의 우수성과 실용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과학·기술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더욱 정밀해지며, 비록 성인(聖人)의 지혜라 할지라도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는 역사적 인식과 당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학문적 능력이 서양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 서학수용론을 개진하였다. “이미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그것이 옛날과 다르다고 하여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이익의 발언은 서학을 비롯한 이단의 학문에 대한 성호학파의 학문적 개방성과 포용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서학서를 통해 지구설(地球說), 중천설(重天說), ‘지영지설(地影之說)’[월식론], 세차설(歲差說), 조석설(潮汐說), 수리론(水利論) 등 서양 과학의 여러 이론을 수용함으로써 주자학적 자연학의 각론(各論)에 대해 심층적 비판을 가했고, 서학의 학문적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였다. 이를 통해 주자학 일변도로 경색되어 가던 당시의 학계 풍토를 비판하였고, 중국 중심의 세계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열었다. 이는 주자학적 자연관을 내재적으로 극복하여 새로운 자연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사상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요컨대 성호학파의 자연학은 자연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자연인식을 도출할 수 있는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조선시기 과학사상사 분야를 수십 년간 연구해 온 구만옥 경희대 교수의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저자가 이번 책에서 다루는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을 사표(師表)로 삼는 성호학파(星湖學派)는 조선후기의 대표적 학파 가운데 하나이며, 자연학(自然學) 분야에서 가장 풍부한 논의를 생산한 집단이다.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을 비롯한 그의 방대한 저작을 통해 전통사회에서 ‘과학’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가학(家學)을 통해 그의 학문을 계승한 여주이씨(驪州李氏) 가문의 자제들, 그리고 성호학파의 일원으로서 그의 훈도를 받은 여러 학자들이 이익의 학문적 성과로부터 지적 자극을 받아 사유의 너비와 깊이를 더해 갔다. 조선후기 과학사상사는 성호학파로 인해 한층 풍요로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조선후기 성호학파의 자연학에 대한 탐구는 조선후기 과학사상사의 전개 과정을 밝히는 관건이라 할 수 있다.
“의리(義理)란 천하의 공물(公物)이다!”, “스승을 섬기는 데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일찍이 이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조선후기 사회 현실을 ‘성인(聖人)의 도(道)가 끊어진 세상’이라고 비관하였다. 당시의 양반사대부들이 입으로는 성현(聖賢)의 학문을 담론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우러르거나 존경하는 뜻이 전혀 없고, 오로지 그에 가탁하여 사사로운 이욕(利慾)을 추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그와 같은 양반사대부들은 ‘양묵(楊墨)의 죄인’, 즉 양주(楊朱)나 묵적(墨翟)과 같은 ‘이단’만도 못한 존재였다.
이익을 비롯한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의리(義理)란 천하의 공물(公物)”이라는 생각을 공유했다. 무릇 ‘의리’라면 그것은 옛날과 지금의 구분도 없고, 너와 나의 구분도 없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공공재여야 했다. 그것은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와 같은 그들의 생각은 주자학 일변도로 흐르는 조선후기의 학문 경향, 이른바 주희와 주자학을 절대화하는 ‘주자도통주의(朱子道統主義)’에 반기를 든 것이었고, 그와 같은 분위기를 조장하면서 정치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서인-노론 계열의 위선을 비판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관점에 기초하여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기존의 경전 주석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였다. 주희의 주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이와 같은 자신들의 학문적 자세가 “스승을 섬기는 데 숨기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사무은(事師無隱)’의 의리에 따른 것이지, 일부러 색다른 논의를 만들어 예전의 현인을 능가하려 함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치의(致疑: 의심을 둠)’를 통해 ‘자득(自得: 스스로 터득함)’을 추구하는 성호학파의 학문관은 이와 같은 인식의 기초 위에서 구축될 수 있었다.
“이미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그것이 옛날과 다르다고 하여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후기 자연학의 전개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핵심적 요소 가운데 하나가 ‘서학(西學)’이다. 서학의 전래에 따라 유입된 새로운 자연지식은 조선후기 자연학의 전개에 지적 자극을 주었고 자연학의 내용과 질적 수준을 제고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이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서학과 서교(西敎)를 분리해서 사고하였다. 서학에 대해서는 적극적 긍정과 수용의 태도를 보인 반면 서교에 대해서는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서학에 대한 우호적 태도는 시헌력(時憲曆)을 비롯한 서양 과학의 우수성과 실용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과학·기술은 후대로 내려올수록 더욱 정밀해지며, 비록 성인(聖人)의 지혜라 할지라도 다하지 못하는 바가 있다는 역사적 인식과 당시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학문적 능력이 서양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적극적 서학수용론을 개진하였다. “이미 그 말이 이치에 합당하다는 것을 알았다면 어찌 그것이 옛날과 다르다고 하여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는 이익의 발언은 서학을 비롯한 이단의 학문에 대한 성호학파의 학문적 개방성과 포용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수 있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예수회 선교사들의 서학서를 통해 지구설(地球說), 중천설(重天說), ‘지영지설(地影之說)’[월식론], 세차설(歲差說), 조석설(潮汐說), 수리론(水利論) 등 서양 과학의 여러 이론을 수용함으로써 주자학적 자연학의 각론(各論)에 대해 심층적 비판을 가했고, 서학의 학문적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하였다. 이를 통해 주자학 일변도로 경색되어 가던 당시의 학계 풍토를 비판하였고, 중국 중심의 세계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단초를 열었다. 이는 주자학적 자연관을 내재적으로 극복하여 새로운 자연인식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사상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요컨대 성호학파의 자연학은 자연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새로운 자연인식을 도출할 수 있는 학문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성호학파 자연학의 특징적 요소
성호학파 자연학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추출할 수 있다. 첫째,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명물도수지학'을 비롯한 자연학 분야를 유자(儒者)의 필수적 학문, 즉 유자의 실학(實學)으로 파악하였다. 둘째, 물리(物理)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기초하여 학문적 탐구 대상을 자연물로 확장하였다. 물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기존의 세계관과 인식론의 변화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나아가 그것은 공부의 대상과 방법에도 일단의 변화를 불러왔다. '격물치지론'의 재해석에 따라 자연법칙으로서의 물리에 대한 탐구가 적극적으로 모색되었고, 격물의 대상 역시 유교의 경전(經傳)에서 벗어나 자연물로 확장되었다. 그것은 천지만물을 포괄하는 박학적(博學的) 성격을 띠게 되었다. 셋째, 학문방법론의 일환으로서 '수학(數學)과 실측(實測)'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등장하였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당대 천문역산학(天文曆算學)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학의 필요성과 함께 실측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실측을 위한 기구로서 천문의기(天文儀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을 통해 그들은 기존의 주자학적 자연학의 논리적 문제점을 '실측'과 '실증(實證)'의 차원에서 지적하였고, 그와는 다른 새로운 자연학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대한 연회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盛筵難再]."
뛰어난 글재주를 지녔던 왕발(王勃)은 20대 초에 그 유명한 「등왕각서(?王閣序)」를 지었다. 그 가운데 "아, 명승지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요, 성대한 연회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嗚呼, 勝地不常, 盛筵難再]"라는 대목이 있다. 정약용은 권철신(權哲身)의 묘지명을 지으면서 정조 3년(1779) 겨울의 이른바 '천진암(天眞菴) 주어사(走魚士) 강학회'를 회상하면서 이 대목을 거론하였다. 그것은 비단 주어사 강학회와 같은 성대한 학술 모임이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철신은 이기양(李基讓)과 함께 장래의 성호학파를 이끌어갈 인재로 일찍부터 선배들이 기대해 마지 않았던 학자였다. 그러나 권철신과 이기양은 천주교 신앙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선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정약용이 "그 또한 신유년(辛酉年: 1801) 봄에 죽으니 드디어 학맥(學脈)이 단절되어 성호의 문하에 다시 그 아름다움을 이을 만한 이가 없게 되었으니, 이 세운(世運)은 다만 한 집안의 슬픔이 아니었다"고 한 것은 권철신의 죽음에 따른 성호학파의 조락(凋落)을 묘사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성호학파의 학맥은 안정복(安鼎福)-황덕길(黃德吉)-허전(許傳)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해 전승되었으며 일련의 보수화 과정을 거쳤다. 자연학의 측면에서 보면 성호학파의 관련 논의는 이전의 참신성을 잃고 선배들의 담론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창조적 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일종의 굴절(屈折) 내지 변주의 과정이었다.
성호학파 자연학의 특징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소를 추출할 수 있다. 첫째,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명물도수지학'을 비롯한 자연학 분야를 유자(儒者)의 필수적 학문, 즉 유자의 실학(實學)으로 파악하였다. 둘째, 물리(物理)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 기초하여 학문적 탐구 대상을 자연물로 확장하였다. 물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기존의 세계관과 인식론의 변화에 따른 결과물이었다. 나아가 그것은 공부의 대상과 방법에도 일단의 변화를 불러왔다. '격물치지론'의 재해석에 따라 자연법칙으로서의 물리에 대한 탐구가 적극적으로 모색되었고, 격물의 대상 역시 유교의 경전(經傳)에서 벗어나 자연물로 확장되었다. 그것은 천지만물을 포괄하는 박학적(博學的) 성격을 띠게 되었다. 셋째, 학문방법론의 일환으로서 '수학(數學)과 실측(實測)'의 중요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등장하였다. 성호학파의 학자들은 당대 천문역산학(天文曆算學)의 문제를 개혁하기 위한 방안으로 수학의 필요성과 함께 실측의 중요성을 강조했으며, 그 연장선에서 실측을 위한 기구로서 천문의기(天文儀器)에 대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이와 같은 인식의 전환을 통해 그들은 기존의 주자학적 자연학의 논리적 문제점을 '실측'과 '실증(實證)'의 차원에서 지적하였고, 그와는 다른 새로운 자연학을 모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성대한 연회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盛筵難再]."
뛰어난 글재주를 지녔던 왕발(王勃)은 20대 초에 그 유명한 「등왕각서(?王閣序)」를 지었다. 그 가운데 "아, 명승지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니요, 성대한 연회는 다시 만나기 어렵다[嗚呼, 勝地不常, 盛筵難再]"라는 대목이 있다. 정약용은 권철신(權哲身)의 묘지명을 지으면서 정조 3년(1779) 겨울의 이른바 '천진암(天眞菴) 주어사(走魚士) 강학회'를 회상하면서 이 대목을 거론하였다. 그것은 비단 주어사 강학회와 같은 성대한 학술 모임이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았다는 아쉬움을 토로한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권철신은 이기양(李基讓)과 함께 장래의 성호학파를 이끌어갈 인재로 일찍부터 선배들이 기대해 마지 않았던 학자였다. 그러나 권철신과 이기양은 천주교 신앙 문제에 발목이 잡혀 선진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정약용이 "그 또한 신유년(辛酉年: 1801) 봄에 죽으니 드디어 학맥(學脈)이 단절되어 성호의 문하에 다시 그 아름다움을 이을 만한 이가 없게 되었으니, 이 세운(世運)은 다만 한 집안의 슬픔이 아니었다"고 한 것은 권철신의 죽음에 따른 성호학파의 조락(凋落)을 묘사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성호학파의 학맥은 안정복(安鼎福)-황덕길(黃德吉)-허전(許傳)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해 전승되었으며 일련의 보수화 과정을 거쳤다. 자연학의 측면에서 보면 성호학파의 관련 논의는 이전의 참신성을 잃고 선배들의 담론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물렀고 창조적 활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것은 일종의 굴절(屈折) 내지 변주의 과정이었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서론
제2장 성호학파 자연학의 사상적ㆍ학문적 기초
1. 도리(道理)와 물리(物理)의 분리
2. 천관(天觀)의 분화와 자연천(自然天)의 탐구
3. 치의(致疑)와 자득(自得)의 학문관
4. 명물도수(名物度數)와 불치하문(不恥下問)
제3장 서학(西學)에 대한 인식과 수용의 논리
1. 조선후기 서학 수용의 문제
2. 성호학파의 서학 인식과 수용의 논리
3. '존사위도(尊師衛道)'를 위한 변론(辨論)
제4장 전통적 자연지식에 관한 성호학파 내부의 담론 '기삼백론(朞三百論)'과 '칠윤지설(七閏之說)'에 대한 논의
1. 이익의 기삼백론(朞三百論)
2. 이익과 이병휴의 '칠윤지설(七閏之說)'에 대한 논의
제5장 새로운 자연지식에 관한 성호학파 내부의 담론 윤동규와 안정복의 자연학 논의
1. 세차법(歲差法)
2. 서양역법(西洋曆法)과 일전표(日?表)
3. 조석설(潮汐說)
제6장 전통적 자연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학설의 전개(1)
1. 중천설(重天說)
2. 일월식론(日月蝕論)
3. 「방성도(方星圖)」와 '수간미곤(首艮尾坤)'론의 전개
제7장 전통적 자연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학설의 전개(2)
1. '지리(地理)'에 대한 관심과 담론
2. 지구설(地球說)과 봉침설(縫針說)
3. 조석설(潮汐說)과 동해무조석론(東海無潮汐論)
4. 수리론(水利論)
제8장 성호학파 자연학의 특징과 학문적 지향
1. 유자(儒者)의 실학(實學):자연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
2. 물리(物理)에 대한 관심과 박학(博學)
3. 수학(數學)과 실측(實測)의 강조
제9장 성호학파 자연학의 계승과 굴절(屈折)
1. 성호학파의 분기(分岐)와 보수화(保守化)
2. 성호학파 자연학의 계승:정약용(丁若鏞)의 경우
3. 허전(許傳)의 천지관(天地觀)과 재이설(災異說)
제10장 결론
참고문헌
제1장 서론
제2장 성호학파 자연학의 사상적ㆍ학문적 기초
1. 도리(道理)와 물리(物理)의 분리
2. 천관(天觀)의 분화와 자연천(自然天)의 탐구
3. 치의(致疑)와 자득(自得)의 학문관
4. 명물도수(名物度數)와 불치하문(不恥下問)
제3장 서학(西學)에 대한 인식과 수용의 논리
1. 조선후기 서학 수용의 문제
2. 성호학파의 서학 인식과 수용의 논리
3. '존사위도(尊師衛道)'를 위한 변론(辨論)
제4장 전통적 자연지식에 관한 성호학파 내부의 담론 '기삼백론(朞三百論)'과 '칠윤지설(七閏之說)'에 대한 논의
1. 이익의 기삼백론(朞三百論)
2. 이익과 이병휴의 '칠윤지설(七閏之說)'에 대한 논의
제5장 새로운 자연지식에 관한 성호학파 내부의 담론 윤동규와 안정복의 자연학 논의
1. 세차법(歲差法)
2. 서양역법(西洋曆法)과 일전표(日?表)
3. 조석설(潮汐說)
제6장 전통적 자연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학설의 전개(1)
1. 중천설(重天說)
2. 일월식론(日月蝕論)
3. 「방성도(方星圖)」와 '수간미곤(首艮尾坤)'론의 전개
제7장 전통적 자연학에 대한 비판과 새로운 학설의 전개(2)
1. '지리(地理)'에 대한 관심과 담론
2. 지구설(地球說)과 봉침설(縫針說)
3. 조석설(潮汐說)과 동해무조석론(東海無潮汐論)
4. 수리론(水利論)
제8장 성호학파 자연학의 특징과 학문적 지향
1. 유자(儒者)의 실학(實學):자연학에 대한 인식의 전환
2. 물리(物理)에 대한 관심과 박학(博學)
3. 수학(數學)과 실측(實測)의 강조
제9장 성호학파 자연학의 계승과 굴절(屈折)
1. 성호학파의 분기(分岐)와 보수화(保守化)
2. 성호학파 자연학의 계승:정약용(丁若鏞)의 경우
3. 허전(許傳)의 천지관(天地觀)과 재이설(災異說)
제10장 결론
참고문헌
저자
저자
구만옥
연세대학교 이과대학 천문기상학과와 문과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의 사학과 대학원에서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경희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조선후기 자연관, 자연인식, 자연학 관련 담론을 탐구하여 조선후기 사상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에 학문적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Ⅰ-주자학적 우주론의 변동-」(혜안, 2004), 「영조 대 과학의 발전」(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세종시대의 과학기술」(도서출판 들녘, 2016), 「조선후기 의상개수론과 의상정책」(혜안, 2019) 등이 있다.
저서로 「조선후기 과학사상사 연구Ⅰ-주자학적 우주론의 변동-」(혜안, 2004), 「영조 대 과학의 발전」(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2015), 「세종시대의 과학기술」(도서출판 들녘, 2016), 「조선후기 의상개수론과 의상정책」(혜안, 2019) 등이 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