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
맥락이 보이는 한국사 60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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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60장면으로 역사의 큰 흐름을 파악하다!
맥락이 보이는 한국사 60장면『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한국사 중에서 사건 60가지를 뽑아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60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민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굵직한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한국사를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역사를 공부할 때 범하기 쉬운 큰 오류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상황이 오랜 과거부터 존속했다는 시간적 오류, 국가가 이웃세계와 고립된 채 탄생하고 성장했다는 공간적 오류를 이야기한다. 이런 연유에서 ‘국사’가 아닌 ‘지역사’라는 관점으로,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중국과 일본 등과 주변국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전개되어온 역사로 살펴본다. 이렇게 역사의 거품을 제거하여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맥락이 보이는 한국사 60장면『남경태의 열려라 한국사』.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한국사 중에서 사건 60가지를 뽑아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60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민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굵직한 맥락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한국사를 만나볼 수 있다.
저자는 역사를 공부할 때 범하기 쉬운 큰 오류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현재의 상황이 오랜 과거부터 존속했다는 시간적 오류, 국가가 이웃세계와 고립된 채 탄생하고 성장했다는 공간적 오류를 이야기한다. 이런 연유에서 ‘국사’가 아닌 ‘지역사’라는 관점으로, 한반도에 머물지 않고 중국과 일본 등과 주변국과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전개되어온 역사로 살펴본다. 이렇게 역사의 거품을 제거하여 냉철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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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60장면으로 읽는 압축 '한국사'.
국사보다 지역사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읽으면
거품은 사라지고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판의 역사가 남는다.
예리하고 재미난 남경태의 한국사 이야기.
보폭이 큰 역사 이야기, 60장면으로 읽는 한국사
남경태의 우리 역사 이야기는 보폭이 크다. 성큼성큼 시원스레 내딛는다. 특히 이 책 《열려라 한국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 전체를 불과 60장면에 담아서 보여준다. 물론 연대기적 서술은 아니다.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읽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뽑아낸 60개 장면을 얼추 시대 순에 따라 펼쳐 보인다. 인명과 지명, 연도 등등 깨알 같은 지식은 몰라도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한눈에 꿸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지은이가 한국사를 이른바 '국사(國史)'로서가 아니라 지역사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60장면은 낱낱의 개별 사건으로 서술되거나 한반도 내에서 쑥 솟아난 사건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모든 장면은 우리 역사가 주변 세계, 그중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전개되어온 것이라는 일관된 관점 아래 서술된다. 그러니까 불과 60장면을 통해서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역사에서 거품을 빼면 오늘을 비추는 거울을 얻는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가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현재의 상황이 마치 오래전 과거부터 존속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적 오류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국가가 마치 처음부터 이웃 세계와 고립된 채 탄생하고 성장했다고 보는 공간적 오류라고 한다. 시간적 오류 때문에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공간적 오류 때문에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된다는 것.
저자는 국사의 관점을 포기하면 민족사의 굴레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역사의 '거품'을 제거하면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판의 역사가 남고, 우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을 얻을 수 있다. 국사보다 지역사를 강조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보다 부끄러운 역사를 부각시키는 이 책은 그래서 읽기에 불편할 수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유구하고 빛나는 반만 년 우리 역사'라는 역사 이데올로기 속에 안주해 있는 한 결코 볼 수 없는 그런 비판의 힘이다.
종횡무진 르네상스적 지식인의 대중적 글쓰기
남경태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한국의 대표적 인문학 저술가이자 전문 번역가다. 《종횡무진 한국사》와 《종횡무진 세계사》, 《한눈에 읽는 세계 철학》등을 쓴 그는 역사와 철학뿐 아니라 인접 학문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활달한 글쓰기로 이름이 높다.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 글을 풀어낸다.
《상식 밖의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처음 선보였던 책을 전면 교열을 거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책에서도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는 여전하다. 우리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하는 놀람을 안겨주는 책, 우리 역사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안겨주는 책이다. 역사란 그저 까마득한 옛날의 죽은 지식들을 끝없이 암기하는 지루한 과목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 우리 역사의 흐름을 알고 싶어하는 교양독자들에게 이 책을 한국사 입문서로 권한다. 큰 흐름을 알고 나면 한층 디테일한 한국사 책들도 쉽게 읽어질 터이다.
- 책속으로 이어서 -
하지만 나라들끼리 약속했다고 해서 주민들의 관계가 쉽사리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북부에서 고려인과 섞여 살아가는 거란인과 여진인은 고려의 일반 백성들과 융합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부락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들은 이질감과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걸핏하면 비뚜로 나갔다. 이를테면 왜구로 위장해 민가나 관청을 약탈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거란이 침입해 들어올 때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점차 고려 조정에서는 그들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범죄 행위가 어려워지자 그들은 일반 백성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았는데, 그게 바로 도살업이다. 그것을 직업으로 택한 데는 수렵 민족답게 짐승의 고기와 가죽을 다루는 기술이 능했던 까닭도 있었다.
비록 정부의 탄압은 받았으나 고려시대까지는 화척들도 일종의 기능인이었으므로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조선의 세종은 화척의 지위를 올려주기 위해--실은 세원(稅源)을 확대하고 병력을 충원하려는 의도가 더 컸겠지만--그들을 양인으로 대우했는데, 이게 문제였다. 국가가 부여한 직책과 토지가 없으므로 그들을 일단 백정(당시에는 아직 양인이었다)에 편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화척은 신분상 양인이 되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그들에 대해 지니는 이미지는 정부 시책과 달리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들을 기존의 백정과 구분하기 위해 '신백정'이라고 부르면서 여전히 백안시했다.
전과자의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그들에게 사회적 적응의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백정'의 경우도 그랬다. 화척은 백정으로 신분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골칫거리였다. '신백정'의 악명이 높아지자 원래 백정들도 백정으로 자처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점차 신백정은 그냥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들의 대표적 생업인 도살업에서도 발을 빼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정부로서도 결국 그들을 천인으로 분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도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켰던 것이 오히려 신분 하락을 초래한 셈이다.
천인이 된 백정은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뒤인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 천인 신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때도 역시 정부 시책보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이 문제가 되었다. 제도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 통혼할 수도 없었고, 관습상으로는 천인의 대우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이들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주어졌다. 이제 정부가 해줄 일은 없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190~192쪽)
서로의 세력이 비등한 채 전쟁이 지속되면 결국 휴전 협상의 분위기로 가게 마련이다. 전쟁 초부터 조선이 입은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전쟁을 귀찮게만 여기고 화의를 모색했던 명나라는 전선이 고착되자 적극적으로 휴전 협상에 나섰다. 한편 이순신과 의병 활동으로 세가 위축된 일본군도 남하해 지금의 창원 부근에 진주하면서 휴전에 응할 뜻을 비쳤다.
여기까지의 드라마만 해도 누구나 한국전쟁의 진행 과정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휴전 협상 테이블은 더욱 그렇다. 한국전쟁에서처럼 조선 측은 협상 테이블에 끼지 못했다. 협상 당사자는 명에서 파견된 사신 심유경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조선의 외교권과 군사권이 중국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도요토미는 심유경에게 명나라의 황녀를 일본왕의 후궁으로 줄 것, 무역을 재개할 것, 조선 8도 중 4도를 할양할 것, 조선의 왕자와 신하들을 인질로 보낼 것 등을 요구했다. '신탁통치'도 아닌 상황에서 조선의 국토 절반을 직접 요구하는데도 막상 조선은 협상 담당자가 아니니까 발언권이 없었다. 결국 조선은 일본과 명나라가 서로의 힘을 시험가동하기 위한 전쟁터만 제공한 셈이다. 마치 한국전쟁을 통해 서구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가 한반도에서 서로의 힘을 시험했듯이.
터무니없는 것은 심유경의 행동이다. 그는 도요토미의 무리한 요구를 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허위 보고서를 꾸몄다. 도요토미의 요구도 황당했지만 심유경의 허위 보고서는 더욱 황당한 내용이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일본 측의 요구 조건이, 일본왕을 명나라가 책봉하고 일본이 명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중화사상에 물든 데다 당쟁에 정신이 없는 명나라 조정에서는 허위 여부조차 판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명은 그 허위 요청을 허가하고 도요토미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는데, 애초에 요구하지도 않았던 사항을 허락한다는 말에 도요토미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화가 잔뜩 난 도요토미는 다시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침공했는데, 이것이 제2차 전쟁인 정유재란이다.
'대리전'의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 백성들의 몫이었다. 두 차례의 전란(그 중 하나는 전혀 불필요한 전란)으로 조선의 전 국토는 황폐화되었고(전쟁 전에 비해 경작 토지 면적이 1/3 이하로 줄었다), 인명의 피해는 이루 셀 수 없었으며, 수백 년을 내려오던 각종 문화유산들도 불타 없어졌다(몽골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우리 문화재는 지금의 10배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눈에 보이는 피해보다 더 큰 것은 임진왜란으로 확인된 조선 지배층의 무능함과 반민중성, 굴욕적인 사대 관계였다.(291~292쪽)
국사보다 지역사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읽으면
거품은 사라지고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판의 역사가 남는다.
예리하고 재미난 남경태의 한국사 이야기.
보폭이 큰 역사 이야기, 60장면으로 읽는 한국사
남경태의 우리 역사 이야기는 보폭이 크다. 성큼성큼 시원스레 내딛는다. 특히 이 책 《열려라 한국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 전체를 불과 60장면에 담아서 보여준다. 물론 연대기적 서술은 아니다.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읽는 데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뽑아낸 60개 장면을 얼추 시대 순에 따라 펼쳐 보인다. 인명과 지명, 연도 등등 깨알 같은 지식은 몰라도 우리 역사의 큰 흐름을 한눈에 꿸 수 있다.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지은이가 한국사를 이른바 '국사(國史)'로서가 아니라 지역사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60장면은 낱낱의 개별 사건으로 서술되거나 한반도 내에서 쑥 솟아난 사건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모든 장면은 우리 역사가 주변 세계, 그중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와 긴밀한 연관을 가지고 전개되어온 것이라는 일관된 관점 아래 서술된다. 그러니까 불과 60장면을 통해서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우리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역사에서 거품을 빼면 오늘을 비추는 거울을 얻는다
저자는 우리가 역사를 공부할 때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가 두 가지 있으니, 하나는 현재의 상황이 마치 오래전 과거부터 존속했다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시간적 오류고, 다른 하나는 하나의 국가가 마치 처음부터 이웃 세계와 고립된 채 탄생하고 성장했다고 보는 공간적 오류라고 한다. 시간적 오류 때문에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이라는 오류를 범하고, 공간적 오류 때문에 우리는 단일민족이라는 이데올로기에 함몰된다는 것.
저자는 국사의 관점을 포기하면 민족사의 굴레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역사의 '거품'을 제거하면 냉철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비판의 역사가 남고, 우리는 오늘을 비추는 거울을 얻을 수 있다. 국사보다 지역사를 강조하고, 자랑스러운 역사보다 부끄러운 역사를 부각시키는 이 책은 그래서 읽기에 불편할 수 있지만 그만큼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유구하고 빛나는 반만 년 우리 역사'라는 역사 이데올로기 속에 안주해 있는 한 결코 볼 수 없는 그런 비판의 힘이다.
종횡무진 르네상스적 지식인의 대중적 글쓰기
남경태는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이 누구보다도 잘 어울리는 한국의 대표적 인문학 저술가이자 전문 번역가다. 《종횡무진 한국사》와 《종횡무진 세계사》, 《한눈에 읽는 세계 철학》등을 쓴 그는 역사와 철학뿐 아니라 인접 학문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활달한 글쓰기로 이름이 높다.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 글을 풀어낸다.
《상식 밖의 한국사》라는 제목으로 처음 선보였던 책을 전면 교열을 거쳐 새롭게 펴내는 이번 책에서도 쉽고 재미있는 글쓰기는 여전하다. 우리 역사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하는 놀람을 안겨주는 책, 우리 역사를 이렇게 바라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을 안겨주는 책이다. 역사란 그저 까마득한 옛날의 죽은 지식들을 끝없이 암기하는 지루한 과목이라고 생각하는 청소년들, 우리 역사의 흐름을 알고 싶어하는 교양독자들에게 이 책을 한국사 입문서로 권한다. 큰 흐름을 알고 나면 한층 디테일한 한국사 책들도 쉽게 읽어질 터이다.
- 책속으로 이어서 -
하지만 나라들끼리 약속했다고 해서 주민들의 관계가 쉽사리 변하는 것은 아니다. 한반도 북부에서 고려인과 섞여 살아가는 거란인과 여진인은 고려의 일반 백성들과 융합되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부락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까지는 괜찮았는데 그들은 이질감과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걸핏하면 비뚜로 나갔다. 이를테면 왜구로 위장해 민가나 관청을 약탈하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거란이 침입해 들어올 때 길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점차 고려 조정에서는 그들을 골칫거리로 여기고 탄압하기 시작했다. 범죄 행위가 어려워지자 그들은 일반 백성들이 꺼리는 궂은일을 생업으로 삼고 살았는데, 그게 바로 도살업이다. 그것을 직업으로 택한 데는 수렵 민족답게 짐승의 고기와 가죽을 다루는 기술이 능했던 까닭도 있었다.
비록 정부의 탄압은 받았으나 고려시대까지는 화척들도 일종의 기능인이었으므로 그런 대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조선의 세종은 화척의 지위를 올려주기 위해--실은 세원(稅源)을 확대하고 병력을 충원하려는 의도가 더 컸겠지만--그들을 양인으로 대우했는데, 이게 문제였다. 국가가 부여한 직책과 토지가 없으므로 그들을 일단 백정(당시에는 아직 양인이었다)에 편입시킬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화척은 신분상 양인이 되었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이 그들에 대해 지니는 이미지는 정부 시책과 달리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백성들은 그들을 기존의 백정과 구분하기 위해 '신백정'이라고 부르면서 여전히 백안시했다.
전과자의 재범률이 높은 이유는 일반 사람들이 그들에게 사회적 적응의 기회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신백정'의 경우도 그랬다. 화척은 백정으로 신분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회적 골칫거리였다. '신백정'의 악명이 높아지자 원래 백정들도 백정으로 자처하기를 꺼리게 되었다. 점차 신백정은 그냥 백정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그들의 대표적 생업인 도살업에서도 발을 빼지 못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니 정부로서도 결국 그들을 천인으로 분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도적으로 신분 상승을 시켰던 것이 오히려 신분 하락을 초래한 셈이다.
천인이 된 백정은 그로부터 400여 년이 지난 뒤인 1894년 갑오개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면서 공식적으로 천인 신분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이때도 역시 정부 시책보다 사람들이 그들을 보는 시선이 문제가 되었다. 제도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는데도 그들은 일반 사람들과 통혼할 수도 없었고, 관습상으로는 천인의 대우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이들에게는 정치적 자유가 주어졌다. 이제 정부가 해줄 일은 없고 스스로 일어나야 한다.(190~192쪽)
서로의 세력이 비등한 채 전쟁이 지속되면 결국 휴전 협상의 분위기로 가게 마련이다. 전쟁 초부터 조선이 입은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오로지 전쟁을 귀찮게만 여기고 화의를 모색했던 명나라는 전선이 고착되자 적극적으로 휴전 협상에 나섰다. 한편 이순신과 의병 활동으로 세가 위축된 일본군도 남하해 지금의 창원 부근에 진주하면서 휴전에 응할 뜻을 비쳤다.
여기까지의 드라마만 해도 누구나 한국전쟁의 진행 과정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휴전 협상 테이블은 더욱 그렇다. 한국전쟁에서처럼 조선 측은 협상 테이블에 끼지 못했다. 협상 당사자는 명에서 파견된 사신 심유경과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조선의 외교권과 군사권이 중국에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장면이다.
도요토미는 심유경에게 명나라의 황녀를 일본왕의 후궁으로 줄 것, 무역을 재개할 것, 조선 8도 중 4도를 할양할 것, 조선의 왕자와 신하들을 인질로 보낼 것 등을 요구했다. '신탁통치'도 아닌 상황에서 조선의 국토 절반을 직접 요구하는데도 막상 조선은 협상 담당자가 아니니까 발언권이 없었다. 결국 조선은 일본과 명나라가 서로의 힘을 시험가동하기 위한 전쟁터만 제공한 셈이다. 마치 한국전쟁을 통해 서구 세계와 사회주의 세계가 한반도에서 서로의 힘을 시험했듯이.
터무니없는 것은 심유경의 행동이다. 그는 도요토미의 무리한 요구를 본국이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미리 짐작하고 허위 보고서를 꾸몄다. 도요토미의 요구도 황당했지만 심유경의 허위 보고서는 더욱 황당한 내용이었다. 그가 작성한 보고서에는 일본 측의 요구 조건이, 일본왕을 명나라가 책봉하고 일본이 명나라에게 조공을 바치도록 허락해달라는 것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중화사상에 물든 데다 당쟁에 정신이 없는 명나라 조정에서는 허위 여부조차 판별할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명은 그 허위 요청을 허가하고 도요토미에게 그 사실을 전달했는데, 애초에 요구하지도 않았던 사항을 허락한다는 말에 도요토미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화가 잔뜩 난 도요토미는 다시 군사를 일으켜 조선을 침공했는데, 이것이 제2차 전쟁인 정유재란이다.
'대리전'의 피해는 고스란히 조선 백성들의 몫이었다. 두 차례의 전란(그 중 하나는 전혀 불필요한 전란)으로 조선의 전 국토는 황폐화되었고(전쟁 전에 비해 경작 토지 면적이 1/3 이하로 줄었다), 인명의 피해는 이루 셀 수 없었으며, 수백 년을 내려오던 각종 문화유산들도 불타 없어졌다(몽골과 일본의 침략, 그리고 한국전쟁이 없었다면 우리 문화재는 지금의 10배는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 눈에 보이는 피해보다 더 큰 것은 임진왜란으로 확인된 조선 지배층의 무능함과 반민중성, 굴욕적인 사대 관계였다.(291~292쪽)
목차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신화와 역사의 경계
세 개의 조선-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역사
세 개의 한국-한반도 중남부에 자리 잡은 삼한
우리는 왜 한민족일까? -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뜻
제2장 삼국이 경쟁하던 시대
한글이 없던 시절에는 무엇으로 기록했을까? - 이두의 역사
달력에 얽힌 수수께끼- 고대사에서 달력이 가지는 의미
고구려의 미스터리 - 고구려라는 이름의 유래
호동 왕자의 뒷이야기 - 한반도의 패자가 된 고구려
94년을 왕으로 산 태조왕 - 만주로 뻗어 가는 고구려
상식 밖의 기원 2세기 - 역대 왕들의 장수 챔피언
최초의 매국노 - 두 임금을 남편으로 둔 여인
암탉이 울면? - 신라에만 있었던 여왕
'지역감정'의 뿌리 - 원수가 된 백제와 신라
굴욕적인 삼국통일 - 중국 중심적 고대 질서의 완성
우리 역사의 공백 - 신라보다 강했던 가야
김춘추의 화려한 외출 - 고대 최고의 외교관
살수대첩의 숨은 공신 - 을지문덕에 가린 영웅 건무
충신을 죽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리라 - 성충 형제의 죽음과 백제의 멸망
당 태종의 고구려 콤플렉스 - 이세민과 연개소문의 첩혈쌍웅
신라를 도운 백제 유민 - 백제 부흥운동
발해 부근에는 없는 발해 - 발해의 진짜 이름
'춘추필법'으로 본 우리 역사 - 김부식의 사대주의 역사관
제3장 코리아를 낳은 고려
무혈로 세 나라를 인수한 왕건 - 후삼국과 고려
임시로 나랏일을 맡은 사람 - 권지국사의 전통
개국 초기 증후군 - 고려와 조선 초기 왕자의 난
신분제인가, 관료제인가 - 고려 사회의 성격
양인에서 천인이 되기까지 - 백정의 역사
중화가 아니면 북벌인가? - 허망한 북벌론의 배경
관청의 하나였던 다방 - 불교와 흥망을 같이한 고려의 차 문화
몽골이 타도한 고려의 군사파쇼 - 무신정권과 몽골의 지배
여덟 번을 즉위하는 네 명의 왕 - 몽골 지배기의 고려
식민지 시대에 늘어나는 우리 역사 - 몽골 지배기와 일제 강점기의 역사관
마지막 왕은 허수아비 - 역대 왕조의 마지막 왕들
개혁파의 도전과 수구파의 응전 - 고려와 조선의 실패한 개혁
제4장 영욕의 조선
시공은 이성계, 설계는 정도전 - 조선 건국의 브레인 정도전
국호부터 사대적이었던 조선 - 조선이라는 국호의 배경
왕조 시대의 '토지 공개념' - 고려와 조선 초의 토지 제도
14세기의 '교과서 왜곡' 사건 - 선조 때에야 해결된 종계변무
말로 주고 되로 받기 - 조선의 공물 무역
한글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 한글의 역사
발명을 해도 써먹지 못하면 - 인쇄술과 화약의 비운
대리전으로 전개된 임진왜란 - 한반도에서 부딪힌 중국과 일본
당쟁의 하이라이트 - 예송논쟁의 배경
'오랑캐'도 인간이다 - 소중화 사상을 물리친 실학
서양인은 왜 조선에 오지 않았을까? - 근대 조선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각
왕들의 과외공부 - 경연을 역이용한 영조
도서관과 친위대 - 좌절된 정조의 개혁
최후의 중화사상 - 쇄국 정책의 배경
개화(開花)하지 못한 개화(開化)의 길 - 오경석의 개화론
불과 20년의 차이로 - 일본과 조선의 개항
사대의 굴레를 벗어던진 농민들 - 갑오농민전쟁
단발이냐, 단두냐 - 근대화를 향한 몸부림
제5장 질곡의 현대사
열등감 심기 - 일본 사학자들이 주도한 식민지 역사관
한반도 최초의 주식회사 -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눈부신 활약
천 리 길과 오리무중의 차이 - 일제에 의한 도량형의 왜곡
대통령이 아니면 싫다 - 이승만의 대통령병
도둑처럼 온 해방? - 해방을 준비한 사람들
농지개혁과 토지개혁의 차이 - 남한과 북한의 토지개혁
외국인 총장의 국립대학교 - 서울대학교의 창립
이기고 있는 판에 휴전이라니? - 휴전 협상에 반대한 이승만
제1장 신화와 역사의 경계
세 개의 조선-단군조선, 기자조선, 위만조선의 역사
세 개의 한국-한반도 중남부에 자리 잡은 삼한
우리는 왜 한민족일까? - 한민족과 대한민국의 뜻
제2장 삼국이 경쟁하던 시대
한글이 없던 시절에는 무엇으로 기록했을까? - 이두의 역사
달력에 얽힌 수수께끼- 고대사에서 달력이 가지는 의미
고구려의 미스터리 - 고구려라는 이름의 유래
호동 왕자의 뒷이야기 - 한반도의 패자가 된 고구려
94년을 왕으로 산 태조왕 - 만주로 뻗어 가는 고구려
상식 밖의 기원 2세기 - 역대 왕들의 장수 챔피언
최초의 매국노 - 두 임금을 남편으로 둔 여인
암탉이 울면? - 신라에만 있었던 여왕
'지역감정'의 뿌리 - 원수가 된 백제와 신라
굴욕적인 삼국통일 - 중국 중심적 고대 질서의 완성
우리 역사의 공백 - 신라보다 강했던 가야
김춘추의 화려한 외출 - 고대 최고의 외교관
살수대첩의 숨은 공신 - 을지문덕에 가린 영웅 건무
충신을 죽이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리라 - 성충 형제의 죽음과 백제의 멸망
당 태종의 고구려 콤플렉스 - 이세민과 연개소문의 첩혈쌍웅
신라를 도운 백제 유민 - 백제 부흥운동
발해 부근에는 없는 발해 - 발해의 진짜 이름
'춘추필법'으로 본 우리 역사 - 김부식의 사대주의 역사관
제3장 코리아를 낳은 고려
무혈로 세 나라를 인수한 왕건 - 후삼국과 고려
임시로 나랏일을 맡은 사람 - 권지국사의 전통
개국 초기 증후군 - 고려와 조선 초기 왕자의 난
신분제인가, 관료제인가 - 고려 사회의 성격
양인에서 천인이 되기까지 - 백정의 역사
중화가 아니면 북벌인가? - 허망한 북벌론의 배경
관청의 하나였던 다방 - 불교와 흥망을 같이한 고려의 차 문화
몽골이 타도한 고려의 군사파쇼 - 무신정권과 몽골의 지배
여덟 번을 즉위하는 네 명의 왕 - 몽골 지배기의 고려
식민지 시대에 늘어나는 우리 역사 - 몽골 지배기와 일제 강점기의 역사관
마지막 왕은 허수아비 - 역대 왕조의 마지막 왕들
개혁파의 도전과 수구파의 응전 - 고려와 조선의 실패한 개혁
제4장 영욕의 조선
시공은 이성계, 설계는 정도전 - 조선 건국의 브레인 정도전
국호부터 사대적이었던 조선 - 조선이라는 국호의 배경
왕조 시대의 '토지 공개념' - 고려와 조선 초의 토지 제도
14세기의 '교과서 왜곡' 사건 - 선조 때에야 해결된 종계변무
말로 주고 되로 받기 - 조선의 공물 무역
한글이 한글이라는 이름을 얻기까지 - 한글의 역사
발명을 해도 써먹지 못하면 - 인쇄술과 화약의 비운
대리전으로 전개된 임진왜란 - 한반도에서 부딪힌 중국과 일본
당쟁의 하이라이트 - 예송논쟁의 배경
'오랑캐'도 인간이다 - 소중화 사상을 물리친 실학
서양인은 왜 조선에 오지 않았을까? - 근대 조선을 바라보는 서양인의 시각
왕들의 과외공부 - 경연을 역이용한 영조
도서관과 친위대 - 좌절된 정조의 개혁
최후의 중화사상 - 쇄국 정책의 배경
개화(開花)하지 못한 개화(開化)의 길 - 오경석의 개화론
불과 20년의 차이로 - 일본과 조선의 개항
사대의 굴레를 벗어던진 농민들 - 갑오농민전쟁
단발이냐, 단두냐 - 근대화를 향한 몸부림
제5장 질곡의 현대사
열등감 심기 - 일본 사학자들이 주도한 식민지 역사관
한반도 최초의 주식회사 - 동양척식주식회사의 눈부신 활약
천 리 길과 오리무중의 차이 - 일제에 의한 도량형의 왜곡
대통령이 아니면 싫다 - 이승만의 대통령병
도둑처럼 온 해방? - 해방을 준비한 사람들
농지개혁과 토지개혁의 차이 - 남한과 북한의 토지개혁
외국인 총장의 국립대학교 - 서울대학교의 창립
이기고 있는 판에 휴전이라니? - 휴전 협상에 반대한 이승만
저자
저자
남경태
저자 남경태는 1961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문학 저술가이자 전문 번역가이다. 1980년대에는 사회과학 고전들을 번역하는 데 주력했고, 1990년대부터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두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을 쓰거나 번역하고 있다. 《누구나 한번쯤 철학을 생각한다》, 《개념어 사전》, 《한눈에 읽는 현대 철학》,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서양사》 등을 썼고,《문학과 예술의 문화사 1840~1900》, 《페다고지》, 《비잔티움 연대기》, 《선생님이 가르쳐준 거짓말》, 《30년 전쟁》, 《이야기의 기원》 등을 옮겼다. 남경태 식 글쓰기의 특징은 어떤 소재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하여 큰 흐름이 한눈에 보이도록 풀어낸다는 데 있다. 역사와 철학뿐 아니라 인접 학문을 종횡무진 넘나드는 그의 글은 늘 비판적이고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는 동시에 대중적이다. 교양독자들이 그의 책을 반기는 이유다. 르네상스적 지식인이라는 수식이 누구보다 어울리는 그는 MBC 라디오 표준FM에서 <타박타박 세계사>라는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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