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고현학(애지시선 38)(양장본 HardCover)
이민호 시집『피의 고현학』은 55편의 시가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의 시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예언자적 지성으로 선언하고, 2부는 격정과 분노를 억누른 채 소수자의 삶을 차분히 들려주고 있다. 3부의 시는 소수자의 고통과 시련을 조용히 안고 위로하며, 4부의 시는 어느새 소수자의 길을 가고 있는 시인을 목도하며, 5부는 소수자의 삶과 병치된 시인의 시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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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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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얼룩질 때' 예술은 무엇을 하는가? 유고슬라비아의 영화감독 에밀 쿠스트리차는 〈집시의 시간〉을 만들어 신이 버린 사람들의 수다스런 말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그는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면서 찾고 기도했다. "하느님아, 구름들 속에, 신기료장수의 집 뒤에 숨어 있는 하느님아, 내 영혼이 나타나게 해다오. 아직 말을 더듬는 어린아이의 고통스러운 영혼아, 나에게 길을 가르쳐다오.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되기는 싫다. 나는 새로운 세계를 보고 싶다." 이 '다른 길'의 입구에 시인 이민호가 서 있다.
그의 시는 소수자의 문학 그대로다. 오래전 김종삼과 박용래가, 신동엽이 가던 길이다. 신에게 이르는 길은 오직 하나라고 엄숙하게 말하는 언어를 뿌리치고 새롭게 시집을 꾸몄다. 『피의 고현학』은 그래서 오늘 우리 사회의 '얼룩진' 삶을 어루만진 그의 발자국이자 손길이다. 1994년 문화일보에 「가장 깊은 곳에서」와 「폭설」이 당선되어 시를 쓰기 시작한 이후 11년이 흐른 후 첫 시집 『참빗 하나』를 내기까지, 그리고 이번 두 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 줄곧 그의 시는 소수자의 언어다.
두 번째 시집 『피의 고현학』은 시집 제목부터 수상한 냄새가 난다. 시집인가? 연구서인가? 고개가 갸우뚱댄다. '시인의 말'에서 이민호는 "시詩는 내게 와서 학學으로 전락하였다."고 자백한다. 이 사태를 굳이 발뺌하지 않고 훗날 달게 치를 업보라 고백한다. '기성세대나 선배들이 이미 도달한 수준까지 하루 속히 따라가서 그를 극복하여 새로운 향상의 길을 트려는 노력이 학문'이라 했던 박종홍 선생의 말을 빌린다면, 이번 시집에서 이민호가 펼치려는 '학學의 시'는 '새로운 길'을 트려는 노력의 산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때 시의 서정성은 결핍되고 시의 아름다음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시인이면 반드시 서정을 놓을 수 없는 숙명임에도 불구하고 이민호는 이번 시집에서 시의 서정성을 놓아버렸다. 오직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의 얼룩진 삶을 시로 문지르고자 한다. '시인의 말'은 곧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발터 벤야민은 결국 국경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그렇게 철학은 그에게 와서 시가 되었으니 이제 그 길을 묵묵히 따를 뿐'이라고. 벤야민은 나치 치하에서 학문의 성취를 이루지 못한다. 살기위해 국경을 넘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민호가 따르고자 하는 벤야민의 길은 어떤 길인가? 벤야민이 스스로를 규정했던 '아웃사이더'의 길이 분명하다. 이민호는 그 경계적이고 주변적인 소수자의 언어를 이 시집에서 담았다.
시집 『피의 고현학』에는 55편의 시가 5부로 구성되어 고루 배치되었다. 1부의 「푸코와 데리다」, 「솔ㆍ레ㆍ라ㆍ미」 등 10편의 시는 새로운 세계의 도래를 예언자적 지성으로 선언한다. 2부의 「읍차린 잔치」, 「원시가족」 등 12편의 시는 격정과 분노를 억누른 채 소수자의 삶을 차분히 들려주고 있다. 3부의 「갈릴리는 바다도 아니며 갈릴리바다」, 「상어를 사랑해」 등 11편의 시는 소수자의 고통과 시련을 조용히 안고 위로한다. 4부의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하루하루」,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등 11편의 시는 어느새 소수자의 길을 가고 있는 시인을 목도하게 된다. 5부는 「지금 라사에 달라이 라마는 없다」, 「목리」 등 11편의 시는 소수자의 삶과 병치된 시인의 시법을 담고 있다. 이러한 구성 속에 '시인의 얼굴'을 제목으로 오장환, 신채호, 신석정, 박용래, 김종삼에게 바치는 헌사가 각부에 배치되었다. 이들 시인과 벤야민과 이민호와 이 땅의 소수자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며 연대하고 있다.
평론가 고봉준은 이러한 연대의 순간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피의 고현학』은 이질적인 시선들이 교차하는 하나의 아쌍블라쥬(assemblage)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는 상이한 시각적 질감만큼이나 많은 입구들이 존재한다. 그 시선-입구의 하나는 동시대의 현실을 음화(陰畵)로 인각(印刻)라는 현실주의적 시선이다. 고현학(考現學)이 현재(今)에 관한 시선이라면, 이러한 현실주의적 시선이야말로 고현학이라는 명칭에 가장 근접한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민호 시의 현실주의적 시각은 현실에 대한 전형적인 재현과 민중적 세계관이라는 저 80년대의 리얼리즘과는 분명하게 다르다. 그의 시에는 '비극적 위대함'이 결여되어 차마 '비극적'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운 낮은 삶, 권력과 시대의 중심에서 떠밀린 숱한 무명(無名)들의 지난한 삶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들의 삶을 불행에 빠뜨리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이민호는 이 시집을 끝내고 벌써 또 다른 세계로 넘어 갔다. 그의 세 번째 시집은 '아름다움'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나 절대미학은 이 세상 소수의 삶이 해체되지 않고 함께 공존하리라는 강한 믿음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시는 고고학적 파헤침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의 현실을 곰곰이 생각하는 고현학이라는 사실을 이민호의 시집에서 확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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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는 말의 결을 잘 아는 시인이다. '목리(木理)'라는 시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그는 목수로 치자면 대목장보다는 소목장에 가깝다. 큰 것을 탐하기보다 말의 결을 잘 살려 알뜰하게 시를 짜낼 줄 안다는 점에서 그렇다. 90년대 이래 그의 사람됨과 시를 익히 보아온 터인데, 아무래도 그는 용래와 종삼의 사이 어디쯤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_정희성(시인)
이민호가 '시적 고현학'으로 압축해낸 풍경 안에는 적막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 적막과 살짝이라도 몸이 닿는 순간,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적막이 품고 있는 슬픔에 서서히 감염되고 만다. 이민호의 시가 "철거되지 않는 기억"으로 그려내는 풍경이란 결국, 농꾼으로 평생을 마감한 할아버지와 거리에서 쫓겨난 노점상 할머니와 비정규직 노동자, 철거민 가족, 부모마저 떠나버린 외로운 아이들이 "외로운 길" 위에 서 있는,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암담한 풍경에 다름 아니다. 그의 시는 섣불리 이 세계의 희망을 이야기하지도 않고 안이한 자세로 위로와 위안을 얘기하지도 않는다. 다만 "숨이란 숨은 다 틀어막고 l 한 움큼 혀 깨물고" 내지르는 이 세계의 "구릿빛 신음"들에 귀 기울인다. 그러면서 그의 시는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고통 안에서 모두 하나"라는 사실을 아프게 확인케 한다. 이 고통의 감염, 고통의 연대야말로 이 "슬픈 근대"를 조금씩 바꿔내는 길임을 그는 속엣말로 차분차분 이야기한다. 이민호 시의 적막은, 그러므로 그 무엇보다도 "절박한" 적막이다. 이것이 이민호 시의 "고현학"이며, 이민호라는 "시인의 얼굴"이다. 한없이 슬프지만, 또 아름답기 그지없는.
목차
목차
제1부
푸코와 데리다 l 솔ㆍ레ㆍ라ㆍ미 l 삼천포로 빠지다 l 도마뱀의 잠꼬대 l 바람아래 꽃지에서 울었네 l 네버 엔딩 포이트리:1943-1985-2010- l 피의 고현학考現學 l 브로콜리 너마저 l 악보 넘겨주는 여자 l 시인의 얼굴 -오장환
제2부
읍揖 차린 잔치 l 마중물 남자 l 원시가족 l 우리가 세상을 낳았다는 말 l 외발로 서 있는 詩 l 백일몽 l 학살 l 일곱 살 걱정거리 l 흙다짐 l 속살 붉은 봄밤 l 꽃샘 l 시인의 얼굴 -신채호
제3부
갈릴리는 바다도 아니며 갈릴리바다 l 상어를 사랑해 l 강둑길로 내려가다 l 청계천에서 트위스트킴을 만났을 때 l 고무줄 노래 l 오만한 길 l 버림의 미학 l 키스 앤 세이 굿 바이 l 삼양동 헌화가 l 슬픈 근대近代 l 시인의 얼굴 -신석정
제4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는 하루하루 l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 l 파리지옥 l 봄날의 아아! 오오! l 겨우내 옷가지 l 라파엘의 집 l 길 위에서 죽다 l 철거되지 않은 기억 l 지우지 않은 문자 l 위험한 트랙 l 시인의 얼굴 -박용래
제5부
지금 라사에 달라이 라마는 없다 l 목리木理 l 회문回文 l 귀소歸巢 l 괴물을 기다려 l 너에게로 가는 길 벚꽃 진다 l 귀뚜라미 우는 내력 l 40mm l 친절한 죽음 l 태풍 l 시인의 얼굴 -김종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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