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의 합창
행복한 정치를 위한 프러포즈
행복한 정치를 위한 진보 삼총사의 프러포즈『진보의 합창』. 이 책은 진보 정당 통합에 앞장선 박원석, 이정미, 신언직 등 삼인삼색 진보 삼총사의 삶과 정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통합진보당 보좌관인 박선민이 질문자의 역할을 맡아 신언직과 이정미의 삶과 생각을 들어봤고, 박원석은 ‘촛불 집회 이후의 촛불 집회’를 글로 표현했다. 당시의 깊은 고민이 배어난 글에서, 그의 정치에 대한 관점까지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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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진보 정당 통합에 앞장선
삼인삼색 진보 삼총사의 삶과 정치 이야기
1. 그들은 서로 다르다
각각 시민운동·통일운동·노동운동을 대표하며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전형적인 '386 운동권' 세 사람이 '정치'라는 이름의 한길에서 만났다. 박원석은 오랫동안 참여연대에서 시민운동을 해왔고, 2008년 촛불 집회 당시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이자 집회 사회자로 잘 알려져 있다. 이정미는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을 지냈고 이른바 '자주파' 운동을 이끌었다. 신언직은 18년간 노동운동에 복무했고 진보신당 서울시당 위원장을 지냈는데, 넓게 보면 '평등파'에 속했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이들은 통합진보당에서 함께하고 있거나(신언직과 이정미) 이를 지지하고 동조하지만(박원석), 그들의 차이가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는 세 사람의 대담이 실린 1장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 종북주의 해석, 야권 단일 정당이 아니라 독자적 진보 정치의 길이 필요한 이유, 진보신당·사회당을 바라보는 관점,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당에 대한 평가 등 진보 진영에 묻고 싶은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은 닮은 듯 다르고, 때로는 예리하게 각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는, (진보 진영에 대해 염증을 느끼게 했던) '논쟁을 위한 논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가느냐에 따라,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분열의 상처가 될 수도 있고 더 큰 협력과 연대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실천적으로 획득했다. 서로 살아온 날은 다르지만 소속을 떠나, 정파와 진영을 떠나 어느새 세 사람은 함께 정치를 살아갈 든든한 동지가 됐다. 물론 서로 신뢰하고 믿는다고 해도, 우리는 서로 다퉈야 할 때 다툴 것이고 싸워야 할 때 싸울 것이다. 모든 문제에서 우리가 다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서로의 차이를 분명히 하면서 좁힐 것은 좁히고 다른 것은 조정해 갈 것이다. 갈등과 통합의 변증법을 우리는 실천으로 구현하고자 최대의 노력을 할 것이다. 한때 우리는 따로따로의 서로였다. 그러다 우리는 함께하는 서로가 되었다. 서로 힘을 합하면 무서울 게 없는 삼총사가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삼총사다. 진짜 삼총사다."(저자 서문)
2. 통합은 다름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한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속한 곳도 달랐던 이들이 교차한 접점은, 민주노동당 분당의 상처를 딛고 다시금 통합 진보의 길을 가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시민 정치 운동 조직 '진보의합창'이었다. 2011년 4월 처음 논의가 시작된 후 그해 6월 출범했다. 사실 애초 목표를 기준으로 보면, 진보의합창은 실패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남긴 것도 적지 않았고,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성취는 "서로 살아온 길이 다르고 정파가 다르고 시민운동과 정치 사이의 거리도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이 우리가 협력하고 공동 행동을 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경험"이었다.
'통합'은 '차이'를 없애는 데서 시작하지 않는다는 당연한 말은, 말뿐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졌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정파 간 패권주의 문제, 진보 안의 패밀리 의식, 견해와 노선이 다른 이와의 협력 경험, 개방형 비례대표 선출, 민주통합당과의 협력에 대한 시각, 계급정당과 대중정당의 지향, 진보 진영의 차세대 리더 등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2장에서 다루어진다. 이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는 것은 이들에게는 함께했다는 '공동 행동의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민주노동당으로 진보가 하나의 목소리를 내다가, 민주노동당·진보신당으로 분당되면서 불협화음의 중창을 했는데, 2010년 지방선거 이후 진보 대통합 논의가 시작되었다. 독창하는 것도 들어 봤고 나뉘어 중창하는 것도 들어 봤는데, 이제는 통합해서 합창을 하라는 시대적 명령이었다고 본다. 하나 더하기 하나가 둘이 되는 통합이 아니라 셋이 되고 넷이 되는 대중적 통합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신언직)
3. 진보 삼총사, 자신의 인생과 정치를 글로 쓰다
진보 통합을 위해 활동했던 기록을 책으로 승화시켜 보자는 이정미의 제안에서 이 책은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글쓰기는 낯설었다. 이때 신언직이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냈다. 자신과 자신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가장 잘 아는 손낙구에게 부탁해 질문하게 했고, 스스로 답변한 말을 녹취한 후 그 내용을 다듬어 훌륭하게 글을 완성한 것이다. 이정미도 같은 방법을 썼다. 통합진보당 보좌관인 박선민이 질문자의 역할을 맡았다. 그 덕에 이정미는 자신의 삶과 생각을 말하며 글을 완성해 갔을 뿐만 아니라, 그간 살아온 삶의 상처를 치유하는 경험도 했다. 2008년 5월 24일 밤 "여러분, 지금 촛불이 청와대로 향하고 있습니다. 함께하시겠습니까?"라고 외쳤던 박원석은 '촛불 집회 이후의 촛불 집회'를 글로 표현했다. 당시의 깊은 고민이 배어난 글에서, 그의 정치에 대한 관점까지 엿볼 수 있다.
정치가는 대중에게 자신의 가치와 소명을 밝히고 지지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하려는가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이들의 글이 그렇다. 그 이야기를 3, 4, 5장에 담았다.
<책속으로 추가>
신언직의 이야기 중에서
민주노총에서 일하던 두 분이 과로로 큰 병을 얻어 죽었어. 그래서 도입된 제도가 7년 이상 근무하면 6개월 안식 휴가를 주는 거였지. 2000년에 민주노총 6개월 안식 휴가를 받아 유럽에 가족 여행을 갔다 왔는데 그게 내가 처에게 해준 가장 큰 선물이야. 나는 민주노총에서 안식 휴가제가 도입되어 그 혜택을 처음으로 받은 두 명 중 한 명이었는데 "이 시간은 당신을 위해 쓰고 싶다. 당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봤더니, 아내가 "그림 원화를 보고 싶다."고 그래. 미술을 공부하고 관심이 남다른데 나와 결혼해 제대로 전시회도 못 갔으니 얼마나 보고 싶겠어. "그럼 원화가 가장 많은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유럽에 있는 박물관이라고 해. 그래서 내가 가자고 했지. 처가 당장 돈은 있냐고 묻기에, 내가 "있어." 그랬지. 처가 너무너무 좋아하더라고. 그래도 미심쩍은지 계속 돈 있냐고 물어. 다음 날 은행에 가서 창구에 앉자마자 내가 그랬어. "대출해 주세요." 그랬더니 처가 내 손을 잡고 끌고 나와 하는 말이 "당신 미쳤어?" 하길래, 내가 설득했어.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거라고. 설득해서 주택 담보대출로 1천만 원 넘는 돈을 마련해 한 달간 유럽에 갔어. 그 돈 갚느라 몇 년 고생했지만 인생에서 아내에게 가장 잘한 일인 것 같아.
비로소 진보 정치도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구호가 현실로 다가왔다. 진보의 '독자성'을 알릴 '한 사람의 국회의원이라도 있었으면…….' 하는 이전의 소극적인 진보 정치만으로 더는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권력을 잡아야 한다." 제도권에서 정치를 하는 사람이면 처음부터 아는 것을, 이념형 운동권 출신인 나는 진보 정치를 말한 지 20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부끄러웠다. 그동안 진보 정치를 한다면서 "나는 진보 정치 운동을 하는 거지, 출마해서 배지 달려고 하는 게 아니야!"라고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이것이 얼마나 '진보'라는 가치를 앞세워 우월 의식에 빠져 있는 일인지, 또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 정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하는 소리였는지를 알았다.
나는 여전히 진보가 보수보다 좋은 가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권력이라는 힘을 갖지 못하는 진보는 일상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 지금의 진보 정치가 그런 것이 아닌가. 그리고 운동과 정치는 사회 변화의 양쪽 수레바퀴라고 그렇게 말했으면서 현실 정치를 폄하했던 나 자신에 대해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알았다. 분당과 총선 이후에 왜 내 안의 열정과 에너지가 식어 가고 있었는지를. 그것은 바로 몸은 현실 정치를 하는데 머리는 여전히 운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와 의식이 따로 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진보 대통합에 앞장섰던 이유이자 키워드는 '노동'과 '권력'이다. 분당 이후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노동자들이 새롭게 진보 정당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분당의 상처로 인해 진보 정당에 대한 지지와 참여가 현저히 낮아졌다. 하나의 노동조합 안에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노동자와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노동자가 함께 있다 보니 이견이 발생하거나, "언제까지고 돈 대주고 몸 대줄 수만은 없다."고 비판하면서 통합을 강력히 요구하기도 했다.
"진보 정당이 힘도 없는데 둘로 쪼개져서 제대로 하겠냐", "정책은 좋지만 해결할 힘이 없다", "지지해 주고 싶어도 표가 나뉘면 한나라당이 되기 때문에 민주당을 찍는다" 등등, 선거 때가 되면 수없이 듣는 소리다. 진보가 현실 정치에서 권력이라는 수단을 획득하고자 한다면, 이런 대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더욱 힘 있고 능력 있는 정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통합된 진보 정당이 그 새로운 출발이라고 보았다.
박원석의 이야기 중에서
참여연대 초기 아주 '촉망받던' 젊은 활동가 시절이다. 당시 공동대표 중 한 분이 언론계의 원로 김중배 선생이시다. 어느 날인가 의정부에 있는 시민 단체 후원의 밤에 축사를 하러 가실 때 수행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종로에서 소주나 한잔하자고 하셨다. 다음 날 새벽에 간담회가 있어 자료를 만들기 위해 사무실에 가야 했지만, 대표가 한잔하자는데 마다하기도 어렵거니와 인간적 매력이 있으신 분이라 끌렸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가 30년이라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차수를 변경하며 길어졌다. 대기자답게 정치·경제·사회 다방면에 걸쳐 거침없고 날카롭게 해석하는 식견에 감탄하며 마시고 또 마셨다. 술을 드시면 꼭 <임을 위한 행진곡>을 중간 소절부터 부르시는 버릇이 있는데 "도오옹지는 간데없고, 기이잇발만 나부껴" 하다가 결국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쫓겨났다. 사모님께 전화를 드려 선생을 보내드리고 나니 새벽 3시가 넘었다. 아침 7시에 있는 간담회에 쓸 자료를 만들어야 하는데, 도저히 술기운을 이기지 못해 사우나 가서 잠깐 자고 일어난다는 것이 눈떠 보니 해가 중천이었다. 그 사건이 있은 뒤부터 나는 촉망을 덜 받게 됐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김중배 선생께 훗날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렸을 때 흔쾌하게 허락하셨다.
나는 평소 한국의 진보 정치 세력이, 고착된 지역주의 보수 양당 체제에 균열을 내는 제3의 주체로서 정치적 확장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진보 정당이 분열돼 있고 이념적·정치적으로 충분히 유연하지 못해 확장성의 한계도 있지만, 그 가능성을 단념하는 순간 한국 정치는 진보적 사회 발전의 견인차가 되기보다는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지방선거의 친환경 무상 급식 정책의 승리를 통해 한층 커진 생활 정치의 요구나 보편적 복지에 대한 기대를 실현하고 온전하게 그 가치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진보 정치의 힘이 커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신자유주의로 경도된 민주 정부 10년의 한계를 봤고, 2008년 촛불 시위를 통한 변화의 열망을 경험했으며, 시민운동가로 살아온 나의 신념과 가치로 볼 때 상식적인 결론이었다.
시민 정치의 관점에서 볼 때도 진보 정당의 통합과 확장은 중요하다. 좋은 정당 없이 운동의 가치를 실현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대중적이고 유능한 진보 정당은 시민사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시민 정치 세력이 정당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고, 밖에서 정당의 변화와 혁신을 추동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시민 정치 운동의 대표 사례로 거론되는 미국의 '무브 온'(move on)도 정당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그간 시민 정치를 표방하는 흐름이 진보 정당보다는 민주당을 중심으로 형성돼 온 것이 사실이지만, 진보 정당의 힘이 커지면 자연스레 균형을 잡아 갈 것이다.
한국 사회의 강한 반정치 정서 속에서 시민운동가들은 '좋은 일을 하면서도 사심 없는 사람들'로 칭송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관념들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사람이다. 정치에 대한 자기 내면의 동기보다 정치를 평론하는 데 익숙했다.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실패의 두려움도 있다. 지금까지 대단한 성공은 없었어도 크게 실패가 없는 인생을 살았는데, 정치를 한다는 것은 크고 작은 실패를 감수하는 운명에 스스로를 내맡기는 것이다.
물론 시민운동을 하면서 느끼는 한계와 답답함도 있다. 정책이나 입법 운동을 하다 보면 어떤 단계에 이르러 더는 운동이 접근할 수 없는 벽을 수없이 경험한다. 현실 정치의 힘의 관계에 따라 정책의 굴절과 왜곡이 일어나기도 하고 수포로 돌아가기도 한다. 사실 대부분의 경우가 그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욕밖에 없을 때 무력감이 찾아온다. 정말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가치 그리고 정책을 직접 실현하고 싶은 욕망이 생긴다.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과 촛불 시위를 경험하면서 '정치가 우선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주민 투표 소동을 보면서 나쁜 정치인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경험했다. 나는 좋은 정당을 만들어 좋은 정치를 실현하는 것이 이 시대의 핵심 과제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내 역할이 있다면 부족하지만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그게 지금까지 내가 운동을 살아왔던 자세였고, 또 정치를 살아갈 자세다.
목차
목차
1장| 진보, 통합의 길을 간다
2장| 우리, 다르지만 좋아한다
3장| 내가 말하는 나, 이정미
4장| 내가 말하는 나, 신언직
5장| 내가 말하는 나, 박원석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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