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여우 라이네케(세계문학 1)(양장본 Hardcover)
최초로 번역된 괴테의 우화소설
괴테의 우화 소설『괴테의 여우 라이네케』. 괴테가 44세인 1793년에 완성해서 1794년에 출간한 작품으로 여우가 의인화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 설화이다. 옛 민중시가의 특징으로 들 수 있는 조잡성, 희극적 상황, 야비성 등이 적나라하게 수용되고 있다. 동물 그림을 덧붙여서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접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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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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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괴테의 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타쏘』 그리고 『빌헬름 마이스터』 같은 작품들은 거의 파멸적인 내적 긴장 속에서 진행되었다면, 『여우 라이네케』는 작가 자신에게 위안과 기쁨을 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괴테의 여우 라이네케』는 여우가 의인화되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동물설화이다. 여우가 등장하는 동물설화는 이미 중세부터 유럽 전역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괴테도 유년시절부터 잘 알고 있었던 소재이다.
그러나 그때까지 유럽 각국의 이 작품 내용들은 도덕적이고 정치적이며 교훈적인 통찰이 주된 주제였으나 괴테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새롭게 각색된 『괴테의 여우 라이네케』로 탄생한다. 작가는 동물설화 속에서 그 당시의 시대적, 정치적 상황 및 교회, 성당 그리고 정치인과 종교인의 생활과 의식뿐만 아니라 민중들의 의식과 생활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작업은 민중시가(民衆詩歌)의 건강하고 힘찬 세계 속으로의 침잠이었으며, 훗날 독일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민요와 민중시가에 대한 그의 애착과 비교될 수 있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파우스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노년에 이를 때까지 그는 옛 민중의 지혜처럼 들리는 작은 격언들을 시화(詩化)했다. 만약 괴테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타쏘』의 영역 속에서만 호흡했다면, 그것은 그를 파멸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던 전혀 다른 면의 본질이 문학적인 영역에서 민중시가와의 접촉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로 모순되는 내적 가능성들의 균형이 괴테의 삶에서 업적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점에서 『여우 라이네케』는 그의 문학적 창조작업에서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축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동물왕국에서 여러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개개의 특성에 따라 후기 중세의 봉건사회 계층과 질서 그리고 인물들을 패로디하였다. 여우의 온갖 악행에 대항하여 많은 동물들이 사자왕에게 여우를 고발하나 그의 영악한 지혜로 말미암아 좌절되고 만다. 여우의 수사학적 변론을 어느 누구도 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우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기발한 거짓말과 엉뚱한 논리로 교묘하게 위기 상황을 모면한다. 때로는 현재와 과거를 혼합하거나, 원인과 결과를 뒤바꾸어 오직 자신의 논리로 변명하기도 하지만 약육강식의 사회에서 피지배자가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혼신의 힘을 다해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우에 관한 다른 모습이 형상화된다. 여우는 악하고 거짓에 찬 궁전의 인물이 아니라 장난꾸러기로 묘사되고 있다. 그에게 희생당하는 어떤 다른 동물들도 여우의 거짓을 통해서 불행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우둔함이나 탐욕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내용면에서 작가가 변화시킨 것은 전혀 없다. 그러나 작가는 시대적 배경과 상황을 서술하여 전혀 다른 효과를 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역사적 상황을 그 소재로 첨가하여 사용했던 것이다. 여러 등급으로 나뉜 신하들이 있는 동물왕국은 봉건제도의 국가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은 소국가로 분리된 절대국가였으며 당국과 신하들로 구성된 근대적인 조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작품에서 사자가 지배하고는 있으나 곰과 늑대가 고문직에 앉아 있으며, 힘이 세거나 술책이 능한 동물(여우)들이 비록 사자가 금지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충동이나 모험을 추구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자세히 언급되고 있는 교회와 성당의 상태, 즉 교황청의 매수, 독신주의자의 불경, 교황의 파문 그리고 로마 등은 그 시대의 살아 있는 현실이었다.
여우는 이러한 시대에 사회의 정의는 무엇이며, 민중은 어떠한 모습으로 착취당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종교인은 민중을 어떻게 핍박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기도 한다.
목차
목차
2곡 왕의 첫 번째 사자 곰 브라운 ...26
3곡 왕의 두 번재 사자 고양이 힌째 ...41
4곡 왕의 세 번재 사자 오소리 그림바르트와 여우의 변호 ...67
5곡 보물 이야기 ...83
6곡 여우의 눈물 ...99
7곡 사자 왕 노벨의 분노 ...122
8곡 여우의 친척들 ...137
9곡 여우의 지혜 ...155
10곡 위대한 거짓말 ...175
11곡 늑대의 도전 ...201
12곡 최후의 혈투 ...224
저자
저자
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 겸 작가이다.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황실 추밀원 고문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일시 귀향했다가 다시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법학사가 되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으며, 제젠하임이란 마을에서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사랑에 빠지며 감미로운 서정시들을 많이 썼다. 1771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업무보다는 창작에 몰두하여 그해 질풍노도 시기의 대표적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의 초고를 쓰고, 말년에 완성된 그의 역작 『파우스트』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시작하였다.
1774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마자 대단한 선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그의 교...고전파의 대표자이자 독일의 시인 겸 작가이다. 17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에서 왕실 추밀원 고문인 아버지와 시장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버지의 방침에 따라 엄격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하여 법률을 공부하다가 병으로 일시 귀향했다가 다시 스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법학사가 되었다.
1770년 독일 질풍노도 운동의 실질적 선도자인 고트프리트 헤르더를 만나 독일 민속과 정신에 대한 깨우침을 얻었으며, 제젠하임이란 마을에서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과 사랑에 빠지며 감미로운 서정시들을 많이 썼다. 1771년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와 변호사로 개업했지만 업무보다는 창작에 몰두하여 그해 질풍노도 시기의 대표적 희곡 『괴츠 폰 베를리힝겐』의 초고를 쓰고, 말년에 완성된 그의 역작 『파우스트』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시작하였다.
1774년 발표한 그의 첫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마자 대단한 선풍을 불러일으켰으며, '슈투름 운트 드랑'(질풍노도시대, 문예의 혁명 운동)의 대표작으로서 전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 알려졌다. 1775년 아우구스트 공의 초청으로 그의 교육 겸 사담역으로 바이마르에 갔으며, 그 후 재상의 지위에까지 올랐다.
한편 그는 슈타인 부인과의 사랑과 1년 반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한 고대 및 르네상스 미술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로 하여금 쉬투름 운트 드랑적인 어두운 정열에서 벗어나 고전주의 예술 확립으로 향하게 했다.
1974년 무렵, 실러와 친교하게 되었고, 이들의 우정은 실러 사망 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은 서로 격려하면서 걸작품들을 세상에 많이 내어 놓았으며, 짧은 풍자적 비판시 『크세니엔』을 쓰기도 했다. 그 후 1773년 집필을 시작해 1831년 완성한 생애의 대작이자 독일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일컬어지는 『파우스트』외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시대』『헤르만과 도로테아』『이탈리아 기행』『시와 진실』등의 작품을 통해 독일 최대의 시인이자 세계문학의 한 거봉이 되었으며, 1832년 찬란한 생애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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