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신비를 만나다
예전 예배 성례전
『예배 신비를 만나다』는 들뢰즈와 가타리와 같은 최신의 포스트모더니즘 철학가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중세의 신학자를 거쳐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대 교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론적 접근을 통해 예전 예배 성례전의 본질적인 의미를 밝히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예배가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일 뿐만이 아니라 교회 밖에서 행하는 실천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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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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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 평신도 예수의 놀라운 복음
"예수께서 자신의 선택에 의해 '권력 엘리트'에 속하지 않았고, '예전 엘리트'에는 더더욱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대 유대인들에게는 지나치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인물로 각인되었을 것이다. 그분은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온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고, 기껏해야 약간의 명성을 얻는 존재였으며, 지엽적인 현상만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특별한 관심을 끌만한 존재도 아니었고, 따라서 분명코 중요하지 않은 존재였다. 그의 사역은 헬레니즘과 로마 세계의 주류 문화 엘리트들에 의해서 크게 무시당했다."
최근 기독교의 위기를 말한다. 몇몇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과 관련된 스캔들이 언론에 다뤄지고, 안티기독교 세력은 이러한 사건을 비판의 중요한 준거로 삼는다. 그렇다면 현재의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독교 신자들에게 이에 대한 유일하면서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을 수 있는 근원은 《성서》와 예수밖에 없다. 우리는 유대교 평신도로서 '아무것도 아닌 곳에서 온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던 예수가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않은"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했음에 주목해야 한다. 예배는 하늘나라를 미리 맛보는 경험이 되어야 한다. 예수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몸소 보여주었다. 이렇듯 유대교 평신도로서 복음의 정수를 보여준 예수의 삶을 이 책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사라진 예수를 만나다
"제자들로 하여금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나그네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던 것은 교리나 사상이나 혹은 개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 자신의 행동이 뜻했던 윤리적이고 실존적인 책임, 완전한 자기 굴복, 타자를 위한 무조건적인 섬김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마침내 믿음을 갖게 해주었던 결정적 계기는 빵을 쪼개는 예수의 예전적 행동이었다. 이 예전은 마침내 '예수의 계시, 보통 사람의 시야에서는 예수가 사라지실 정도로 눈부신 계시가 제자들에게 드러나는 해석학적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따라서 예전은 '이웃의 예전'을 통해, 그리고 정의와 자비의 실천을 통하여 추구되어야 한다."
부활한 예수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승천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들은 예수가 언제나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 함께한다고 믿는다. 이러한 '부재의 현존'이 바로 예전의 모형이다. 사라진 예수를 만나는 것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일어난 일처럼 빵을 쪼개어 나누는 행위에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거룩한 예배에서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듯이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던" 사람만이 진정으로 예수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단순히 예전의 형식이 아닌 본질, 즉 이웃 사랑이라는 사회적 실천까지 생각해보게 만든다.
신학은 불가능하다?
"신학자의 임무는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말씀에 의해 말해지도록, 말씀이 성부에 의해 말해지도록 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다. 신학자의 첫 번째 임무는 통제가 아니라 항복이다. 신학자는 먼저 인간의 말하기로 하나님에 의해 말해져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 안에서 우리 모두의 이름을 말하시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동방이든 서방이든 그리스도교 전통은 하나님이 '각 사람을 이름으로 부르시는 것'이 예전 기도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따라서 예배, 송영이 신학의 제1의 장소다."
신학자 카를 바르트가 말했듯이 근본적으로 신학은 불가능하다. 타락한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에 관한 일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담아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학자 자신이 하나님에 의해 말해지도록 하는 것을 통해 신학은 가능하게 된다. 예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 인간의 어떤 행위도 하나님께 영광을 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스스로 영광을 드러내시도록 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네이선 미첼의 논의를 따라가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느낄 수 있다.
불에 닿은 입술과 불에 닿은 삶
"정의와 용서의 사역, 곧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자신의 능력 저 너머에 있는' 진정성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우리의 능력은 전적으로 자기기만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의와 용서는 '불에 닿은' 입술과 '불에 닿은' 삶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어디에서나 증명되는 우리의 현실은', 우리 자신이 '눈멀고, 귀먹었을 뿐만 아니라, 그중에서도 가장 나쁘게는 우리 마음이 잔혹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저지른 파괴의 흔적과 피의 악취가 온 세상에 선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언자 이사야, 그의 과거를 정결케 해주는 불에 닿았던 예언자 이사야에게 일어났던 일은, 우리가 '예배 회중'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에게도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다."
[누가복음] 15장에서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용서해주신다. 그러나 우리도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참회의 고백을 해야 한다. '예배 회중'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불에 닿은' 입술과 '불에 닿은 삶'이 필요하다. 위기에 빠진 교회를 구하는 길은, 예수를 진정으로 만나는 일은, 불가능한 신학을 가능하게 만드는 일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길은 바로 이러한 회개로부터 시작한다. 네이선 미첼의 《예배, 신비를 만나다》는 단순히 예전 예배 성례전에 관한 이론서가 아니라 참된 예배를 회복하는 신비를 성찰하게 만드는 책이다.
목차
목차
제1부 예배의 하이퍼 리얼리티
제1장 의례의 뿌리 : 리좀, 웹, 말씀, 그리고 세상
포스트모던의 상황
나무 vs. 잡초: 포스트모던 문화 속에서 예전 다시 그려보기
상호 연관적인 차이의 문화: 구조주의를 넘어서
문화: 여러 방면으로 상호 작용하는 고원 | 말하기, 쓰기, 그리고 의미하기
응용 리좀학
말씀, 세상, 웹 | 웹으로서의 말씀 | 폴리포니로서의 말씀, "노마드 공간" | 말씀, 의식, 그
리고 몸의 담론 | 기도의 규칙, 신앙의 규칙, 삶의 규칙 | 회심에로 부르심
제2장 의례의 역할과 위험성: 상징이 의미하는 방법
의례의 역할들
슬롯머신, 꽃, 인형, 젓가락 그리고 하이쿠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인가? | 의례의 위험성
의례: 믿음에서 만남으로
제3장 의례의 규칙: 하나님 나라를 리허설하기
의례에 대한 예수의 응답
예수, 유대교 평신도 | 예수의 기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다
의례의 기억
두 번 생각하게 하다: 문화 비평가로서의 예수 | 가정생활에서의 의례에 대한 예수의 비
평 | 한 분처럼 역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의례들
제4장 의례의 영역: 다시 그려본 세상
전주
의례
손으로 그린 이야기들| 그림으로 그린 기도들
의례를 위한 준비: 마음 비우기 능력
의례와 비유
비유 듣기 | 예수, "하나님 나라의 비유자" | 현대 비유들
계시로서의 의례
계시와 하나님의 신비
의례가 드러내는 것
제2부 폴리포니: 예전 언어들
제5장 몸
초기 그리스도교의 몸에 대한 성찰
신학의 장으로서의 몸, 그리고 그 몸의 근대적 복원
그리스도교 인간학, 그리고 예전과의 연관
체현된 실존 | 몸의 운명 | 누가 몸의 주인인가? | 몸의 고유한 언어(vernacular)를 예배로 가져오기 | 몸의 고유한 언어와 예배 공간 | 몸과 역사
변모된 몸, 변모된 세상
경쟁의 자리로서의 몸
몸의 폴리포니 | 내러티브로서의 몸
제6장 의례적 말하기와 메타포의 논리
예전이 언어를 사용하는 방법
태초에 메타포가 있었다
인간의 메타포
메타포가 신비를 만나다
송영에 의해서 정의되다
예전: 송영인가 상품인가?
예전과 "소비자 종교"
하나님을 여러 이름으로 부르기
예전 고유의 말하기를 재발견하기
제7장 부분들과 참여: 사역, 회중, 그리고 성례전
종 된 교회에서의 봉사
식탁을 위한 새로운 지형도 | 사역을 위한 새로운 지형도 | 안수받은 사역자를 위한 제2
차 바티칸 공의회의 새로운 지형도 | 미(未)해결의 과제들 | 안수받은 성직자들의 예전에
서의 역할 | 하나님 현존 가운데 봉사하기에 합당한 존재 | 불에 닿은 것처럼: 예배 회
중이 되기
회중에서 성례전으로
다른 세계로 들어가기: 스스로를 변화에 내맡기기 | 성례전 다시 쓰기 | 아퀴나스: "실재
하는" 그리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서의 인간과 세계 | 데이비드 존스: 이것을 다른 것으
로 만들기 | 장뤼크 마리옹: 성례전적 선물
에필로그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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