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양장본 Hard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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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로 향하는 애절한 마음의 기도!
제운 스님의 시집『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문인 승이면서 수행자인 저자가 수행의 문턱에서 깨달음을 향하기도 하고 군생을 위함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적어 내려간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세월이 가건 말건 허상을 좇는 우리들의 인간상, 옛이야기가 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그대를 향한 그리움, 가도 감이 없고 가져도 가진 것 없음이 우리네 인생의 여정임을 이야기한다. ‘용문사의 밤’, ‘가을의 노래’, ‘인생의 여정’, ‘조건 없는 사랑’, ‘알 수 있었을 테지요’, ‘달마 환생’ 등의 시편을 시절, 그리움, 향하여, 공문 등 모두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제운 스님의 시집『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문인 승이면서 수행자인 저자가 수행의 문턱에서 깨달음을 향하기도 하고 군생을 위함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적어 내려간 시편들로 구성되어 있다. 다양한 시편들을 통해 세월이 가건 말건 허상을 좇는 우리들의 인간상, 옛이야기가 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그대를 향한 그리움, 가도 감이 없고 가져도 가진 것 없음이 우리네 인생의 여정임을 이야기한다. ‘용문사의 밤’, ‘가을의 노래’, ‘인생의 여정’, ‘조건 없는 사랑’, ‘알 수 있었을 테지요’, ‘달마 환생’ 등의 시편을 시절, 그리움, 향하여, 공문 등 모두 4부로 나누어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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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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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자로 향하는 애절한 마음의 기도!
글이 있는 달마 선화가로 유명한 제운스님이 이번에는 시집을 냈다.
지난해 에세이"산문의 향기"에 이어 나온 시집이다. 스님은 그동안 열권이 넘는 저서와 개인 선화전시를 가진 시인이자 문인화가다.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어느 때는 글을 쓰고 어느 때는 그림을 그린다."라 한다 이 말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운스님의 일상이자 수행이라 여겨진다.
이번에 소개된 시를 들여다보면 네 부류로 나누어져있는데 1부 '시절'이 지난 과거를 회상한다면 2부 '그리움'은 현재의 심정을 들어내는 것이고 3부 '향하여'는 글자대로 미래를 향하고 있다. 4부 '공문'은 선(禪)을 들어내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선의 오묘함에 빠져들게 한다. 그것이, "공문(空門)속으로 공문 속으로…"가 이것이 아닌가 한다.
스님은 가까이 하면서도 멀리만 느껴지는 연민의 대상을 이렇게 노래한다. 『오늘도 늘 대하는 당신이지만 / 나에게 있어 당신은 늘 기다림입니다. // 당신의 그림자가 나를 감싸고 돌때면 / 멀어져만 갈 것을 나는 애태운답니다. // 함께하면서도 함께하지 못함의 아쉬움은 / 영원에 하나가 되어 머물지 못함에서 // 나는 오늘도 가파른 외길 허리를 / 감싸듯 돌고 돌았습니다. // 중략…』다음을 보자 『곱게 화장한 한 떨기 잎이여 / 그대 / 아직 못 다한 노래라면(중략)다시 곱게 단장할 그날 기다리겠지요. // 싱그럽던 지난 날 들 / 그리움으로 벗으려하겠지요 / 그르려니 그렇게 운명이라 넘기려 들겠지요.』가을 노래 중에서 가히 절창이다. 가을 나무는 붉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의 눈부신 설화를 기다린다. 그래서 아직 못 다한 노래를 하면서 '다시 단장할 그날 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저술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화가는 인생을 화폭에 담고 시인은 인생을 노래한다."라고 하였듯 스님은 한 수행자로서 거침없이 산을 보면 산을 노래하고 물을 보면 물을 노래한다. 그곳에는 전혀 꾸밈과 가식이 없다 그저 물 흐르듯 유유자적하다. 그것이 바로 제운스님의 모습이 아닐까? 때 마침 4월 6일~15일(양평 용문사 입구, 친환경 농업 박물관)에서 세 번째 개인 선묵화(禪墨畵) 전시회를 가진다고 한다. 스님은 일찍이 19세에 출가를 했다. 40년이라는 수행이력과 30여년 먹과 벗 하였다. 이미 "시 서 화"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님의 오롯한 수행 결정체가 기대 된다.
서문
인간은 과거를 가지고서 현재를 산다. 현재를 사는 것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기에 기다림이 되고 꿈꾸는 행복인지도 모른다.
그간 틈틈이 써 놓았던 '시'를 이른 봄에 발포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들 삶에 있어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날 시냇물 소리는 여느 때와는 다르다. 꽁꽁 언 인고의 찬 세월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영어(囹圄)의 몸에서부터 해방이 되는 것 같은 것이라 하겠다.
시란 인간의 감성 문을 두드리는 나그네다. 아는 것이 많아도, 반듯하게 잘생겼어도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사람으로 세상에 나왔으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삶은 참으로 슬플 뿐이다.
그러해서 인간은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 늘 행복하기 위해서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되돌아보는 자신은 그림자와 같아서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림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들 삶이 아닐까?
나는 문인 승이면서 수행자다. 수행의 문턱에서 깨달음을 향하기도 하고 군생(群生)을 위함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어느 때는 시를 쓰고 어느 때는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 여긴다. 마치 지구가 스스로를 위해 자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한 권의 시집을 대하며 마음의 감성과 행복을 향한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용문사 說禪堂에서 동안거를 보내며 - 저자
발문
절대자로 향하는 애절한 마음의 기도
1. 출가 사문의 예술
제운 스님은 다재다능하다. 출가 사문(出家沙門)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화(禪畵)를 그리고 산문을 쓴다. 어디 그것뿐인가. 지난 겨울에는 한 묶음의 시를 써서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라면서 내게 보내왔다.
스님이 시를 쓴다는 것은 익히 잘 안다. 이천년도 초입(初入) 스님은 〈현대시〉의 자매지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시단에도 등단한 시인이다. 화가에 서예가에 거기다가 시인으로서도 그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그 사이 십여 권의 책도 발간했다. 작년에는 용문사 뒷방에서 정진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쓴 주옥 같은 산문들을 묶어 『산문의 향기』라는 책도 발간했다. 참으로 그 필력이 대단하다. 1972년 해인사에서 출가를 하고 동화사, 법주사 등에서 수선 안거를 하시다가 문인화가이며 미술 평론가인 석도륜(昔度輪)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하고 문인화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 후 1990년 예술 대제전 초서 부문에서 당선이 되어 문인화가로서 그 빛을 발해 서울 경인 미술관 등에서 <제운 달마 산책전> 등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재는 용문사에서 정진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문화 칼럼리스트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조사, 자장암, 원효암, 도솔암, 정광사 등의 주지를 역임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써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 『달마 산책』, 『산사의 주련』,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 여행』 등 10여 권의 책도 발간하셨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세속의 때와 먼지에 쌓인 나로서는 스님의 그 예술적 끼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 왜냐하면 선화를 하고 붓을 치고 시를 쓰고 산문을 쓰는 일은 곧 스님에게 있어 하나의 생활이며 수행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소질만으로는 곤란하다. 어릴 적부터 내재된 천부적인 재능이 뒷받침이 없다면 시작하기도 어렵다. 나는 어느 날 스님이 시와 산문을 쓰고 선화를 그리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그 타고난 끼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스님의 속가(俗家) 형님이 유명한 소설가인 강경호 씨(한국 소설가 협회 상임 이사)였던 것이다. 그는 모험이나 공상, 낭만 등 소재가 다양한 장편 소설을 썼으며 현실 사회의 마이너리티인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궤적이나 비극적 운명을 그린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이다. 그런 속가의 형을 둔 스님에게도 자연스럽게 문운(文運)이 깃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면, 스님이 왜 글과 시를 공부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가 있다. 피는 속일 수가 없다. 어릴 적부터 스님에게도 문학적 재능이 몸속에 잠재되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출가 사문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쩌면 스님도 뛰어난 문인의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詩)란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시를 한자로 쓰면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 자가 합쳐진 것이다. 결국 시는 절에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절 속에 담긴 풍경과 스님들의 말씀이 모두 시인 것이다. 불교적 사상에 어릴 적부터 심취해 있는 나로서는 스님의 시적 재능과 예술적 재능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2. 절대자에 대한 그리움의 시
오늘도 늘 대하는 당신이지만 /나에게 있어 당신은 늘 기다림입니다. // 당신의 그림자가 나를 감싸고 돌 때면 / 떨어져만 갈 것을 나는 애태운답니다. (중략) 고독의 보석처럼 빛나는 나의 눈물 방울 보일 때면 / 뜨거운 포옹으로 성큼 나에게로 다가와 // 한줄기 빗물 되어 나를 적셔 주는 /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시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중에서
스님은 그지없이 너그럽고 순박하다. 사문(沙門)인데도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날 때면, 머리에 있는 무명초를 깎지 않아 듬성듬성 나 있고, 수염은 고슴도치처럼 나 있다. 일 년 내내 절에서 스님들과 함께 지내는 나로서는 제운 스님의 그런 모습이 때론 낯설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는 그런 스님이 너무나 좋다.
스님은 나를 만나면 언제나 한 뭉치의 그림이나 글, 그리고 시들을 보여 주신다. 아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 때문에 무명초는 물론, 수염 깎을 시간조차 없었으리라. 지독한 노정(露呈)이다. 투박한 경상도 말씨 속에 숨은 스님의 진언(眞言)인 그림과 글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님의 시들을 한밤중에 일어나 꼼꼼하게 읽어 본다. 시인이면서 시를 쓰지 않는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를 쓴 뭉치를 던져 주시는 스님. 나는 그런 스님이 너무 좋고 때론 경이롭다. 그런데 한술 더 떠 나에게 발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연실색을 했다. 내 마음속에서 시의 잔상(殘像)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스님의 시를 읽고 또 한 번 더 실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뿔싸! 출가 사문의 시인데도 불구하고 그 시 속에 담긴 치열한 그리움은 도대체 무엇인가?
스님은 법랍이 40여 년이 넘는 종사(宗師)이다. 그런 스님에게 있어 부처님은 하나의 그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아침저녁으로 매일 곁에 두고서도 가 닿을 수 없는 연인(戀人)인 것처럼 부처님은 멀고 멀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대하는 당신이지만' / 나에게 있어 당신은 늘 기다림입니다.'라고 그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고독이다. 곁에 있으면서도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괴로움은 상상할 수 없는 절망으로 밀려든다. 더욱 무서운 것은 늘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 주시던 부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만 갈 것을 애태우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스님에게 있어 영원한 존재이며 절대자이다. 절대자는 괴롭고 힘이 부쳐 고독의 보석처럼 힘든 눈물을 보일 때는 '뜨거운 포옹으로 성큼 다가와서' 하늘에서 내리는 한줄기 빗물처럼 그러한 고독감을 씻어 준다. 하지만 스님은 또다시 부처님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정작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라고 말이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 편의 연시(戀詩)이다. 이러한 그리움은 다음 시편(詩篇)으로 치열하게 이어진다.
'밤이 멈춘 자리 / 간간이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 / 번뇌의 비늘 떨쳐낸다. // 소림(少林)의 노자(老子)가 / 한 떨기 숲에서 목 내밀고 (중략) 한 티끌 한 홀도 용납되지 못하는 / 공문(空門) 속으로 공문 속으로 // 놓아 버려라, 놓아 버려라 /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어(不捨一法) // 하얀 밤이 다하도록 / 고요와 시름하는 삼무차별(三無差別) // (중략) 본래 구할 것도, 버릴 것도 없는데 / 무엇을 애써 찾나, 허허. - 시 <공문(空門)에서> 중에서
불가(佛家)에서 공문(空門)이란 진리에 드는 관문을 뜻한다. 스님에게 있어 곧 공문은 선화와 시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를 들으며 밤의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자신의 몸을 휘감는 번뇌의 비늘들을 스님은 떨쳐 내고 있다. 그럼, 그 번뇌의 비늘들은 무엇일까? 범속의 사람들에게는 잡다한 영욕과 명예이겠지만, 스님에게 있어서의 번뇌는 바로 성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죄책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스님이 선화를 그리는 것이나 시를 쓰는 일도 부처님에게 향하는 하나의 몸짓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의 노자(老子)가 한 떨기 숲에서 목을 내밀고 기러기와 벗하며' 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스님에게 있어 벗을 삼는 것도 하나의 번뇌이므로 오직 진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방하착(方下着)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놓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공문이며 세상의 진리는 새와 바람, 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인 것이다. 그리하여 스님은 마음과 부처 중생이 다르지 않다는 삼무차별(三無差別)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스님에게 있어 선화와 시는 하나의 진리로 들어가는 공문과 다름없다. 곧 선화와 시는 스님의 마음이다. 다음의 시를 살펴보면 그것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 때때로 생멸을 거듭한다. // (중략) 마음은 어느 때는 / 원숭이처럼 오욕의 나무 아래에서 놀기도 하고 / 어떤 때는 하인이 되고, 주인이 되고 도둑이 되나니 // (중략) 그러한 마음이 작용을 함에 작용을 잊고 / 변하고 변하지 않는 / 항상 신령(神靈)한 방광(放光)을 하느니라. -시 <마음> 중에서
마음은 과거도 없어요 / 마음은 현재도 없어요 / 마음은 미래도 없어요. // (중략) 마음은 본시 있는 것이 아닌데 / 분별하고 시기하고 욕심을 내지요 //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면 / 흐르는 물에서 원숭이의 긴 휘파람 소리를 들어 보세요. -시 <마음에 대하여> 중에서
불교는 마음 공부를 하여 성불을 이루는 데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놈은 언제나 흐르는 물과 같아서 변화무쌍해서 알 수가 없다. 또한 생겼다가 사라진다. 오욕의 나무에서 노는 원숭이와 같고 하인이 되었다가 주인이 되고 때론 도둑놈이 되는 것이다. 출가 사문에게 있어서도 분별하고 시기하고 욕심을 내는 그 마음 작용을 무시해야만 성불을 이룰 수가 있다. 그래서 스님은 그 마음을 제어하고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선화와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스님을 생각해 보면 그는 선화처럼 살고 시처럼 산다. 경상도의 말투가 그렇고 덥수룩한 스님의 수염이 그렇고 무명초가 한없이 자라도 깎지 않는 스님의 모습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은 본분인 출가 사문의 길을 허투루 가지 않는다. 이른 새벽이면 반드시 부처님 전에 예불을 보고 사경을 하듯 스님은 하루하루를 부처님만을 생각하면서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3. 서정과 선의 깊이를 노래하다.
스님들은 세속의 사람들과 달리, 평생을 자연 속에서 파묻혀 수행 생활을 하며 산다. 그것이 바로 스님들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는 스님들의 시각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그 스님이 선화와 시를 쓰는 예인(藝人)이라면 어떨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四季)가 흐르는 산속에서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매일 깊은 명상에 빠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가 생각날 것이다.
아마 제운 스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봄이면 봄의 전령인 꽃향기를 맡고, 여름이면 푸른 나무들을 집 삼고, 가을이면 붉은 낙엽들을 보고, 겨울이면 얼음장 같은 찬 물소리에 몸과 마음을 씻고 사는 스님에게 있어 자연은 곧 시이고 노래이다. 그래서 스님의 시 소재들은 대개 <나무>, <꽃>, <이슬>, <구름>, <그리움>들이다. 다음의 시를 읽어 보자.
'곱게 화장한 한 떨기 잎이여 / 그대 / 아직 못 다한 노래라면 (중략) 다시 곱게 단장할 그날 기다리겠지요 // 싱그럽던 지난날들 / 그리움으로 벗으려 하겠지요 / 그러려니 그렇게 운명이라 넘기려 들겠지요. -시 <가을 노래> 중에서
가히 절창이다. 가을 나무는 붉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의 눈부신 설화(雪花)를 기다린다. 그래서 '아직 못 다한 노래'를 하면서 '다시 곱게 단장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날은 바로 설화를 피우는 겨울이며 이러한 고난을 겪고 봄에 파란 생동의 잎을 피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무들의 운명이다. 사람의 목숨은 한 번 가면 그만이지만 나무는 자신의 몸을 벗고 허물을 벗고 또 다른 생을 기다리면서 수백 년을 산다. 자연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스님은 그것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다시 이렇게 노래한다.
'너의 마른 모습이 애처롭다 / 엄동설한이 야속하지도 않은 듯 / 눈이 와도 그 자리를 지키고 / 비가 와도 늘 그 자리 / 너의 모습이 애처롭다. // 앙상한 너의 살붙이들 / 비늘 떨어져 나가듯이 / 오늘도 그렇게 떨어지겠지 // 나무여 / 나무여 / 겨울 나무여! -시 <겨울 나무> 전문
자연을 바라보는 스님의 눈은 한 편의 선화요 시이다. 겨울 나무가 비가 오나 눈이오나 엄동설한을 견디고 꿋꿋하게 그 자리에 묵묵하게 서 있는 모습이 스님의 눈에는 애처롭게 보인다. 심지어 자신의 살붙이들인 잎과 목피(木皮)들이 떨어져 나가도 한 생을 견디고 나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스님의 마음은 가이 없이 측은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삶임을 예감하고 스님은 '나무여 나무여 겨울 나무여'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님은 읽는 이가 시를 잘 이해하도록 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갈무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스님의 시세계는 슬프디 슬픈 격조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시는 어렵다. 그리고 스님의 시는 놀랍게도 솔직하다. 그 속에는 미사여구가 담겨져 있지 않아 마음을 그대로 울리는 하나의 선시(禪詩)이다. 다음의 시를 보자.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 창살은 빗물에 젖어 / 영계(靈溪)의 물소리 더해도 / 조주(趙州) 차 한잔에 / 주객(主客)의 경계 끊어지니 / 삼세불(三世佛)도 그대로요 / 범성(凡聖)도 분명해서 / 청산(靑山)은 부동(不動)이요 / 유수(流水)는 바람이어라. /어젯밤 관음(觀音)의 소식을 아는가, 난초 잎에 이슬 꽃이어라.' -시 <이슬 꽃> 전문
이 시에서 등장하는 조주 선사는 중국 당나라 때의 임제종스님이다. 조주 스님은 납자(衲子)를 접함에 '차'로서 법거량(法擧量)을 많이 하셨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조주의 무(無)'자 화두 등이 대표적인 공안인데 스님들이 차를 함께하면서 주고받는 거래가 조주의 공안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끽다(喫茶)를 하는 순간, 온갖 의단과 근심을 놓아 버리면 경계가 끊어져 주객이 없게 된다.
제운 스님은 이 조주의 경계를 두고 '이슬 꽃'이란 한 편의 시로서 승화를 시킨 것이다. 그렇다 차 한 잔에 삼라만상의 경계가 있으며 차 한 잔에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범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청산은 현상으로서, 푸르기도 하지만 부동(不動)이라 주인도 되며, 어느 때는 진여(眞如)며, 법성(法性)이 된다.'고 표현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시는 자연에서 선의 깊이로 한 단계 나아간 시라고 할 수 있다. 곧 아침 이슬이 관음(觀音)의 소식이며 선임을 깨닫는 시인의 눈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또 다른 한 편의 시를 감상해보자.
무엇이 금강이냐 / 미친개는 몽둥이가 제법이지 // 무엇이 마음인가/ 졸릴 때 황 촛불 앞에 얼굴을 대 보거라 // 무엇이 도인가 / 짜증나게 굴지 마라 / 갈증 나면 냉수 한 잔이면 어떨까 // 이것저것 분별해 봐도 / 남는 것 없고 / 있다 없다 해도 오가는 것 없는데 // 허상(虛想)의 공깃돌만 세는구나. 쯧! -시, <도리(道理)> 전문
조소에 가깝게 세상을 바라보는 한 편의 선시이다. 그렇다. 진리(금강)란 없다. 그저 미친개에게 몽둥이가 제격이듯이 온전한 마음이란 없다. 그저 졸릴 때 잠자고 배고플 때 밥 먹는 것이 도(道)임을 밝히고 있다. 아무리 영욕과 명예를 좇아가도 오직 그것은 남는 것이 없고 허상의 공깃돌이라는 것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생(生)이란 스님의 시처럼,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이며 객(客)일 뿐 주인이 되지 못한다. 다만, 대자연의 이치를 좇아 짧은 생을 살 뿐이다.
4. 그림과 시는 성불을 위한 화두
스님은 낡은 갤로퍼 차를 끌고 외출을 한다. 스님의 사계가 그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덜덜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차 소리처럼, 스님의 마음속엔 세계의 일상이 모두 선화이며 시이다.
나는 시인으로서 불교인으로서 그런 스님을 한없이 좋아한다. 그런 스님께서 또 한 권의 시집을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 나는 그런 스님의 모습을 보고 언제나 깊은 감동을 받는다. 때론 스님 앞에 서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삶은 하나의 화두이다. 스님에게 있어 그림과 시 또한 화두인 것이다. 그 화두를 붙잡고 출가 사문으로서 30여 년 간을 밤낮 없이 정진하는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새삼 좋아진다. 그가 바로 부처이고 불보살이 아니겠는가.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자의에 의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나 역시 타의에 의해 세상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생의 참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제운 스님이 늘 존경스럽다.
올 겨울 눈이 내리면 스님이 계신 용문사에 가서 스님과 함께 겨울 나무에 핀 설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차 한잔 하고 돌아오고 싶다.
- 시인 정성욱(호는 법안) 동아일보,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글이 있는 달마 선화가로 유명한 제운스님이 이번에는 시집을 냈다.
지난해 에세이"산문의 향기"에 이어 나온 시집이다. 스님은 그동안 열권이 넘는 저서와 개인 선화전시를 가진 시인이자 문인화가다. 스님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어느 때는 글을 쓰고 어느 때는 그림을 그린다."라 한다 이 말은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제운스님의 일상이자 수행이라 여겨진다.
이번에 소개된 시를 들여다보면 네 부류로 나누어져있는데 1부 '시절'이 지난 과거를 회상한다면 2부 '그리움'은 현재의 심정을 들어내는 것이고 3부 '향하여'는 글자대로 미래를 향하고 있다. 4부 '공문'은 선(禪)을 들어내는 것으로 독자들에게 선의 오묘함에 빠져들게 한다. 그것이, "공문(空門)속으로 공문 속으로…"가 이것이 아닌가 한다.
스님은 가까이 하면서도 멀리만 느껴지는 연민의 대상을 이렇게 노래한다. 『오늘도 늘 대하는 당신이지만 / 나에게 있어 당신은 늘 기다림입니다. // 당신의 그림자가 나를 감싸고 돌때면 / 멀어져만 갈 것을 나는 애태운답니다. // 함께하면서도 함께하지 못함의 아쉬움은 / 영원에 하나가 되어 머물지 못함에서 // 나는 오늘도 가파른 외길 허리를 / 감싸듯 돌고 돌았습니다. // 중략…』다음을 보자 『곱게 화장한 한 떨기 잎이여 / 그대 / 아직 못 다한 노래라면(중략)다시 곱게 단장할 그날 기다리겠지요. // 싱그럽던 지난 날 들 / 그리움으로 벗으려하겠지요 / 그르려니 그렇게 운명이라 넘기려 들겠지요.』가을 노래 중에서 가히 절창이다. 가을 나무는 붉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의 눈부신 설화를 기다린다. 그래서 아직 못 다한 노래를 하면서 '다시 단장할 그날 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스님이 저술한 책의 한 구절을 인용해보자 "화가는 인생을 화폭에 담고 시인은 인생을 노래한다."라고 하였듯 스님은 한 수행자로서 거침없이 산을 보면 산을 노래하고 물을 보면 물을 노래한다. 그곳에는 전혀 꾸밈과 가식이 없다 그저 물 흐르듯 유유자적하다. 그것이 바로 제운스님의 모습이 아닐까? 때 마침 4월 6일~15일(양평 용문사 입구, 친환경 농업 박물관)에서 세 번째 개인 선묵화(禪墨畵) 전시회를 가진다고 한다. 스님은 일찍이 19세에 출가를 했다. 40년이라는 수행이력과 30여년 먹과 벗 하였다. 이미 "시 서 화"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님의 오롯한 수행 결정체가 기대 된다.
서문
인간은 과거를 가지고서 현재를 산다. 현재를 사는 것은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미래란 아직 오지 않았기에 기다림이 되고 꿈꾸는 행복인지도 모른다.
그간 틈틈이 써 놓았던 '시'를 이른 봄에 발포하게 되었다. 이것은 우리들 삶에 있어서 처음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봄날 시냇물 소리는 여느 때와는 다르다. 꽁꽁 언 인고의 찬 세월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마치 영어(囹圄)의 몸에서부터 해방이 되는 것 같은 것이라 하겠다.
시란 인간의 감성 문을 두드리는 나그네다. 아는 것이 많아도, 반듯하게 잘생겼어도 감성이 메마른 사람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없다.
사람으로 세상에 나왔으면 사람답게 살아야지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삶은 참으로 슬플 뿐이다.
그러해서 인간은 늘 행복하기를 바란다. 늘 행복하기 위해서는 늘 자신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되돌아보는 자신은 그림자와 같아서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다. 그럼에도 그림자를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 오늘 우리들 삶이 아닐까?
나는 문인 승이면서 수행자다. 수행의 문턱에서 깨달음을 향하기도 하고 군생(群生)을 위함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어느 때는 시를 쓰고 어느 때는 그림을 그린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 여긴다. 마치 지구가 스스로를 위해 자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한 권의 시집을 대하며 마음의 감성과 행복을 향한 한 걸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용문사 說禪堂에서 동안거를 보내며 - 저자
발문
절대자로 향하는 애절한 마음의 기도
1. 출가 사문의 예술
제운 스님은 다재다능하다. 출가 사문(出家沙門)인데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선화(禪畵)를 그리고 산문을 쓴다. 어디 그것뿐인가. 지난 겨울에는 한 묶음의 시를 써서 시집을 출간할 계획이라면서 내게 보내왔다.
스님이 시를 쓴다는 것은 익히 잘 안다. 이천년도 초입(初入) 스님은 〈현대시〉의 자매지인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시단에도 등단한 시인이다. 화가에 서예가에 거기다가 시인으로서도 그 이름을 올렸던 것이다. 그 사이 십여 권의 책도 발간했다. 작년에는 용문사 뒷방에서 정진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쓴 주옥 같은 산문들을 묶어 『산문의 향기』라는 책도 발간했다. 참으로 그 필력이 대단하다. 1972년 해인사에서 출가를 하고 동화사, 법주사 등에서 수선 안거를 하시다가 문인화가이며 미술 평론가인 석도륜(昔度輪)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하고 문인화가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 후 1990년 예술 대제전 초서 부문에서 당선이 되어 문인화가로서 그 빛을 발해 서울 경인 미술관 등에서 <제운 달마 산책전> 등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현재는 용문사에서 정진을 하고 있으며 인터넷 신문 데일리안 문화 칼럼리스트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적조사, 자장암, 원효암, 도솔암, 정광사 등의 주지를 역임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써 『너는 금생에 사람노릇 하지 마라』, 『달마 산책』, 『산사의 주련』,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 여행』 등 10여 권의 책도 발간하셨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다는 것은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세속의 때와 먼지에 쌓인 나로서는 스님의 그 예술적 끼를 제대로 따라갈 수 없다. 왜냐하면 선화를 하고 붓을 치고 시를 쓰고 산문을 쓰는 일은 곧 스님에게 있어 하나의 생활이며 수행이기 때문이다.
사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개인적인 소질만으로는 곤란하다. 어릴 적부터 내재된 천부적인 재능이 뒷받침이 없다면 시작하기도 어렵다. 나는 어느 날 스님이 시와 산문을 쓰고 선화를 그리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도대체 그 타고난 끼는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스님의 속가(俗家) 형님이 유명한 소설가인 강경호 씨(한국 소설가 협회 상임 이사)였던 것이다. 그는 모험이나 공상, 낭만 등 소재가 다양한 장편 소설을 썼으며 현실 사회의 마이너리티인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의 궤적이나 비극적 운명을 그린 단편 소설들을 발표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은 소설가이다. 그런 속가의 형을 둔 스님에게도 자연스럽게 문운(文運)이 깃들 수밖에 없다. 그렇게 보면, 스님이 왜 글과 시를 공부했는지를 단번에 알 수가 있다. 피는 속일 수가 없다. 어릴 적부터 스님에게도 문학적 재능이 몸속에 잠재되어 있었음을 알 수가 있다. 출가 사문의 길을 걷지 않았다면, 어쩌면 스님도 뛰어난 문인의 길을 걸어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시(詩)란 자연이나 인생에 대하여 일어나는 감흥과 사상 따위를 함축적이고 운율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시를 한자로 쓰면 말씀 언(言) 변에 절 사(寺) 자가 합쳐진 것이다. 결국 시는 절에서 흘러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절 속에 담긴 풍경과 스님들의 말씀이 모두 시인 것이다. 불교적 사상에 어릴 적부터 심취해 있는 나로서는 스님의 시적 재능과 예술적 재능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2. 절대자에 대한 그리움의 시
오늘도 늘 대하는 당신이지만 /나에게 있어 당신은 늘 기다림입니다. // 당신의 그림자가 나를 감싸고 돌 때면 / 떨어져만 갈 것을 나는 애태운답니다. (중략) 고독의 보석처럼 빛나는 나의 눈물 방울 보일 때면 / 뜨거운 포옹으로 성큼 나에게로 다가와 // 한줄기 빗물 되어 나를 적셔 주는 /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시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중에서
스님은 그지없이 너그럽고 순박하다. 사문(沙門)인데도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날 때면, 머리에 있는 무명초를 깎지 않아 듬성듬성 나 있고, 수염은 고슴도치처럼 나 있다. 일 년 내내 절에서 스님들과 함께 지내는 나로서는 제운 스님의 그런 모습이 때론 낯설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나는 그런 스님이 너무나 좋다.
스님은 나를 만나면 언제나 한 뭉치의 그림이나 글, 그리고 시들을 보여 주신다. 아마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시간 때문에 무명초는 물론, 수염 깎을 시간조차 없었으리라. 지독한 노정(露呈)이다. 투박한 경상도 말씨 속에 숨은 스님의 진언(眞言)인 그림과 글들은 그렇게 탄생했다.
스님의 시들을 한밤중에 일어나 꼼꼼하게 읽어 본다. 시인이면서 시를 쓰지 않는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시를 쓴 뭉치를 던져 주시는 스님. 나는 그런 스님이 너무 좋고 때론 경이롭다. 그런데 한술 더 떠 나에게 발문을 써 달라는 요청을 받고 아연실색을 했다. 내 마음속에서 시의 잔상(殘像)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스님의 시를 읽고 또 한 번 더 실색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뿔싸! 출가 사문의 시인데도 불구하고 그 시 속에 담긴 치열한 그리움은 도대체 무엇인가?
스님은 법랍이 40여 년이 넘는 종사(宗師)이다. 그런 스님에게 있어 부처님은 하나의 그리움의 대상이다. 하지만 그 긴 세월 동안 아침저녁으로 매일 곁에 두고서도 가 닿을 수 없는 연인(戀人)인 것처럼 부처님은 멀고 멀다. 그래서 스님은 '오늘도 대하는 당신이지만' / 나에게 있어 당신은 늘 기다림입니다.'라고 그 심정을 토로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고독이다. 곁에 있으면서도 이름을 부를 수 없는 괴로움은 상상할 수 없는 절망으로 밀려든다. 더욱 무서운 것은 늘 자신의 그림자가 되어 주시던 부처님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져만 갈 것을 애태우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런 스님에게 있어 영원한 존재이며 절대자이다. 절대자는 괴롭고 힘이 부쳐 고독의 보석처럼 힘든 눈물을 보일 때는 '뜨거운 포옹으로 성큼 다가와서' 하늘에서 내리는 한줄기 빗물처럼 그러한 고독감을 씻어 준다. 하지만 스님은 또다시 부처님에게 이렇게 되묻는다. 정작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라고 말이다. 참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한 편의 연시(戀詩)이다. 이러한 그리움은 다음 시편(詩篇)으로 치열하게 이어진다.
'밤이 멈춘 자리 / 간간이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 / 번뇌의 비늘 떨쳐낸다. // 소림(少林)의 노자(老子)가 / 한 떨기 숲에서 목 내밀고 (중략) 한 티끌 한 홀도 용납되지 못하는 / 공문(空門) 속으로 공문 속으로 // 놓아 버려라, 놓아 버려라 / 무엇 하나 버릴 것 없어(不捨一法) // 하얀 밤이 다하도록 / 고요와 시름하는 삼무차별(三無差別) // (중략) 본래 구할 것도, 버릴 것도 없는데 / 무엇을 애써 찾나, 허허. - 시 <공문(空門)에서> 중에서
불가(佛家)에서 공문(空門)이란 진리에 드는 관문을 뜻한다. 스님에게 있어 곧 공문은 선화와 시이다. 간간이 들려오는 휘파람새 소리를 들으며 밤의 시간이 흘러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 자신의 몸을 휘감는 번뇌의 비늘들을 스님은 떨쳐 내고 있다. 그럼, 그 번뇌의 비늘들은 무엇일까? 범속의 사람들에게는 잡다한 영욕과 명예이겠지만, 스님에게 있어서의 번뇌는 바로 성불을 이루기 위한 공부를 하지 못하는 죄책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스님이 선화를 그리는 것이나 시를 쓰는 일도 부처님에게 향하는 하나의 몸짓이다. 이것은 마치 '중국의 노자(老子)가 한 떨기 숲에서 목을 내밀고 기러기와 벗하며' 사는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스님에게 있어 벗을 삼는 것도 하나의 번뇌이므로 오직 진리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방하착(方下着)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놓지 않고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공문이며 세상의 진리는 새와 바람, 풀, 그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불사일법(不捨一法)인 것이다. 그리하여 스님은 마음과 부처 중생이 다르지 않다는 삼무차별(三無差別)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므로 스님에게 있어 선화와 시는 하나의 진리로 들어가는 공문과 다름없다. 곧 선화와 시는 스님의 마음이다. 다음의 시를 살펴보면 그것은 더 확연하게 드러난다.
'마음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 때때로 생멸을 거듭한다. // (중략) 마음은 어느 때는 / 원숭이처럼 오욕의 나무 아래에서 놀기도 하고 / 어떤 때는 하인이 되고, 주인이 되고 도둑이 되나니 // (중략) 그러한 마음이 작용을 함에 작용을 잊고 / 변하고 변하지 않는 / 항상 신령(神靈)한 방광(放光)을 하느니라. -시 <마음> 중에서
마음은 과거도 없어요 / 마음은 현재도 없어요 / 마음은 미래도 없어요. // (중략) 마음은 본시 있는 것이 아닌데 / 분별하고 시기하고 욕심을 내지요 //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면 / 흐르는 물에서 원숭이의 긴 휘파람 소리를 들어 보세요. -시 <마음에 대하여> 중에서
불교는 마음 공부를 하여 성불을 이루는 데 있다. 그런데 그 마음이란 놈은 언제나 흐르는 물과 같아서 변화무쌍해서 알 수가 없다. 또한 생겼다가 사라진다. 오욕의 나무에서 노는 원숭이와 같고 하인이 되었다가 주인이 되고 때론 도둑놈이 되는 것이다. 출가 사문에게 있어서도 분별하고 시기하고 욕심을 내는 그 마음 작용을 무시해야만 성불을 이룰 수가 있다. 그래서 스님은 그 마음을 제어하고 다스리기 위해 끊임없이 선화와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내가 스님을 생각해 보면 그는 선화처럼 살고 시처럼 산다. 경상도의 말투가 그렇고 덥수룩한 스님의 수염이 그렇고 무명초가 한없이 자라도 깎지 않는 스님의 모습이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스님은 본분인 출가 사문의 길을 허투루 가지 않는다. 이른 새벽이면 반드시 부처님 전에 예불을 보고 사경을 하듯 스님은 하루하루를 부처님만을 생각하면서 수행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3. 서정과 선의 깊이를 노래하다.
스님들은 세속의 사람들과 달리, 평생을 자연 속에서 파묻혀 수행 생활을 하며 산다. 그것이 바로 스님들의 삶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연을 바라보는 스님들의 시각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더구나 그 스님이 선화와 시를 쓰는 예인(藝人)이라면 어떨까?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四季)가 흐르는 산속에서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매일 깊은 명상에 빠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가 생각날 것이다.
아마 제운 스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봄이면 봄의 전령인 꽃향기를 맡고, 여름이면 푸른 나무들을 집 삼고, 가을이면 붉은 낙엽들을 보고, 겨울이면 얼음장 같은 찬 물소리에 몸과 마음을 씻고 사는 스님에게 있어 자연은 곧 시이고 노래이다. 그래서 스님의 시 소재들은 대개 <나무>, <꽃>, <이슬>, <구름>, <그리움>들이다. 다음의 시를 읽어 보자.
'곱게 화장한 한 떨기 잎이여 / 그대 / 아직 못 다한 노래라면 (중략) 다시 곱게 단장할 그날 기다리겠지요 // 싱그럽던 지난날들 / 그리움으로 벗으려 하겠지요 / 그러려니 그렇게 운명이라 넘기려 들겠지요. -시 <가을 노래> 중에서
가히 절창이다. 가을 나무는 붉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의 눈부신 설화(雪花)를 기다린다. 그래서 '아직 못 다한 노래'를 하면서 '다시 곱게 단장할 그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날은 바로 설화를 피우는 겨울이며 이러한 고난을 겪고 봄에 파란 생동의 잎을 피우게 된다. 이것이 바로 나무들의 운명이다. 사람의 목숨은 한 번 가면 그만이지만 나무는 자신의 몸을 벗고 허물을 벗고 또 다른 생을 기다리면서 수백 년을 산다. 자연은 그래서 위대한 것이다. 스님은 그것을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고 다시 이렇게 노래한다.
'너의 마른 모습이 애처롭다 / 엄동설한이 야속하지도 않은 듯 / 눈이 와도 그 자리를 지키고 / 비가 와도 늘 그 자리 / 너의 모습이 애처롭다. // 앙상한 너의 살붙이들 / 비늘 떨어져 나가듯이 / 오늘도 그렇게 떨어지겠지 // 나무여 / 나무여 / 겨울 나무여! -시 <겨울 나무> 전문
자연을 바라보는 스님의 눈은 한 편의 선화요 시이다. 겨울 나무가 비가 오나 눈이오나 엄동설한을 견디고 꿋꿋하게 그 자리에 묵묵하게 서 있는 모습이 스님의 눈에는 애처롭게 보인다. 심지어 자신의 살붙이들인 잎과 목피(木皮)들이 떨어져 나가도 한 생을 견디고 나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는 스님의 마음은 가이 없이 측은하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삶임을 예감하고 스님은 '나무여 나무여 겨울 나무여'하고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스님은 읽는 이가 시를 잘 이해하도록 언어를 적재적소에 잘 갈무리하고 있다. 말하자면 스님의 시세계는 슬프디 슬픈 격조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것이다. 남이 이해할 수 없는 시는 어렵다. 그리고 스님의 시는 놀랍게도 솔직하다. 그 속에는 미사여구가 담겨져 있지 않아 마음을 그대로 울리는 하나의 선시(禪詩)이다. 다음의 시를 보자.
'저녁연기 피어오르고 / 창살은 빗물에 젖어 / 영계(靈溪)의 물소리 더해도 / 조주(趙州) 차 한잔에 / 주객(主客)의 경계 끊어지니 / 삼세불(三世佛)도 그대로요 / 범성(凡聖)도 분명해서 / 청산(靑山)은 부동(不動)이요 / 유수(流水)는 바람이어라. /어젯밤 관음(觀音)의 소식을 아는가, 난초 잎에 이슬 꽃이어라.' -시 <이슬 꽃> 전문
이 시에서 등장하는 조주 선사는 중국 당나라 때의 임제종스님이다. 조주 스님은 납자(衲子)를 접함에 '차'로서 법거량(法擧量)을 많이 하셨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조주의 무(無)'자 화두 등이 대표적인 공안인데 스님들이 차를 함께하면서 주고받는 거래가 조주의 공안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끽다(喫茶)를 하는 순간, 온갖 의단과 근심을 놓아 버리면 경계가 끊어져 주객이 없게 된다.
제운 스님은 이 조주의 경계를 두고 '이슬 꽃'이란 한 편의 시로서 승화를 시킨 것이다. 그렇다 차 한 잔에 삼라만상의 경계가 있으며 차 한 잔에 깨달으면 부처요, 깨닫지 못하면 범부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은 '청산은 현상으로서, 푸르기도 하지만 부동(不動)이라 주인도 되며, 어느 때는 진여(眞如)며, 법성(法性)이 된다.'고 표현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시는 자연에서 선의 깊이로 한 단계 나아간 시라고 할 수 있다. 곧 아침 이슬이 관음(觀音)의 소식이며 선임을 깨닫는 시인의 눈은 결코 예사롭지 않다. 또 다른 한 편의 시를 감상해보자.
무엇이 금강이냐 / 미친개는 몽둥이가 제법이지 // 무엇이 마음인가/ 졸릴 때 황 촛불 앞에 얼굴을 대 보거라 // 무엇이 도인가 / 짜증나게 굴지 마라 / 갈증 나면 냉수 한 잔이면 어떨까 // 이것저것 분별해 봐도 / 남는 것 없고 / 있다 없다 해도 오가는 것 없는데 // 허상(虛想)의 공깃돌만 세는구나. 쯧! -시, <도리(道理)> 전문
조소에 가깝게 세상을 바라보는 한 편의 선시이다. 그렇다. 진리(금강)란 없다. 그저 미친개에게 몽둥이가 제격이듯이 온전한 마음이란 없다. 그저 졸릴 때 잠자고 배고플 때 밥 먹는 것이 도(道)임을 밝히고 있다. 아무리 영욕과 명예를 좇아가도 오직 그것은 남는 것이 없고 허상의 공깃돌이라는 것을 전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생(生)이란 스님의 시처럼, 하나의 허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그저 자연의 일부이며 객(客)일 뿐 주인이 되지 못한다. 다만, 대자연의 이치를 좇아 짧은 생을 살 뿐이다.
4. 그림과 시는 성불을 위한 화두
스님은 낡은 갤로퍼 차를 끌고 외출을 한다. 스님의 사계가 그 속에 모두 들어 있다. 덜덜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차 소리처럼, 스님의 마음속엔 세계의 일상이 모두 선화이며 시이다.
나는 시인으로서 불교인으로서 그런 스님을 한없이 좋아한다. 그런 스님께서 또 한 권의 시집을 묶어 세상에 내놓는다. 나는 그런 스님의 모습을 보고 언제나 깊은 감동을 받는다. 때론 스님 앞에 서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삶은 하나의 화두이다. 스님에게 있어 그림과 시 또한 화두인 것이다. 그 화두를 붙잡고 출가 사문으로서 30여 년 간을 밤낮 없이 정진하는 스님의 모습을 바라보면 새삼 좋아진다. 그가 바로 부처이고 불보살이 아니겠는가.
요즘 세상 사람들은 자의에 의해 세상을 살아가지 못한다. 나 역시 타의에 의해 세상을 살고 있는 한 사람이다. 그런 나에게 생의 참 모습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여 주는 제운 스님이 늘 존경스럽다.
올 겨울 눈이 내리면 스님이 계신 용문사에 가서 스님과 함께 겨울 나무에 핀 설화를 보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 차 한잔 하고 돌아오고 싶다.
- 시인 정성욱(호는 법안) 동아일보,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목차
목차
서문 | 4
1부 시절
봄 나무여 | 13
봄소식 | 14
봄의 찬가 | 15
용문사의 밤 | 16
비 오는 날 | 17
눈썹 | 20
알 수 없는 마음 | 22
무심 | 23
가을 송(頌) | 24
구름 벗 | 25
칠석(七夕) | 26
겨울나무여 | 28
한 생각 | 29
행과 불행 | 33
꼭두각시의 슬픔 | 35
주검에 대하여 | 37
자화(自畵) | 39
2부 그리움
그리움 | 43
자장암 | 47
눈 밤 | 48
용문사 은행나무 | 50
가을의 노래 | 51
그대 생각 | 52
세월 앞에서 | 54
생각이 난다 | 56
편지 | 59
기다림 | 60
적조암 | 61
작우 후일(昨雨後日) | 62
작가 K를 위해 | 63
신묘년의 슬픔 | 65
하얀 밤 | 67
거친 황야에서 | 69
3부 향하여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 73
얼굴 | 75
행복 | 76
산등성이 올라 | 78
마음 | 80
괴로움 | 81
인생의 여정 | 82
사월 초파일 | 83
조건 없는 사랑 | 84
나에게 있어 | 86
이것이니라 | 87
경인이여 새해여라 | 88
하얀 훗날 | 90
남기는 글 | 92
이별 | 96
한 해를 보내며…… | 98
4부 공문(空門)
공문(空門)에서 | 103
이슬 꽃 | 105
마음에 대하여 | 107
좌선(坐禪) | 110
나 | 111
알 수 있었을 테지요 | 114
인간 | 115
깨달음 | 116
도리(道理) | 117
불식(不識) | 118
묘유(妙有) | 120
무아무인(無我無人) | 122
달마 환생 | 124
공(空)과 유(有) | 126
태고 보우국사 참선명(參禪名)에 대하여 | 127
되돌아보면 | 130
나, 제운(堤雲) | 133
발문_ 절대자로 향하는 애절한 마음의 기도 - 시인 정성욱 | 134
1부 시절
봄 나무여 | 13
봄소식 | 14
봄의 찬가 | 15
용문사의 밤 | 16
비 오는 날 | 17
눈썹 | 20
알 수 없는 마음 | 22
무심 | 23
가을 송(頌) | 24
구름 벗 | 25
칠석(七夕) | 26
겨울나무여 | 28
한 생각 | 29
행과 불행 | 33
꼭두각시의 슬픔 | 35
주검에 대하여 | 37
자화(自畵) | 39
2부 그리움
그리움 | 43
자장암 | 47
눈 밤 | 48
용문사 은행나무 | 50
가을의 노래 | 51
그대 생각 | 52
세월 앞에서 | 54
생각이 난다 | 56
편지 | 59
기다림 | 60
적조암 | 61
작우 후일(昨雨後日) | 62
작가 K를 위해 | 63
신묘년의 슬픔 | 65
하얀 밤 | 67
거친 황야에서 | 69
3부 향하여
당신은 나에게 무엇입니까? | 73
얼굴 | 75
행복 | 76
산등성이 올라 | 78
마음 | 80
괴로움 | 81
인생의 여정 | 82
사월 초파일 | 83
조건 없는 사랑 | 84
나에게 있어 | 86
이것이니라 | 87
경인이여 새해여라 | 88
하얀 훗날 | 90
남기는 글 | 92
이별 | 96
한 해를 보내며…… | 98
4부 공문(空門)
공문(空門)에서 | 103
이슬 꽃 | 105
마음에 대하여 | 107
좌선(坐禪) | 110
나 | 111
알 수 있었을 테지요 | 114
인간 | 115
깨달음 | 116
도리(道理) | 117
불식(不識) | 118
묘유(妙有) | 120
무아무인(無我無人) | 122
달마 환생 | 124
공(空)과 유(有) | 126
태고 보우국사 참선명(參禪名)에 대하여 | 127
되돌아보면 | 130
나, 제운(堤雲) | 133
발문_ 절대자로 향하는 애절한 마음의 기도 - 시인 정성욱 | 134
저자
저자
제운 스님
저자 제운堤雲 스님(본명 : 강광호姜光浩)은
부산 출생. 1972년 해인사 입산.
동화사 법주사 등에서 수선(修禪). 범어사 승가대학에서 사교 과정 이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 전공.
제2교구 본사 용주사 교무국장, 수원지검 소년 선도 위원, 조계종 중앙포교사 역임.
일붕삼장대학원·적십자 연수원·화성 지역 불교 청년회 등에서 강설 및 지도 법사 역임.
적조사·자장암·원효암·도솔암·정광사 등 주지 역임.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昔度輪) 선생 사사.
'90 예술 대제전' 초서 부문 당선. 시 전문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현대시)』 추천 완료.
현 용문사에서 정진.
전시 : 경인미술관, 제운 달마 산책전 등 개인전 2회.
저서 : 『너는 금생에 사람 노릇 하지 마라』, 『달마 산책』, 『오가 밥상』, 『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 버리게』,
『채근담』, 『내 마음의 이야기』, 『산사의 주련』(공저), 『그대 마음을 가져오라』,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 여행』,
『산문의 향기』 등이 있다.
부산 출생. 1972년 해인사 입산.
동화사 법주사 등에서 수선(修禪). 범어사 승가대학에서 사교 과정 이수.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 불교사 전공.
제2교구 본사 용주사 교무국장, 수원지검 소년 선도 위원, 조계종 중앙포교사 역임.
일붕삼장대학원·적십자 연수원·화성 지역 불교 청년회 등에서 강설 및 지도 법사 역임.
적조사·자장암·원효암·도솔암·정광사 등 주지 역임.
문인화가, 평론가 석도륜(昔度輪) 선생 사사.
'90 예술 대제전' 초서 부문 당선. 시 전문지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현대시)』 추천 완료.
현 용문사에서 정진.
전시 : 경인미술관, 제운 달마 산책전 등 개인전 2회.
저서 : 『너는 금생에 사람 노릇 하지 마라』, 『달마 산책』, 『오가 밥상』, 『그대 안에 수미산도 다 놓아 버리게』,
『채근담』, 『내 마음의 이야기』, 『산사의 주련』(공저), 『그대 마음을 가져오라』, 『나를 찾아 떠나는 선시 여행』,
『산문의 향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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