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발자국
유재호 시집
유재호 시인의 첫 시집 『붉은 발자국』.유재호 시인의 등단 14년 만에 출간된 첫 시집이다. 유재호 시인의 시편들은 절제된 언어들로 명징하다. 절제된 언어의 출발은 시조의 형식미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기존의 시조처럼 자연을 관조하거나 즐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의 시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자연으로써의 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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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유재호 시인의 첫 시집 『붉은 발자국』이 등단 14년 만에 '시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유재호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하였다.
유재호 시인의 시편들은 절제된 언어들로 명징하다. 절제된 언어의 출발은 시조의 형식미에 기인한다. 그러나 그의 시는 기존의 시조처럼 자연을 관조하거나 즐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의 시는 시대의 아픔을 함께하며 현실을 타개하고자 하는 자연으로써의 들을 찾아간다.
우물에 잠겼던 지친 별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른 새벽 마른기침 소리가 마루 밑에 웅크린 어둠을 몰아낸다 녹슨 청동빛 시간들을 지탱해주던 희망과 절망을 지고 드나들었던 낡은 대문으로 조각난 아스피린 같은 새벽 달빛이 하얗게 내려왔다 누에처럼 실을 뽑아내던 밤벌레 울음을 풀숲에 내려놓는 시간 젖은 꿈을 지게에 지고 새벽 들길 나서는
아버지,
실루엣 한 장
미명 속을 걸어간다
―「아버지의 새벽」 전문
우리 시대 아버지는 고난의 상징이다. 그것은 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난일 수 있지만 그보다는 시대적 삶의 질곡을 넘어야 하는 고난을 수반한다. "마른기침, 어둠, 절망, 낡은 대문, 아스피린, 밤벌레 울음, 젖은 꿈, 실루엣" 등의 표상은 바로 이 시의 주조를 이루는 것으로 시대의 고난을 객관화시킨다. 그것은 시대의 아픔을 넘어 "새벽 들길 나서는" 동력이다. 따라서 미혹의 세계에서 각성의 세계로 나아가는 단초를 제공한다. "어두운 골목길을/머리가 희끗희끗한/한 사내가 걷고 있는"(「아버지」) 연유이기도 하다.
새벽/둔덕길은/찔레향이 하얗다//간밤을 설치게 했던 하우스재배 사과 배 포도나무 공포감도 위기감도 자꾸만 무뎌지는 수입 농산품, 선대(先代) 긴 한숨 같은 들바람이 불어올 때 경운기 코를 잡고 힘껏 시동을 건다 눈부신 쟁깃날로 검은 땅 독초 잡초 깊이깊이 갈아엎어 남아있어 죄가 된 아픔도 설움도 갈아엎어 갈아엎어//지친 넋/켜켜이 일어서는/봉답마다 흙의 파도여
―「논을 갈며」 전문
유재호 시인의 시 전편에 흐르는 주조는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자연에 주목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가 견지하는 시대상의 바탕 위에 직조된 사랑이 돈독하다. "새벽/둔덕길은/찔레향이 하얗"게 빛나지만 농사는 여의치 않다. 넓은 들판의 갖가지 농사가 수입 농산물 때문에 발걸음이 무겁다. 그러나 어쩌랴. 밥의 근간인 농사를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넘어지고 쓰러지면서도 "쟁깃날로 검은 땅 독초 잡초 깊이깊이 갈아엎"고, "아픔도 설움도 갈아엎어 갈아엎"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삶은 오늘도 "봉답마다 흙의 파도"를 이룬다. 그리고 "거친 세월 흙바람 속 넘어지고 깨어지고/이랑 가르듯 길을 가는 그대"(「보습」) "낮게 깔린 흙바닥 숨차게 일어나라"(「써레질」) 고 강변하는 것이다.
내 마음 한지처럼/달빛에 젖어들고/벚꽃나무 무성한 가지 긴 밤을 흔들었다/내 속 뜰/그대 그림자/무시로 어른대고//꽃무늬로 찍히던/붉은 상처 선연한데/잠시 뒤돌아보곤 이내 이울던 달빛//이 봄날/잿속 잉걸불을/다시금 꺼내본다
―「이 봄날」 전문
"붉은 상처가 선연"한 하수상한 시절이다. "잿속 잉걸불을/다시금 꺼내"야 하는 추운 세상, "두려움에 떠는/눈망울이 큰 아이들/피 흘려 쓰러진 아이를 안고 몸부림치는 여인들/지구 저편/모래 폭풍 몰아치는 벌판에 상처투성이/미아가 된 내가 있"(「우울한 까닭」)고 우리가 있다.
유재호 시인에게 자연은 인간 삶과 별개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를 넘나들며 깊이를 얻고 넓이를 확보한다. 자연의 이법 내지 질서 속에서 인간 삶의 지향을 읽고 실천하는 시인의 삶과 시세계는 충분히 값지고 고귀하다.
유재호 시집 『붉은 발자국』약평
유재호 시인의 시편들은 각종 소음과 오염과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냇물 속처럼 맑고 투명하다. 그에게 자연은 인간 삶과 별개가 아니다. 이 둘은 서로를 넘나들며 깊이를 얻고 넓이를 확보한다. 그는 자연 사물들에서 현실계 너머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할머니, 그 바깥의 현존하는 인간 군상들을 만나고 또 그들 속에서 삶의 정도를 배우고 헤아린다. 그에게 자연 사물들은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고 성찰하기 위한 한 계기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그 자체가 그의 삶 전부를 구성하기도 한다. 나아가 그는 삶의 연속으로 자연을 사유한다. 자연의 이법 내지 질서 속에서 인간 삶의 지향을 읽고 실천하는 시인의 삶과 시세계는 충분히 값지고 고귀하다. 덧붙여, 지나치게 낭비되고 배설되는 요설의 시대에 시인의 언어에 대한 엄격한 절제는 상찬 받아 마땅하다. _이재무(시인)
소년처럼 발그레한 미소로 세상을 걸어가는 유재호 시인은 늘 행복해보인다. 깔끔한 한 폭의 풍경화로 산뜻하게 서 있다가 문득 한 조각 분노로 세상을 꾸짖는 거리에 서 있다가 어느덧 무채색 일상으로 돌아와 땀을 흘리는 그를 자주 밭에서도 만나고 논에서도 만난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밀쳐두지 않고 내 것으로 끌어안는 그는 어디에 서 있어도 부자연스럽지 않다. 참 너른 세상을 두루 살아가는 그의 모습은 시 앞에서도 어울리고 기타를 안고 있어도 자연스럽다. 물이 넉넉한 논 앞에 서면 나락보다 외려 풍성하다. 이쯤에서 그의 진솔하고 알찬 삶을 풍성하게 만나게 됨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_이상훈(시인)
목차
목차
바람·11/겨울 서시(序詩)·12/아버지의 새벽·13/어머니와 매화나무·14/아버지·15/할미꽃·16/늦가을비·17/
찔레꽃·18/어린 풀잎·20/봉화 가는 길·21/잘려진 나무·22/숲이 어두운 까닭·23/불은·24/외딴방 홀몸노인·25/가을날 오후·26/겨울 산사·27/공존·28/단풍계곡·29/가을 바다 산책·30/내 거울·31
제2부
새잎·35/꽃병 이야기·36/겨울날·37/대웅전에서·38/꽃샘바람·39/김씨의 새벽·40/눈은·41/바랭이·42/수수밭·43/태풍경보·44/키질하는 할머니·46/붉은 잎·47/낙엽도 밟히면 아프다·48/바람이 불 때·49/갈대·50/진달래·51/논갈이를 앞두고·52/논을 갈며·53/보습·54/써레질·55
제3부
붉은 등대 1·59/붉은 등대 2·60/붉은 등대 3·61/봉숭아·62/이 봄날·63/봄·64/그해 봄·65/화첩·66/가을 초입·67/비원·68/그림자·69/저녁 산길·70/겨울 아침·71/깊은 우물·72/오솔길·73/밤길·74/능소화·76/암연(暗然)·77/철쭉꽃·78/향기·80
제4부
과원(果園)에서·83/초승달·84/시간·85/밤비·86/밤새·88/퇴근길 1·89/퇴근길 2·90/우울한 까닭·92/봄 바다·94/발자국·96/소유의 슬픔·98/어머니, 그리고 기다림·100/유년 겨울·101/정물화·102/새벽, 산마을·104/눈·105/묵은 옷가지·106/길의 끝·107/낯익은 계절·108/소리·109
해설·111
시인의 말·123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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