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대사 이에야스의 길, 그 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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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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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통신사, 에도막부 초청 외교문화 사절
필자는 일전에 일본과 중국을 알자는 전직 외교관들의 모임에서 연락이 와서 제10회 21세기 조선통신사에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엇다. 주어진 시간이 30분이었는데 참석자들의 질문이 많아 결국 1시간이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이날 오간 질문 가운데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본의 새로운 쇼군이 취임했을 때 등 축하 사절로 간 것이니 조공 사절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필자도 사실 이 길을 걷기 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전의 조선 시대 전기에 조선국왕사의 일본 막부 파견은 10회 정도에 불과했으나 일본국왕사의 조선 방문은 61회나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본국왕사가 오지 않은 것은 조선이 접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길이 임진왜란 때 침략의 길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경 거부는 전쟁 도발에 대한 응징 중 하나였는데 일본 사절은 동래의 왜관까지로 제한했다.
필자가 이번에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조선통신사는 에도막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외교문화 사절이라는 점이다. 초청 당사자인 막부의 지시로 지나가는 지역의 각 번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경쟁하듯 최고의 접대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쇄국 정책을 취한 당시 에도막부는 유일하게 조선과 국교를 맺고 있었고 민중들도 생애 처음 접하는 외국 사절을 크게 환영했다. 통신사가 올 때마다 조선 붐이 일었으며 민중과의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
필자는 이들이 바로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일본 대중의 환영 열기는 통신사 일행의 사행록이나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 춤, 인형 등 각종 기록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멀리 타지방에서 온 구경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소식을 전했으며 본토의 북쪽 끝인 아오모리(靑森)에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통신사가 다녀가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간 일본 측이 사용한 경비는 약 1백만 냥(지금의 화폐가치로 5,000~6,000억 원 규모)으로 당시 에도막부의 1년 예산에 필적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719년 제9차 통신사에 참가한 제술관 신유한의 〈해유록〉에는 아이노시마에서 기상악화로 무려 23일간이나 체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후쿠오카번의 이들에 대한 접대가 얼마나 융숭했던지 그가 번의 재정을 걱정하는 문구가 나올 정도다. 그들은 체류하는 동안 그곳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이번에 필자는 조선인가도를 걸었다. 42km의 이 길은 쇼군만 다니는 길이었는데 이 길을 오직 조선통신사 사행만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삿타도우게 고개에 새로이 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통신사가 위험한 바닷길을 피해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대략 열흘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 후 따끈따끈한 현장에서의 체험담을 녹여낸 단행본을 만들어내고자 걷는 동안 매일 기록한 블로그 글을 정리함은 물론 다양한 자료를 추가해 원고를 탈고하느라 여념없이 보냈다.
필자는 이 책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임진왜란 이후 백척간두에 선 조선과 벼량 끝으로 내몰린 조선의 백성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홀연히 살신성인(殺身成仁: 자신을 희생해서 어진 일을 햄함)을 자처한 사명대사의 그 우국충정(憂國衷情: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참된 마음)이 마음 깊이 새삼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사명대사의 나이는 요즘 수명을 감안해 말하자면 80대에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한 60대 초반이었다. 중요한 사명을 생전에 꼭 이루겠다고 오랫동안 염원해온 사람은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뜻이 있으면 필자 역시 사명대사처럼 그 일선으로 나아가 지난 세월 그러해왔듯이 한·일 관계 우호증진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고 싶다고 한다.
필자는 옛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관계 60년을 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한·일 사이에 놓인 각종 현안은 오랜 고질병으로 덧나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슬기롭게 관리하며 대처해나가고 민간교류가 보다 활성화되도록 적극 지원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젊은 세대는 모두 선진국에서 태어나 서로에 대한 열등감이 없고 일본의 젊은이들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여기며 최근의 한류 붐의 영향으로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없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맹자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라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일찍이 설파했다. 변화된 환경에서 한일관계도 이전보다는 여유 있는 자세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한일의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의 한·일관계를 기대하며 그들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소통하며 200년간 평화로운 양국 관계를 만들었듯이 양국의 수뇌도 셔틀 외교를 통해 가능한 한 자주 만나 악수하며 웃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21세기의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지름길이라고 필자는 평소 생각했다. 같이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술도 한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둔 지난 2025년 6월 16일 자 도쿄신문의 사설은 "국교정상화 60년. 한·일 양국의 경제적인 격차가 거의 없는 지금의 수평적인 관계는 양국 시민이 서로를 존중하며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류를 계속하기에 매우 양호한 환경"이라며 바로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을 강조했다.
필자는 일전에 일본과 중국을 알자는 전직 외교관들의 모임에서 연락이 와서 제10회 21세기 조선통신사에 다녀온 얘기를 들려주엇다. 주어진 시간이 30분이었는데 참석자들의 질문이 많아 결국 1시간이 돼서야 마무리되었다. 이날 오간 질문 가운데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일본의 새로운 쇼군이 취임했을 때 등 축하 사절로 간 것이니 조공 사절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필자도 사실 이 길을 걷기 전 과거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임진왜란 전의 조선 시대 전기에 조선국왕사의 일본 막부 파견은 10회 정도에 불과했으나 일본국왕사의 조선 방문은 61회나 되었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본국왕사가 오지 않은 것은 조선이 접대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그 길이 임진왜란 때 침략의 길로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경 거부는 전쟁 도발에 대한 응징 중 하나였는데 일본 사절은 동래의 왜관까지로 제한했다.
필자가 이번에 조선통신사의 옛길을 걸으며 느낀 것은 조선통신사는 에도막부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외교문화 사절이라는 점이다. 초청 당사자인 막부의 지시로 지나가는 지역의 각 번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여 경쟁하듯 최고의 접대를 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쇄국 정책을 취한 당시 에도막부는 유일하게 조선과 국교를 맺고 있었고 민중들도 생애 처음 접하는 외국 사절을 크게 환영했다. 통신사가 올 때마다 조선 붐이 일었으며 민중과의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
필자는 이들이 바로 '한류'의 원조라고 생각한다. 일본 대중의 환영 열기는 통신사 일행의 사행록이나 일본인들이 그린 그림, 춤, 인형 등 각종 기록물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멀리 타지방에서 온 구경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그 소식을 전했으며 본토의 북쪽 끝인 아오모리(靑森)에까지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통신사가 다녀가는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간 일본 측이 사용한 경비는 약 1백만 냥(지금의 화폐가치로 5,000~6,000억 원 규모)으로 당시 에도막부의 1년 예산에 필적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1719년 제9차 통신사에 참가한 제술관 신유한의 〈해유록〉에는 아이노시마에서 기상악화로 무려 23일간이나 체류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후쿠오카번의 이들에 대한 접대가 얼마나 융숭했던지 그가 번의 재정을 걱정하는 문구가 나올 정도다. 그들은 체류하는 동안 그곳의 문인들과 교류했다.
그리고 이번에 필자는 조선인가도를 걸었다. 42km의 이 길은 쇼군만 다니는 길이었는데 이 길을 오직 조선통신사 사행만 지나갈 수 있도록 허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연안의 삿타도우게 고개에 새로이 길을 만들었는데 이는 조선통신사가 위험한 바닷길을 피해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일본에서 귀국한 후 대략 열흘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었다. 그 후 따끈따끈한 현장에서의 체험담을 녹여낸 단행본을 만들어내고자 걷는 동안 매일 기록한 블로그 글을 정리함은 물론 다양한 자료를 추가해 원고를 탈고하느라 여념없이 보냈다.
필자는 이 책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임진왜란 이후 백척간두에 선 조선과 벼량 끝으로 내몰린 조선의 백성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홀연히 살신성인(殺身成仁: 자신을 희생해서 어진 일을 햄함)을 자처한 사명대사의 그 우국충정(憂國衷情: 나랏일을 ?근심하고 염려하는 참된 마음)이 마음 깊이 새삼 와닿았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사명대사의 나이는 요즘 수명을 감안해 말하자면 80대에 해당한다고 봐도 무방한 60대 초반이었다. 중요한 사명을 생전에 꼭 이루겠다고 오랫동안 염원해온 사람은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하늘의 뜻이 있으면 필자 역시 사명대사처럼 그 일선으로 나아가 지난 세월 그러해왔듯이 한·일 관계 우호증진을 위해 끝까지 헌신하고 싶다고 한다.
필자는 옛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일관계 60년을 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한·일 사이에 놓인 각종 현안은 오랜 고질병으로 덧나지 않도록 양국 정부가 슬기롭게 관리하며 대처해나가고 민간교류가 보다 활성화되도록 적극 지원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지금의 젊은 세대는 모두 선진국에서 태어나 서로에 대한 열등감이 없고 일본의 젊은이들도 한국을 선진국으로 여기며 최근의 한류 붐의 영향으로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어 붐이 일고 있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일본에 대한 열등감이 없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GDP가 일본을 추월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해준다.
맹자는 "곳간이 차야 예절을 안다"라는 '무항산 무항심(無恒産 無恒心)'을 일찍이 설파했다. 변화된 환경에서 한일관계도 이전보다는 여유 있는 자세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는 한일의 젊은이들이 이끌어갈 미래의 한·일관계를 기대하며 그들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다.
조선통신사를 통해 양국의 최고지도자가 소통하며 200년간 평화로운 양국 관계를 만들었듯이 양국의 수뇌도 셔틀 외교를 통해 가능한 한 자주 만나 악수하며 웃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이 21세기의 한·일관계를 발전시키는 가장 지름길이라고 필자는 평소 생각했다. 같이 자주 만나서 식사하고 술도 한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국교정상화 60주년을 앞둔 지난 2025년 6월 16일 자 도쿄신문의 사설은 "국교정상화 60년. 한·일 양국의 경제적인 격차가 거의 없는 지금의 수평적인 관계는 양국 시민이 서로를 존중하며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교류를 계속하기에 매우 양호한 환경"이라며 바로 조선통신사의 성신교린의 정신을 강조했다.
목차
목차
[추천사]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 한·일 우정 걷기 대장정
[추천 및 감사의 말씀]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456일 여정
[프롤로그]
'조선통신사의 길'은 곧 '사명대사·도쿠가와 이에야스 길'
[제1부] 일본의 옛 뱃길을 버스로 가다
23일 차(2025년 3월 31일)
쓰시마(?馬島)에서 일본 첫 일정을 시작하다
24일 차(2025년 4월 1일)
이키섬(?岐島) 길 걸으니 마음의 평화가
25일 차(2025년 4월 2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26일 차(2025년 4월 3일)
통신사에 대한 막부의 환대는 상상 초월
27일 차(2025년 4월 4일)
'일동제일형승(一東第一形勝)' 도모노우라
28일 차(2025년 4월 5일)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의 생생한 현장
[제2부] 일본 본토 구간 본격적 도보 행진
29일 차(2025년 4월 6일)
김치 한 접시가 4,000원이라니…
30일 차(2025년 4월 7일)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다
31일 차(2025년 4월 8일)
윤동주 시인께 한국 신문지로 싼 꽃다발을
32일 차(2025년 4월 9일)
도대체 축지법을 쓰나?
33 일차(2025년 4월 10일)
출세의 길 '조선인 가도'를 걷다
34일 차(2025년 4월 11일)
아즈치(安土)성터에서 인생무상을 보다
35일 차(2025년 4월 12일)
'야생화 천지' 평화로운 길 걸으며 힐링
36일 차(2025년 4월 13일)
일본의 혹독한 최악의 날씨를 경험하다
37일 차(2025년 4월 14일)
'권력 세계'라는 게 허망하고 무상하다
38일 차(2025년 4월 15일)
묘젠지에서 열린 감동적 환영 세리머니
39일 차(2025년 4월 16일)
역사의 현장 '오케하자마'를 지나다
40일 차(2025년 4월 17일)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41일 차(2025년 4월 18일)
오누이처럼 보기에 참 아름다웠다
42일 차(2025년 4월 19일)
스즈끼 씨 가족의 뜨거운 환대에 큰 감동
43일 차(2025년 4월 20일)
이렇게 맛있는 다꾸앙은 처음이다
44일 차(2025년 4월 21일)
푸른 차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45일 차(2025년 4월 22일)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46일 차(2025년 4월 23일)
빗속의 슨푸(駿府)성이 고즈넉했다
47일 차(2025년 4월 24일)
그 유명한 삿타 고개를 넘었다
48일 차(2025년 4월 25일)
드디어 오매불망 후지산을 보았다
49일 차(2025년 4월 26일)
난코스 하코네 고개를 넘었다
50일 차(2025년 4월 27일)
남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는 일본인들
51일 차(2025년 4월 28일)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다
52일 차(2025년 4월 29일)
내일 도쿄에서 이별하자니 서운함이…
53일 차(2025년 4월 30일)
히비야 공원 도착하니 감격의 눈물 주르르
[3부] 조선통신사 옛길 국내 구간을 걷다
1일 차(2025년 3월 9일)
경복궁 출정식 후 3천리 대장정에 나서다
2일 차(2025년 3월 10일)
내 무덤에 침 뱉어라
3일 차(2025년 3월 11일)
그녀는 천사이자 멋진 스승이었다
4일 차(2025년 3월 12일)
온나라가 거대한 쓰레기통이었다
5일 차(2025년 3월 13일)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6일 차(2025년 3월 14일)
인간사(人間事)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깝다
7일 차(2025년 3월 15일)
여전히 아날로그에 익숙한 일본 대원들
8일 차(2025년 3월 16일)
영남 제3 관문 설경(雪景)이 그림 같았다
9일 차(2025년 3월 17일)
'부산→서울' 사이클링하는 일본 젊은이들
10일 차(2025년 3월 18일)
어찌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
11일 차(2025년 3월 19일)
묘한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12일 차(2025년 3월 20일)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13일 차(2025년 3월 21일)
한국전쟁 옛 전우의 제사를 지내다
14일 차(2025년 3월 22일)
분실한 휴대폰을 찾자 환호성 터지다
15일 차(2025년 3월 23일)
영천 시민들과 함께한 조양각 전별연(餞別宴)
16일 차(2025년 3월 24일)
민간교류의 진면목을 보다
17일 차(2025년 3월 25일)
한줄기 비가 내리기를 염원했다
18일 차(2025년 3월 26일)
초등학교 5학년 소연이의 손편지
19일 차(2025년 3월 27일)
굵은 빗줄기, 하느님 감사합니다
20일 차(2025. 3. 28)
은혜로운 비를 몰고 왔다며 환대받아
21일 차(2025년 3월 29일)
부산까지 520km를 버틴 두 건각(健脚)에 감사
22일 차(2025년 3월 30일)
한국인의 임기응변, 능수능란하다
[제4부] 1,200km 완주 후 도쿄에서의 휴식
54일 차(2025년 5월 1일)
서양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도쿄
55일 차(2025년 5월 2일)
와다 가족의 환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56일 차(2025년 5월 3일)
56일 만에 귀가하니 역시 집이 최고다
[에필로그]
에도막부 초청 외교문화사절, 조선통신사
[부록] 1) 조선통신사 파견현황(1-12)
2) 조선통신사 전체 행로 약도
3) 후원자 명단
[참고서적]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의 한·일 우정 걷기 대장정
[추천 및 감사의 말씀]
조선통신사 한·일 우정 걷기 456일 여정
[프롤로그]
'조선통신사의 길'은 곧 '사명대사·도쿠가와 이에야스 길'
[제1부] 일본의 옛 뱃길을 버스로 가다
23일 차(2025년 3월 31일)
쓰시마(?馬島)에서 일본 첫 일정을 시작하다
24일 차(2025년 4월 1일)
이키섬(?岐島) 길 걸으니 마음의 평화가
25일 차(2025년 4월 2일)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오십시오!"
26일 차(2025년 4월 3일)
통신사에 대한 막부의 환대는 상상 초월
27일 차(2025년 4월 4일)
'일동제일형승(一東第一形勝)' 도모노우라
28일 차(2025년 4월 5일)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의 생생한 현장
[제2부] 일본 본토 구간 본격적 도보 행진
29일 차(2025년 4월 6일)
김치 한 접시가 4,000원이라니…
30일 차(2025년 4월 7일)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는 법이다
31일 차(2025년 4월 8일)
윤동주 시인께 한국 신문지로 싼 꽃다발을
32일 차(2025년 4월 9일)
도대체 축지법을 쓰나?
33 일차(2025년 4월 10일)
출세의 길 '조선인 가도'를 걷다
34일 차(2025년 4월 11일)
아즈치(安土)성터에서 인생무상을 보다
35일 차(2025년 4월 12일)
'야생화 천지' 평화로운 길 걸으며 힐링
36일 차(2025년 4월 13일)
일본의 혹독한 최악의 날씨를 경험하다
37일 차(2025년 4월 14일)
'권력 세계'라는 게 허망하고 무상하다
38일 차(2025년 4월 15일)
묘젠지에서 열린 감동적 환영 세리머니
39일 차(2025년 4월 16일)
역사의 현장 '오케하자마'를 지나다
40일 차(2025년 4월 17일)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
41일 차(2025년 4월 18일)
오누이처럼 보기에 참 아름다웠다
42일 차(2025년 4월 19일)
스즈끼 씨 가족의 뜨거운 환대에 큰 감동
43일 차(2025년 4월 20일)
이렇게 맛있는 다꾸앙은 처음이다
44일 차(2025년 4월 21일)
푸른 차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했다
45일 차(2025년 4월 22일)
"아직 나의 때가 오지 않았다"
46일 차(2025년 4월 23일)
빗속의 슨푸(駿府)성이 고즈넉했다
47일 차(2025년 4월 24일)
그 유명한 삿타 고개를 넘었다
48일 차(2025년 4월 25일)
드디어 오매불망 후지산을 보았다
49일 차(2025년 4월 26일)
난코스 하코네 고개를 넘었다
50일 차(2025년 4월 27일)
남에게 신세 지지 않으려는 일본인들
51일 차(2025년 4월 28일)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하다
52일 차(2025년 4월 29일)
내일 도쿄에서 이별하자니 서운함이…
53일 차(2025년 4월 30일)
히비야 공원 도착하니 감격의 눈물 주르르
[3부] 조선통신사 옛길 국내 구간을 걷다
1일 차(2025년 3월 9일)
경복궁 출정식 후 3천리 대장정에 나서다
2일 차(2025년 3월 10일)
내 무덤에 침 뱉어라
3일 차(2025년 3월 11일)
그녀는 천사이자 멋진 스승이었다
4일 차(2025년 3월 12일)
온나라가 거대한 쓰레기통이었다
5일 차(2025년 3월 13일)
우연이 아닌 필연이라고 생각했다
6일 차(2025년 3월 14일)
인간사(人間事) 참으로 허무하고 안타깝다
7일 차(2025년 3월 15일)
여전히 아날로그에 익숙한 일본 대원들
8일 차(2025년 3월 16일)
영남 제3 관문 설경(雪景)이 그림 같았다
9일 차(2025년 3월 17일)
'부산→서울' 사이클링하는 일본 젊은이들
10일 차(2025년 3월 18일)
어찌하여 세상에 이런 일이!
11일 차(2025년 3월 19일)
묘한 인연은 계속 이어진다
12일 차(2025년 3월 20일)
기록되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는다
13일 차(2025년 3월 21일)
한국전쟁 옛 전우의 제사를 지내다
14일 차(2025년 3월 22일)
분실한 휴대폰을 찾자 환호성 터지다
15일 차(2025년 3월 23일)
영천 시민들과 함께한 조양각 전별연(餞別宴)
16일 차(2025년 3월 24일)
민간교류의 진면목을 보다
17일 차(2025년 3월 25일)
한줄기 비가 내리기를 염원했다
18일 차(2025년 3월 26일)
초등학교 5학년 소연이의 손편지
19일 차(2025년 3월 27일)
굵은 빗줄기, 하느님 감사합니다
20일 차(2025. 3. 28)
은혜로운 비를 몰고 왔다며 환대받아
21일 차(2025년 3월 29일)
부산까지 520km를 버틴 두 건각(健脚)에 감사
22일 차(2025년 3월 30일)
한국인의 임기응변, 능수능란하다
[제4부] 1,200km 완주 후 도쿄에서의 휴식
54일 차(2025년 5월 1일)
서양인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도쿄
55일 차(2025년 5월 2일)
와다 가족의 환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56일 차(2025년 5월 3일)
56일 만에 귀가하니 역시 집이 최고다
[에필로그]
에도막부 초청 외교문화사절, 조선통신사
[부록] 1) 조선통신사 파견현황(1-12)
2) 조선통신사 전체 행로 약도
3) 후원자 명단
[참고서적]
저자
저자
허남정
경남 진주(지수) 출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일과 졸업
(문학석사 동시통역사)
일본 와세다대학교 어학연구소
한양대학교 국제학박사(일본지역학)
외환은행(KEB하나은행 근무)
(사)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재)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
인천대학교 겸임교수(일본어과)
한국PHP동우회 회장
에스포유 회장
㈜지겐코퍼레이션 수석부사장
(사)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정책자문위원 (현)
일본 오비린대학교 아시아유라시아총합연구소 객원연구원(현)
(사)한국체육진흥회 상임이사(현)
◎ 저서
[박태준이 답이다]·[산티아고 순례자들]·[경색된 한일관계를 타개하라(일본)]·[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립습니다]
번역서 [보답받지 못하는 노력은 없다] 등
◎ 상훈
한국 정부 국무총리상(사회 분야)
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 인물 대상
(한국발전 외교공로 분야)
일본정부훈장 욱일소수장(2011년)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대학원 한일과 졸업
(문학석사 동시통역사)
일본 와세다대학교 어학연구소
한양대학교 국제학박사(일본지역학)
외환은행(KEB하나은행 근무)
(사)한일경제협회 전무이사
(재)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
인천대학교 겸임교수(일본어과)
한국PHP동우회 회장
에스포유 회장
㈜지겐코퍼레이션 수석부사장
(사)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정책자문위원 (현)
일본 오비린대학교 아시아유라시아총합연구소 객원연구원(현)
(사)한국체육진흥회 상임이사(현)
◎ 저서
[박태준이 답이다]·[산티아고 순례자들]·[경색된 한일관계를 타개하라(일본)]·[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 [자랑스럽습니다, 그립습니다]
번역서 [보답받지 못하는 노력은 없다] 등
◎ 상훈
한국 정부 국무총리상(사회 분야)
2015년 대한민국을 빛낸 한국 인물 대상
(한국발전 외교공로 분야)
일본정부훈장 욱일소수장(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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