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몽요결(이이의)
조선 시대 최고의 인성 교과서
《격몽요결》은 율곡 이이 선생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지은 책으로,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 교재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다. 정치가로서의 이이가 교육자로의 면모를 보임과 동시에 이이의 교육사상이 적절하게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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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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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몽요결(擊蒙要訣)》은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 선생이 42세 때인 선조 10년(1577) 관직을 떠나 해주에 있을 때 지은 책으로, 처음 글을 배우는 아동의 입문 교재로 쓰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이는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23세 때 별시에서 장원을 한 후 벼슬길에 올라 47세 때 이조판서에 임명되었다. 이이의 성리학 사상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격몽요결》은 율곡이 직접 쓴 친필 원본으로, 한지에 행서체로 단아하게 썼으며, 내용은 제1장 입지(立志)에서부터 제10장 처세(處世)까지 10개 항목으로 나누어 구성하여 서술하였다.
《격몽요결》은 조선 중기 이후 일반에게 널리 보급되어 《동몽선습》과 함께 초학자의 입문서로 근세에까지 많이 읽혀져 왔다. 지은이 이율곡이 벼슬을 그만두고 파주 율곡리로 낙향하여 이후 한동안 관직에 부임하지 않고 본가가 있는 파주의 율곡과 처가가 있는 해주의 석담(石潭)을 오가며 교육과 교화
사업에 종사하면서 지은 책이다. 정치가로서의 지은이가 교육자로의 면모를 보임과 동시에 지은이의 교육사상이 적절하게 잘 나타나 있다.
지은이는 젊은 시절 금강산에서 불교를 공부하다가 하산한 이후, 평생을 유교적,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주자학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보았다. 《격몽요결》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의 교육사상은 유교적인 인재 양성과 충효를 근간에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성리학적 계몽서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격몽요결》은 여러 차례 목판본이나 활자본으로 출간되어왔으나, 유일한 친필본은 율곡의 이모가 시집간 권 씨 집안에 율곡의 유품과 함께 대대로 소장되어 왔으며, 이것은 율곡이 친히 쓴 친필원본으로 그 가치가 크다고 평가되어 보물 제 602호로 지정되었다.
이이는 성리학을 체질화한 사림파가 정권을 잡고 그들의 이념을 국정 전반에 본격적으로 적용해 나가던 선조 초년의 정치와 사상을 주도하던 인물로서, 이 책도 단순히 아동을 교육하기 위한 개인저술이 아니라 학문을 통해 사림파의 이념을 사회 저변에 확산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초기 사림 이래의 《소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결실을 맺은 저술이다. 1635년 이이를 문묘에 종사할 것을 건의 한 유생들이 이 책을 《성학집요》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 꼽고 학자 일반의 일상생활에 극히 절실한 책이라고 높인 것은 위와 같은 까닭에서였다.
정조(正祖) 때에 이 책을 임금이 친히 열람하고 제사(題辭)를 지어, 문신(文臣) 이병모(李秉模)에게 명하여 이를 책머리에 붙였다. 앞머리에 저자의 서문이 있고, 10개 장으로 구성되었으며, 각 장마다 여러 항목이 나열되어 있다. 학문이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하여 일상생활을 마땅하게 해나가는 것일 따름이라는 입장에서 저술되었다. 물론, 이때의 일상생활은 아버지는 자애롭고, 자식은 효성스러워야 하며, 신하는 충성되고, 부부는 유별해야하고, 형제간에는 우애가 있고, 어린 자는 나이가 많은 자를공경해야 하고, 붕우(朋友)된 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유교이념을 구현하는 것이었다. 그 방법은 글을 읽어 이치를 연구하여[讀書窮理] 마땅히 행하여야 할 길을 밝힌 다음에, 깊은 경지로 들어가 올바름을 얻고 밟아 실천하여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중도(中道)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이 책의 목적은 학도에게 뜻을 세우고 몸을 삼가며 부모를 모시고 남을 대하는 방법을 가르쳐, 바로 마음을 닦고 도를 향하는 기초를 세우도록 노력하게 만든다는 데 있으며, 동시에 저자로서도 스스로를 경계하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고자 하였다.
이이는 성리학을 체질화한 사림파가 정권을 잡고 그들의 이념을 국정 전반에 본격적으로 적용해 나가던 선조 초년의 정치와 사상을 주도하던 인물로서, 이 책도 단순히 아동을 교육하기 위한 개인저술이 아니라 학문을 통해 사림파의 이념을 사회 저변에 확산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의 일환이었으며, 초기 사림 이래의 《소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결실을 맺은 저술이다. 1635년 이이를 문묘에 종사할 것을 건의한 유생들이 이 책을 《성학집요》와 함께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 꼽고 학자 일반의 일상생활에 극히 절실한 책이라고 높인 것은 위와 같은 까닭에서였다.
제1장 입지(立志)에서는 학문에 뜻을 둔 모든 사람이 성인(聖人)이 되기를 목표로 하여 물러서지 말고 나아가라고 하였다.
제2장 혁구습(革舊習)에서는 학문 성취를 향해 용감히 나아가기 위해 '마음과 뜻을 게을리하여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을 모방할 뿐 안일한 것을 생각하고 얽매임에 깊이 물들어 있는 것' 등 구체적 조항 8개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제3장 지신(持身)에서는 충신(忠信) 등 몸을 지키는 방도를 제시하여 뜻을 어지럽히지 말고 학문의 기초를 마련하도록 하였다. 제4장 독서는 독서가 도에 들어가기 위한 궁리의 전제가 되며, 단정한 자세로 깊이 정독할 것을 가르치고 독서의 순서를 제시하였다.
제5장 사친(事親)에는 평상시의 부모 섬기기를 비롯하여 부모의 뜻이 의리에 어긋날 때 자식이 부드럽게 아뢰어 뜻을 바꾸게 하라는 것 등의 내용이, 제6장 상제(喪祭)와 제7장 제례(祭禮)에는 그것들을 주희의 《가례》에 따라서 할 것과 반드시 사당을 갖추라는 내용 등이 실려 있다.
제8장 거가(居家)에는 부부간의 예를 비롯하여 집안을 다스리고 가산을 관리하는 방법이, 제9장 접인(接人)에는 사회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교양이, 제10장 처세(處世)에는 과거를 거쳐 벼슬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자세가 실려있다.
이러한 구성과 내용은 학문에 뜻을 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자기 몸을 바로 세우고 사회에 나가 활동하도록 하는 성리학의 근본이념을 일상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자연과 사회를 파악하는 데 이기철학이 바탕이 되며, 부모자식 간의 효가 사회질서의 근본이념을 이루고, 향촌 지주로서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한 사족(士族)들이 사회를 주도하던 조선시대에는 가장 기본적인 교과서였다. 그러나 사회운영의 철학과 질서가 크게 바뀐 현대에는 그 내용들을 그대로 학문과 사회생활에 적용하기 어렵다.
목차
목차
격몽요결서(擊蒙要訣序)
1. 입지장(立志章)
2. 혁구습장(革舊習章)
3. 지신장(持身章)
4. 독서장(讀書章)
5. 사친장(事親章)
6. 상제장(喪制章)
7. 제례장(祭禮章)
8. 거가장(居家章)
9. 접인장(接人章)
10. 처세장(處世章)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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