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일루미네이션 총서 4)
60년대 한국 대중 장르영화의 최전선
60년 대중들의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던 감독, 김기덕의 회고집『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 장르영화의 최전선』. 이 책은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을 맞이하여 한국영상자료원과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기획한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다양한 장르영화와 함께 1960년대 한국대중영화의 생생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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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공동기획 회고집 출간 -
제16회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회고전을 맞이하여 한국영상자료원과 부산국제영화제가 공동 기획한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장르 영화의 최전선》이 출간되었다. 60년 대중들의 열망에 응답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며 흥행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던 감독, 김기덕의 회고집이다.
60년대 한국영화사의 르네상스를 수놓았던 김기덕
<5인의 해병>(1961)으로 데뷔해 청춘영화의 전설이 되다시피 한 <맨발의 청춘>(1964) 뿐만 아니라 스포츠영화, 코미디영화, SF영화를 종횡무진 했던 김기덕은 명실공히 1960년대 한국영화사 르네상스의 한 축을 담당한 감독이었다. 그는 산업으로서의 영화를 이해한 몇 안 되는 감독으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꿈꿨으며, <영광의 9회말>(1977) 이후에는 후학 양성을 위한 영화교육에 힘쓰는 등, 충실한 영화인의 삶을 보내 왔다.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의 삶, 총체적 영화인 김기덕
이번 KOFA-BIFF 공동총서 《김기덕, 60년대 한국 대중·장르 영화의 최전선》은 1960년대 숱한 화제를 뿌리며 대중의 마음을 설레 만들었던 김기덕의 작품들을 되짚어보고자 기획되었다. 이번 부산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에서는 그의 첫 작품 <5인의 해병>(1961)에서부터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맨발의 청춘>(1964), <남과 북>(1965) 뿐만 아니라 독특한 치정드라마 <늦어도 그 날까지>(1969)에 이르는 흥미로운 영화들을 선보인다.
이 회고집은 영화전문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통해 김기덕의 영화 인생을 되짚어 보고 그의 작품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바이오그래피를 담당한 영산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주유신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김기덕의 삶 속에 별처럼 빛나는 영화의 위치를 하나씩 살펴본다. 그리고 김기덕 감독과의 인터뷰는 영화 작업 현장의 생생한 이야기, 그의 연출론과 영화에 대한 태도를 담고 있다. 단지 직업인으로서의 영화감독 김기덕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과 교류 속에서 생겨나는 그의 위치, 세상과 사람에 대한 그의 신념을 엿 볼 수 있다. 두 번째 장에 실린 '거의 모든 장르의 이름으로'는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회고전을 담당한 강소원 프로그래머의 김기덕 작품론이다. 이 글에서 필자는 김기덕이 대중의 열망을 포착하기 위해서 얼마나 놀라운 장르적 감각을 발휘했는지를 박진감 넘치게 설명해내고 있다. 오영숙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는 세 번째 장, '사나이 되기의 강박과 순정: 1960년대와 김기덕 영화'에서 고뇌와 우수에 찬 사나이들을 호명한다. 아버지와 아들의 복잡다단한 관계, 건달의 낭만과 비루함, 그리고 연인들이 목숨을 건 사랑의 파토스는 김기덕 영화 속에서 다면각체의 모티브가 되어 다채로운 빛깔을 발한다.
마지막으로 책의 부록에는 한국영상자료원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KMDb)의 자료를 근거로 정리한 김기덕 감독의 작품 목록과 더불어 주요작품 소개, 작품 관련 기사가 실려 있어서 참고해 볼 수 있다.
김기덕 감독 약력
1930년 9월 28일 서울 출생.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그는 1961년 <5인의 해병>이란 전쟁영화로 데뷔했다. 이후 그는 많게는 한 해 여덟 편 그리고 적게는 한 두 편씩 20여 년 동안 70여 편에 이르는 작품을 정열적으로 만들었다. 그 영화들을 대충 뽑아보면 다음과 같다. 1962년에 <가정교사>, <77번 미스 김>, 1964년에 <천안삼거리>, <맨발의 청춘>, <떠날 때는 말없이>, 1965년에 <남과 북>, <용사는 살아 있다> 1966년에 <말띠신부>, <종점>, 1967년에 <여대생 사장>, <내멋에 산다>, <대괴수 용가리>, 1968년에 <아네모네 마담>, <성난 대지>, 1969년에 <샹하이부르스>, <남의 속도 모르고> 등을 만들었다. 1970년대 들어와서도 감독의 다작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1971년에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명동 부루스>, 1971년에 <열아홉 순정>, <캬츄사>, 1972년에 <결혼반지>, <별이 빛나는 밤에, 1973년에 <하숙인생>, 1974년에 <유관순>, <꽃상여>, 1975년에 <가수왕> 그리고 1977년에 <영광의 9회말>을 만들었다.
-『한국영화감독 사전』, 한국영화감독협회, 65~66
한국영상자료원(KOFA)
한국영상자료원은 국내 유일의 영화 아카이브 기관입니다. 1974년 필름보관소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한국영화와 관련한 모든 콘텐츠가 모여 있으며 한국영화의 역사가 숨 쉬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일반인들이 쉽고 즐겁게 영상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국영화박물관, 시네마테크KOFA, 영상도서관 그리고 온라인상의 다양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영화 애호가들의 천국이자 영화교육의 장으로서 우리 영화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가꾸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1996년에 시작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비경쟁 국제영화제입니다. 아시아의 신인들이 대거 소개되는 '뉴커런츠'와 유럽 신진감독들을 소개하는 '플래쉬 포워드'를 비롯하여 아시아, 한국, 월드로 나뉜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한해 세계영화계의 성과를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매년 20만 가까운 유료관객들이 모여드는 영화제 프로그램 외에도 아시아 영화를 지원하는 펀드인 ACF와 일정기간의 교육을 통해 아시아의 미래 감독을 발굴하는 AFA, 영화계 현안을 다루는 '비프 아카데미' 등을 통해 마켓, 학술, 교육, 축제의 장을 펼치는 종합적인 성격의 영화제입니다. 2011년은 새로운 변화의 기점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이자 아시아 최대의 영상센터인 '영화의 전당'이 건립되고, 세계영화 학계의 주요한 담론을 다룰 국제포럼이 올해 처음으로 개최됩니다. 또한 새 시대를 맞이하여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영문 표기가 "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BIFF)"으로 변경됩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세계를 향해 한국영화를 소개하고 재발굴하는 창구이기도 합니다. 동시대 작품을 소개하는 '한국영화의 오늘'뿐만 아니라 한국영상자료원과 공동으로 프로그램과 책자를 발간하는 한국영화 회고전 프로그램이 대표적입니다. 그중 한국영화 회고전은 과거 영화유산의 발굴 및 복원을 통해 한국영화사의 주요한 감독과 배우를 오늘날 되살려 한국영화사를 다시 세우는 작업의 일환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은 앞으로도 다양한 감독과 배우들을 소개하고 발굴,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갈 것입니다.
목차
목차
김기덕: 장르의 발견자, 대중문화의 창조자 - 주유신
거의 모든 장르의 이름으로 - 강소원
사나이 되기의 강박과 순정: 1960년대와 김기덕 영화 - 오영숙
끊임없는 도전과 모험의 삶, 총체적 영화인 김기덕 - 주유신
필모그래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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