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주식회사
앎, 불구, 흩어져 존재하기의 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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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연구실에 뛰어든 한 인류학자의 다채로운 연구실 관찰기이자
장애와 돌봄, 인간-기계 관계, 창의성과 협업, 자율성과 의존에 관한 독창적인 민족지
휠체어를 탄 몸에 갇혀 있지만 우주의 가장 먼 곳을 여행하는 경이로운 지성. 스티븐 호킹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이다. 스물한 살에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을 진단받고, 1985년 기관 절개 수술 이후에는 목소리마저 잃었지만 그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가 되었다. 언론과 대중매체는 그를 '물질을 뛰어넘은 정신'이라 묘사하며 갈릴레오와 뉴턴, 아인슈타인의 계보에 위치시킨다. 그렇게 호킹은 순수한 정신의 세계에서 무심하게 관찰과 계산을 수행하는 '완벽한 과학자', 즉 거의 '육체 없는 존재'가 된다.
실제로 호킹의 몸은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손으로 방정식을 쓰거나 다이어그램을 그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론을 만들고, 논문과 책을 출판하고, 강연을 하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혹은, '그'가 진짜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과학기술학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과학 지식이 단순히 합리적 개인의 고립된 정신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라 현저하게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과정임을 드러냄으로써, 과학기술학은 지식의 생산 조건과 환경을 더욱 선명하고 풍부하게 포착해왔다.
과학기술학 연구자이자 인류학자인 엘렌 미알레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호킹을 하나의 극단적 사례로 '선택'한다. 과학은 순수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신화를 구현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누구보다 인간과 기술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호킹은 앎의 주체에 관한 과학기술학적 질문에 더할나위 없이 적절한 연구 대상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미알레는 호킹 본인을 비롯해 비서, 간호사, 조교, 대학원생, 동료 물리학자, 언론인, 영화제작자, 기록 보관자, 예술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자 등과 진행한 100회가 넘는 인터뷰와 방대한 민족지 조사를 통해 호킹을 호킹이게 하는 조건을 묻는다.
브뤼노 라투르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과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를 잇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연구로 위치시킨다. 이 책은 넓은 공간에 퍼진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권력을 형성하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그 네트워크 안에서 호킹이라는 주체는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물음으로써 라투르의 연구를 확장한다. 또한 이 책은 호킹이 진정 누구인지를 말해주거나 그를 온전히 포착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그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호킹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는 그 신기한 경험 속에서 독자들은 '생각하는 나'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애와 돌봄, 인간-기계 관계, 창의성과 협업, 자율성과 의존에 관한 독창적인 민족지
휠체어를 탄 몸에 갇혀 있지만 우주의 가장 먼 곳을 여행하는 경이로운 지성. 스티븐 호킹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이다. 스물한 살에 근위축성측삭경화증(ALS)을 진단받고, 1985년 기관 절개 수술 이후에는 목소리마저 잃었지만 그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가 되었다. 언론과 대중매체는 그를 '물질을 뛰어넘은 정신'이라 묘사하며 갈릴레오와 뉴턴, 아인슈타인의 계보에 위치시킨다. 그렇게 호킹은 순수한 정신의 세계에서 무심하게 관찰과 계산을 수행하는 '완벽한 과학자', 즉 거의 '육체 없는 존재'가 된다.
실제로 호킹의 몸은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손으로 방정식을 쓰거나 다이어그램을 그릴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론을 만들고, 논문과 책을 출판하고, 강연을 하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혹은, '그'가 진짜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은 과학기술학이 오랫동안 천착해온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과학 지식이 단순히 합리적 개인의 고립된 정신에서 나온 산물이 아니라 현저하게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과정임을 드러냄으로써, 과학기술학은 지식의 생산 조건과 환경을 더욱 선명하고 풍부하게 포착해왔다.
과학기술학 연구자이자 인류학자인 엘렌 미알레는 바로 이 지점에서 호킹을 하나의 극단적 사례로 '선택'한다. 과학은 순수한 정신의 산물이라는 신화를 구현한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누구보다 인간과 기술의 도움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의존적인 존재라는 점에서, 호킹은 앎의 주체에 관한 과학기술학적 질문에 더할나위 없이 적절한 연구 대상이 되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미알레는 호킹 본인을 비롯해 비서, 간호사, 조교, 대학원생, 동료 물리학자, 언론인, 영화제작자, 기록 보관자, 예술가,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자 등과 진행한 100회가 넘는 인터뷰와 방대한 민족지 조사를 통해 호킹을 호킹이게 하는 조건을 묻는다.
브뤼노 라투르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과 《프랑스의 파스퇴르화》를 잇는 행위자-네트워크 이론(ANT) 연구로 위치시킨다. 이 책은 넓은 공간에 퍼진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권력을 형성하는지 보여줌과 동시에, 그 네트워크 안에서 호킹이라는 주체는 어떻게 성립하는지를 물음으로써 라투르의 연구를 확장한다. 또한 이 책은 호킹이 진정 누구인지를 말해주거나 그를 온전히 포착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다. 그보다는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그 가능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호킹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하는 그 신기한 경험 속에서 독자들은 '생각하는 나'를 전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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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음성 합성기, 컴퓨터, 비서, 조교, 간호사………
기계-사람-사물의 네트워크에서 드러나는 천재 과학자의 초상
이 책은 모두 일곱 장으로 구성된다. 독자는 각 장별로 연행하고, 출판하고, 재현하고, 대화하고, 기념하고, 육화하는 행위자로서 호킹을 만나게 되는데, 정확히는 그러한 호킹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집합체들을 먼저 만나게 될 것이다. 호킹의 연구실에서 출발하는 1장에서 저자는 컴퓨터, 음성 합성기, 비서, 대학원생 조교와 간호사로 이루어지는 두터운 역량의 네트워크를 소개한다. 호킹의 '확장된 신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네트워크는 눈썹의 미세한 떨림을 읽고, '예'와 '아니오'를 통해 의사소통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리고 그가 여행하고 강연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함으로써 말과 움직임을 잃은 한 남자를 '우리 모두가 아는 천재'로 변환시킨다.
2장에서는 과학 지식의 생산 현장으로 들어간다. 호킹의 논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면 사고와 증명, 계산, 발견 같은 '순수한 지적 활동'조차 한 사람의 머릿속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학생, 동료, 컴퓨터, 학과와 대학이라는 시스템까지 단순히 천재를 보조하는 주변부가 아니라 호킹이 이론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확장된 신체의 일부가 된다.
3장에서 저자는 "호킹은 기하학적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파고든다. 손으로 직접 수식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호킹은 역설적으로 가장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론물리학에서조차 몸이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가시화한다. 길고 복잡한 계산을 하는 몸짓(손)을 만들어낼 수 없는 호킹은 기하학적 이미지로 사유하며, 이 과정에서 다이어그램과 그 다이어그램을 (호킹의 요구에 맞게) 그리고 수정할 수 있는 학생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4장에서는 호킹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을 중심으로 미디어와 기자들을 통해 '천재 과학자 호킹'이라는 이미지가 반복 재현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기서 앞서 살펴봤던 수많은 인간-비인간 집합체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며, '홀로 우주와 대면하는 천재'의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자신에 관한 페르소나를 재생산하는 데 호킹 자신이 어떻게 관여하고 개입하는지 역시 흥미롭게 드러난다.
5장에서 마침내 미알레는 호킹을 만난다. 그러나 미알레는 판독 불가능한 호킹의 신체와 컴퓨터로 매개되는 상호작용에 적응하지 못하며, 그의 현존 앞에서 호킹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히려 단독으로 그와 대면할 때보다 모두(그의 확장된 신체)가 그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을 때 호킹은 더 '입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보인다.
6장에서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고든무어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호킹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기록 보관자들은 호킹의 글과 책, 사물과 디지털 기록을 분류하고 재조직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엇이 호킹의 것이고 아닌지, 무엇이 보관할 만한 것이고 아닌지를 선별하는 기록 보관자의 바쁜 손놀림을 따라가며 우리는 호킹의 몸이 그의 기록들과 함께 분산되고 그의 정체성이 아카이빙을 통해 불멸화되는 과정을 엿본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 저자는 호킹이 자신의 조각상과 마주하는 기묘한 장면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 조각상은 호킹의 학과 건물 앞, 호킹의 연구실 아래에 전시될 예정이다. 실제 호킹과 그를 본떠 만든 '호킹'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되비추며 각자의 차이와 닮음을 어지럽게 오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원본이 복제품을 통해 육화되고 구성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타자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라면
연결망 속에서 어디까지가 '나'인가?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호킹을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성들(기계들, 보조자들, 학생들, 동료들, 다이어그램들, 언론인들, 기록 보관자, 예술가, 조각상 등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현존을 구성하는 것들은 호킹이 생각하고 행위하며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그의 현존을 지속하고 혹은 불멸화할 수 있게 해주는 그의 확장된 신체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호킹이 사실상 확장된 신체들의 집합체라면, 거기서 호킹 개인은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즉, 한 사람의 능력이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에 분산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를 계속해서 고유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호킹을 이루는 이 물질적-집합적 과정 속에서 호킹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 과정을 통해 호킹의 특이성을 파악한다는 데 있다. 호킹이 고유한 존재인 것은 그가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세계 바깥에, 순수한 정신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가장 물질화되고 가장 집합체화되고, 가장 분산되어 있고 가장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유하고 특이한 것이다. 미알레는 이 역설적인 존재를 '분산되고-중앙화된 주체(distributed-centered subject)'?라고 부른다.
주체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는 자족적인 개인도 아니고, 네트워크에 의해 완전히 소멸하는 허상도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관계 속으로 자신의 역량을 분산하면서도 그 관계들을 통해 다시 하나의 중심으로 구성되는 존재다. 이 지점에서 호킹은 고독한 과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경영자를 닮았다. 이때 기업은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해 작동하는 집합체로서 명백히 그의 확장된 신체다. 즉 분산되고-중앙화된 주체로서 호킹은 '호킹 주식회사'로서 특이성을 얻는다.
브뤼노 라투르를 잇는 독창적인 과학기술학 연구에서 시작해
과학사, 과학철학, 인류학, 사회학, 장애학으로 확장되는 사유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를 중심으로 발전한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연구의 프레임이자 방법론으로 끝까지 밀고나간 보기 드문 경험연구이다. 실제 라투르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 같은 과학실험실 민족지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같은 '천재 과학자' 연구의 '스티븐 호킹 버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이 라투르나 ANT의 연구 프레임을 그저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 인간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네트워크 안에서 한 명의 주체가 어떻게 성립하는지까지 탐구하고자 한다.
이처럼 이 책은 기본적으로 ANT를 충실하게 적용하고 확장한 연구이지만, 출간 이후에는 과학기술학의 경계를 넘어 과학사, 과학철학, 인류학, 사회학, 장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다. 브뤼노 라투르는 이 책이 "추상을 생성해내는 물질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인가?"라는 과학기술학의 가장 까다로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고 있다고 했으며, 주디스 버틀러는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례를 통해 오늘날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특히 이 책은 장애학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히 생산적인 연구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저자가 호킹의 장애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그가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장애가 평소에 보이지 않던 과학적 실천의 조건을 더 선명하게 가시화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알레는 호킹에게 결핍된 능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호킹의 능력이 어떤 관계들을 통해 가능해지는가에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장애가 특정한 신체적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기술적, 사회적 환경의 결핍 문제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천재 과학자 한 사람을 추적한 이 독창적인 민족지 연구는 결국 우리가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믿어온 바로 그 '인간'의 경계를 다시 그린다. 과학과 기술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장애와 돌봄, 인간과 기계의 관계, 창의성과 협업, 개인의 자율성과 의존에 관해 고민해온 독자라면 《호킹 주식회사》에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질문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기계-사람-사물의 네트워크에서 드러나는 천재 과학자의 초상
이 책은 모두 일곱 장으로 구성된다. 독자는 각 장별로 연행하고, 출판하고, 재현하고, 대화하고, 기념하고, 육화하는 행위자로서 호킹을 만나게 되는데, 정확히는 그러한 호킹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집합체들을 먼저 만나게 될 것이다. 호킹의 연구실에서 출발하는 1장에서 저자는 컴퓨터, 음성 합성기, 비서, 대학원생 조교와 간호사로 이루어지는 두터운 역량의 네트워크를 소개한다. 호킹의 '확장된 신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이 네트워크는 눈썹의 미세한 떨림을 읽고, '예'와 '아니오'를 통해 의사소통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그리고 그가 여행하고 강연할 수 있게 하는 환경을 사전에 프로그래밍함으로써 말과 움직임을 잃은 한 남자를 '우리 모두가 아는 천재'로 변환시킨다.
2장에서는 과학 지식의 생산 현장으로 들어간다. 호킹의 논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따라가면 사고와 증명, 계산, 발견 같은 '순수한 지적 활동'조차 한 사람의 머릿속에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학생, 동료, 컴퓨터, 학과와 대학이라는 시스템까지 단순히 천재를 보조하는 주변부가 아니라 호킹이 이론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확장된 신체의 일부가 된다.
3장에서 저자는 "호킹은 기하학적으로 생각한다"라는 말의 의미를 파고든다. 손으로 직접 수식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수 없는 호킹은 역설적으로 가장 추상적으로 보이는 이론물리학에서조차 몸이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을 가시화한다. 길고 복잡한 계산을 하는 몸짓(손)을 만들어낼 수 없는 호킹은 기하학적 이미지로 사유하며, 이 과정에서 다이어그램과 그 다이어그램을 (호킹의 요구에 맞게) 그리고 수정할 수 있는 학생의 존재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4장에서는 호킹에 관한 다큐멘터리 제작 현장을 중심으로 미디어와 기자들을 통해 '천재 과학자 호킹'이라는 이미지가 반복 재현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여기서 앞서 살펴봤던 수많은 인간-비인간 집합체가 화면 밖으로 사라지며, '홀로 우주와 대면하는 천재'의 이미지는 더욱 선명해진다. 자신에 관한 페르소나를 재생산하는 데 호킹 자신이 어떻게 관여하고 개입하는지 역시 흥미롭게 드러난다.
5장에서 마침내 미알레는 호킹을 만난다. 그러나 미알레는 판독 불가능한 호킹의 신체와 컴퓨터로 매개되는 상호작용에 적응하지 못하며, 그의 현존 앞에서 호킹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파악하기 어려운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히려 단독으로 그와 대면할 때보다 모두(그의 확장된 신체)가 그를 중심으로 일하고 있을 때 호킹은 더 '입체적'이고 '실제적'으로 보인다.
6장에서는 케임브리지대학의 고든무어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호킹 아카이브 프로젝트를 들여다본다. 그곳에서 기록 보관자들은 호킹의 글과 책, 사물과 디지털 기록을 분류하고 재조직하고 보존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무엇이 호킹의 것이고 아닌지, 무엇이 보관할 만한 것이고 아닌지를 선별하는 기록 보관자의 바쁜 손놀림을 따라가며 우리는 호킹의 몸이 그의 기록들과 함께 분산되고 그의 정체성이 아카이빙을 통해 불멸화되는 과정을 엿본다.
마지막으로 7장에서 저자는 호킹이 자신의 조각상과 마주하는 기묘한 장면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 조각상은 호킹의 학과 건물 앞, 호킹의 연구실 아래에 전시될 예정이다. 실제 호킹과 그를 본떠 만든 '호킹'은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되비추며 각자의 차이와 닮음을 어지럽게 오간다. 이를 통해 저자는 원본이 복제품을 통해 육화되고 구성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타자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존재라면
연결망 속에서 어디까지가 '나'인가?
저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호킹을 구성하는 다양한 물질성들(기계들, 보조자들, 학생들, 동료들, 다이어그램들, 언론인들, 기록 보관자, 예술가, 조각상 등등)을 묘사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현존을 구성하는 것들은 호킹이 생각하고 행위하며 존재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그의 현존을 지속하고 혹은 불멸화할 수 있게 해주는 그의 확장된 신체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질문이 떠오른다. 이처럼 우리가 아는 호킹이 사실상 확장된 신체들의 집합체라면, 거기서 호킹 개인은 사라져버리는 것일까? 즉, 한 사람의 능력이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에 분산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를 계속해서 고유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호킹을 이루는 이 물질적-집합적 과정 속에서 호킹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바로 그 과정을 통해 호킹의 특이성을 파악한다는 데 있다. 호킹이 고유한 존재인 것은 그가 사회적이고 물질적인 세계 바깥에, 순수한 정신으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가 가장 물질화되고 가장 집합체화되고, 가장 분산되어 있고 가장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고유하고 특이한 것이다. 미알레는 이 역설적인 존재를 '분산되고-중앙화된 주체(distributed-centered subject)'?라고 부른다.
주체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는 자족적인 개인도 아니고, 네트워크에 의해 완전히 소멸하는 허상도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관계 속으로 자신의 역량을 분산하면서도 그 관계들을 통해 다시 하나의 중심으로 구성되는 존재다. 이 지점에서 호킹은 고독한 과학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수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경영자를 닮았다. 이때 기업은 수많은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해 작동하는 집합체로서 명백히 그의 확장된 신체다. 즉 분산되고-중앙화된 주체로서 호킹은 '호킹 주식회사'로서 특이성을 얻는다.
브뤼노 라투르를 잇는 독창적인 과학기술학 연구에서 시작해
과학사, 과학철학, 인류학, 사회학, 장애학으로 확장되는 사유
이 책은 브뤼노 라투르를 중심으로 발전한 행위자-네트워크 이론을 연구의 프레임이자 방법론으로 끝까지 밀고나간 보기 드문 경험연구이다. 실제 라투르의 제자이기도 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라투르의 《실험실 생활》 같은 과학실험실 민족지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프랑스의 파스퇴르화》 같은 '천재 과학자' 연구의 '스티븐 호킹 버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이 라투르나 ANT의 연구 프레임을 그저 답습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한 인간을 중심으로 한 광범위한 행위자-네트워크가 어떻게 조직되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네트워크 안에서 한 명의 주체가 어떻게 성립하는지까지 탐구하고자 한다.
이처럼 이 책은 기본적으로 ANT를 충실하게 적용하고 확장한 연구이지만, 출간 이후에는 과학기술학의 경계를 넘어 과학사, 과학철학, 인류학, 사회학, 장애학 등 여러 분야에서 주목받았다. 브뤼노 라투르는 이 책이 "추상을 생성해내는 물질적 네트워크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인가?"라는 과학기술학의 가장 까다로운 질문에 현명하게 답하고 있다고 했으며, 주디스 버틀러는 "스티븐 호킹이라는 사례를 통해 오늘날 '인간'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특히 이 책은 장애학 연구자들에게도 상당히 생산적인 연구 사례로 받아들여졌다. 저자가 호킹의 장애를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그가 '장애를 극복한 위대한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장애가 평소에 보이지 않던 과학적 실천의 조건을 더 선명하게 가시화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알레는 호킹에게 결핍된 능력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가 관심 있는 것은 호킹의 능력이 어떤 관계들을 통해 가능해지는가에 있다. 이는 독자들에게 장애가 특정한 신체적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특정한 기술적, 사회적 환경의 결핍 문제일 수도 있다는 암시를 준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천재 과학자 한 사람을 추적한 이 독창적인 민족지 연구는 결국 우리가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믿어온 바로 그 '인간'의 경계를 다시 그린다. 과학과 기술에 관심 있는 독자뿐 아니라 장애와 돌봄, 인간과 기계의 관계, 창의성과 협업, 개인의 자율성과 의존에 관해 고민해온 독자라면 《호킹 주식회사》에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오는 질문을 만나게 될 것이다.
목차
목차
추천의 말
들어가며
ㆍ 1장 보조자들과 기계들
ㆍ 2장 학생들
ㆍ 3장 다이어그램
ㆍ 4장 미디어
ㆍ 5장 호킹의 현존 읽기: 자기를 지워내는 남자와의 인터뷰
ㆍ 6장 영원의 시작점에서: '호킹'을 아카이브하기
ㆍ 7장 생각하는 사람: 호킹이 '호킹'을 만나다
결론 되풀이되는 질문: 전형에서 암호로
나가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찾아보기
들어가며
ㆍ 1장 보조자들과 기계들
ㆍ 2장 학생들
ㆍ 3장 다이어그램
ㆍ 4장 미디어
ㆍ 5장 호킹의 현존 읽기: 자기를 지워내는 남자와의 인터뷰
ㆍ 6장 영원의 시작점에서: '호킹'을 아카이브하기
ㆍ 7장 생각하는 사람: 호킹이 '호킹'을 만나다
결론 되풀이되는 질문: 전형에서 암호로
나가며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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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엘렌 미알레 H?L?NE MIALET
과학기술철학자이자 인류학자. 프랑스 파리국립광업학교에서 브뤼노 라투르에게 사사받았다. 현재 토론토요크대학교의 과학기술사회학 교수로 재직한다. 코넬대학교, 버클리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데이비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베를린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과학기술 실천, 상황적 인지, 분산된 인지, 지식 생산에서 주체의 신체가 수행하는 역할, 카리스마와 조직 관리, 창의성과 혁신의 제도적 맥락, 인간-기계 상호작용, 포스트휴머니즘, 객체지향 철학, 장애학, 의료인류학 등 폭넓은 주제를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다국적 석유회사 산업 연구소의 발명 과정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 《창조하는 기업(L'Entreprise creatrice)》 등이 있다.
과학기술철학자이자 인류학자. 프랑스 파리국립광업학교에서 브뤼노 라투르에게 사사받았다. 현재 토론토요크대학교의 과학기술사회학 교수로 재직한다. 코넬대학교, 버클리대학교, 하버드대학교, 데이비스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옥스퍼드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 베를린 막스플랑크 과학사연구소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일했다.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과학기술 실천, 상황적 인지, 분산된 인지, 지식 생산에서 주체의 신체가 수행하는 역할, 카리스마와 조직 관리, 창의성과 혁신의 제도적 맥락, 인간-기계 상호작용, 포스트휴머니즘, 객체지향 철학, 장애학, 의료인류학 등 폭넓은 주제를 연구해왔다. 지은 책으로 다국적 석유회사 산업 연구소의 발명 과정에 대한 민족지학적 연구 《창조하는 기업(L'Entreprise creatric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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