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문학 기행
이병주 에세이
이병주의 두 번째 에세이집 『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문학 기행』. 이 책은 반체제적 글쓰기로 저자가 선거 기간 동안 외국에 추방당해 시작된 로마 기행을 바탕으로 쓰인 옴니버스 형식의 자전적 글이다. 〈호사스런 폐허의 매력〉에서는 1971년 이병주가 로마에 가게 된 정치적 내력과 함께 로마의 폐허를 본 감상을,〈문학의 절실성〉에서는 청년 마크와 그의 어머니 켈리와 맺은 문학적 교류를, 〈로마의 휴일〉에서는 켈리와 벌어지는 불륜 행각을 다룬다.〈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에서는 자기 엽색을 고백한 것에 대한 사실을 호도하기 위한 문학적 분식 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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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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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이병주를 로마로 보냈다
《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문학 기행》의 첫 번째 작품인 〈호사스런 폐허의 매력〉은 1971년에 로마에 가게 된 내력과, 로마 문명을 바라보는 관점이 자유로운 필치로 서술되어 있다. 그가 로마에 가게 된 데는 불법적이고 초헌법적인 3선개헌을 감행하려는 박정희 정권이 겁 없이 글을 쓰는 반체제 지식인을 선거 기간 동안에 외국에 추방하는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배경으로 한다. 이 덕분에 그는 불가능해 보였던 해외여행을 할 수 있었다.
로마의 폐허를 감상한 이병주의 감회는 남달랐다. 지적 성찰은 폐허에 대한 아름다움과 역설의 현란함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글 행간에는 자조적 성찰이 배어 있기도 하다. 한국에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경주와 부여의 폐허가 떠오른 것이다. 경주와 부여의 폐허가 로마의 폐허에는 못 미쳐도 우리에게는 충분하다는 것이 그의 감회였다. 생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근대교육, 즉 황민화 교육이 결국 유럽화였고, 그러고 나서야 동양에의 회귀를 생각하게 됐다는 데에 한탄한다.
동양 신사와 백인 여성의 문학적 교류
두 번째 작품 〈문학의 절실성〉은 이방인들과의 만남을 그리고 있다. 로마에서 갓 스물의 대학 1년생인 마크를 만나고, 그의 어머니인 켈리를 소개받는다. 켈리는 여배우 에버 가드너를 닮은 요염한 풍정의 중년 여인이다. 문학을 애호하는 교양 있는 미국의 여인과 한국의 중년 작가가 만나 자연스럽게 문학에 관한 얘깃거리를 주고받는 장면은 자연스러우면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이병주는 여인이 구사하는 언어 수준이 매우 소피스티케이트하고 치밀했다고 표현한다. 두 사람이 괴테, 셰익스피어, 안톤 체호프의 문학작품을 두고 벌인 토론은 무척 인상적이다.
또 하나의 '로마의 휴일'
세 번째 연작 〈로마의 휴일〉은 마치 영화처럼, 그가 백인 여성으로서 유부녀이기도 한 켈리와 제3국인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나 벌인 불륜 행각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자신이 여성을 의식하게 되었던 때를 떠올리다 초등학생 시절 때 여고생을 짝사랑했던 첫사랑을 회상하기에 이른다. 물론 이병주의 불륜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일 만한 얘깃거리이지만 문학이라는 틀 안에서 수용할 법한 내용이다.
마지막 작품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는 결말에 해당한다. 정치범으로서 왜 그가 감옥에 갔는지에 대해 타이프 용지 100장 정도의 분량을 써 보낸다. 그가 신문사 주필로 재직하고 있을 때 5·16 군사혁명이 일어났는데 그 세력이 과거 논설을 들추어내어 그를 불온한 용공주의자로 지목해 투옥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나라의 성원 대다수가 민주적 인격과 능력을 갖추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는 가능하다"라는 소신을 갖게 된다. 그의 정치에 대한 관념은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잡문에서 이병주 따를 자 아무도 없다!
본 에세이에서 엿볼 수 있듯, 이병주의 삶은 매우 극적이었고 그의 사상도 다양했다. 친일은 아니지만 일본 문화에 우호적이었고, 좌파 논객은 아니지만 약간의 무정부주의자적 면모도 보여주었으며, 정치에서는 본질적으로 리버럴했다 해도 만년에는 좀 우경화의 성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그는 정치권력과 늘 맞섰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살아오면서 일제, 좌익, 박정희 등의 정치권력과 만났으나 결정적으로 순응하지도 투쟁하지도 않았다. 그의 이런 삶과 정신이 하루 1,000여 매를 써내는 초인적 다작으로 연결되었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위한 문학 기행》이다.
혹자는 대체 이 글의 장르가 무엇인지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논픽션 산문적 글쓰임에도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다소 부정적 관점에서 보자면 잡문의 일종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작가 중 잡문에서 이병주를 따를 자 아무도 없다. 이것이 문단의 평이다. 그의 잡식성 글쓰기는 경지에 도달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그의 산문을 읽다 보면 한 시대가 개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깨달을 수 있다.
목차
목차
2. 문학의 절실성
3. 로마의 휴일
4. 어쩌다 그렇게 된 걸까요
작품 해설_송희복
작가 연보
저자
저자
진실을 밝히는 기개와 용기를 지닌 사관史官이자 언관言官이고자 했던 언론인 경험은 문학 세계를 이루는 자양분이 되었다. 감옥에서 《사기》를 정독하기도 한 그는 한 시대의 '기록자로서의 소설가' '증언자로서의 소설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제강점기로부터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은 체험은 민족의 비극에 대해 지식인으로서 깊이 고뇌하게 하였고, 이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는 동력이 되었다. 1965년 〈소설·알렉산드리아〉를 《세대》에 발표하며 등단했고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소설 남로당》 《그해 5월》로 이어지는 대하 장편은 작가의 문학적 지향을 보여준다. 소설 문학 본연의 서사를 이상적으로 구현하고 역사에 대한 희망, 인간에 대한 애정의 시선으로 깊은 감동으로 자아내는 작품은 세대를 넘어 주목받고 있다. 1977년 장편 《낙엽》과 중편 〈망명의 늪〉으로 한국문학작가상과 한국창작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84년 장편 《비창》으로 한국펜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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