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시 시작이다
나의 삶 운동 정치 그리고 사람들
2010년 진보신당 울산시장 후보로 출마한, 울산통합연대 대표 노옥희의 『이제 다시 시작이다』. 우리 사회를 따뜻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온 저자의 삶, 운동, 정치,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꿈꿨던 것, 열망했던 것, 분노했던 것을 되돌아보면서 재확인한다. 과거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힘찬 미래를 함께 도모해 가자는 소망을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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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그녀의 삶과 운동 그리고 정치에 대한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진다
1. 영원한 선생님
여기 한 여성이 있다.
부산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집에서 독립하기 위해) 사택을 제공한다는 광고에 이끌려 울산 현대공고의 수학 선생님이 된, 꿈 많고 낭만을 즐기는 여교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금형 공장의 사출기에 손이 눌려 결국 손목을 자르게 된 제자를 지켜보며 노동문제에 눈떴다. YMCA 교사 모임에서 활동하고 교육 민주화 선언에 동참했다가 해직 교사가 되었다. 그 뒤 (1980~90년대 민주 노조 운동의 상징이기도 했던) 권용목이라는 전설적 인물과 함께, 현대 재벌에 맞서 싸우는 활동가가 되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자로서의 교사'를 자각하며 교육 노동운동에 뜻을 두고 전교조에서 일했다. 울산의 해직 교사 가운데 가장 늦게 복직했다. 전교조 출신으로는 최초의 울산시 교육위원(현 교육의원)이 되었다. 울산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후보로 울산시장과 울산 동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학생운동조차 경험하지 않았던 그녀가, 어떻게 이런 사회적 삶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제자들의 아픔에 같이 울고, 졸업하면 노동자가 될 그들이 더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며 밤잠을 설친 날들로부터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얄궂게도 그녀가 제자들을 위해 했던 일들은, 이후 13년 동안 교단에 설 수 없게 한 징계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물론 지금까지도 그녀는 줄곧 '선생님'이나 '노옥희 샘'으로 불린다. 그녀의 수업을 들어본 적 없는 훨씬 많은 사람들로부터 말이다.
2. 교사에서 정치인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죽음을 뉴스로 보며 어쩔 줄 몰랐다는 순진한 여교사는, 노동자를 대표하겠다고 다짐하는 울산의 정치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며 숨을 고를 줄 아는 이가 되었다.
이 변화는 극적이다.
하지만 오히려 놀라운 것은, 한 사람이 해왔다고 보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활동을 했고 교사에서 정치인이 되는 흔치 않은 결정을 했음에도, 그녀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봤을 때 그런 변화가 단절적인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산재 사고를 당한 제자를 만났다. 학과 수업만 잘한다고 해서 교사의 책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어 학생들과 함께 노동조합에 대해 공부했다. 해직되었다. 노동운동에 투신했고 교육 민주화와 복직을 위해 동료 교사들과 힘을 모았다. 복직되었다. 더 나은 교육 현실을 만들려면 교육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사직을 내려놓고 교육위원으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교육과 노동 현실을 개선하는 것은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저 옳은 소리만 한다고 사회나 정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옳은 일을 헌신적으로 하면 당연히 알아주겠거니 생각해 온 것은 나만의 주관적인 판단이었다. 운동으로서의 정치를 넘어서는, 실제 힘을 조직하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녀에게 정치를 할 것을 권한 이들은, 지역의 명망가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제자의 아픔을 보며 시작된 그녀의 사회적 삶은, 다시 평범한 이들의 바람을 모아 정치의 삶으로 이동했다. 그녀는 이렇게 자문한다.
'나는 왜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진보 정치를 하려고 하는가?'
'나는 진보 정치가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힘이 되고 있는가?'
누구를 위한 정치를 펼쳐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 앞에서 그녀가 내놓는 답은 다시 한 번 의지와 열정을 모아 대중적인 진보 정당을 튼튼하게 건설하겠다는 다짐이다.
3. 진실한 글
처음 이 책의 초고를 보내면서 그녀는 "글이 안 되네요. 책을 낼 수 있을까 모르겠어요."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책의 제목도 목차도 정리되어 있지 않던 원고에는, 그저 지금껏 어떻게 살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가 담담하게 적혀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원고를 읽으면서 '확고한 사실만을 말하는 글', '수학적 정확성을 추구하는 글'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꾸미는 말이나 장식적인 표현이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묘하게 글이 잘 읽혔다. 생각해 보니 글 때문이 아니었다. '정직한 삶'을 살았고 그것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었기 때문이었다. 보내 준 파일을 책의 형태로 편집하고 가제목과 가목차도 달고 해서 보냈더니 "책이 안 될 줄 알았는데, 출판사 손을 거치니까 책처럼 되네요."라며 반겼다. 그 뒤 필자는 자신의 원고 사이사이의 내용을 채우고, 느낌도 살려 내고, 모양도 만들어 냈다. 이렇게 해서 다른 사람에 의해 대필되지 않은 그녀 자신의 책이 만들어졌다.
4. 특별한 정치인의 책
우리가 낸 책 가운데 김진숙의 『소금꽃나무』가 가장 글을 잘 쓰는 노동운동가의 책이라고 한다면, 『이제 다시 시작이다』는 글 잘 쓰는 사람의 책이라고 할 수 없다. 글의 아름다움이나 맛에서 특별함은 없다. 게다가 이 책은 오랫동안 정몽준이 아성을 구축해 온 울산 동구에서 진보 정당의 후보로 출마하려는 필자가 출판기념회를 염두에 두고 낸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책은 우리가 만든 책 가운데 가장 보람을 갖게 한 책 가운데 하나다. 누군가 존경할 만한 사람을 만날 때의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울산의 교육운동과 노동운동, 그리고 진보 정치의 역사를 어느 한 사람의 인생을 통해 말할 수 있다면, 단연 이 책을 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이념적 입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노동자 이웃의 삶 때문에 운동을 하고 정치를 하게 된 그녀의 삶은 그 누구보다 깊고 단단하다. 그렇기에, 이 책이 정치인들이 내는 그저 그런 책으로 묻히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책속으로 추가>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1988년 4월 26일 총선에 노동자 후보를 출마시켜 노동 탄압을 폭로하고 노동자의 힘을 보이기로 했다. 당시 권용목과 김진국이 구속되어 있었는데, 두 사람 중 누가 출마할지를 논의한 끝에, 권용목은 노동운동을 상징하는 최고 지도자로 남아 있어야 하고, 현대중공업 수석부위원장으로 구속되어 노조 탄압을 잘 알릴 수 있는 지도자인 김진국을 옥중 출마시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조영래 변호사가 울산을 찾아왔다. 이번 총선에 권용목을 출마시켜야 하며, 권용목이 출마할 경우 모든 경비는 물론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조영래 변호사는 이미 노동자 정치 세력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계셨다. 그래서 노동운동의 최고 지도자를 총선에 내보내 진검 승부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노동자 대표가 국회에 진출하는 것의 의미와 그것이 노동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해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셨으나, 울산 사람들이 결정을 굽히지 않자 그 길로 서울로 올라가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울산 지역 활동가들은 총선 출마를 노동자 정치 세력화라는 관점보다는 노동운동을 위해 활용하는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 다른 결정을 했더라면 권용목 개인이나
노동운동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을, 그 뒤로 자주 하곤 했다.
선거운동은 선거 투쟁으로 치러졌다. 구속되어 있는 후보를 출마시킨 것 자체가 대중투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성격이 컸으므로 집회를 열고 거리 행진을 하며 휩쓸고 다녔다. 결국 패배하기는 했으나 대중의 열기는 대단했고 득표도 상당한 수준이어서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렇게 노동자 정치 세력화가 첫발을 떼게 되었으며, 이후 권처흥 아버님에 이어 이갑용, 김창현 그리고 나까지 출마했다. 그러나 누구도 동구에서 현대그룹 정몽준의 아성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노동자의 도시 동구에서 노동자의 대표를 국회에 보내는 것은 이때부터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숙제가 되었다.
"결혼" 중에서
현대그룹의 노동자 탄압은 악명이 높았는데 단체협약 교섭의 결렬로 현대중공업 노조가 파업 중이던 1989년 1월 8일 새벽, 당시 (나와 결혼을 앞두고 있던) 현대중전기 해고자 천창수는 조합원 18명과 함께 언양 석남산장에 신년 수련회를 갔다가 현대그룹에서 고용한 조직폭력배 수십 명에게 테러를 당했다. 이 조폭들은 바로 연이어 '현대그룹해고자협의회'(약칭 '현해협') 사무실을 급습해 권용목·김서호·배남효·이용희에게도 테러를 가했다. 결혼을 1주일 앞둔 상태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이었고 여론에서도 관심을 보였던 일이라, 우리 결혼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져 여성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테러로 허리를 심하게 다쳐 결혼할 수 있을까 걱정했으나 이미 결혼 소식이 널리 알려진데다가, 테러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허리에 보호대를 하고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은 민중 혼례로 치렀는데 울산에서는 처음이었다.
"쇠망치 테러와 전교조 사수" 중에서
전교조 탄압이 갈수록 심해지던 중 울산에서는 1989년 9월 1일 현대엔진 노동자 2명과 전교조 장인권 선생이, 전교조 사무실과 같은 건물에 있던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사무실 등에서 포승줄에 묶여 쇠망치 테러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내부를 훤히 알고 들어와 불과 2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세 곳의 사무실에 있던 노동자들에게 테러를 자행하고는 사라졌다.
전교조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는 듯이, 다음 날 마창노련에서도 얼굴에 스타킹을 뒤집어쓴 괴한 6명이 테러를 저질렀다. 경찰은 테러범들이 사용한 포승줄이 경찰용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음에도 테러범을 잡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심지어 증거보전을 위해 매듭을 풀지 말 것을 요구했는데 바로 풀어 버리기까지 했다. 그리고 테러를 당해 병원에 실려 간 노동자가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에도 퇴원을 종용하는 등 사건을 축소시키기에 급급했다. 이렇게 증거를 은폐하고 심지어는 테러를 알리는 홍보물 배포를 방해하고 빼앗아 가기도 했다. 대책위에서는 경찰서를 항의 방문해 경찰과의 연관성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전국적으로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전교조 탄압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 대책 기구를 구성해 전교조를 지지·엄호해 주었다. 지역별로 전교조 탄압을 저지하는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함께하게 되었고, 나아가 전국적인 학부모 단체인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가 만들어졌다. 또한 전교조에 대한 탄압이 단순히 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학생들도 교육의 주체임을 선언하면서 고등학생 조직을 만들었다.
"정보 공개는 중요하다" 중에서
교육위원 활동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 중 하나가 정보 공개였다. 정확한 정보가 제대로 공개되면 이해 당사자를 통해 많은 일들이 해결된다고 믿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정보가 정확히 공개되지 않고, 당사자가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 부모들이 장애인 교육권 투쟁을 할 때 특수학급 신설 계획 등의 정보가 알려지자 학부모들이 나서서 필요한 곳에 특수학급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해 많은 부분 관철해 가는 것을 확인했다.
동구에서 조선 업체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근무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활동을 하면서,
근로계약서가 공개되지 않고 제대로 된 임금 명세서조차 지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 바 있다. 자신의 근로조건을 제대로 알게 되면 정당하게 일한 대가를 부당하게 빼앗기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그렇게 되면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아도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청 업체가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않는 것 또한 부당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목차
목차
1_울산에서 시작된 나의 사회적 삶 11
울산과의 첫 만남, 현대공고 교사가 되다 / 학생·교사들과 일상을 나누다 / 사회에 눈뜨다 / 교사 모임을 만들다 / 잊을 수 없는 제자 / 담임이 되다 / 노동자로 살아갈 제자들 / 연행, 폭풍 전야 / 교육 민주화 선언 / 징계를 막기 위해 나선 제자들 / 동료 교사, 졸업생들의 구명 운동 / 지역사회의 관심 / 현대그룹의 실체와 대면하다
2_나와 노동운동 49
노동문제상담소 간사가 되다 / 6월 항쟁에 나서다 / 7, 8월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노동자의 힘을 경험하다 / 연행과 구속 / 권용목에 대한 추억 / 장명국과 노무현에 대한 기억 / 노동운동 지역 조직 건설 / 노동운동의 총선 투쟁 / 전태일 노동상을 수상하다 / 87년 노동자 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
3_나와 교육운동 81
전교조 결성 / 교사가 왜 노동자인가? / 울산의 해직 교사들 / 학교에 남은 선생님들 / 학교 밖 교사 / 쇠망치 테러와 전교조 사수 / 해직 교사 복직 투쟁 / 모두가 복직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 전교조 합법화, 분회 결성, 단체교섭 / 고교 평준화 운동의 성공
4_교육위원 노옥희 111
13년 만의 복직과 교육위원 출마 / 전교조 교육위원 / 비리와의 전쟁 / 장애인 교육권 투쟁 / 토호 세력과의 한판 싸움 / 친환경 무상 급식 / 발렌타인 양주 사건과 박준일 기자 / 정보 공개는 중요하다 / 선물에 대한 나의 원칙
5_나의 정치를 말하다 145
울산시장 후보로 추대되다 / 시장 후보 출마를 받아들이다 / 민주노총 시장 후보 경선 / 노옥희 후보가 당선되면 재앙? / 시장 후보로 선출되어 '노동자 시장 노옥희'를 외치다 / 본격적인 당 활동 / 투명 회계와 당 혁신 / 민주노동당을 떠나다 / 진보신당 창당과 총선 후보 출마 / 4·9 총선 / 촛불, 시당위원장, 당사 마련 / 미포조선 굴뚝 농성 지지 단식 / 재보선과 원내 정당 / 비싼 수업료를 치른 지방선거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시장 선거 / 새롭게 지역 활동을 시작하다 /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친구 / 동구청장 보궐선거
6_내 인생의 사람들 227
부모님 / 형제자매들 / 성장 과정 / 남편과의 만남 / 결혼 / 해고자 부부 / 남편의 해고와 구속 / 평등 부부 / 자녀 교육 / 방목 / 대학 2학년 딸의 결혼 / 외할머니가 되어 깨닫게 된 것들
7_나의 교육 탐방1: 덴마크 267
나의 무지를 일깨워 준 덴마크 교육 기행 / 자전거, 핵, 1달러 / 다양한 선택이 보장되는 교육과정 / 교육 주체가 주인인 교육 / 교사와 학생을 신뢰하는 교육 / 공동의 선과 민주주의,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 / 우리 교육에 대한 고민은 우리 스스로
8_나의 교육 탐방2: 핀란드 285
핀란드 교육을 보러 가다 / 왜 우리는 핀란드 교육에 주목하는가 / 핀란드 교육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9_다른 사람이 말하는 노옥희 297
사랑하는 노옥희 선생님께(박진한) / 선생님은 제게 동지입니다(안현호) / 서민이 당당하게 살 수 있는 현실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정익화) / 노동자 정치의 큰길을 개척해 주시길 바랍니다(박준석) / 나는 이렇게 노옥희와 '엮였다'(조용식) / 내가 본 노옥희 선생님(정찬모) / 우리가 노샘을 추대한 이유(명숙)
저자
저자
2010년 진보신당 울산시장 후보 출마
2009년 삶을나누는공간 '더불어숲' 대표(현)
진보신당 울산시당 위원장
2008년 진보신당 울산 동구 국회의원 후보 출마
진보신당 울산추진위원회 대표
2007년 울산교육연구소 자문위원(현)
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 자문위원(현)
2006~08년 민주노동당 울산시당 민생특별위원회 위원장
2006년 민주노동당 울산시장 후보 출마
울산인권운동연대 이사
2005년 동구학교운영위원협의회 지도위원
울산장애인교육권연대 자문위원(현)
2002년 학교급식울산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울산여성유권자연맹으로부터 '우수교육위원상' 수상
2002~06년 울산광역시 교육위원
2000~02년 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수석부본부장
1999~2002년 명덕여자중학교 교사
1997년 제6회 '전태일 노동상' 수상
'울산 경실련이 기억하는 시민상' 수상
국민승리21 울산본부 노동위원장
1997~2000년 고교평준화실현 시민연대회의 공동의장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울산지부 지부장
1986~89년 울산사회선교실천협의회 노동문제상담소 간사
1979~86년 현대공업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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