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트 싱
인도 독립의 불꽃
『바가트 싱』은 간디주의 하의 역사적 시각에 가려져 왔던 ‘바가트 싱’이라는 인물을 소개하는 책이다. 바가트 싱은 가혹한 제국주의의 압제와 인도사회의 모순에 맞서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였다. 23년이라는 짧은 생애에서 테러리스트이자 대중 활동가로서 활동하였던 젊은 영웅의 일대기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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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조국 인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불태운 청년
'바가트 싱'을 소개한 국내 최초의 책.
그의 짧지만 강렬한 생애와 사상이 한 권의 책 속에서 펼쳐진다.
인도인들에게 영국의 식민 지배에 맞서 항거한 인물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라고 대답할까? 물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간디와 네루가 등장하겠지만 여기 매우 생소한 이름이 하나 추가된다. 바로 '바가트 싱'이다. 그가 인도 독립의 상징으로 민중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직도 인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인도 전역에 그의 포스터와 사진, 그림이 집 벽, 공공장소, 차량에까지 붙어 있고, 수천 개의 청년클럽이 그의 이름을 따른다. 영웅적인 행동과 희생을 기리는 노래와 시들이 인도 각지의 언어로 만들어져 세대를 이어 불리고 있다.
저자인 그레왈은 영국의 지배 아래 있던 인도의 시대 배경을 사실적인 필체로 그리며, 사료와 주변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해방 투쟁의 선두에서 인도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던 그의 족적을 담담히 따라가고 있다. 또한 편향된 시각이 아니라 그의 공적과 과실을 모두 다룸으로써 단순히 위대한 인물을 찬양하는 청소전 전기류의 책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현직 정치인의 눈으로 인도의 근본적인 경제·사회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인도 사회주의 정당의 문제점과 한계를 지적한다.
이 책은 그동안 간디주의 하의 역사적 시각에 가려져 왔던 '바가트 싱'이라는 인물을 국내에 처음 소개함으로써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 죽어갔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자칫 인도 역사를 생소하게 느낄 수 있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원서에 없는 사진 자료들을 다수 수록하고 참고자료를 포함해 읽을거리를 추가했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의 역사적 시각을 한층 넓힐 수 있을 것이다.
혁명적 테러리스트에서 대중 활동가로
바가트 싱은 23세의 짧은 생애 동안 인도의 완전한 독립을 위해 불꽃의 삶을 살다 간 혁명가이다. 독립운동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부터 독립 투쟁에 합류한 그는 초기에는 테러리스트로서 이후에는 대중 활동가로서 역사적인 족적을 남긴다. 싱과 그의 동료들은 민족적 보복 행위로 영국의 고위층에 대한 테러를 시도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민족 혁명가'나 '혁명적 테러리스트'에 머물지 않고 사상적으로 발전해 시각을 넓히고 사회주의와 계급 착취 없는 자유 인도 건설을 꿈꾸었다.
바가트 싱 역시 테러리즘의 한계를 깨닫고 대중 선동으로 노선을 전향한다. 1929년 4월 8일 그는 인도를 옥죄어 오는 영국의 잇따른 식민지 악법 제정에 항의하기 위해 의회에 가짜 폭탄을 터뜨리고 유인물 '귀먹은 자를 듣게 하라'를 뿌리면서 저항 없이 고의로 체포되었다. 1929년 6월 6일 그는 폭발사건 관련 법정을 대중 선동의 장으로 이용함으로써 인도 민중의 가슴에 불을 붙였다.
그의 폭발적인 인기는 영국뿐 아니라 국민회의 지도자들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그가 제국주의뿐 아니라 인도의 전통적인 계급과 착취에까지 항거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회주의로 인한 기존 체제의 전복을 무엇보다 염려했는데, 여기서 간디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간디는 영국 총독에게 그의 사면을 요청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둘러 처형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그는 동료들과 함께 1931년 3월 23일 저녁 7시 33분 라호르 중앙감옥에서 처형되었다.
불멸의 아성 간디의 노선에 반기를 들다
1920년대와 1930년대는 간디의 국민회의 노선에 회의를 느낀 새로운 혁명 세대들이 등장하던 시기였다. 영국에 아첨하고 타협하기 급급한 국민회의 지도자들의 투쟁 방식은 갈수록 대중의 신망을 잃어갔다. 게다가 그들은 지주세력과 결탁해 진정한 의미의 해방, 즉 계급 없는 평등한 사회가 오는 것을 절대적으로 막고자 했다. 간디와 그의 사도들에 의해 제기된 비폭력운동은 인도 부르주아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 내에서만 해방 투쟁을 유지시키는 데 아주 긴요하게 쓰였다. 그들은 제국주의자들만큼이나 대중운동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바가트 싱과 동지들은 간디의 비폭력주의에서 벗어나 초기 해방 투쟁의 과정에서 무장투쟁을 신뢰했다. 무장투쟁은 독립을 위해 대중을 각성시키는 주요 무기로서 혁명 조류의 상징이었다. 바가트 싱은 그들 중 가장 돋보이는 존재였고, 그의 이름은 '인퀼랍 진다바드(혁명 만세)'라는 전투 구호와 동의어가 되었다.
또한 단순한 테러리스트였던 구세대 혁명가들과 달리 혁명 신세대인 그들은 민족해방 투쟁의 구체적인 내용과 독립된 인도가 어떤 모습으로 변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들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비타협적인 투사이면서도 여타의 억압에 질문을 던지고 투쟁과 성공 이후에 대한 구체적인 전망을 모색했다. 바가트 싱과 그 동지들이 목숨 바쳐 원했던 독립국가 인도는 종교 분쟁도 카스트도 계급도 없는 평등한 사회였다.
인도인들이 영원히 추억할 아름다운 이름, 바가트 싱
이 책(원서)의 초판은 2007년 바가트 싱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출간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인도인들이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인도 사회가 여전히 불평등하며 최근 극대화된 자본주의로 인해 빈부의 격차가 더욱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존의 불평등이 해소되지 못한 가운데 세계화·자유화·사유화를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시행으로 인도의 노동자들은 또 한 번 시련에 부딪히고 있다.
"영국에게 협력하기 위해서 바가트 싱이 서둘러 처형되기를 원했던 간디는 역사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고 외치던 커다란 목소리들은 그때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이 책은 이 목소리들이 어디서부터 나왔는지 밝힘으로써 '간디와 IT산업' 뒤에 가려져왔던 인도 절대다수의 빈곤과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추천의 말
23세의 바가트 싱이 1931년 3월 처형당하고 며칠 후 62세의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살려 하지 않았다. 사죄는 물론 항소도 거부했다. 그는 비폭력 정신을 받들지 않았지만 폭력의 제단에 정신을 바친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폭력에 의지한 것은 조국을 지키는 다른 길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간디의 비폭력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하늘을 찌르고 땅을 뒤덮었던 영국 식민통치의 부정과 불의에 대한 인도인의 분노를 알아야 한다. 바가트 싱은 간디와 다른 방법으로 분노를 표출했고 그 정당성을 간디도 인정했던 것이다. 차이는 타당성에 있을 뿐이었다.
식민지 인도인의 분노를 극적으로 표현한 사람 중 하나인 그는 아나키스트로서도 마르크시스트로서도 추앙받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표현 내용은 분노였다. 이 분노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인도를 '전설 속의 어느 나라'가 아니라 근대사의 진흙탕을 함께 거쳐 온 우리의 이웃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 김기협(역사평론가, 전 계명대 사학과 교수)
<책속으로 추가>
살고 싶다는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게도 마찬가지다. 이것을 숨기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것은 상황에 따른 것이다. 나는 죄수로서 또는 구속 아래서 살고 싶지는 않다. 혁명 정당의 이상과 희생은 내가 살아서 올라갈 수 없는 곳까지 나를 올려주었다. 내가 교수대를 피한다면…… 혁명의 상징도 바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웃으면서 용감하게 교수대 위에 올라간다면 인도의 어머니들을 고무시킬 것이고 당신의 아이들이 바가트 싱이 될 것을 열망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기꺼이 생을 조국의 자유를 위해 희생한다면…… 혁명의 흐름으로 제국주의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 p.157 <무한한 용기> 중에서
내 앞에 서 있는 그를 보았다. 더러운 샬와카미(통으로 된 무릎까지 내려오는 인도의 민족의상. 네루가 항상 입고 있었던 것으로 지금도 인도에서는 정장이다-옮긴이)를 입고 어깨에 담요를 두르고 있었는데, 키가 크고 흰 얼굴에 터번을 두른 시크 청년이었다. 통찰력 있어 보이는 작은 눈과 잘 생긴 얼굴에 성긴 수염이 있었다. …… 그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나와 포옹하고 내 손을 잡고 그의 방인 것처럼 나를 내 방으로 데려 갔다. …… 그의 단순한 행동과 정직한 웃음은 첫 만남에서 완전히 나의 경계심을 풀게 했다. -p.161 <동지들이 가졌던 인상> 중에서
부르주아 역사가들과 정치가들은 바가트 싱과 동지들의 역할을 마지못해 인정해 왔다. 그들이 경시하거나 완전히 감췄던 것은 사회주의에 대한 당파성과 바가트 싱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것이다. 그 결과 혁명가들은 낭만적인 청년들이거나, 폭력에 사로잡혀 있거나, 순수하고 단순한 애국자로서 어머니 조국에 대한 사랑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묘사되었다. 이것이 주류인 국민회의나 상업영화, 유행가, 만화, 달력 등에 의해 단순화된 바가트 싱의 초상화이다. -pp.179-180 <부르주아들의 잘못된 해석> 중에서
목차
목차
서문
1장 칼을 갈다: 역사적 환경과 초창기
혁명적 테러리즘의 성장
제1차 세계대전과 국민회의
펀자브의 투쟁 전통
반란의 울림
잘리안왈라 대학살(암리차르 학살사건)
아칼리들와 바바르들
10월혁명과 그 영향
인도에서의 붉은 깃발
새로운 이상을 향하여
비협력운동, 국민회의, 타협
부르주아 민족주의의 한계
2장 아나키즘과 아나키즘을 넘어서: 귀 먹은 이를 듣게 하라
인도공화주의자협회와 카코리
인도청년협회(NBS)
인도사회주의공화국협회(HSRA)
귀 먹은 이를 듣게 하려면
미루트 공모사건
뚜렷해진 혁명
사회주의공화국협회 선언과 '폭탄의 철학'
아나키즘과 개인 테러
혁명적 무장투쟁과 폭력
3장 마르크스주의를 향하여: 단두대의 그림자 아래서
법정과 감옥에서의 동지들
보충자료 자틴 다스의 단식
이념적 투쟁
코뮤날리즘과 종교에 반대하다
보충자료 1 코뮤날리즘을 한솥밥으로 먹어 없애다
보충자료 2 시크교도의 바가트 싱 이용
카스트의 족쇄를 부수고
마지막 유서
혁명의 선봉
다른 저술들
순교를 향하여
학생들에게 보내는 메시지
삶의 기쁨을 위하여
무한한 용기
동지애, 겸양 그리고 자기비판
동지들이 가졌던 인상
간디, 국민회의, 혁명가들
보충자료 1 사형 집행을 앞당길 것을 요구한 간디
보충자료 2 '진실'로 간디를 이긴 영국 총독
혁명 만세
4장 비판적 평가: 사상의 깊이와 실천의 한계
부르주아들의 잘못된 해석
비판적 찬양에 대한 위험
단점들
비역사적 과장
행동 지침
결론
보충자료 바가트 싱에 관한 상업영화
부록
붉은 팸플릿 귀 먹은 자를 듣게 하라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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