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디자인사 수첩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
『한국 디자인사 수첩』은 교육자이자 디자이너인 조영제의 디자인 인생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디자인 영역을 예술과 산업의 위치로 올려놓기까지 고군분투했던 한국 디자인사의 열정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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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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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디자인사 수첩: 한국의 폴 랜드, 조영제를 인터뷰하다》는 한국의 CI를 개척한 조영제 교수의 디자인 인생을 기록한 것으로 우리나라 CI 역사는 물론 한국 디자인사의 초창기부터의 풍경과 비화를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
'CI' 혹은 '데코마스'
우리나라에서 CI는 처음엔 '데코마스(DECOMAS: Design Coordination as a Management Strategy, '경영전략을 위한 디자인 통합'이라는 뜻의 약자)'라는 용어로 불렸다. 데코마스는 당시 일본에 가장 빨리 CI 프로젝트를 도입했던 파오스 사의 나카니시 모토가 기업가들에게 'CI' 또는 '기업 아이덴티티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잘 전달하기 위해 고안한 이름이었다. 조영제 역시, 그래야 기업인들이 새로운 경영기법인 줄 알고 쉽게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여 이 용어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가 1976년 기업의 시각 이미지 전략을 프로젝트로 체계화해 선보인 개인전 <데코마스 전>(신세계갤러리)은 국내 기업들 간에 CI 붐이 본격적으로 일게 한 도화선이 되었다.
OB맥주가 먼저냐, 제일제당이 먼저냐
이 책을 보면 우리의 눈에 익숙한 숱한 기업 CI의 재미있는 일화들을 만나게 된다. 최초의 기업 CI인 동양맥주의 기업 심벌은 원래는 당시 OB맥주의 상표 디자인으로 개발되었다가 기업의 아이덴티티 이미지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그러니까 BI(Brand Identity)가 CI가 된 것이다. 하지만 조영제는 정식으로 CI개발 프로젝트를 기업에 제안해서 추진한 제일제당의 CI(1975)를 국내 첫 사례라고 꼽는다. 동양맥주의 경우 처음부터 CI개발을 목적으로 추진했다면 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여간 그는 한국 기업 CI의 대명사가 되었다. 처음엔 그가 기업의 중역들을 찾아가 CI개발을 제안했으나 나중에는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그를 찾아왔다. 이후 그는 제일모직, 신세계백화점(이상 1975년), 제일합섬(1978), 한국외환은행(1979), 삼립식품(1980), 국민은행, 대림산업, 대한교육보험(지금의 교보생명), 한국산업은행(이상 1981), 동아제약(1983), 동서식품(1985), 기아자동차(1986), 이건산업(1988) 등의 CI개발을 주도했다.
KBS CI는 원래 서울올림픽 엠블럼 공모작?
그가 한국 디자인사에서 자주 언급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CI 말고도 더 있다. 19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 디자인 전문위원장 활동을 했던 것이다. 올림픽이라는 국제적인 이벤트를 치르면서 우리 디자인은 '한국적인 것'이라는 주제를 이전과는 다르게 변모시키기 시작했는데, 그 중심에 조영제가 있었다.
서울올림픽이 '한국적인 감성'으로 무난히(?) 치러질 수 있었던 일화가 있다. 조직위원회가 처음 발족한 당시, 일본의 대형 광고대행사 덴쓰와 미국 아디다스가 정부 차원에서 디자인 작업을 교섭을 해오고, 몬트리올올림픽조직위원회가 독일에서 개발한 픽토그램(사물이나 시설, 각 경기종목 등을 상징화한 그림문자)을 사서 쓰라는 등 다른 나라의 멸시와 압력이 많았다는 것. 그에 대해 조직위 디자인위원회의 대응 논리는 이랬다. "올림픽 정신에 맞게 디자인 개발도 각 개최지의 지역적 문화와 감성을 반영해야 한다." 이 밖에도 엠블럼이 쌍태극이 아닌 쌍태극이 된 배경, 엠블럼 공모작 중 하나가 나중에 KBS의 CI가 된 이야기, 마스코트 호돌이의 탄생과정, 공식포스터에 컴퓨터 그래픽을 도입한 이유 등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교수 디자이너 시대
서구에서는 전문 영역으로서의 디자인과 디자이너가 산업혁명 이후 변화된 사회적 여건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성장했다면, 우리는 산업이 발전하기 이전에 근대 교육의 수용 속에서 대학에 관련 학과가 생기면서 디자인 산업이 발전했다. 교육이 산업을 앞섰던 것이다. 1946년에 서울대학교 예술학부에 도안과(1949년 응용미술과로 개칭, 지금의 디자인학부)가 개설되면서 근대적인 디자인 교육이 시작되었고, 디자인 산업은 1960년대 중후반 이후에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1950년대에 대학을 다닌 디자인 인력은 교육자로서의 활동 비중이 상당히 높았다. 20대의 이른 나이에 대학교수로 부임한 경우가 많았다. 산업화의 급물살 속에서 전문 인력의 수요가 늘고 그에 따라 전문 교육자의 수급도 매우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시기는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 시절이라 디자이너들이 모든 사회적 여건들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했다.
"40대가 될 때까지 고등학교 동창회에 안 나갔어. 경기고등학교 나와서 디자인을 한다는 게 당시로서는 이해가 잘 안 되고 창피하게 인식될 때라 나 스스로도 마음의 괴로움이 심했으니까. 내가 왜 CI에 미친 듯이 달려들어서 중역들하고 얘기를 하려고 했겠냐고. 디자인이라고 하면 디자이너 스스로가 하위직이라고 생각했거든. 나는 평생 디자인의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하여 능동적으로 노력해왔다고 스스로 자부해."_본문 중에서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나라 1세대 모던 디자이너들의 특징이기도 하다. 당시에는 젊은 나이에 대학교수로 부임하는 한편, 산업 일선에서도 화려한 행적을 보여준 디자이너들이 많았다.
개인의 기록을 넘어선 살아있는 한국 디자인사
그래서 이 책은 사회적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디자인 영역을 예술과 산업의 위치로 올려놓기까지 고군분투했던 한국 디자인사의 열정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인터뷰를 따라가다 보면 조영제의 생애와 행적의 그래프가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 및 사회 발전의 상승곡선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재했던 1950~60년대의 직장생활 이야기는 우리 디자인 여명기의 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며, 산업발전기 디자인계 내부의 이합집산과 부산함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당시의 시대적 활기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조영제 개인의 디자인사이기도 하면서 한국 디자인사의 풍경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이 '한국 디자인사 수첩'인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목차
목차
인터뷰를 마치고_조영제
제1부 한국 디자인 여명기의 풍경
1. 응용미술 혹은 도안 그리고 4색 포스터컬러 디자인
2.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거의 처음의 달력
제2부 산업발전기 이후의 디자인 교육
1. 한국 디자인 교육 현장을 회고하다
2. 지방대학의 디자인 교육을 말하다
제3부 제도와 단체의 탄생, 숨은 이야기들
1. 상공미전, 신인 디자이너들의 등용문
2. 비닥의 역사
3. 국제 교류의 물꼬를 트다
제4부 모던 디자인의 탄생
1. 조영제의 디자인 세계 [화보]
2. 기업, 디자인을 주목하다
3. 한국 기업 이미지 리뉴얼 프로젝트
4. 한국 기업 CI 열전
5. 88서울올림픽, 한국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다
제5부 한국 디자인을 위한 생각 수첩
1. 경계 없는 디자인에 대하여
2. 한국의 디자인에 대하여
연보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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