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당화(문학과 행동 시선집 1)(양장본 Hardcover)
국민 연극 〈만선〉 국민 소설 〈황구의 비명〉 작가 천승세의 시집 『산당화』. 사계절 내내 어머니 박화성의 흉상을 혼정신성하며 쓴 〈꽃밭〉 연작. 어머니의 처녀 적을 회상하는 〈달맞이 방- 조운 생가 ‘달맞이 방’에서 하룻밤 자다〉. 빨치산의 비극적 생애를 압축한 서정시 〈산당화〉 등 31편이 엄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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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문단 생활 56년을 넘어선 소설가이자 극작가, 시인인 천승세 선생의 는 첫 시집 《몸굿》 (1995) 이후 두 번째 시집이다. 〈산당화〉 〈무지개 앞에서〉 〈단풍잎-김남주 8〉 등 3편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고향인 전남 목포에서 우거하던 2002~2011년 사이 창작된 시편들이다. 사계절 내내 어머니 박화성(대한민국 최초의 근대 여성 작가)의 흉상을 혼정신성하며 쓴 〈꽃밭〉 연작. 어머니의 처녀 적을 회상하는 〈달맞이 방- 조운 생가 '달맞이 방'에서 하룻밤 자다〉. 빨치산의 비극적 생애를 압축한 서정시 〈산당화〉 등 31편이 엄선되었다. 천 선생의 삶만큼이나 31편의 시들은 어느 한 편도 태작이 없다.
발문跋文
바다와 선생님
이규배
1989년 3월 27일 나는 남북작가예비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규동 · 이기형 선생님을 비롯하여, 신경림 · 고은 · 백낙청 · 박용수 · 윤정모 등 문인 26명은 마포구 아현동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국가보안법에 저촉되기에 회담을 불허한다는 정부 측의 제지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대기하던 버스를 타고 서울을 빠져 경기도 파주까지 갔지만, 여우고개에서 연행되어 그대로 마포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되었다. 윗선에서 지시하는 대로 조사를 하고 구금을 하고 진땀 흘리던 마포경찰서 형사들과 전경들의 처지를 생각해 보니 그때의 그들이 새삼 안쓰럽다. 유치장으로 야당 국회의원들의 방문이 줄을 이었고 가수 정태춘과 박은옥까지 와서 노래를 부르고 해댔으니 마포경찰서는 소란하게 끓었고, 서장을 비롯한 간부들 그리고 하급 경찰과 전경들의 어쩔 줄 몰라 하던 심경이 어떠했으랴.
저녁 무렵이었을 것이다. 경찰서는 또 한 번 벅적하게 끓어대기 시작했다. 모두 구속되어 정식 재판을 받게 될 경우 이어지는 싸움을 책임지기 위해 버스에 타지 않고 남아 있기로 했던 천승세 선생님이 자유실천위원회와 작가회의 회원들을 이끌고 와 구금된 26명의 문인들에게 박카스 박스를 반입하려 하자 경찰들은 저지선의 대오를 짜 필사적으로 막았다. 소식을 들은 우리들은 유치장에서 철창을 두들기며 응원하였고, 마침내 선생님은 전투경찰들의 대오를 무너뜨리고 박카스 상자를 들린 채 유치장 앞에 나타났다. 우리는 환호하였다.
그러고 얼마가 지났을까? 박카스를 한 병 두 병 마시던 문인들의 시위와 함성 소리가 다시 유치장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웃 철창 안의 여성 문인 윤정모 · 이경자 · 유시춘 선생 등은 남녀 합방과 남북통일을 외치기 시작했고 김규동 선생님을 필두로 우리 남성 문인들도 철창에 매달려 호응했다. 천승세 선생님은 병뚜껑을 따고 25도 진로소주를 붓고 막은 박카스 술 상자 보투를 해냈던 것이니, 우리들은 '박카스'에 힘입어 마포경찰서의 2박 3일을 지내다 나온 것이다.
그 후 아현동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천승세 선생님께 정식으로 인사드리고 맺은 사제 간의 정분이 한 세대가 흘러 쌓였다. 그런데 1989년의 31년 전인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점례와 소」로 문단활동을 시작하였으니 선생님은 현재 등단 60년을 바로 앞두고 있다. 마침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선생님의 중편 「신궁神弓」을 6월 17일부터 26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원로연극제의 무대에 올린다고 하니, 문학과행동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선생님의 두 번째 신작 시집을 펴내기로 했고, 여기 내 졸한 글이 붙게 된 것이다.
「산당화山棠花」, 「무지개 앞에서」, 「단풍잎-김남주 8」은 작가회의 기관지 〈내일을 여는 작가〉 15호(1999, 여름)에 수록되었던 것들이고, 「달맞이 방-조운曺雲 생가 '달맞이 방'에서 하룻밤 자다」외 14편은 〈문학IN〉 창간호(2014, 봄)에 수록되었다가 일부 교정되었고, 「위안」, 「어안魚眼」 등 13편은 미발표작이다. 〈내일을 여는 작가〉에 수록된 세 편을 제외한 작품들은 목포시 용해동에서 우거寓居하던 2002년에서 2011년 사이 창작된 시편들이다.
목포는 선생님의 모친 소영素影 박화성(1904~1988) 선생의 고향이자 천승세 선생님이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던 곳인지라, 노년에 이른 선생님은 가족들과 제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울 근교의 거처를 떠나 무려 15년을 넘게 목포에서 홀로 어머님 문학 기념관과 흉상을 지키고 후학들을 양성하다가 올봄에 강화로 돌아왔다. 연작시편 「꽃밭」은 목포문학관에 세워진 박화성 선생의 흉상을 혼정신성하듯 돌보며 하루하루를 지내던 생활의 정감이 절실히 담긴 것이니, 흉상 앞을 찾아 떠날 줄 모르고 서 있었을 것이던 선생님의 모습이 선연히 그려진다.
오늘 내 다시 널 찾으면
네 설움 풀릴까
시큰한 무릎 꺾고 앉았더니라
어젯밤 못 본 죄가 그리 피멍 되더냐
눈 들어 날 보면 다시 죄가 되더냐
풀어라, 맺힌 설움 제발 한 가닥만 풀어다오
네 앞에 돌이 되어 나마저 꽃 돼야 풀겠느냐
어젯밤 네 못 본 죄
피눈물 창끝 되어 바위 뚫고 말리니. - 「꽃밭5-어머니 흉상 앞에서」전문
위 시의 '내'는 어머니 흉상이고, '네'는 그 앞에 선 아들 천승세이다. 꿈에도 뵙지 못해 문학관 앞의 어머니 흉상의 꽃밭 앞에 하냥 서 있는 선생님은,
폭우가 내려 우산 들고 어머님 젖는 가슴
우산 받쳐 말려드렸습니다
폭설이 내려 몽당 빗자루 들고 일개미처럼
눈만 쓸었습니다
꽁꽁 어는 어머님 가슴 녹여 드리려고요 - 「꽃밭6-어머니 흉상 앞에서」부분
사계절 내내 어머니 흉상과 못다 한 사연을 나누며 우산 받쳐 말려드리고 빗자루 들어 눈을 쓸어 드렸던 것이다. 나이가 차 승세라 부르지 않고 자字를 붙여 하동河童이라 부르던 생전의 소영 선생, 그 흉상 앞에서 천 선생님은 "꽁꽁 어는 어머님 가슴 녹여 드리려고요"라고 물가 헤엄치는 어린아이 시절로 돌아가서 정담을 건넸던 것이니, 그 생활의 정성과 정감이 생생하게 보이고 들리는 듯 스미어 와 가슴을 치고 울린다.
소영 박화성 선생은 처녀 시절 전남 영광에서 교편을 잡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항일애국지사이자 시조시인인 조운曺雲 선생 댁에서 시 공부를 했다고 한다. 처녀 적 시 공부를 하던 어머니의 자취를 찾아 조운 생가의 '달맞이 방'을 찾던 선생님은 그 방에 날아다니는 모기마저 죽이지 못한다고 했으니, 나는 이것을 시를 위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실제 그러했음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선생님에게 시는 "협잡이 통하지 않는 엄절한 문학"(천승세 첫 시집 『몸굿』 후기, 1995, 푸른숲)이고, 지금까지 보아온 선생님의 본바탕이 그렇기 때문이다.
달맞이 방에도 달 없으면 깜깜해라
드나들던 모기떼도 어둑하면 숨어들어
그 적 그 피 그립다 울더라
벽 틈마다 숨어드는 모기떼 쫓으며 죽어라 죽어라
휘둘던 파리채 접는다 「달맞이 방- 조운曺雲 생가 '달맞이 방'에서 하룻밤 자다」전문
캄캄한 달맞이 방에서 어머니 생전을 그리던 선생님이 달려드는 모기떼를 향해 파리채를 휘두르다가 접었던 것은, 과학 상식으로 그럴 리 없지만, 어머니 생전의 그 적 그 피와 연관된 역사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모기떼 날아다니는 소리를 그 적의 어머니 피가 그립다는 소리로 듣고, 당신 몸속에 흐르는 어머니의 피를 모기떼에게 나눠 주겠다며 파리채를 접는 그 마음의 심연을 헤아려보자니 놀라움에 앞서 먼저 숙연해진다.
압권이니 절창이니 직정直情의 완전 직조織造이니 가치 평가의 잣대를 감히 들이대는 것은 법도에서 미끄러지는 짓이리라. 그보다 문단 60년사에 해당하는 찬사에 앞서서, 선생님의 시를 읽고 비감해지기만 하는 연유를 곱씹어 보게 되는 것은 어인 일일까?
"어젯밤 목 놓아 울다 죽고 싶었던 / 생선生鮮 // 눈 부릅뜨고 체념하고 있다"(「어안魚眼」부분), "열한熱汗의 진한 맹서를 반만 걸고 / 절반은 뚝 잘라 반납코자 염력念力을 숙성시키는 먹물들 / 모두 이 앞으로 나와 한 줄로 서라"(「무지개 앞에서」부분), "죽은 자의 정맥처럼 식어 가는 / 잿빛 산여울 / 시뻘겋게 젊은 단풍 한 잎 / 조름조름 떠흐르며 유언遺言한다"(「단풍잎-김남주8」부분), "얼어죽으라, 그러다가 얼어죽을라, / 끝끝내 나 죽이고 가라 소리치는 / 덜 잘린 제 꼬리!"(「입춘 개구리새끼」부분), "이 칠칠한 산발 틈새마다 / 흰 입김만 건너와 내려앉고 / 등때기 막 벗은 갈게 집게에 물린 / 저 춥디추운 초승달"(「갈대」부분), "아무라도 한 사람 비틀거려 다오 / 기름 절절 끓는 무쇠 솥에다 못 이룰 첫사랑 담아 놓고 / 한여름 염통 짜들게 울며 꽈배기 됐던 날 / 나 오늘사 그렇게 원 없이 원 없이 비틀거리다 죽고 싶다"(「주포酒浦 일기」부분), "내 옷이 예쁘다 읊지 마라 / 오늘도 날다 날다 지치면 / 시동배추잎 싸보듬고 하얗게 죽으리"(「흰나비」부분), "세상이 달다 하여 비칠비칠 흘렀더니 / 예가 염산이라 짠 설움만 또 앵긴다"(「염산에서-조운曺雲 풍」부분), "더 부를 수 없고 더 따를 수 없는 / 외진 목 지켜서 덩덕새머리로 우노니 / 살점 창새기 다 씻어 버리고, 홀로 울자니 / 쉰 목청만 살아 비듬 털 내리는 찬바람"(「갈대의 노래-의붓어미 江」부분), "닫아도 닫아도 스미치는 / 이 빗살 주렴발에 / 오들오들 치워라!"(「한기寒氣-조운 생가 '달맞이 방'에서」부분) 등은 격과 품, 그리고 기奇에 대한 찬사를 한사코 보류시키며 비감에 젖어들게 한다.
원한 서릿발 돋워 목숨 끊으면
오늘 내리는 눈세상 되겠지
간밤 새 내린 눈
왼통 은세상일세
다니기 옹색한 길 헤집다간 다리 부러질라
마음 한구석 찜찜해서 눈을 쓸다가
두 눈으로 대못 박혀서
뼈 이음매 부들부들 정신 나가고
눈물도 대 고드름 되어 다시 죽창 될 제
따르다 따라오다 오뚝 굳은 발자국
뉘가 주인이길래 이리 못 돌아서고 멈춰섰나
그 생각만 한눈팔다 눈을 쓸다 말았어! - 「눈을 쓸다가-조운 풍」전문
위 시는 2008년 1월 1일에 쓴 시라고 기록되어 있다. 곁에 아무도 없었나 보다. 오층 계단을 걸어 내려와 혹여 넘어져 다칠까봐 눈을 쓸어 길을 내며 돌아서지 못하는 발자국을 보며 굵은 눈물방울이 죽창처럼 흘러내릴 때 어머님이 그리웠나 아버님이 그리웠나 먼저 간 김남주 시인을 비롯한 후배 시인들이 그리웠나 살아 있는 후학들의 정이 그리웠나? 이 모든 것들을 아울러 "그래, 그 좁디좁은 열모의 문을 열고 / 하다못해 지금 막 부화한 배도라치 치어들까지 / 일제히 일렬로 서서 뒤흔드는 파문波紋의 합창合唱 // 저 불빛 본 적 있다. 저마다 살점 한 점씩 뜯어들고 / 정갈한 소망에다 불을 붙이는 은린銀鱗들의 쿨렁이는 소요"(「두우리 연가戀歌」부분)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오는 불면의 밤 함께 울며 타다 죽는 촛불 한 자루를 위안 삼아 지새우셨을 것이다.
동백나무에 동박새
잣나무에 멧잣새
개펄 구멍집마다 농게
치운 가슴 옆에 모닥불
지새우는 이 한밤
함께 울다 죽는
황촉 한 자루 - 「위안」전문
붙잡아 둘 수 없는 무정세월, 타다 죽는 황촉 자루처럼 되돌려 밝힐 수 없지만, 가장 낮은 곳에서 모든 물을 끌어안으면서도 넘치거나 가물지 않으며, 하늘과 태양과 달과 별들을 애 터지게 그리며, 가장 넓게 생명을 품고 키우는 바다, 선생님은 바로 그 바다 앞에 서 있을 때가 가장 평화로워 보인다. 지구별 유일의 일민족 이국가의 분단조국의 체제를 고착시키고자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는 패덕한 외세와 자본 권력을 향해 신궁을 날리던 선생님,
꽃이 되랴 하였으면 향훈 한 올 말아 올려
녹수청산 고를 것을
하필이면 산구방도리 마사토 덮고
허우룩이 서 있는 뜻
그 산사람 시뻘건 염통 속에 내 뿌리 갈래갈래
순장殉葬한 탓이외다
철마다 피 삭는 춘삼월 이맘때면
이파리 톱날같이 묵은눈 베어내도
군시러운 오금마다 골막히 핏물 올라
겨드랑이 비집는 원한 홍반紅斑 돋쳐 앓거니와
저 미친 벌떼 불침 꽂으며
꽃만 되라, 꽃만 되라 애끓기만 하더이다.-「산당화山棠花」전문
"꽃만 되라, 꽃만 되라" 애끓던 선생님도 어느덧 바다처럼 늙으셨다. 문단 생활 60년사를 앞둔 선생님의 축수를 먼저 염원함이 불초한 제자이나마 도리를 행하는 것이라는 점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선생님의 비감에 먼저 젖고, 그 건강에 대한 염려를 끝내 떨치지 못하나 보다. 이 염려의 자락을 놓지 못한 채, 선생님의 장수를 축원하며 다음의 졸시를 헌정한다.
폭풍이 몇 차례 지나갔다
바다는
푹 익었다
부푼 바다 둥근 수평 끝
천근天根으로부터 미끄러져 오는 점 하나
만선滿船
뒷산은 만취漫醉
바다는 만조滿潮
선생님은 바다처럼 늙으셨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 졸시 「바다와 선생님」전문
천 년이 가도 남을 문장은 남는다. 시간은 일방一方으로 흘러 왔다가 그 방향으로 중단 없이 가지만, 역사와 문학은 시간을 전회轉回시킨다. '그 산사람'(「산당화」)의 잊혔던 과거가 '그 산사람의 시뻘건 염통 속에 뿌리를 내린 산당화 붉은 꽃'으로 피어 현재화 되듯이, 진정의 불꽃은 재가 되어도 다시 타오르고 그 불꽃은 어둠을 몰아내 우리의 경국문장經國文章을 천고에 빛나게 할 것이다.
2016년 6월 8일
불초 제자 규배 쓰다
목차
목차
달맞이방 - 조운 생가 '달맞이 방' 에서 하룻밤 자다
어안
산당화
무지개 앞에서
단풍잎 - 김남주 8
두우리 연가
입춘 개구리새끼
염통 - 그 날 새벽 새들은 서로 맹서했었다
소금밭 - 조운 風
불 - 도자기 한 쌍
갈대
조포 일기
흰나비
바람
염산에서 - 조운 風
갈대의 노래 - 의붓어미 江
한기 - 조운 생가 '달맞이 방' 에서
울음이 타는 강 - 박재삼 風
눈을 쓸다가 - 조운 風
기러기 - 동요조
갯종다리
횡단보도 - 신호등
해인초
모영각
꽃밭 1 - 맹서
꽃밭 2 - 폭풍우 지난 이튿날 아침
꽃밭 3 - 나비
꽃밭 4 - 조운 風
꽃밭 5 - 어머니 흉상 앞에서
꽃밭 6 - 어머니 흉상 앞에서
발문 이규배 - 바다와 선생님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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