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을 읽다
강남 형성과강남 현상을 찾아서
Regular price
$17.98
Sale price
Regular price
✈️
Estimated delivery date 예상 배송일
Standard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8-12 영업일
Express Shipping
불러오는 중...
주문일로부터 6-8 영업일
지난 반세기,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강남의 빛과 그림자!
지금의 강남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상징적인 지역으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남을 읽다』. 강남 탄생은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이 맞물린 결과이다. 해방 당시 90만 명 정도였던 서울 인구는 1959년 200만 명을 돌파했다. 1966년에는 379만 명을, 1·21 사태가 발생한 1968년에는 433만 명을 넘어섰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허허벌판에 불과하던 강남은 반세기만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고, 브랜드 가치는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찬란한 영예 뒷면에는 몇 가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파트공화국, 부동산 폭등, 사교육, 비리와 안전사고, 부의 양극화 등 강남불패의 이면에 숨겨진 강남 현상의 제 문제를 가감 없이 들춰낸다.
지금의 강남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상징적인 지역으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보여주는 『강남을 읽다』. 강남 탄생은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이 맞물린 결과이다. 해방 당시 90만 명 정도였던 서울 인구는 1959년 200만 명을 돌파했다. 1966년에는 379만 명을, 1·21 사태가 발생한 1968년에는 433만 명을 넘어섰다. 박정희 정권의 강남 개발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허허벌판에 불과하던 강남은 반세기만에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고, 브랜드 가치는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찬란한 영예 뒷면에는 몇 가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아파트공화국, 부동산 폭등, 사교육, 비리와 안전사고, 부의 양극화 등 강남불패의 이면에 숨겨진 강남 현상의 제 문제를 가감 없이 들춰낸다.
Couldn't load pickup availability
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이제 '강남은 대한민국의 압축성장을 상징하는 장소이다. 한양도성의 남쪽 변방으로 허허벌판에 불과했던 강남은 반세기의 시간이 흐르면서 호화 아파트와 고층빌딩이 즐비한 콘크리트숲으로 탈바꿈했다.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치면서 대한민국의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곳이 된 것이다.
이 책은 강남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상징적인 지역으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아파트공화국, 부동산 폭등, 사교육, 비리와 안전사고, 부의 양극화 등 강남불패의 이면에 숨겨진 강남 현상의 제 문제를 가감 없이 들춰낸다.
세월 따라 달라진 강남의 의미
1936년 일제는 대륙침략의 하나로 실시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경성에 인접한 한강 이남의 영등포일대(시흥군 영등포읍, 북면, 동면, 김포군 양동면)도 경성부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지역 관할을 위해 동부출장소, 서부출장소, 용산출장소와 함께 영등포출장소를 설치했다. '한강 이남지역'을 일컫는 강남이란 말은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경성에 처음으로 생겨났다. 당시 강남지역은 영등포일대로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와 동작구를 일컬었다.
1940년대에 들어 경성 인구가 90만 명을 넘어서고 산업화가 진행되자 조선총독부는 1943년 출장소를 폐지하고 구(區)제를 도입하여 1944년 마포구가 서대문구에서 분구되기 전까지 경성부를 7개 구(종로구,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 영등포구)로 나누었다. 이즈음 한강 이남을 뜻하는 '강남'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서울시 면적은 두 배 이상 커져 영등포구에도 5개 출장소(신동, 관악, 양동, 양서, 오류)가 생겨났는데 지금의 서초구 반포동, 서초동, 양재동일대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등포구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영등포구 동쪽을 뜻하는 '영동'이라는 지명은 신동출장소가 관할하던 반포동, 서초동, 방배동, 양재동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동이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67년 무렵이다. 그해 11월 정부 여당 연석회의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공식 결정된 다음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이 수립되면서 '영동'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년에 이르러 서울시 인구가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서울시 면적도 627.06km2로 늘어났다. 서울시는 1973년 7월 언주출장소와 신동출장소를 통합한 영동출장소가 신설되면서 그동안 영등포구에 속했던 반포동, 잠원동, 서초동, 양재동, 우면동, 원지동지역이 성동구로 편입되었다.
한편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남 개발을 촉발시켰다. 경부고속도로 완공 이후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 일환으로 고속도로 주변의 반포동, 잠원동, 양재동일대가 개발되면서 강남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일번지로 달아올랐다. 이즈음 사람들은 강남이라는 말보다는 남서울 또는 영동이라는 말을 더 사용하였다. 이런 가운데 1975년 성동구의 한강 이남지역이 강남구로 분구된다. 강남구의 신설로 서울 한강 이남을 가리키던 '강남'은 행정구역 명칭이 되었다. 이로써 서울의 남쪽(남서울), 영등포의 동쪽(영동)이라 불리며 특정지역과 지리적 관계 속에서 지역명이 결정되었던 강남이 서울의 부도심으로서 위상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1979년 강남구에서 강동구가 분구되었고, 1988년 1월 1일에는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독립했다.
1970년대가 되자 강남은 더 이상 영등포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었다.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1975년 강남구를 신설하고, '부동산투기 억제세 면제' 조처를 단행하는 한편, 사대문 안의 명문 고등학교와 국가기관의 강남 이전을 추진하였다. 이때부터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나 사용되던 강남이라는 지명이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의 개최와 3저 호황은 강남의 개발과 투기를 부채질하였고, 1990년대에 접어들자 강남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굳건한 성채를 쌓았다. 이 시기 강남은 좁게는 강남구를, 넓게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지칭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한민국은 강남에 뿌리를 둔 소수 특권층이 지배하는 강남공화국이 되었다.
강남의 빛과 그림자
강남 탄생은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이 맞물린 결과이다. 이 같은 요인을 배경으로 강남 개발은 1966년 한남대교 건설 공사가 시작되고,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되면서 촉발되었다.
경부고속도로의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행된 영동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강남에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조성되었다. 반포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잠실주공아파트 단지 등 대단위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유치되면서 강남의 주요거점인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공원을 비롯하여 코엑스 같은 고층빌딩들이 건설되었고, 순환선으로 건설된 서울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강남 개발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서울 도심의 명문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강남 8학군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허허벌판에 불과하던 강남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브랜드 가치 또한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찬란한 영예 뒷면에는 몇 가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첫째, 강남은 부동산투기의 진원지이다. 일제강점기 지주들은 부동산투기를 통한 자본 이득보다는 소작료 수취에 몰두했고, 해방 뒤에도 이 같은 경향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강남 개발과 함께 사정은 달라졌다. 1968년 말죽거리 신화라는 투기붐이 일어난 이후 강남은 부동산투기의 진원지가 되었다.
둘째,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공화국이 탄생했다. 1974년 6월 반포주공1단지 완공을 시작으로 강남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서초구 반포동 한신아파트와 경남아파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동진하면서 지어졌다.
셋째, 강남 개발과 함께 토건국가 대한민국이 등장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강남 개발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동 건설에 건설사들이 진출하면서 토건국가 체제가 확립되었다. 토건국가의 등장은 정권과 토건족이 결탁한 공생관계가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정권 이래 개발주의 정부는 대규모 택지개발 같은 SOC 사업을 추진하여 정치자금을 확보했고, 건설사들은 정부가 추진한 개발사업에 참여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넷째, 강남발 부동산 불패신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1988년 강북권 아파트는 평당 315만 원에서 2,163만 원으로 6배 오른 반면 강남권 아파트는 평당 285만 원에서 2017년 4,536만 원으로 16배 올랐다. 1988년 강남권의 전세가는 25평 아파트 기준 3,000만 원, 월세는 18만 원이었으나 2017년 전세가는 5억 원, 월세는 192만 원으로 급등했다. 땀 흘려 번 돈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이 책은 강남이 우리 사회의 부와 권력의 상징적인 지역으로서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 아파트공화국, 부동산 폭등, 사교육, 비리와 안전사고, 부의 양극화 등 강남불패의 이면에 숨겨진 강남 현상의 제 문제를 가감 없이 들춰낸다.
세월 따라 달라진 강남의 의미
1936년 일제는 대륙침략의 하나로 실시한 조선시가지계획령에 따라 경성에 인접한 한강 이남의 영등포일대(시흥군 영등포읍, 북면, 동면, 김포군 양동면)도 경성부에 편입시켰다. 그리고 지역 관할을 위해 동부출장소, 서부출장소, 용산출장소와 함께 영등포출장소를 설치했다. '한강 이남지역'을 일컫는 강남이란 말은 영등포가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경성에 처음으로 생겨났다. 당시 강남지역은 영등포일대로 지금의 서울 영등포구와 동작구를 일컬었다.
1940년대에 들어 경성 인구가 90만 명을 넘어서고 산업화가 진행되자 조선총독부는 1943년 출장소를 폐지하고 구(區)제를 도입하여 1944년 마포구가 서대문구에서 분구되기 전까지 경성부를 7개 구(종로구,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동대문구, 성동구, 영등포구)로 나누었다. 이즈음 한강 이남을 뜻하는 '강남'이라는 말이 공식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70년대 초까지 사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서울시 면적은 두 배 이상 커져 영등포구에도 5개 출장소(신동, 관악, 양동, 양서, 오류)가 생겨났는데 지금의 서초구 반포동, 서초동, 양재동일대가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영등포구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영등포구 동쪽을 뜻하는 '영동'이라는 지명은 신동출장소가 관할하던 반포동, 서초동, 방배동, 양재동지역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동이라는 지명이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67년 무렵이다. 그해 11월 정부 여당 연석회의에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이 공식 결정된 다음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이 수립되면서 '영동'이라는 말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1970년에 이르러 서울시 인구가 500만 명을 넘어서면서 서울시 면적도 627.06km2로 늘어났다. 서울시는 1973년 7월 언주출장소와 신동출장소를 통합한 영동출장소가 신설되면서 그동안 영등포구에 속했던 반포동, 잠원동, 서초동, 양재동, 우면동, 원지동지역이 성동구로 편입되었다.
한편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강남 개발을 촉발시켰다. 경부고속도로 완공 이후 영동토지구획정리사업 일환으로 고속도로 주변의 반포동, 잠원동, 양재동일대가 개발되면서 강남은 일확천금을 노리는 투기 일번지로 달아올랐다. 이즈음 사람들은 강남이라는 말보다는 남서울 또는 영동이라는 말을 더 사용하였다. 이런 가운데 1975년 성동구의 한강 이남지역이 강남구로 분구된다. 강남구의 신설로 서울 한강 이남을 가리키던 '강남'은 행정구역 명칭이 되었다. 이로써 서울의 남쪽(남서울), 영등포의 동쪽(영동)이라 불리며 특정지역과 지리적 관계 속에서 지역명이 결정되었던 강남이 서울의 부도심으로서 위상을 굳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4년이 흐른 1979년 강남구에서 강동구가 분구되었고, 1988년 1월 1일에는 강남구에서 서초구가, 강동구에서 송파구가 독립했다.
1970년대가 되자 강남은 더 이상 영등포를 가리키는 개념이 아니었다. 강남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1975년 강남구를 신설하고, '부동산투기 억제세 면제' 조처를 단행하는 한편, 사대문 안의 명문 고등학교와 국가기관의 강남 이전을 추진하였다. 이때부터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나 사용되던 강남이라는 지명이 빈번하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서울올림픽의 개최와 3저 호황은 강남의 개발과 투기를 부채질하였고, 1990년대에 접어들자 강남은 부와 권력을 상징하는 지역으로 굳건한 성채를 쌓았다. 이 시기 강남은 좁게는 강남구를, 넓게는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지칭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대한민국은 강남에 뿌리를 둔 소수 특권층이 지배하는 강남공화국이 되었다.
강남의 빛과 그림자
강남 탄생은 서울시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 남북 대치의 분단 상황, 한·미·일 동맹에 기초한 경제개발계획이 맞물린 결과이다. 이 같은 요인을 배경으로 강남 개발은 1966년 한남대교 건설 공사가 시작되고, 1968년 경부고속도로가 착공되면서 촉발되었다.
경부고속도로의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시행된 영동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강남에는 수많은 아파트 단지들이 조성되었다. 반포주공아파트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잠실주공아파트 단지 등 대단위 아파트가 건설되면서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으로 탈바꿈했다.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유치되면서 강남의 주요거점인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공원을 비롯하여 코엑스 같은 고층빌딩들이 건설되었고, 순환선으로 건설된 서울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강남 개발은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특히 1976년 경기고등학교를 시작으로 서울 도심의 명문고등학교들이 강남으로 이전하면서 강남 8학군의 신화가 만들어졌다.
허허벌판에 불과하던 강남은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부와 권력의 중심지가 되었다. 브랜드 가치 또한 서울을 능가할 정도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남의 찬란한 영예 뒷면에는 몇 가지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첫째, 강남은 부동산투기의 진원지이다. 일제강점기 지주들은 부동산투기를 통한 자본 이득보다는 소작료 수취에 몰두했고, 해방 뒤에도 이 같은 경향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강남 개발과 함께 사정은 달라졌다. 1968년 말죽거리 신화라는 투기붐이 일어난 이후 강남은 부동산투기의 진원지가 되었다.
둘째, 강남 개발과 함께 아파트공화국이 탄생했다. 1974년 6월 반포주공1단지 완공을 시작으로 강남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건설되었다. 서초구 반포동 한신아파트와 경남아파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와 한양아파트, 송파구 잠실동 잠실주공아파트와 시영아파트 등 대단위 아파트가 동진하면서 지어졌다.
셋째, 강남 개발과 함께 토건국가 대한민국이 등장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과 강남 개발을 시작으로 1970년대 중동 건설에 건설사들이 진출하면서 토건국가 체제가 확립되었다. 토건국가의 등장은 정권과 토건족이 결탁한 공생관계가 확립된 것을 의미한다. 박정희 정권 이래 개발주의 정부는 대규모 택지개발 같은 SOC 사업을 추진하여 정치자금을 확보했고, 건설사들은 정부가 추진한 개발사업에 참여하여 막대한 이익을 챙겼다.
넷째, 강남발 부동산 불패신화가 뿌리를 내리면서 대한민국은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1988년 강북권 아파트는 평당 315만 원에서 2,163만 원으로 6배 오른 반면 강남권 아파트는 평당 285만 원에서 2017년 4,536만 원으로 16배 올랐다. 1988년 강남권의 전세가는 25평 아파트 기준 3,000만 원, 월세는 18만 원이었으나 2017년 전세가는 5억 원, 월세는 192만 원으로 급등했다. 땀 흘려 번 돈으로는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사회가 된 것이다. 그 결과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세상이 되고 말았다.
목차
목차
이 책을 펴내며·4
들어가는 글┃강남공화국이 탄생하다·8
1장┃개발의 신천지 강남
1. 새서울백지계획과 서울 도시 기본계획·23
2.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38
3. 영동 개발과 말죽거리 신화·51
4. 뽕밭은 어떻게 콘크리트숲이 되었나·64
2장┃강남 개발과 3핵도시 구상
1. 3핵도시 구상과 지하철 2호선·79
2. 지역 차별의 상징이 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91
3. 강북 고등학교 강남 이전기·102
4.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114
3장┃88서울올림픽과 강남 개발
1. 88서울올림픽과 강남 개발·129
2. 잠실, 롯데월드가 되다·140
3. 교육특구, 강남 8학군의 탄생·155
4. 수서비리사건·165
4장┃강남과 강북의 단절
1. 서태지와 아이들, X세대 그리고 압구정동·179
2. 성수대교 붕괴, 강남과 강북의 단절·188
3. 탐욕 위에 쌓은 집, 삼풍백화점·201
4. 보수의 온상이 된 강남·213
5장┃강남은 울퉁불퉁하다
1. 강남의 부와 특권의 상징, 타워팰리스·225
2. 사교육 1번가, 강남구 대치동·236
3. 강북의 욕망을 자극한 뉴타운 사업·246
4. 강남은 울퉁불퉁하다·259
나가는 글┃강남공화국,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지배하는 나라·270
찾아보기·282
들어가는 글┃강남공화국이 탄생하다·8
1장┃개발의 신천지 강남
1. 새서울백지계획과 서울 도시 기본계획·23
2. 한남대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38
3. 영동 개발과 말죽거리 신화·51
4. 뽕밭은 어떻게 콘크리트숲이 되었나·64
2장┃강남 개발과 3핵도시 구상
1. 3핵도시 구상과 지하철 2호선·79
2. 지역 차별의 상징이 된 강남고속버스터미널·91
3. 강북 고등학교 강남 이전기·102
4.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특혜분양사건·114
3장┃88서울올림픽과 강남 개발
1. 88서울올림픽과 강남 개발·129
2. 잠실, 롯데월드가 되다·140
3. 교육특구, 강남 8학군의 탄생·155
4. 수서비리사건·165
4장┃강남과 강북의 단절
1. 서태지와 아이들, X세대 그리고 압구정동·179
2. 성수대교 붕괴, 강남과 강북의 단절·188
3. 탐욕 위에 쌓은 집, 삼풍백화점·201
4. 보수의 온상이 된 강남·213
5장┃강남은 울퉁불퉁하다
1. 강남의 부와 특권의 상징, 타워팰리스·225
2. 사교육 1번가, 강남구 대치동·236
3. 강북의 욕망을 자극한 뉴타운 사업·246
4. 강남은 울퉁불퉁하다·259
나가는 글┃강남공화국,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지배하는 나라·270
찾아보기·282
저자
저자
전상봉
20대 중반부터 40대 초반까지 청년운동과 통일운동에 몸담았다. 지금은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면서 '역사와 인문학으로 보는 서울', '한성백제 시민강좌' 등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강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서울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 떠나는 답사 프로그램 '발로품는서울'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2004년, 두리미디어), 《몽양 여운형》(2009년, 산하),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2012년, 시대의창) 들이 있고, 통일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은 MB정부 시절 국빙부 불온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션》은 MB정부 시절 국빙부 불온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한국근현대청년운동사》(2004년, 두리미디어), 《몽양 여운형》(2009년, 산하), 《자본주의, 미국의 역사》(2012년, 시대의창) 들이 있고, 통일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통일, 우리 민족의 마지막 블루오션》은 MB정부 시절 국빙부 불온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션》은 MB정부 시절 국빙부 불온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Payment & Security
Payment methods
Your payment information is processed securely. We do not store credit card details nor have access to your credit card inform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