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눈물(샘깊은 오늘고전 12)(양장본 HardCover)
『남한산성의 눈물』은 병자년인 1636년 12월 남한산성에서 일어난 병자호란을 겪은 나만갑이 46일간 쓴 일지로 자신이 겪게되는 전쟁의 모든 상황을 기록한 것을 우리말로 다시 다듬어 엮은 것이다. 또한 그 당시 백성과 병사들이 겪은 고통과 불안을 긴박하게 전달하고 전쟁 후의 많은 사건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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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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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하여
『남한산성의 눈물』은 남한산성에서 병자호란을 겪은 나만갑이 쓴 전시 일지 『병자록丙子錄』을 오늘의 한국어로 새로이 다듬어 엮은 책이다.
원작자 나만갑은 1623년 인조반정 이후에 본격적으로 벼슬길에 오른 벼슬아치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강화도로 피난 가는 인조를 수행했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다시 인조를 수행해 남한산성에 들어갔다. 남한산성에 들어가서는 인조를 가까이서 모시며 전시 식량 통제 업무까지 맡았다. 그러면서도 생생한 전쟁 기록 『병자록』을 남겼다.
『병자록』은 기본적으로 남한산성 농성전 46일간의 일지이지만 나중에 병자호란의 개요와 남한산성 밖의 여러 상황, 종전 이후의 사실 들을 크게 보강해 병자호란의 전모를 담게 되었다. 곧 병자호란이 일어나기까지의 국제 정세와 외교,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전투와 강화 협상, 주화파와 척화파의 갈등, 벼슬아치들과는 생각이 달랐던 야전 군인의 동정, 백성의 고통, 백성의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조선 정부의 희생양 찾기, 항복 의식의 세부, 병자호란 마무리 들이 모두 망라된 귀중한 자료이다.
기록의 시작―병자호란
병자년인 1636년 12월, 압록강을 건넌 청나라 군대는 서울을 향해 질풍같이 내달린다. 청나라는 본격적으로 중국 본토에서 명나라와 싸우기에 앞서 '명나라를 도와 청나라와 싸우겠다'고 공공연히 선언한 조선부터 제압하려 했다.
압록강을 넘은 청나라 군대는 인조가 강화도로 피난하기 전에 인조와 대신들을 사로잡으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앞서 정묘호란 때도 인조는 재빨리 강화도로 피난을 떠나 강화 협상을 벌였던 것이다. 조선도 청나라의 침입을 예상하고 준비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빠른 청나라 군대의 돌격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인조는 청나라 군대가 길을 차단하는 바람에 강화도로 들어가지 못했고, 남한산성으로 겨우 피신한다. 하지만 그곳에는 1만 4천 명에 불과한 적은 군사와 45일쯤을 버틸 수 있는 식량밖에는 없었다. 청나라 군대는 산성을 포위하고 조선의 남북으로 이어지는 길을 차단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성안의 상황은 악화되었다. 조선군은 몇 차례 작은 규모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지만 추운 날씨와 굶주림 속에서 산성의 상황은 절망적으로 변해 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높은 벼슬아치들은 주화파와 척화파로 갈려 항복을 한다, 못 한다 저희끼리 싸우는 데 바빴다. 백성과 병사들은 전투에 나서기도 전에 얼어 죽을 판이고 일선 장교와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켜서라도 남한산성 성문을 열고 나갈 기세였다. 곧이어 강화도 함락 소식까지 들려왔다. 인조는 결국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나라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리는 항복 의식을 치르고 만다.
층과 백성의 상황을 함께 지켜본 기록자 나만갑
삼전도[三田渡, 서울 송파구 송파동에 있던 나루]의 항복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겼다. 우리나라 임금이 다른 나라 임금에게 실제로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처박으며 항복 의식을 하기는 그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청나라에 대한 조선의 복수를 다룬 『임경업전』이나 『박씨부인전』과 같은 소설은 병자년의 항복이 얼마나 조선 사람들을 수치스럽게 했는지를 잘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소설과 비교할 때, 상상 속의 복수가 빠뜨린 백성의 고통까지 끝까지 눈여겨본 『병자록』의 기록 정신은 더욱 빛을 발한다.
기록자 나만갑은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수행하는 업무뿐 아니라 식량 통제 업무도 맡았기 때문에 최고위층의 행태는 물론 백성과 사병의 움직임도 함께 지켜볼 수 있었다. 일지를 써 가면서 나만갑은 자신이 겪는 전쟁의 모든 상황을 더욱 엄정하게 기록하게 되었다. 글쓴이 유타루는 『병자록』을 '병자호란 그 자체'라고 평가했지만 여기에는 그 당시 남한산성에서 벌어졌던 일들이 낱낱이 씌어 있다.
예컨대 청나라와 끝까지 싸워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척화파[斥和派, 평화 조약을 물리치자고 주장한 사람들]와, 빨리 조약을 맺어 전쟁을 끝내고 청나라와 가깝게 지내는 게 나라에 이익이 된다고 주장한 주화파[主和派, 평화 조약 맺기를 주장한 사람들] 사이의 다툼이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선하게 그려진다. 또한 남한산성을 포위한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했으며, 원하는 그것을 얻기 위해 조선의 목을 어떻게 죄었는지도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그뿐만이 아니라 남한산성에 갇힌 조선 백성과 병사들이 겪은 추위와 굶주림, 전투를 치르며 겪은 불안과 공포, 남한산성 안팎의 위험하고 긴박했던 순간,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의 많은 사건 등등이 모두 담겨 있다.
백성의 고통을 보는 눈
무엇보다 귀중한 데는 나만갑이 백성이 겪은 고통을 끝까지 따라갔다는 사실이다.
병자호란을 겪으며 수십만 명의 조선 백성들이 청나라 군대에 사로잡혔다. 홍타이지는 수십만 명의 조선 포로들을 심양으로 끌고 갔다. 수천 리 길을 이동하는 도중 추위와 굶주림 때문에 많은 포로들이 죽어 갔다. 심양에 도착한 포로들은 곳곳으로 끌려가 노비가 되었다. 여자들 중에는 청나라 사람의 시녀나 첩이 된 사람도 많았다. 부모형제와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수많은 포로들이 탈출을 시도했다. 탈출하는 도중에 맹수나 강도에게 희생되거나 굶어 죽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천신만고 끝에 국경까지 왔지만 압록강을 건너다 죽는 사람들도 있었다. 탈출에 실패하여 도로 붙잡힌 사람들은 청나라 사람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높은 벼슬아치들은 포로가 된 자신의 자녀와 친척을 돈으로 사오기도 했지만 그 때문에 백성의 귀향은 더욱 어려워졌다. 나만갑은 '임금이 오랑캐에게 항복했으니 원통하다. 우리 복수하자' 하는 식의 감상을 넘어 이와 같은 사실을 끝까지 기록하고 정리해냈다.
목차
목차
제1부 전쟁의 시작
제2부 구원병은 오지 않고
제3부 죽을 테냐, 항복할 테냐
제4부 싸우자고 한 사람이 누구요?
제5부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조아린 인조 임금
강화도에서 있었던 일
글을 맺으며_역사에서 무엇을 배울까요?
해설_병자호란의 교훈을 담은 『병자록』(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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