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에게 말을걸다
양채영은 40여 년 동안 이 땅의 풀꽃들을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작지만 소중한 풀꽃들을 보면서 사람과 자연과 세상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가장 후미진 곳에 자라면서도 기죽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듯 함께 어우러져 핀 풀꽃. 저것이야말로 이 땅을 살아온 민초들의 분연한 투쟁이며 의연한 역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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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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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고 화려한 것에 가려 작고 소박한 것들은 설 자리가 없다. 돈이 되고 이익이 되는 것을 찾느라 착하고 순한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더 빨리 더 새 것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묵묵하게 서 있는 삶은 언제나 뒤처지기만 하는 바보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늘 우리는 그런 것들 때문에 힘을 얻었고, 행복했다. 우리가 고개 들어 올려다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던 하늘과 별, 수 천년 쌀이 자라고 사람들의 밥이 되었던 우리의 땅, 그리고 이 땅을 살아온 민초들. 바보 같은 사람, 바보 같은 마음, 그런 바보 같은 것들이 있어 그나마 아직 살만한 세상이 아닌가.
양채영은 40여 년 동안 이 땅의 풀꽃들을 노래한 시인이다. 그는 작지만 소중한 풀꽃들을 보면서 사람과 자연과 세상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가장 후미진 곳에 자라면서도 기죽지 않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듯 함께 어우러져 핀 풀꽃. 저것이야말로 이 땅을 살아온 민초들의 분연한 투쟁이며 의연한 역사이다.
별똥별은 저 산 너머 아주 깨끗한 강모래바닥에 떨어지고, 그것을 주워 먹으면 배고프지 않고 오래 산다는 말을 믿었던 때가 있었다. 멍석 위에 누워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며 그 쪽 방향으로 혼자 가보고 싶었던 때였다. 우리들의 환상은 늘 아름다웠지만 허망하였다. 하얗게 메밀꽃이 피고, 가난 속에서 묵을 쒀먹으며 꿈꾸고 있는 동안 전쟁은 터지고 변절과 사기와 부정부패의 역사는 깊어 갔다.
- 눈부신 민초들, 메밀꽃
양채영은 충주의 초등학교에서 평교사로만 40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까르르거리는 웃음, 폴짝거리는 발놀림을 보면서 새로운 힘을 얻고 미래를 본다. 그의 풀꽃 이야기에 들어있는 맑고 아름다운 정신, 희망과 새로움이 있는 곳마다 시골 강변을 뛰놀던 아이들이 함께 있다.
강물이 흘러가고 장다리꽃이 바람에 일렁이는 꽃길로 어린 아이들이 학교에 오고 집으로 돌아간다. 바람이 불면 열십자 모양의 장다리꽃잎들이 어린이들의 뺨에 와 살짝 닿기도 하고 책가방에 올라타기도 하고 머리 위에 나붓이 내려앉기도 한다. 장다리꽃밭 속을 걸어가는 아이들, 강물을 따라 흐르는 아이들은 모두 푸르고 푸르다. - 착한 키다리, 장다리꽃
양채영은 풀꽃을 '미움을 모르는 바보'라고 불렀다. 스스로를 뽐내지 않는 겸손함. 척박한 곳에서도 불평하지 않는 의연함. 그러면서도 묵묵히 세상을 비춰주던 고고함이 풀꽃의 얼굴이다. 길가에 피어 사람들에게 짓밟히고, 논둑에 피어 낫에 베이고, 야산에 피어 눈길 한번 받지 못하는 바보 같은 꽃이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그 자리에 아름답게 피어 있는 꽃, 잊었다가도 문득 옛 추억을 불러오는 꽃, 한번도 먼저 배신한 적 없고, 먼저 포기한 적 없던 꽃. 풀꽃은 그래서 미움을 모르는 바보다. 양채영은 풀꽃이 아니라 내 자신이 바보일지 모른다고 고백한다.
자기를 낮추려는 미덕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감자꽃은 더 소중하다. 약삭빠르고 영악하지 못해 늘 어중간에 서 있는 내 삶이 흡사 감자꽃을 닮은 것은 아닐까. 교직생활을 사십년 넘게 했지만 교감 한자리 못하고 평교사로 명예퇴임한 일이나, 문단 말석에 이름을 올려놓은 지 사십년이 되어가지만 널리 알려진 시 한 편 못 쓰고 번쩍이는 시인 축에 끼이지도 못하니 감자꽃이 아니고 무엇일까.
- 미움을 모르는 바보, 감자꽃
양채영은 그렇게 풀꽃에게서 삶을 배웠고, 풀꽃을 닮은 아이들과 어울려, 풀꽃이 피어있는 이 땅에서 민초들과 함께 우리 시대를 살았다. 그의 시에 비친 풀꽃의 모습은 서럽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것은 우리와 함께 시대를 살아온 민초들의 모습이다. 수천 년 핍박받고 살아온 서러운 민초들이지만, 그들이 한번이라도 좌절하고 포기한 적 있었던가. 묵묵히 살아남아 결국 패배가 아닌 더 큰 승리를 불러온 민초들처럼 풀꽃의 모습이 바로 그것이다.
묵밭에는 쑥구기가 울었다.
火田民(화전민)이 떠나고
개망초꽃들이 꾸역꾸역 피었다.
일원짜리 백동전만한
개망초꽃들이 떼지어 모인 곳엔
개망초꽃향기가
山脈(산맥)의 구름보다 일렁거렸다.
쓸쓸히 떠돌다 간 것이
六月(유월)의 장마 같기도 하고
죄 없는 혼백 같기도 하여서
-「개망초꽃」
<추천의 글>
풀꽃과 노새의 시인, 양채영
- 신경림(시인)
툭하면 내가 찾아가 신세를 지던 친구가 있다. 예컨대 도망다녀야 할 일이 생기면 며칠이고 가서 묵새기고 돈도 갈취했다. 평생 시골 학교로만 돈 평교사로, 아들 장가들 때 중매쟁이가 상대방에게 교감이라 과장하는 바람에 크게 곤욕을 치렀다던 친구다. 지난달 지나는 길에, 나는 그가 재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강마을의 한 분교엘 들렀다.
양채영 시인은 1957년 처음 교단에 선 이래 충주 관내에서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하고 큰 학교, 작은 학교, 분교를 만 42년 동안 돌다가 명예퇴직을 했다. 그 편리하다는 아파트로 이사도 못하고 호암지라는 호수에서 가까운 낡은 단독주택에서 20년 이상을 눌러 살면서.
"세상을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지만, 도시 학교로 나갔더라면 풀꽃을 보며 사는 즐거움은 또 없었겠지. 답답하다가도 풀꽃을 보면 마음이 따뜻해지거든."
아이들과 함께 산과 들을 헤매며 풀꽃을 따는 것이 꿈이었던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잘 썼건 못 썼건 나만큼 풀꽃에 대해서 많은 시를 쓴 사람은 없을 거야."
실제로 그처럼 풀꽃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쓴 시인은 우리나라에 없다. 개망초, 달맞이꽃, 여귀풀, 부채붓꽃, 장다리꽃, 토끼풀꽃, 쇠비름, 엉겅퀴, 자운영, 쑥부쟁이, 맨드라미, 백일홍, 오랑캐꽃, 패랭이꽃, 달개비꽃, 도라지꽃 등 그가 시로 쓴 풀꽃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 <시인을 찾아서 2(우리교육 출간)> 수록
목차
목차
착한 키다리, 장다리꽃
덩이 덩이 꽃구름덩이, 들찔레꽃
미움을 모르는 바보, 감자꽃
연보랏빛 목걸이, 자운영꽃
가녀린 슬픔, 씀바귀꽃
생매장된 맑은 기품, 연꽃
사랑을 속삭이는 황홀한 번득임, 물봉숭아
흔들리며 꾸는 꿈, 패랭이꽃
초록 치마 흰 저고리 여인, 옥잠화
하늘을 담은 작은 얼굴, 달개비꽃
생명의 꿈틀거림, 칡꽃
주눅들지 않는 삶의 등불, 민들레꽃
보일 듯 말 듯한 희망, 벼꽃
고혹적인 결사항전, 엉겅퀴꽃
서러운 듯 고고한 꽃, 도라지꽃
한 여름밤의 꿈, 박꽃
화전민의 희망과 울분, 개망초
스스로 몸을 굽히는 비감함, 억새꽃
꺾이지 않는 고매함, 들국화
식민지 백성의 울음, 쇠비름꽃
죽은 피라미들의 기억, 여뀌풀꽃
달에게 간구하는 기원, 달맞이꽃
태양을 삼킨 당당함, 해바라기꽃
당신을 유혹하는 눈빛, 사과꽃
설움을 함께 나누는 벗, 진달래꽃
기다림의 아픔, 백일홍
원초적 사랑의 향기, 밤꽃
나는 온전한 나인가, 쑥
가난을 비추는 등불, 살구꽃
황홀한 겨울 바다, 동백꽃
꽃반지의 추억, 토끼풀꽃
버려서 얻는 것들, 메꽃
아득한 그리움, 상사화
은밀한 곳에 뿌리내린 생명의 분출, 쑥부쟁이
바람 앞에 선 황금갈기, 갈대꽃
지상에서 빛나는 별 이름, 황금부채붓꽃
가장 낮은 곳의 생명력, 질경이풀
저자
저자
한국문학상, 국제펜문학상 특별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도천문학상, 정문문학상, 한국글사랑문학상대상, 충북도민대상(문학), 충주시문화상, 충북문학상, 국민훈장동백장 등을 수상했고, 한국문인협회 충주지부회장, 중원문학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한국문인협회 남북문학교류위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고문, 한국시인협회 심의위원, 한국현대시인협회 이사, 푸른시 낭송회장을 맡고 있다.
시집으로 <노새야><善 ? 그 눈><사시나무잎 흔들리는><지상의 풀꽃><한림으로 가는 길> <그리운 섬아!><그 푸르른 댓잎><지상은 숲이 있어 깊고 푸르다><개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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