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네디와 말할 수 없는 진실(양장본 HardCover)
무엇이 케네디를 죽게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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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케네디를 죽게 했는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최근까지 발견된 방대한 자료와 조사를 토대로 케네디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그의 생애를 통해 평화의 중요성과 그 이면을 살펴본다. 전통적인 냉전주의자였던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PT정이 침몰하면서 부하들의 죽음을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갓난 아들 패트릭의 죽음과 그 병원에서의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를 평화주의자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의 바뀐 정책 노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반대파들과 맞서며 그는 목숨을 걸고 평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자세한 자료를 통해 제시한다. 인기 있는 대통령의 화려함 뒤에서 항상 냉전의 세력과 사투를 벌여야했던 케네디의 고민과 번민, 그리고 그의 평화를 향한 집념을 살펴볼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던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은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 책은 최근까지 발견된 방대한 자료와 조사를 토대로 케네디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그의 생애를 통해 평화의 중요성과 그 이면을 살펴본다. 전통적인 냉전주의자였던 케네디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PT정이 침몰하면서 부하들의 죽음을 눈으로 생생하게 목격하고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갓난 아들 패트릭의 죽음과 그 병원에서의 아이들과의 만남은 그를 평화주의자의 길로 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모든 이들이 그의 바뀐 정책 노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반대파들과 맞서며 그는 목숨을 걸고 평화를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을 자세한 자료를 통해 제시한다. 인기 있는 대통령의 화려함 뒤에서 항상 냉전의 세력과 사투를 벌여야했던 케네디의 고민과 번민, 그리고 그의 평화를 향한 집념을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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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JFK 죽음의 진실과 그 의미
무엇이 그를 죽게 했는가? 그것은 왜 중요한 문제인가?
케네디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평화는 진정 그들에게 국익을 해치는 악(惡)이었는가!
미국 대통령 중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고, 당시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케네디 대통령, 그는 4년 임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1963년 11월 22일 오후 1시 15분 텍사스 댈러스에서 피살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분의 3이 그가 음모에 의해서 피살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살해되었는가?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케네디의 죽음에 대한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최근까지 발견된 방대한 자료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조사를 토대로, JFK 죽음의 진실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 전통적인 냉전주의자에서 평화주의자로 전향한 케네디가 대통령 재임 3년에 걸쳐 겪은 변화의 실상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PT정이 침몰한 후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벌였던 바다와의 사투는 그에게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갓난 아들 패트릭의 죽음과 그 병원에서 화상을 입은 아이를 만나보고 난 후 그는 핵전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삶의 기회를 앗아갈 수 없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다듬는다.
피그스 만 침공에 이은 쿠바 미사일 위기, 흐루시초프와의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 그리고 카스트로와의 화해 시도 등을 통해 들여다보면 CIA, FBI, 군부와 재계 등 미국의 정부 기관들이 사실상 케네디를 제거해야 하는 반역자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케네디는 이들과 맞서는 일이 죽음을 재촉하는 일임을 예감하면서도 평화를 위한 그의 장정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인기 있는 대통령의 화려함 뒤에는 항상 냉전의 세력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그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으며, 그의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살해당해야 했던 케네디의 '평화를 향한 집념'을 엿볼 수 있다. 케네디의 암살을 음모했던 보이지 않는 세력은 단지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꿈꿔온 비전을 없애 버렸다. 세계 평화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했던 대통령 케네디의 희생은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 케네디와 CIA 및 군부와의 주요 갈등 요인
* 쿠바 공습 불허
CIA의 지원을 받은 쿠바의 망명자단체 '알파 66'을 포함한 반(反) 카스트로 세력이 쿠바의 피그스 만을 침공, CIA와의 계획대로 미국의 전투기 추가 공습과 전투 병력의 지원을 기다렸으나 케네디의 거부로 침공군은 항복하고 1천명 이상이 체포된다. 쿠바 침공 실패의 원인을 제공 했다는 케네디에게 반(反) 카스트로 세력과 CIA의 불만이 고조된다.
* 라오스 중립화 정책
CIA와 국방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공주의 통치자 푸미 노사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고 소련의 흐루시초프와 함께 중립국이자 독립국인 라오스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를 반대하던 CIA와 국방부는 케네디가 공산주의에 굴복한 것으로 간주한다.
* 쿠바 미사일 위기
U-2 정찰기로 촬영한 사진에서 쿠바에 소련 미사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군부는 즉각적인 핵 선제공격을 요청하나, 케네디는 공격을 불허하고 쿠바 행 미사일 수송선을 포함한 모든 소련 선박을 해상 봉쇄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은 "이번 대통령의 봉쇄 결정은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양보했던 뮌헨협약만큼이나 끔찍하다"고 말했다. 쿠바 상공에 있던 U-2 정찰기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고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케네디는 군부의 재차 공격 요구를 거부하고, 물밑 대화를 통한 흐루시초프에 대한 경고와 회유로 쿠바에서의 소련의 미사일을 철수시킨다. 군부는 케네디가 쿠바에 대한 공격을 거부하고 흐루시초프에 양보했다고 격분한다.
* '알파 66'의 쿠바 내 소련 함선 기습 공격
케네디를 쿠바와의 전쟁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CIA의 계략으로 '알파 66'이 쿠바에 있는 소련 요새와 선박을 급습 12명의 사상자를 낸다. 흐루시초프의 항의를 접한 케네디는 반(反) 카스트로 단체의 이동을 마이애미로 제한하는 동시에, 해안 경비대에 지시해 그들의 군함을 나포하고 선원들을 체포한다. CIA의 지원을 받는 쿠바혁명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케네디의 조치들을 통해 이제는 반(反) 카스트로에 대한 투쟁을 청산하는 과정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베를린 장벽 사건
1961년 8월 소련은 베를린 장벽 건설을 명했고, 이로 인해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주 현상과 동·서독간의 긴장은 막을 내리는 듯 했으나 그해 9월 미국의 클레이 장군은 비밀리에 베를린 장벽의 파괴를 계획한다. 이를 알아챈 소련의 탱크 20대가 장벽을 에워싸고 미국과 동맹국의 탱크 20대가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한다. 양측의 대치는 16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케네디는 흐루시초프와의 비밀 협상을 통해 흐루시초프의 양보를 얻어낸다. 다음날 아침 소련 탱크는 철수하고, 미국 측 탱크도 30분 사이에 철수한다. 클레이장군과 군부는 이때 핵무기를 사용하여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는 상황을 매우 아쉬워한다. 이 사건을 통해 미 군부는 케네디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고, 더욱이 흐루시초프와 점점 깊어지는 결탁을 보며 그를 반역자로까지 생각하게 된다.
* 베트남 미군 철수 계획
케네디는 베트남 내전을 진압하기 위한 군부의 전투부대 파병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군사고문단과 기술지원부대를 파병하라고 지시한다. 베트남을 라오스와 같은 중립국으로 전환시키기로 결정한 케네디의 계획에 CIA는 제동을 건다. 베트남 고 딘 디엠 정권의 전복을 계획하는 CIA는 디엠 정권의 불교탄압을 기회로 플라스틱 폭탄을 터뜨려 베트남의 소요를 부추긴다. 결국 CIA는 디엠 대통령 형제를 살해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디엠을 살려주고 싶어 했던 케네디는 격분하여 시카고 방문을 전격 철회한다. 케네디는 '국가안전보장조처에 관한 비망록 263호를 통해 1963년 말까지 천명의 미군을 철수하고, 1965년 말까지 모두 철수시킨다는 정부의 정책을 공식화했다.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북베트남(베트공)을 섬멸시키고자 했던 군부와 CIA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고, 미군 철수 계획은 케네디 죽음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국가안보회의에서 군부와 CIA는 긴장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1963년 후반에 소련을 핵 선제공격을 제안한다. 이에 케네디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며 "이러고도 우리가 스스로를 인류라고 부르고 있는가"라며 개탄한다. 케네디는 전반적 완전군축을 진척시키기 위해 '대기 핵실험'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다. 특사를 통한 수차례의 흐루시초프와의 밀담을 통해 지하 핵실험을 제외한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은 미·소 양국의 과학자들, 군수업체 및 군부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재계와의 갈등
케네디, 철강노동조합과 철강기업들 간의 철강가격 동결 합의를 깨고 US스틸이 가격인상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이에 격분한 케네디는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가 들려주었던 '사업가는 다 개자식들'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 이어서 케네디는 일방적으로 국방부와의 납품계약의 파기를 지시하고 철강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여 철강기업을 몰아붙인다. 이에 백기를 든 철강업계는 케네디와 법무부장관 로버트 케네디의 행위를 결코 잊지 못한다.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철강기업 1~2위인 US스틸과 베들레헴 스틸을 비롯한 철강 기업들이 재계의 재벌그룹에 속한 계열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US스틸과 베들레헴 스틸은 JP 모건과 록펠러의 그룹에 속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카스트로와의 화해 시도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CIA의 수차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CIA의 지휘아래 케네디와 카스트로의 대립을 부추기기 위한 망명자단체를 통한 쿠바에 대한 기습 공격 등은 케네디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카스트로의 영향력을 우려했던 CIA와 군부는 카스트로를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제거해야할 적으로 생각했다. 공산주의 지도자 흐루시초프에 이어 반드시 청산해야 할 악의 축인 카스트로와의 대화 시도를 지속해 온 케네디의 도발에 CIA와 미 군부는 케네디를 대통령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음모의 전말
* 시카고 대통령 암살 음모 사건
1963년 11월 2일 케네디는 솔저 필드에 있을 육군과 공군의 축구시합 참관 차, 시카고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리'라는 제보자에 의해서 케네디 암살을 위한 저격수 4명 중 2명은 체포되고 2명은 도주한다. 그러나 케네디는 베트남의 고 딘 디엠이 사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카고 방문을 전격 취소한다. 시카고 경찰은 케네디를 저격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밸리를 추적하고, 실제 그의 은신처를 급습하여 각종 소총을 비롯한 살인용무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바로 그를 체포하지 않고 케네디의 방문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공식 통보가 있을 때 까지 감시만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댈러스에서의 오스왈드처럼 표면상으로 밸리를 암살범으로 만들어놓고 실제 저격은 보이지 않는 저격수들이 실행하는 이 시나리오는 댈러스의 케네디의 암살 시나리오와 그 구성이 일치한다. 시카고에서 오스왈드를 대신하는 희생양 토머스 아서 밸리는 체포되고 사건은 종결된다. 댈러스에서 암살사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CIA를 비롯한 모든 미국의 정보기관이 시카고 음모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FBI에 암살음모를 제보한 인물 '리'는 '리 하비 오스왈드로 추정된다.
* 댈러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케네디의 암살범 오스왈드는 미국과 소련의 이중간첩으로 알려져 있는데, 망명한 후 3년 후에 돌아오게 되면서부터 CIA는 그를 케네디 암살의 희생양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짠다. 이 시나리오에는 제2의 오스왈드가 등장하는데, 오스왈드와 비슷한 인물을 만들어 여러 곳에 자주 모습을 나타나게 한다. 실제 댈러스에서의 저격은 케네디 차량 행렬 앞쪽의 풀이 우거진 둔덕 울타리에서 제2의 오스왈드와 또 다른 저격수가 시도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오스왈드의 근무지인 교과서 보관소 건물은 케네디 차량 행렬 뒤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실제로 케네디 시신에서 나온 총탄의 진로는 앞쪽에서 쏜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X-레이 사진을 조작해 케네디의 저격은 뒤쪽에서 이루어졌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내린다. 케네디 피살 이틀 후에 오스왈드를 살해하는 잭 루비가 등장하는데, 피살 당일 케네디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앞쪽 둔덕에 잭 루비가 총기를 소지하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는 몇 명의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잭 루비와 오스왈드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으나 훗날 잭 루비 역시 CIA의 정보원으로 밝혀졌다.
케네디 암살 사건의 목격자들과 사건의 증인들은 의문의 피살을 당하거나 정신이상자로 몰려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은 이 사건을 목격했거나, 진실을 증언하는 모든 사람들을 케네디처럼 적으로 보았다. CIA와 연통하면서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현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직장을 구하게 된 시카고 암살미수범 밸리와 오스왈드 두 명의 희생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은 그들 뒤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던 저격수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조용히 사라져 갔다는 것이다.
◆ 맺는말
케네디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보면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 베트남 주둔 미군 희생에 대한 우려, 흐루시초프와 카스트로와 함께 평화를 지향하면서 공산주의에 관대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케네디를 제외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은 공산주의라는 악은 반드시 패배해야한다는 당위성 아래,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설사 그 방법이 대통령 암살이라고 해도-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입증했다. 암살 배후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만큼 시카고 암살계획의 실패는 반드시 댈러스 암살의 성공으로 이어져야 했다. 베트남 대통령 고 딘 디엠 형제가 살해당한 다음날 케네디가 시카고에서 피살되었다면 두 사건의 병렬적 관계로 보아 미국인들에게 '케네디는 디엠을 살해했기 때문에 피살되었다는 시나리오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댈러스의 사건도 수차례 시도되는 카스트로의 암살시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친(親) 카스트로의 대리인인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살해했다는 시나리오에 짜 맞출 수도 있었던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에 이은 맬컴 X,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사건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은 그들이 매체나 희생양들을 이용해서 '관련사실 부인'의 원칙의 보호를 받는 정보기관들에 의해 살해되어 되었으며, 네 사람 모두 '사회의 변화'를 부르짖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문이 닫히자 맥나마라는 공산당의 승리가 임박한 라오스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으면서 이들의 생각을 떠봤다. 이 질문은 회의 안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펠트 장군의 대답은 케네디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전형적인 폭파 방식이었다.
펠트는 "즉시 공중 폭격에 착수하면 48시간 안에, 예를 들면 체폰Tchepone과 같은 마을을 지도에서 즉각 지워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맥나마라는 그와 같은 폭격은 북베트남이나 중국에 자극을 줘 도발의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고 나면? 미군은 북베트남과 중국 기지도 폭격해야 하는가? 그 다음엔 어딘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짧은 질문으로 국방부장관은 라오스 어디에도 미군 파병은 없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로 절충안을 협상하느냐(군부 입장에서는 공산당에 라오스를 팔아버리는 행위였다), 아니면 라오스, 베트남, 중국으로 계속 확산되는 전쟁에 어리석고도 위험한 개입을 해야 하는가. 중립 라오스 협상의 필요성으로 운을 뗀 맥나마라 장관은 군 수뇌부가 더 이상의 상상도 못할 정책을 내놓는다. "베트남 철수, 미국이 할 일은 전쟁을 떠맡는 것이 아니라 남베트남이 전쟁을 감당할 수 있게끔 성장시키는 것이다."라고 맥나마라가 말했다. 그리고 방 안에 남은 사람들에게 남베트남에서 언제쯤 군대를 완전히 철수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_275쪽 3장 케네디와 베트남
케네디 대통령은 머리에 총을 맞았고, 두개골의 윗부분은 깨져 버렸다. 남편이 총에 맞은 상황에서 재클린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녀는 남편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두개골 파편을 찾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로 기어 올라갔다. 리무진을 쫓아가서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간 비밀경호원 클린턴 힐은 영부인이 본능적으로 남편의 떨어진 두개골을 찾으려 했다고 증언했다.
그 후 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두 번째 총성이 대통령의 머리를 완전히 날려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영부인께서는 자리 위로 뛰어 올라가셨고, 그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자동차 범퍼 오른쪽 뒤로 떨어진 뭔가를 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계셨습니다."
힐은 그녀를 붙잡고 뒷좌석 맨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대통령의 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곧 파크랜드 병원에 도착했고, 대통령의 두개골에서 오른쪽 뒷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크랜드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대통령의 두개골 오른쪽 뒷부분이 사라졌음을 확인했고, 따라서 암살범이 앞 쪽에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오스왈드가 있던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 건물에서 총이 발사된 것이 아니었다. 교과서 건물은 뒤쪽에 있었다.
_598쪽 6장 워싱턴과 댈러스
무엇이 그를 죽게 했는가? 그것은 왜 중요한 문제인가?
케네디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평화는 진정 그들에게 국익을 해치는 악(惡)이었는가!
미국 대통령 중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을 받았고, 당시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케네디 대통령, 그는 4년 임기를 1년도 채 남기지 않은 1963년 11월 22일 오후 1시 15분 텍사스 댈러스에서 피살 되었다.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의 4분의 3이 그가 음모에 의해서 피살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무엇 때문에, 누구에게 살해되었는가?
이 책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케네디의 죽음에 대한 매우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최근까지 발견된 방대한 자료들을 포함한 광범위한 조사를 토대로, JFK 죽음의 진실이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그 이유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또 전통적인 냉전주의자에서 평화주의자로 전향한 케네디가 대통령 재임 3년에 걸쳐 겪은 변화의 실상을 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그의 PT정이 침몰한 후 부하들을 살리기 위해 벌였던 바다와의 사투는 그에게 인간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갓난 아들 패트릭의 죽음과 그 병원에서 화상을 입은 아이를 만나보고 난 후 그는 핵전쟁으로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삶의 기회를 앗아갈 수 없다는 결심을 확고하게 다듬는다.
피그스 만 침공에 이은 쿠바 미사일 위기, 흐루시초프와의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 그리고 카스트로와의 화해 시도 등을 통해 들여다보면 CIA, FBI, 군부와 재계 등 미국의 정부 기관들이 사실상 케네디를 제거해야 하는 반역자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케네디는 이들과 맞서는 일이 죽음을 재촉하는 일임을 예감하면서도 평화를 위한 그의 장정은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인기 있는 대통령의 화려함 뒤에는 항상 냉전의 세력과 사투를 벌여야 했던 그의 고뇌와 번민을 읽을 수 있으며, 그의 꿈을 채 펼쳐보기도 전에 '말할 수 없는 것들'에 의해 살해당해야 했던 케네디의 '평화를 향한 집념'을 엿볼 수 있다. 케네디의 암살을 음모했던 보이지 않는 세력은 단지 한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꿈꿔온 비전을 없애 버렸다. 세계 평화를 위해 목숨을 담보로 했던 대통령 케네디의 희생은 테러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 케네디와 CIA 및 군부와의 주요 갈등 요인
* 쿠바 공습 불허
CIA의 지원을 받은 쿠바의 망명자단체 '알파 66'을 포함한 반(反) 카스트로 세력이 쿠바의 피그스 만을 침공, CIA와의 계획대로 미국의 전투기 추가 공습과 전투 병력의 지원을 기다렸으나 케네디의 거부로 침공군은 항복하고 1천명 이상이 체포된다. 쿠바 침공 실패의 원인을 제공 했다는 케네디에게 반(反) 카스트로 세력과 CIA의 불만이 고조된다.
* 라오스 중립화 정책
CIA와 국방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반공주의 통치자 푸미 노사반에 대한 미국의 지원을 중단하고 소련의 흐루시초프와 함께 중립국이자 독립국인 라오스를 지지하기로 합의했다. 이 합의를 반대하던 CIA와 국방부는 케네디가 공산주의에 굴복한 것으로 간주한다.
* 쿠바 미사일 위기
U-2 정찰기로 촬영한 사진에서 쿠바에 소련 미사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한 군부는 즉각적인 핵 선제공격을 요청하나, 케네디는 공격을 불허하고 쿠바 행 미사일 수송선을 포함한 모든 소련 선박을 해상 봉쇄한다. 이 결정에 대하여 커티스 르메이 공군참모총장은 "이번 대통령의 봉쇄 결정은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에게 양보했던 뮌헨협약만큼이나 끔찍하다"고 말했다. 쿠바 상공에 있던 U-2 정찰기가 소련의 지대공 미사일에 격추되고 조종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케네디는 군부의 재차 공격 요구를 거부하고, 물밑 대화를 통한 흐루시초프에 대한 경고와 회유로 쿠바에서의 소련의 미사일을 철수시킨다. 군부는 케네디가 쿠바에 대한 공격을 거부하고 흐루시초프에 양보했다고 격분한다.
* '알파 66'의 쿠바 내 소련 함선 기습 공격
케네디를 쿠바와의 전쟁으로 끌어 들이기 위한 CIA의 계략으로 '알파 66'이 쿠바에 있는 소련 요새와 선박을 급습 12명의 사상자를 낸다. 흐루시초프의 항의를 접한 케네디는 반(反) 카스트로 단체의 이동을 마이애미로 제한하는 동시에, 해안 경비대에 지시해 그들의 군함을 나포하고 선원들을 체포한다. CIA의 지원을 받는 쿠바혁명위원회는 미국 정부가 케네디의 조치들을 통해 이제는 반(反) 카스트로에 대한 투쟁을 청산하는 과정에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 베를린 장벽 사건
1961년 8월 소련은 베를린 장벽 건설을 명했고, 이로 인해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주 현상과 동·서독간의 긴장은 막을 내리는 듯 했으나 그해 9월 미국의 클레이 장군은 비밀리에 베를린 장벽의 파괴를 계획한다. 이를 알아챈 소련의 탱크 20대가 장벽을 에워싸고 미국과 동맹국의 탱크 20대가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위기가 발생한다. 양측의 대치는 16시간 동안 계속되었다. 케네디는 흐루시초프와의 비밀 협상을 통해 흐루시초프의 양보를 얻어낸다. 다음날 아침 소련 탱크는 철수하고, 미국 측 탱크도 30분 사이에 철수한다. 클레이장군과 군부는 이때 핵무기를 사용하여 공격하지 않고 철수하는 상황을 매우 아쉬워한다. 이 사건을 통해 미 군부는 케네디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고, 더욱이 흐루시초프와 점점 깊어지는 결탁을 보며 그를 반역자로까지 생각하게 된다.
* 베트남 미군 철수 계획
케네디는 베트남 내전을 진압하기 위한 군부의 전투부대 파병 요구를 거부하는 대신 군사고문단과 기술지원부대를 파병하라고 지시한다. 베트남을 라오스와 같은 중립국으로 전환시키기로 결정한 케네디의 계획에 CIA는 제동을 건다. 베트남 고 딘 디엠 정권의 전복을 계획하는 CIA는 디엠 정권의 불교탄압을 기회로 플라스틱 폭탄을 터뜨려 베트남의 소요를 부추긴다. 결국 CIA는 디엠 대통령 형제를 살해하고 쿠데타를 성공시킨다. 디엠을 살려주고 싶어 했던 케네디는 격분하여 시카고 방문을 전격 철회한다. 케네디는 '국가안전보장조처에 관한 비망록 263호를 통해 1963년 말까지 천명의 미군을 철수하고, 1965년 말까지 모두 철수시킨다는 정부의 정책을 공식화했다.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북베트남(베트공)을 섬멸시키고자 했던 군부와 CIA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고, 미군 철수 계획은 케네디 죽음에 결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국가안보회의에서 군부와 CIA는 긴장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1963년 후반에 소련을 핵 선제공격을 제안한다. 이에 케네디는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며 "이러고도 우리가 스스로를 인류라고 부르고 있는가"라며 개탄한다. 케네디는 전반적 완전군축을 진척시키기 위해 '대기 핵실험'을 일방적으로 중단시킨다. 특사를 통한 수차례의 흐루시초프와의 밀담을 통해 지하 핵실험을 제외한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을 체결하는데 이 조약은 미·소 양국의 과학자들, 군수업체 및 군부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 재계와의 갈등
케네디, 철강노동조합과 철강기업들 간의 철강가격 동결 합의를 깨고 US스틸이 가격인상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다. 이에 격분한 케네디는 아버지 조지프 케네디가 들려주었던 '사업가는 다 개자식들'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한다. 이어서 케네디는 일방적으로 국방부와의 납품계약의 파기를 지시하고 철강기업 경영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여 철강기업을 몰아붙인다. 이에 백기를 든 철강업계는 케네디와 법무부장관 로버트 케네디의 행위를 결코 잊지 못한다. 이 사건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유는 철강기업 1~2위인 US스틸과 베들레헴 스틸을 비롯한 철강 기업들이 재계의 재벌그룹에 속한 계열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US스틸과 베들레헴 스틸은 JP 모건과 록펠러의 그룹에 속해 있다고 알려져 있다.
* 카스트로와의 화해 시도
카스트로를 암살하기 위한 CIA의 수차례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CIA의 지휘아래 케네디와 카스트로의 대립을 부추기기 위한 망명자단체를 통한 쿠바에 대한 기습 공격 등은 케네디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에 대한 카스트로의 영향력을 우려했던 CIA와 군부는 카스트로를 최고의 악으로 규정하고 반드시 제거해야할 적으로 생각했다. 공산주의 지도자 흐루시초프에 이어 반드시 청산해야 할 악의 축인 카스트로와의 대화 시도를 지속해 온 케네디의 도발에 CIA와 미 군부는 케네디를 대통령이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
◆ 케네디 대통령 암살 음모의 전말
* 시카고 대통령 암살 음모 사건
1963년 11월 2일 케네디는 솔저 필드에 있을 육군과 공군의 축구시합 참관 차, 시카고 방문이 예정되어 있었다. '리'라는 제보자에 의해서 케네디 암살을 위한 저격수 4명 중 2명은 체포되고 2명은 도주한다. 그러나 케네디는 베트남의 고 딘 디엠이 사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카고 방문을 전격 취소한다. 시카고 경찰은 케네디를 저격하겠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밸리를 추적하고, 실제 그의 은신처를 급습하여 각종 소총을 비롯한 살인용무기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은 바로 그를 체포하지 않고 케네디의 방문 일정이 취소되었다는 공식 통보가 있을 때 까지 감시만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댈러스에서의 오스왈드처럼 표면상으로 밸리를 암살범으로 만들어놓고 실제 저격은 보이지 않는 저격수들이 실행하는 이 시나리오는 댈러스의 케네디의 암살 시나리오와 그 구성이 일치한다. 시카고에서 오스왈드를 대신하는 희생양 토머스 아서 밸리는 체포되고 사건은 종결된다. 댈러스에서 암살사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CIA를 비롯한 모든 미국의 정보기관이 시카고 음모에 대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FBI에 암살음모를 제보한 인물 '리'는 '리 하비 오스왈드로 추정된다.
* 댈러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
케네디의 암살범 오스왈드는 미국과 소련의 이중간첩으로 알려져 있는데, 망명한 후 3년 후에 돌아오게 되면서부터 CIA는 그를 케네디 암살의 희생양으로 만들 시나리오를 짠다. 이 시나리오에는 제2의 오스왈드가 등장하는데, 오스왈드와 비슷한 인물을 만들어 여러 곳에 자주 모습을 나타나게 한다. 실제 댈러스에서의 저격은 케네디 차량 행렬 앞쪽의 풀이 우거진 둔덕 울타리에서 제2의 오스왈드와 또 다른 저격수가 시도하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오스왈드의 근무지인 교과서 보관소 건물은 케네디 차량 행렬 뒤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실제로 케네디 시신에서 나온 총탄의 진로는 앞쪽에서 쏜 걸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X-레이 사진을 조작해 케네디의 저격은 뒤쪽에서 이루어졌다는 결과를 발표하면서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으로 결론을 내린다. 케네디 피살 이틀 후에 오스왈드를 살해하는 잭 루비가 등장하는데, 피살 당일 케네디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앞쪽 둔덕에 잭 루비가 총기를 소지하고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는 몇 명의 목격자들의 증언이 있었다. 미국 정부는 잭 루비와 오스왈드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발표했으나 훗날 잭 루비 역시 CIA의 정보원으로 밝혀졌다.
케네디 암살 사건의 목격자들과 사건의 증인들은 의문의 피살을 당하거나 정신이상자로 몰려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은 이 사건을 목격했거나, 진실을 증언하는 모든 사람들을 케네디처럼 적으로 보았다. CIA와 연통하면서 대통령의 차량 행렬이 지나가는 현장이 바로 내려다 보이는 곳에서 직장을 구하게 된 시카고 암살미수범 밸리와 오스왈드 두 명의 희생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은 그들 뒤에 보이지 않게 숨어 있었던 저격수들이 분명히 존재했고, 조용히 사라져 갔다는 것이다.
◆ 맺는말
케네디를 비판하는 시각에서 보면 케네디는 쿠바 미사일 위기 때의 핵전쟁에 대한 공포, 베트남 주둔 미군 희생에 대한 우려, 흐루시초프와 카스트로와 함께 평화를 지향하면서 공산주의에 관대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케네디를 제외한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세력은 공산주의라는 악은 반드시 패배해야한다는 당위성 아래,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이라도 -설사 그 방법이 대통령 암살이라고 해도- 필요하다는 정당성을 입증했다. 암살 배후자들이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었던 만큼 시카고 암살계획의 실패는 반드시 댈러스 암살의 성공으로 이어져야 했다. 베트남 대통령 고 딘 디엠 형제가 살해당한 다음날 케네디가 시카고에서 피살되었다면 두 사건의 병렬적 관계로 보아 미국인들에게 '케네디는 디엠을 살해했기 때문에 피살되었다는 시나리오가 성립되는 것이다. 또 댈러스의 사건도 수차례 시도되는 카스트로의 암살시도가 진행되는 가운데 친(親) 카스트로의 대리인인 오스왈드가 케네디를 살해했다는 시나리오에 짜 맞출 수도 있었던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에 이은 맬컴 X, 마틴 루터 킹,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사건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나타나는 유사성은 그들이 매체나 희생양들을 이용해서 '관련사실 부인'의 원칙의 보호를 받는 정보기관들에 의해 살해되어 되었으며, 네 사람 모두 '사회의 변화'를 부르짖었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문이 닫히자 맥나마라는 공산당의 승리가 임박한 라오스에 미국이 어떻게 대응하면 좋을지 의견을 물으면서 이들의 생각을 떠봤다. 이 질문은 회의 안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펠트 장군의 대답은 케네디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전형적인 폭파 방식이었다.
펠트는 "즉시 공중 폭격에 착수하면 48시간 안에, 예를 들면 체폰Tchepone과 같은 마을을 지도에서 즉각 지워버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맥나마라는 그와 같은 폭격은 북베트남이나 중국에 자극을 줘 도발의 명분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고 나면? 미군은 북베트남과 중국 기지도 폭격해야 하는가? 그 다음엔 어딘가? 모두가 침묵을 지켰다. 짧은 질문으로 국방부장관은 라오스 어디에도 미군 파병은 없다는 대통령의 입장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선택은 둘 중 하나였다.
대통령이 추구하는 대로 절충안을 협상하느냐(군부 입장에서는 공산당에 라오스를 팔아버리는 행위였다), 아니면 라오스, 베트남, 중국으로 계속 확산되는 전쟁에 어리석고도 위험한 개입을 해야 하는가. 중립 라오스 협상의 필요성으로 운을 뗀 맥나마라 장관은 군 수뇌부가 더 이상의 상상도 못할 정책을 내놓는다. "베트남 철수, 미국이 할 일은 전쟁을 떠맡는 것이 아니라 남베트남이 전쟁을 감당할 수 있게끔 성장시키는 것이다."라고 맥나마라가 말했다. 그리고 방 안에 남은 사람들에게 남베트남에서 언제쯤 군대를 완전히 철수하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_275쪽 3장 케네디와 베트남
케네디 대통령은 머리에 총을 맞았고, 두개골의 윗부분은 깨져 버렸다. 남편이 총에 맞은 상황에서 재클린은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그녀는 남편의 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두개골 파편을 찾기 위해 자동차 트렁크로 기어 올라갔다. 리무진을 쫓아가서 자동차 위로 뛰어 올라간 비밀경호원 클린턴 힐은 영부인이 본능적으로 남편의 떨어진 두개골을 찾으려 했다고 증언했다.
그 후 힐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두 번째 총성이 대통령의 머리를 완전히 날려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영부인께서는 자리 위로 뛰어 올라가셨고, 그 모습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자동차 범퍼 오른쪽 뒤로 떨어진 뭔가를 집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계셨습니다."
힐은 그녀를 붙잡고 뒷좌석 맨 위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서 그는 대통령의 머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들은 곧 파크랜드 병원에 도착했고, 대통령의 두개골에서 오른쪽 뒷부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파크랜드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대통령의 두개골 오른쪽 뒷부분이 사라졌음을 확인했고, 따라서 암살범이 앞 쪽에 있었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오스왈드가 있던 텍사스 교과서 보관소 건물에서 총이 발사된 것이 아니었다. 교과서 건물은 뒤쪽에 있었다.
_598쪽 6장 워싱턴과 댈러스
목차
목차
서문 | 머리말 | 연대표
CHAPTER 01 냉전 전사의 전향
평화주의자로의 전향 | 토머스 머튼과 케네디 | 피그스 만 침공과 CIA의 음모 | 토머스 머튼의 평화의 메시지 | 피그스 만의 망령 |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의 신뢰 | CIA의 덫 | 오스왈드는 누구인가? | 불멸의 연설 | 오스왈드의 후원자 드 모렌쉴트 |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CHAPTER 02 케네디, 카스트로 그리고 CIA
카스트로와의 물밑 협상 | CIA와 FBI 그리고 오스왈드 | 흐루시초프와 카스트로의 화해 | 케네디와 카스트로의 밀약 | CIA의 후원자 | 멕시코시티의 시나리오 | FBI, CIA를 의심하다 | 카스트로, 평화를 염원하다
CHAPTER 03 케네디와 베트남
라오스와 베트남 정책 | 케네디의 베트남 해법 | 라오스 중립 선언 |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 | 디엠 대통령의 반격
CHAPTER 04 암살 계획을 세우다
철강업계와의 전쟁 | 암살 음모의 서곡 | 케네디의 정적 '헨리 로지'의 등장 |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의 죽음 | 세 명의 낯선 남자 | 베트남 대사 로지의 계략 | 댈러스에서의 오스왈드 행적
CHAPTER 05 사이공과 시카고
CIA와 FBI의 갈등 | 베트남의 운명 | CIA의 베트남 통치 | 그들만의 전쟁 | 베트남의 쿠데타 음모 | CIA 권력의 배경 | 시카고의 케네디 암살 음모 | 또 한 명의 희생양, 토머스 아서 밸리 | 쿠데타와 디엠 대통령의 피살 | 시카고 암살 음모 사건의 전말
CHAPTER 06 워싱턴과 댈러스
음모의 그림자, 여러 명의 오스왈드 | 케네디의 죽음과 소련의 방어 | 선제공격의 압력과 케네디의 대응 | 의문의 죽음 - 첫 번째 희생자 | 케네디와 카스트로 | 케네디를 그리며… 카스트로의 연민 | 또 다른 암살범, 잭 루비 | 케네디와 수카르노 | 케네디 암살 사건의 목격자들 | 케네디와 그의 적들 | 댈러스의 마지막 날 - 목격자들의 증언 | 케네디를 바꾼 아들 패트릭의 죽음 | 댈러스의 총성과 하퍼 조각 | 오스왈드, 그리고 제2의 오스왈드 | 케네디의 피살과 총탄의 진로 | 치명적인 목의 총상 | 의문의 피살 | 케네디와 세계 평화 | 오스왈드의 정치적 이념 | 교황이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 | 두 정상의 결의 | 케네디의 아메리카대학 연설 | 또 한 명의 희생자 | 오스왈드의 살해범 잭 루비는 누구인가? | 케네디 가의 운명 | 케네디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
케네디의 아메리카대학 연설문(全文) | 찾아보기
CHAPTER 01 냉전 전사의 전향
평화주의자로의 전향 | 토머스 머튼과 케네디 | 피그스 만 침공과 CIA의 음모 | 토머스 머튼의 평화의 메시지 | 피그스 만의 망령 | 케네디와 흐루시초프의 신뢰 | CIA의 덫 | 오스왈드는 누구인가? | 불멸의 연설 | 오스왈드의 후원자 드 모렌쉴트 | 핵실험 금지 조약 체결
CHAPTER 02 케네디, 카스트로 그리고 CIA
카스트로와의 물밑 협상 | CIA와 FBI 그리고 오스왈드 | 흐루시초프와 카스트로의 화해 | 케네디와 카스트로의 밀약 | CIA의 후원자 | 멕시코시티의 시나리오 | FBI, CIA를 의심하다 | 카스트로, 평화를 염원하다
CHAPTER 03 케네디와 베트남
라오스와 베트남 정책 | 케네디의 베트남 해법 | 라오스 중립 선언 | 베트남에서의 미군 철수 계획 | 디엠 대통령의 반격
CHAPTER 04 암살 계획을 세우다
철강업계와의 전쟁 | 암살 음모의 서곡 | 케네디의 정적 '헨리 로지'의 등장 | "너무 많이 알았던 사람"의 죽음 | 세 명의 낯선 남자 | 베트남 대사 로지의 계략 | 댈러스에서의 오스왈드 행적
CHAPTER 05 사이공과 시카고
CIA와 FBI의 갈등 | 베트남의 운명 | CIA의 베트남 통치 | 그들만의 전쟁 | 베트남의 쿠데타 음모 | CIA 권력의 배경 | 시카고의 케네디 암살 음모 | 또 한 명의 희생양, 토머스 아서 밸리 | 쿠데타와 디엠 대통령의 피살 | 시카고 암살 음모 사건의 전말
CHAPTER 06 워싱턴과 댈러스
음모의 그림자, 여러 명의 오스왈드 | 케네디의 죽음과 소련의 방어 | 선제공격의 압력과 케네디의 대응 | 의문의 죽음 - 첫 번째 희생자 | 케네디와 카스트로 | 케네디를 그리며… 카스트로의 연민 | 또 다른 암살범, 잭 루비 | 케네디와 수카르노 | 케네디 암살 사건의 목격자들 | 케네디와 그의 적들 | 댈러스의 마지막 날 - 목격자들의 증언 | 케네디를 바꾼 아들 패트릭의 죽음 | 댈러스의 총성과 하퍼 조각 | 오스왈드, 그리고 제2의 오스왈드 | 케네디의 피살과 총탄의 진로 | 치명적인 목의 총상 | 의문의 피살 | 케네디와 세계 평화 | 오스왈드의 정치적 이념 | 교황이 보내는 평화의 메시지 | 두 정상의 결의 | 케네디의 아메리카대학 연설 | 또 한 명의 희생자 | 오스왈드의 살해범 잭 루비는 누구인가? | 케네디 가의 운명 | 케네디의 죽음이 우리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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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저자
제임스 더글러스
저자 제임스 더글러스는 오랫동안 평화 운동가와 저술가로 활동했다. 그와 그의 아내 셀리는 워싱턴 풀스보에 있는 비폭력운동을 위한 '그라운드 제로 센터Ground Zero Center'와 앨라배마 주의 버밍엄에 있는 '가톨릭 사역자를 위한 메리의 집Mary's House' 를 공동 설립했다. 저서로는 [Dear Gandhi, Now What], [Resistance and Contemplation]. [The Nonviolent Cross], [The Nonviolent Coming of God ]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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