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훔치다(삶창시선 30)
김수열 시집
『생각을 훔치다』는 김수열의 네 번째 시집이다. 이 책 속의 작품들에는 저자가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며 얻은 삶의 오묘함과 비의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있다. 또한 삶의 진실의 가치에 주목함으로써 얻은 시인의 깨달음을 작품들 속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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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그의 시는 세상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되,
세상을 새로 개편할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심사위원 신경림, 이시영, 박수연
제주 시인 김수열의 네 번째 시집. 시집에는 지천명의 나이를 넘어서며 얻은 삶의 오묘함과 비의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역사의 굴곡에 맞서며 "쉰"에 이른 개인의 내면을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다. 시 쓰기에 관한 인식 또한 이전과 달라진다. 시인은 이제 조바심 내지 않고, 낮은 자세로 지천명의 참뜻을 시 쓰기로 실천한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쉰"을 넘어선 길목에서 이번 시집은 앞으로 시 세계에서 이룰 시적 성취와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출판사 서평
실로 오랜만에 인공 조미료를 치지 않은 시의 진경, 원석原石을 보았다.
- 이원규 시인
김수열의 시집을 펼치는 일은 섬에 입도入島하는 일과 진배없는 일일 터이다.
- 손세실리아 시인
지천명知天命을 맞이한 그 어떤 삶의 오묘함과 비의성을 자연스레 드러내고 있다.
- 고명철 문학평론가
성찰과 깨달음, 지천명의 시 쓰기
『생각을 훔치다』에서 "쉰"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너무 아득하여 누군가/ 손잡아주지 않으면 못 닿을 줄 알았"(「쉰」)던 '지천명'을 맞이한 시인은 삶의 진실의 가치에 주목함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시인은 고등어를 굽다가 잘못 구워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생선을 보며 자신이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고등어처럼 막 대한 것은 아니었는지 근심하기도 하고(「고등어를 굽다가」), "인생에게 질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낮술」)이 낮술의 참맛을 알게 된다고 함으로써 애써 인생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지천명에 얻은 깨달음은 시 쓰기에 대한 인식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시에 대한 관점을 기존 통념에서 획기적으로 전회(轉回)시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태도의 변화를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전까지 가졌던 반드시 '좋은 시'를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과 시의 구속에서 벗어나 시 쓰기에서 자유자재의 경지에 이르기를 원한다.
이름만 대면 다 아는
선배(아니, 선생뻘 되는) 시인과
우연히 통화하다 한 말씀 듣는다
많이 써
되든 안 되든 많이 써
요즘 시인들 너무 안 써
쥐어짠다고 시가 되나
쓰다가 안 되면
그것도 시야
-「시를 쓴다는 일」부분
또한 쉽지 않은 시적 깨우침을 실천하기 위해 "'진정한 시인이란 시를 버릴 줄도 아는 사람"(「내 마음의 지도부」)이 되고자 한다. 결국 시인에게 '진정한 시인'이란 관념과 추상을 벗고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삶의 정치성과 시적 정치성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낮은 자세로 품어 안는 겸허함
김수열의 시들은 제주의 돌담을 연상하게 한다. 현무암의 숭숭 뚫린 구멍의 몸으로 바람의 길을 내주듯 모든 것을 품어 안기 때문이다. "잠시 몸을 낮추고 들여다보면/ 붉은 그 마음 거기 있"(「곶자왈 동백」)다거나 "겨울산을 오른다는 건 나무가 되"고 "겨울산을 내린다는 건 바람이 되는 것"(「겨울산」)이라며 자연에 자신의 시선을 맞춘다.
일상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마찬가지다. 특히 험한 풍파를 견뎌온 이들의 소박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여준다. "파치 할머니"와 "고구마 할아버지"(「여름날 오후」)가 투닥거리는 모습이나 미역을 캐러 새벽일을 나간 할머니가 돌아올 때면 "빈 비료 포대 실은 경운기 탈탈탈 끌고 와/ 망사리 끈 풀어 메역을 담"는 (「할망 하르방」) 할아버지의 고단한 일상을 묵묵히 관조하되, 어떻다는 가치판단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물오른 가지마다 새순 돋고
크고 작은 잎사귀들은
밥 짓는 소리 다투는 소리 흐느끼는 소리에
마음 열고 지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귀 기울인다
까치밥 남기고
무성한 잎사귀들을 내려놓을 즈음
그리움도 외로움도 안타까움도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나무는
한때 세상을 향해 열어두었던 귀 닫고
동안거에 들어 묵언정진한다
-「나무는 겸손하다」부분
나무가 "동안거에 들어 묵언정진"하듯, 시인의 묵언정진은 "마음 열고 지상에서 가장 낮은 자세로/ 귀 기울"이는 일이다. "살아 있는/ 온갖 것들 품고"(「강」) 있는 "강"을 닮은 포용의 정신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그의 시들은 겸허한 자세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그리하여 어떤 꾸밈과 겉치레도 없이 담백하며 진솔하다. 이원규 시인은 이를 일컬어 "실로 오랜만에 인공 조미료를 치지 않은 시의 진경, 원석(原石)을 보았다"고 말한다.
시인은 지금까지 꾸준히 천착해온 제주와 제주어에 관한 애정 역시 놓지 않는다.「풀빛」「차르륵! 차르륵!」처럼 4ㆍ3의 폭력적 실상과 "막 울렌허라 울어부러사 애산 가슴 풀린다"(「어머니의 전화」)에서 보듯 제주의 삶과 죽음에 대한 오묘함을 제주어를 통해 낱낱이,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로써 새로운 시적 태도를 갖고 세계악에 맞서려는 시적 쟁투 또한 포기하지 않는다.
시인의 말
네 번째'시인의 말'을 쓴다.
'시인의 말'이라 써놓고 보니
갑자기 먹먹해진다.
시를 들여놓기도 부끄러운 집인데
말에게도 방 한 칸 내주어야 하는지…….
숲에 드는 나이라지만
숲은커녕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여기까지 왔다.
추천의 말
제주에서 파풍破風이란 말을 처음 들었다. 폭풍의 뜻이 아니라 바람을 깨뜨리는. 현무암 돌담들이 무너지지 않는 것은 단호한 벽이 아니라 숭숭 뚫린 구멍의 몸으로 바람의 길을 내주기 때문이다. 바람과 돌담의 깊은 통정. 김수열 형의 시가 그렇다. 분별지를 넘어 지천명의 경지에 올랐으니 "늙은 밥솥"이 아니라 마침내 파풍의 시가 되었다. 문득 "왜, 내 말이 우습냐?/ 한잔 따라봐" 눙쳐도 자꾸 눈물겹다. 실로 오랜만에 인공 조미료를 치지 않은 시의 진경, 원석原石을 보았다. 입맛 상큼하니 내장마저 환하고 피는 좀 더 맑아진 기분이다. 당분간 꿈자리 사나운 시들은 멀리해야겠다.
- 이원규 시인
그는 섬이다. 섬의 기질을 타고 났다. 무리에 섞여 있어도 홀로 고즈넉한 모습이 그러하고, 만만찮은 이력임에도 이를 명함 삼지 않는 은둔의 처세가 그러하며, 여간해선 동요하지 않는 뚝심이 그러하다. "뭍엣것"들은 물론이거니와 "비록 섬에 있어도 섬 아닌 것들은/ 정말 모"르는 섬, 바로 그 자체다. 삶과 시는 무관하지 아니하므로 그가 빚은 시 또한 섬일 터, 쉽게 들고 나지 못해 더욱 절절해진 그리움의 표상일 터, 그리하여 김수열의 시집을 펼치는 일은 섬에 입도入島하는 일과 진배없는 일일 터이다. 아! 오늘 같은 날 "인생에게 질 준비가 되어 있"는 그와 화북방파제에 퍼질러 앉아 "낮술"을 대작하고 싶다. 취한 척, '선배는 시가 커? 사람이 커?' 딴지도 걸어보면서. 역정은커녕 낄낄대며, '그래 나 키 크다, 왜?' 할 게 뻔하지만 나는 안다. 그의 시가 무진장 크다는 거, 어디에 내다 놓아도 한눈에 들어올 만큼 우뚝하다는 거.
- 손세실리아 시인
목차
목차
제1부 생각을 훔치다
늙은 밥솥을 위하여 _12
낮술 _13
쉰 _14
…그냥 …지난번처럼 _16
과속방지턱 _17
고등어를 굽다가 _18
시를 쓴다는 일 _20
사람이 시보다 크다 _22
뒤늦게 니우스 _23
다모아마트에 가야 한다 _24
풀독 _26
신호 대기 _28
꼬리 _30
강 _32
마라도 유람선 _34
생각을 훔치다 _36
제2부 시가 사라졌다
내리사랑 _38
새 _40
어머니의 전화 _41
밤고냉이 _42
매제 _43
고맙다, 는 말 _44
유언 _46
달과 박 _47
시가 사라졌다 _48
샌들 _49
내 마음의 지도부 _50
슬프지 않다 _52
T11 _54
그 손의 이름을 물을 수 없었다 _56
비 오는 날 _58
할망 하르방 _60
그래도 믿어야지요 _62
여름날 오후 _64
깨밭 _66
제3부 차르륵! 차르륵!
산벚나무 그늘 아래서 _68
봄길에서 _69
억새에 관한 망상 _70
따라비오름에서 _71
낙엽 _72
초가 _73
나무는 겸손하다 _74
절물 까마귀 _75
곶자왈 동백 _76
수선화 _78
풀빛 _79
대맹일 써사 헌다 _80
판결 _81
해안 도로에서 _84
겨울산 _86
서모봉 쑥밭 _88
잔칫날 _90
일강정이 운다 _92
모를 것이다 _94
차르륵! 차르륵! _96
이제는 함께해야지요 _97
해설__ 지천명의 인식적 전회, 그 시적 성취 | 고명철 _101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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