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애 인간문제(국어과 선생님이 뽑은)(북앤북 논술문학 읽기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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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과 선생님이 뽑은『강경애ㆍ인간문제』를 수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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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줄거리
선비의 아버지는 마름 소작인으로 용연 마을의 지주 정덕호의 일꾼인데, 그의 심부름으로 빚을 받으러 갔다가 소작인을 도와준 죄로 덕호에게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죽는다. 그 후 어머니마저 가슴앓이 병으로 죽자 선비는 정덕호의 집에 얹혀살며 집안일을 돕게 된다. 덕호의 꼬임에 정조를 잃은 선비는 그의 집을 도망쳐 나와 덕호 첩이었던 간난이를 찾아 서울로 간다.
선비를 좋아하던 소작인 첫째는 친구의 빚 때문에 덕호에게 반항하다가 그의 술책으로 소작을 모두 떼이고 고향을 떠나 인천의 부두 노동자가 된다.
신철은 덕호의 딸 옥점이를 보러 왔다가 선비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옥점과의 결혼 강요로 부모와 갈등 끝에 가출하여 인천 부두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첫째를 만나 그를 강한 노동자로 키우기 위해 학습을 시킨다.
서울에 올라온 선비는 간난이를 만나 일본인이 경영하는 인천의 방적 공장에 취직하여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 공장은 수많은 여공들을 기숙사에 수용하고 갖은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
간난이는 자본가의 횡포와 노동자가 겪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비밀활동을 추진한다. 후에 부두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검거되자 그 일을 선비에게 맡기고 공장을 탈출한다. 간난이가 나간 후 선비는 공장 감독의 유혹을 뿌리치며 고된 노동에 혹사 당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돼 죽는다.
첫째는 신철을 만나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고 부두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지만, 죽은 선비를 보고 인간이 해결하려 한 인간 문제는 신철과 같은 지식인에게 찾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정리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인간문제>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의 농촌과 도시, 농민과 노동자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항일 투쟁을 직접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 농민 운동과 고달프게 살아가는 도시 근로자의 궁핍한 삶과 노동 운동이라는 두 가지 제도의 모순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무지하지만 선량한 선비와 간난이, 첫째 등에게 대응하는, 지주이자 면장인 정덕호 일가로 대표되는 착취계급 사이의 갈등과 대립 관계를 보여 준다. 덕호네 일꾼으로서 남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그가 던진 주판에 머리를 맞아 죽은 선비의 아버지와, 덕호의 꼬임에 넘어가 순결을 빼앗기고 성적으로 농락 당한 끝에 도망치는 선비와, 타작 마당에서 소작인들을 선동하여 지주에게 대들다가 도망을 가는 첫째, 신철이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덕호의 딸 옥점이 등의 인물은 친일 지주와 농민들 사이의 계급 모순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후반부는 농촌의 주요 인물들이 인천이라는 공간으로 무대를 옮겨 일제를 상대로 한 근로자의 노동 운동을 보여 준다. 먼저 상경한 간난이와 함께 인천에 대동방적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는 선비, 인천에서 부두 노동일을 하는 첫째, 노동자들의 의식을 조직화하는 신철이 등이 모두 인천으로 모인다. 방적 공장 노동자와 부두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작업과 방적 공장의 기숙사 생활, 여공들의 성적 착취, 공장 내의 의식화와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등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빼어나다.
가난한 일꾼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주인에게 짓밟혀 고향을 떠나 방직 공장의 여공으로 일하다가 폐결핵으로 죽는 '선비'의 일생이 그 시대 상항을 고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 보여 주면서 그 고통과 비극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제시하고 있다. 양분화된 소설의 구성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 시기의 인천 부두와 방적 공장의 묘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연재 직전 작가는 "이 시대에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인간이 누구며, 그 인간으로서의 갈 바를 지적하려 했다." 고 밝혔다.
강경애 연보
강경애(姜敬愛 1906~1943) 여류소설가.
1906년 황해도 장연군 송화에서 출생. 5세 때 아버지 사망. 7세 때 재가 하는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주.
1913년 춘향전〉으로 한글을 배우고 구소설을 독파한 후 도토리 소설장 이란 별명을 얻음.
1921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 친목회 독서조 등에 가 입.
1923년 숭의여학교 3학년 때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주도함. 이 사건으로 퇴학 당한 후 서울 동덕여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공부.
1924년 양주동이 주재하던 〈금성〉지에 짤막한 시 〈책 한 권〉을 강가마라는 필 명으로 발표. 그해 9월 장연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하고 가난 한 아이들을 위한 '흥풍 야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침.
1925년 〈조선문단〉에 〈가을〉 발표.
1926년 〈조선일보〉에 시 〈다림불〉 발표.
1929년 근우회 장연 지회의 서무부장을 맡음. 〈조선일보〉에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 발표.
1930년 〈조선여성의 밟을 길〉 시론을 〈조선일보〉 부인문예란에 발표.
1931년 〈조선일보〉에 필명 강악설로 〈양주동 군의 신춘평론-반박을 위한 반 박〉 발표. 장연 군청에 고원으로 부임한 수원 농림학교 출신인 황해도 황 주 사람 장하일과 연애 후 결혼. 그해 6월 간도로 이주 후 8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혜성〉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 연재.
1932년 〈신여성〉에 〈간도 풍경〉, 〈동광〉에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 〈삼천리〉에 〈그 여자〉, 〈신동아〉에 〈꽃송이 같은 첫 눈〉 발표.
1933년 〈신여성〉에 수필 〈커다란 문제 하나〉 발표. 〈조선일보〉에 〈봄의 서 곡-포효. 규환〉 발표 후 일제에게 압수 당함. 〈제일선〉에 〈부자〉 발 표. 〈동아일보〉에 〈간도의 봄〉, 〈신동아〉에 〈나의 유년시절〉, 〈신 가정〉에 〈원고 첫 낭독〉, 〈여름 밤 농촌 풍경 점점〉 발표. 9월에 다 시 간도로 이주 후 〈신가정〉에 〈채전〉, 〈축구전〉, 〈송년사〉 발표. 〈신동아〉에 〈이역의 달밤〉 발표.
1934년 〈신가정〉에 〈유무〉, 〈소금〉 발표. 〈청년조선〉에 〈동정〉 발표. 〈동아일보〉에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인간문제〉를 120회 연재. 〈조선중앙일보〉에 〈간도〉 발표. 〈표모의 마음〉 발표. 〈신동 아〉에 〈장혁주 선생에게〉 발표.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어촌점묘〉 발표.
1936년 간도에서 안수길과 함께 '북향'의 동인에 가담. 〈조선일보〉에 〈지하촌〉 발표. 〈오사카 마이니치(大阪每日新問)〉 조선판에 〈장산곶〉 발표. 〈신 동아〉에 〈산남〉 발표. 〈동아일보〉에 〈불타산 C군에게〉 발표. 〈삼 천리〉에 〈봄을 맞는 우리 집 창문〉 발표.
1937년 〈여성〉에 〈어둠〉, 〈마약〉, 〈기억에 남는 몽금포〉 발표.
1938년 〈삼천리〉에 〈검둥이〉 발표.
1939년 지병으로 고향인 장연에 돌아옴.
1940년 경성제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음. 〈신세기〉에 〈내가 좋아하는 솔〉 발표. 〈인문평론〉에 〈약수〉 발표.
1942년 동흥중학 교도주임으로 있던 남편 장하일이 학교 사직 후 장연으로 돌아 옴.
1944년 4월 26일, 지병이 악화되어 38년의 짧은 삶으로 생을 마감.
선비의 아버지는 마름 소작인으로 용연 마을의 지주 정덕호의 일꾼인데, 그의 심부름으로 빚을 받으러 갔다가 소작인을 도와준 죄로 덕호에게 맞은 것이 원인이 되어 죽는다. 그 후 어머니마저 가슴앓이 병으로 죽자 선비는 정덕호의 집에 얹혀살며 집안일을 돕게 된다. 덕호의 꼬임에 정조를 잃은 선비는 그의 집을 도망쳐 나와 덕호 첩이었던 간난이를 찾아 서울로 간다.
선비를 좋아하던 소작인 첫째는 친구의 빚 때문에 덕호에게 반항하다가 그의 술책으로 소작을 모두 떼이고 고향을 떠나 인천의 부두 노동자가 된다.
신철은 덕호의 딸 옥점이를 보러 왔다가 선비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는 옥점과의 결혼 강요로 부모와 갈등 끝에 가출하여 인천 부두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첫째를 만나 그를 강한 노동자로 키우기 위해 학습을 시킨다.
서울에 올라온 선비는 간난이를 만나 일본인이 경영하는 인천의 방적 공장에 취직하여 새 삶을 시작하려 한다. 이 공장은 수많은 여공들을 기숙사에 수용하고 갖은 방법으로 노동력을 착취한다.
간난이는 자본가의 횡포와 노동자가 겪는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 비밀활동을 추진한다. 후에 부두 노동자들의 시위가 일어나고 사람들이 검거되자 그 일을 선비에게 맡기고 공장을 탈출한다. 간난이가 나간 후 선비는 공장 감독의 유혹을 뿌리치며 고된 노동에 혹사 당하다가 폐결핵이 악화돼 죽는다.
첫째는 신철을 만나 자신의 현실을 인식하고 부두 노동자의 파업을 이끌지만, 죽은 선비를 보고 인간이 해결하려 한 인간 문제는 신철과 같은 지식인에게 찾을 것이 아니라 노동자 자신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작품정리
1934년 동아일보에 연재된 <인간문제>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의 농촌과 도시, 농민과 노동자의 현실을 배경으로 하여 항일 투쟁을 직접 다룰 수 없는 상황에서, 농민 운동과 고달프게 살아가는 도시 근로자의 궁핍한 삶과 노동 운동이라는 두 가지 제도의 모순을 다룬 장편 소설이다.
작품의 전반부는 무지하지만 선량한 선비와 간난이, 첫째 등에게 대응하는, 지주이자 면장인 정덕호 일가로 대표되는 착취계급 사이의 갈등과 대립 관계를 보여 준다. 덕호네 일꾼으로서 남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그가 던진 주판에 머리를 맞아 죽은 선비의 아버지와, 덕호의 꼬임에 넘어가 순결을 빼앗기고 성적으로 농락 당한 끝에 도망치는 선비와, 타작 마당에서 소작인들을 선동하여 지주에게 대들다가 도망을 가는 첫째, 신철이의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덕호의 딸 옥점이 등의 인물은 친일 지주와 농민들 사이의 계급 모순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후반부는 농촌의 주요 인물들이 인천이라는 공간으로 무대를 옮겨 일제를 상대로 한 근로자의 노동 운동을 보여 준다. 먼저 상경한 간난이와 함께 인천에 대동방적 공장의 노동자로 일하는 선비, 인천에서 부두 노동일을 하는 첫째, 노동자들의 의식을 조직화하는 신철이 등이 모두 인천으로 모인다. 방적 공장 노동자와 부두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작업과 방적 공장의 기숙사 생활, 여공들의 성적 착취, 공장 내의 의식화와 노동자들 사이의 연대 등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빼어나다.
가난한 일꾼의 딸로 태어나 조실부모하고 주인에게 짓밟혀 고향을 떠나 방직 공장의 여공으로 일하다가 폐결핵으로 죽는 '선비'의 일생이 그 시대 상항을 고발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은 일제 강점기의 농민과 노동자들이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살았는지 보여 주면서 그 고통과 비극이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제시하고 있다. 양분화된 소설의 구성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그 시기의 인천 부두와 방적 공장의 묘사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 연재 직전 작가는 "이 시대에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인간이 누구며, 그 인간으로서의 갈 바를 지적하려 했다." 고 밝혔다.
강경애 연보
강경애(姜敬愛 1906~1943) 여류소설가.
1906년 황해도 장연군 송화에서 출생. 5세 때 아버지 사망. 7세 때 재가 하는 어머니를 따라 장연으로 이주.
1913년 춘향전〉으로 한글을 배우고 구소설을 독파한 후 도토리 소설장 이란 별명을 얻음.
1921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 친목회 독서조 등에 가 입.
1923년 숭의여학교 3학년 때 학생들의 동맹휴학을 주도함. 이 사건으로 퇴학 당한 후 서울 동덕여학교 3학년에 편입하여 1년간 공부.
1924년 양주동이 주재하던 〈금성〉지에 짤막한 시 〈책 한 권〉을 강가마라는 필 명으로 발표. 그해 9월 장연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하고 가난 한 아이들을 위한 '흥풍 야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을 가르침.
1925년 〈조선문단〉에 〈가을〉 발표.
1926년 〈조선일보〉에 시 〈다림불〉 발표.
1929년 근우회 장연 지회의 서무부장을 맡음. 〈조선일보〉에 〈염상섭씨의 논설 〈명일의 길〉을 읽고〉 발표.
1930년 〈조선여성의 밟을 길〉 시론을 〈조선일보〉 부인문예란에 발표.
1931년 〈조선일보〉에 필명 강악설로 〈양주동 군의 신춘평론-반박을 위한 반 박〉 발표. 장연 군청에 고원으로 부임한 수원 농림학교 출신인 황해도 황 주 사람 장하일과 연애 후 결혼. 그해 6월 간도로 이주 후 8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혜성〉에 장편소설 〈어머니와 딸〉 연재.
1932년 〈신여성〉에 〈간도 풍경〉, 〈동광〉에 〈간도를 등지면서〉, 〈간도야 잘 있거라〉, 〈삼천리〉에 〈그 여자〉, 〈신동아〉에 〈꽃송이 같은 첫 눈〉 발표.
1933년 〈신여성〉에 수필 〈커다란 문제 하나〉 발표. 〈조선일보〉에 〈봄의 서 곡-포효. 규환〉 발표 후 일제에게 압수 당함. 〈제일선〉에 〈부자〉 발 표. 〈동아일보〉에 〈간도의 봄〉, 〈신동아〉에 〈나의 유년시절〉, 〈신 가정〉에 〈원고 첫 낭독〉, 〈여름 밤 농촌 풍경 점점〉 발표. 9월에 다 시 간도로 이주 후 〈신가정〉에 〈채전〉, 〈축구전〉, 〈송년사〉 발표. 〈신동아〉에 〈이역의 달밤〉 발표.
1934년 〈신가정〉에 〈유무〉, 〈소금〉 발표. 〈청년조선〉에 〈동정〉 발표. 〈동아일보〉에 식민지 시대 최고의 리얼리즘 소설 〈인간문제〉를 120회 연재. 〈조선중앙일보〉에 〈간도〉 발표. 〈표모의 마음〉 발표. 〈신동 아〉에 〈장혁주 선생에게〉 발표.
1935년 〈조선중앙일보〉에 〈어촌점묘〉 발표.
1936년 간도에서 안수길과 함께 '북향'의 동인에 가담. 〈조선일보〉에 〈지하촌〉 발표. 〈오사카 마이니치(大阪每日新問)〉 조선판에 〈장산곶〉 발표. 〈신 동아〉에 〈산남〉 발표. 〈동아일보〉에 〈불타산 C군에게〉 발표. 〈삼 천리〉에 〈봄을 맞는 우리 집 창문〉 발표.
1937년 〈여성〉에 〈어둠〉, 〈마약〉, 〈기억에 남는 몽금포〉 발표.
1938년 〈삼천리〉에 〈검둥이〉 발표.
1939년 지병으로 고향인 장연에 돌아옴.
1940년 경성제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음. 〈신세기〉에 〈내가 좋아하는 솔〉 발표. 〈인문평론〉에 〈약수〉 발표.
1942년 동흥중학 교도주임으로 있던 남편 장하일이 학교 사직 후 장연으로 돌아 옴.
1944년 4월 26일, 지병이 악화되어 38년의 짧은 삶으로 생을 마감.
목차
목차
머리말
목차
1편 소화기와 관련된 병
2편 혈액과 혈관에 관련된 병
3편 세균과 관련된 병
4편 자연요법
참고자료
맺음말
목차
1편 소화기와 관련된 병
2편 혈액과 혈관에 관련된 병
3편 세균과 관련된 병
4편 자연요법
참고자료
맺음말
저자
저자
강경애
저자 강경애는 (姜敬愛 1906~1943) 여류소설가.
강경애는 황해도 장연 송화 출생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힘들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다 최도갑의 후처로 들어간 모친을 따라 7세 때 장연으로 이주하였다.
1921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기독교적 보수주의 교육체제의 간섭에 반발해 동맹 휴학을 이끌다가 중퇴하였다. 장연 태생의 동경 유학생 양주동을 만나 연애와 동거를 하고 서울의 동덕여학교에 편입하여 약 1년간 수학한 후 그와 헤어지고 장연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하고 시를 발표한다. '흥풍 야학교'를 세워 아동들을 지도하고 1929년 항일여성운동단체였던 '근우회'에서 여성운동을 펼친다.
1931년 《혜성》에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고 문단에 등장한다. 1932년 장하일(張河一)과 결혼하고 간도로 이주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단편 소설 〈부자〉 〈채전〉 〈소금〉 〈지하촌〉 등을 발표하고, 1934년 동아일보에 장편 소설 〈인간문제〉를 연재한다. 1935년 안수길, 박영준과 간도에서 '북향(北鄕)' 동인 활동을 하고 1939년에는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했다. 그 후 어려운 집안 경제와 건강 악화로 작품을 쓰지 못하다가 1940년 병이 악화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하던 중 3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축구전〉 〈유무〉 〈모자〉 〈원고료 이백 원〉 〈해고〉 〈산남〉 〈어둠〉 〈지하촌〉 〈인간문제〉 등이 있다.
강경애는 황해도 장연 송화 출생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읜 뒤 힘들고 가난한 유년기를 보내다 최도갑의 후처로 들어간 모친을 따라 7세 때 장연으로 이주하였다.
1921년 형부의 도움으로 평양 숭의여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기독교적 보수주의 교육체제의 간섭에 반발해 동맹 휴학을 이끌다가 중퇴하였다. 장연 태생의 동경 유학생 양주동을 만나 연애와 동거를 하고 서울의 동덕여학교에 편입하여 약 1년간 수학한 후 그와 헤어지고 장연으로 돌아왔다. 고향으로 돌아와 본격적으로 문학공부를 하고 시를 발표한다. '흥풍 야학교'를 세워 아동들을 지도하고 1929년 항일여성운동단체였던 '근우회'에서 여성운동을 펼친다.
1931년 《혜성》에 장편 소설 〈어머니와 딸〉을 발표하고 문단에 등장한다. 1932년 장하일(張河一)과 결혼하고 간도로 이주한 후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단편 소설 〈부자〉 〈채전〉 〈소금〉 〈지하촌〉 등을 발표하고, 1934년 동아일보에 장편 소설 〈인간문제〉를 연재한다. 1935년 안수길, 박영준과 간도에서 '북향(北鄕)' 동인 활동을 하고 1939년에는 조선일보 간도지국장을 역임했다. 그 후 어려운 집안 경제와 건강 악화로 작품을 쓰지 못하다가 1940년 병이 악화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하던 중 38년의 짧은 생을 마감한다.
주요 작품으로는 〈축구전〉 〈유무〉 〈모자〉 〈원고료 이백 원〉 〈해고〉 〈산남〉 〈어둠〉 〈지하촌〉 〈인간문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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