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
차선우 소설집
차선우 소설집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 작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견인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삶의 풍경을 제한적으로 부각시키며 시작한다. 그 방식은 재현된 현실의 주체가 서사의 대상이 되고, 그 의미를 테마로 하면서 서술전략을 구성하며 텍스트화한다. 일상성에 감춰진 양면의 안과 바깥을 세계의 이중층으로 주조하여 은폐되어 있는 그것의 내면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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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1.
차선우의 소설은 욕망에 밀착되어 있는 다단하고 불안정한 주체들의 내면을 리얼리티하게 조명하는데 있다. 단절되고 모순된 세계와 인간관계에 대한 내부의 해부를 통해 계층 간의 속성을 표면적으로 해체하면서 욕망의 징조들이 드러난다. 욕망의 주체를 불러들이는 서사의 편재는 주변부 삶에 길들여진 그늘진 타자들의 삶에서 출현시킬 때 두드러진다. 이 가운데 그의 소설은 소외되고 상실된 불가해한 현실을 부정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플롯의 정면으로 가로지르는 상상력의 촉수로 민감한 본질의 바닥까지 도달하고자 한다.
작가는 인간의 본질적인 문제를 견인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삶의 풍경을 제한적으로 부각시키며 시작한다. 그 방식은 재현된 현실의 주체가 서사의 대상이 되고, 그 의미를 테마로 하면서 서술전략을 구성하며 텍스트화한다. 일상성에 감춰진 양면의 안과 바깥을 세계의 이중층으로 주조하여 은폐되어 있는 그것의 내면을 보게 된다. 그가 구성하는 세계 이면은 현실의 문제를 지배적으로 다루는 문면에 투시되는데, 이것은 진실과 상반되는 세계의 모순과 배반의 적절한 이중층으로 봉합되어 있다. 이른바 "괜찮다는 데도 자꾸 걱정해주며 걱정을 시킨다. 그들의 친절한 참견과 지적 덕분에, 너는 불완전한 존재라고 끊임없이 일깨워준 덕분에 지난 몇 년간 그는 머리카락의 고민에서 놓여나지 못했다."(「쓸모」) '괜찮다'고 생각하는 주체는 화자이며, 그것을 걱정해 주는 것은 대상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세계다. 여기서 우리는 불완전한 주체와 친절을 위장한 세계 속에서 벌어진 파열을 감지할 수 있게 된다. '괜찮다'는 것은 분명 현상적인 문면이지만 내면에 감춰진 이면은 '전혀 괜찮지 않은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괜찮다는데도 주체를 걱정해주는 것은 세계의 문면이며,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세계의 의도는 주체가 걱정하도록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소설에서 내재적 모순은 숱한 머리카락과 같이 진실을 덮고 있으며, 이에 대한 서사의 배반은 '허위의 탈모'를 증가시킨다. 이것은 욕망을 발동시키는 현실에의 요구라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욕망의 서술 방식을 도입하면서 세계에 접근하는 독법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이 가진 의미는 소설의 구조에서 볼 수 있는 '상징적 제동'과 '반전의 지연'을 불러오고 고유의 개성을 지니게 되며 독자들로 하여금 일반적 인식의 균열을 주면서 현실과 이상 세계가 변주된 실존을 마주하게 된다.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세계―내―존재를 하이데거는 범주적인 것과 실존적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범주적인 것은 존재자를 전재적인 양상으로 보고, 그것이 공간적 세계 '안'에 있는 것을 의미하고, 실존적인 것은 현존재가 세계 '내'에 살고 있는 현존 양식을 의미한다. 하이데거에 의하면 현존재는 내―존재로서 '세계에 몰입해 있음'을 강조하며 세계 내부의 한 전재자가 다른 전재자 곁에 나란히 있는 존재방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재의 고투하는 실존적 양상에 관심을 두었다.
차선우 작품의 특징은 세계에 속한 보편적인 구조가 아니라 그가 설정해놓은 세계―내 공간에서 가공된 등장인물의 내면의 욕구를 사유하게 되는, 변양된 욕망의 요구이면서 상징적 기표로 새겨진다. 소설이 채우고 있는 주체들의 욕망은 "공중에 떠 있으면 새가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는 것 같다. 하늘이 되고 우주가 되는 것 같다. 그 우주가 바람처럼 안으로 흘러 들어와서 가슴을 뿌듯하게 채웠다. 그럴 때 망설임 없이 다시 지구를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발바닥이 땅에 닿았는가 싶을 때 재빨리 몸을 굴려주었다. 성공! 온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살아나 소리 질렀다."(「악어를 사주세요」) 주체들의 욕망은 잡을 수 없는 부유하는 삶의 현장에서 현존하는 새, 바람, 구름, 우주와 같이 그 육체를 보인다. 요컨대 그의 작품에서 주제라는 '욕망의 시침'을 움직이기 위해 사건이라는 '욕구의 분침'을 작동시켜 시시각각 변화하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의 실체성을 다루고 있다. 그것은 각자의 '입신과 성취'이라는 욕망의 이름으로 우리도 모르게 일상에 포진된 '언어의 세포'로 점철시키려고 한다.
2.
그의 소설에 편재된 욕망은 현존재의 공통적인 활동성과 실재성인 바, 인간 존재에 관한 문제의식의 면면이 리얼리티하게 배태되어 있다. 또한 거기에는 작가의 잠재된 윤리의식이 그림자와 같이 의미의 음영으로 투사되어 있다는 점이다. 차선우의 첫 단편 소설집『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에 수록된「W」「더미」「보람의 끝」「수상한 대합실」「쓸모」「악어를 사주세요」「에레원 캐슬」「태평원룸 202호」「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등 9편에서 우리는 각기 다른 존재들, 자아와 타자, 타자와 세계 사이에서 들려오는 "칼질 소리, 조리기 들먹거리는 소리, 그릇 부시는 소리, 무언가를 주문하고 알았다고 되받아치는 소리. 아득한 곳에서 문 닫는 소리가 들려온다. 층층이 방들이 겹쳐진 곳, 다른 세계의 문이 닫히는 소리"(「태평원룸 202호」) 등 다양한 소리들이 가진 주체들의 고유한 욕망을 감득하게 된다. 이 소리들의 발생지는 현실에서 기인하지만 또다시 작가의 상상으로 가공되며 서사로 제작된 소설의 방에서 체험 가능한 것이다.
차 안에는 어느새 바흐가 흘렀다. 내 호흡의 속도와 높낮이, 심장박동 수, 그리고 체온과 기분까지 감지해 센서가 선곡한 것이었다. 차는 레인을 따라 조용히 달리고, 음표를 수직으로 쌓는 능력을 가졌다는 연주자의 건반이 무심히 차 안을 떠다녔다. 수직은커녕 수평으로 늘어놓기도 바쁘던 필의 손이 떠올랐다. 언제나 부루퉁한 얼굴도 떠올랐다.
- 「더미」 부분
그 방면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W는 세상의 어느 상담교사보다 친절했고 입이 무거웠다. 사실 W는 거의 모든 방면에 감탄할 만큼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기억력 또한 비상했다. 자신이 한 번 듣거나 본 것은 절대 잊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아는 것을 뽐내거나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묵묵히 들어주고 선택지만 제시했다.
- 「W」 부분
일상은 될 수 있는 한,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추구하며 과학에 의존하면서 살고 있다. 사실 인간의 평균 여명이 늘어난 것은 생명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통계와 예방, 의학과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그 수명이 백세로 연장된 것에 불과하다. 현대인은 그것에 길들여져 과학에 사숙된 것조차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바흐가 흐르는 듯한 안락한 공간을 차지하기 위해 "호흡의 속도와 높낮이, 심장박동 수, 그리고 체온과 기분까지 감지해 센서가 선곡한 것"은 인간 자신이 아니라 인공에 의해 컨설턴트 된 것이다. 그러나「더미」에서 안전한 장치와 평온한 공간을 검증받기 위해 쓰이는 '인간 더미'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과학의 특수성을 실험하는 도구일 수밖에 없다. "허공으로 날아올라 거대한 코를 땅에 박았다. 쿵, 다시 뒤집어지면서 쿵, 쿵, 쿵. 나는 차와 함께 공중제비를 돌고 땅에 처박히기를 반복했다. 몸이 차와 엇박자로 튕겨 오르거나 거꾸로 처박힐 때마다 안전띠가 특수 제작된 좌석에 나를 끌어 앉혔다."를 반복하며 실존하는 존재인 '더미 인간'은 고투하는 현실에 맡겨진 존재의 다른 이름이 아닐 수 없다.
「W」는 테크놀로지에 종속된 현실을 극대화하면서 폭발적인 기계증식과 절대적인 의존 욕구에 대한 문제의식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이 만들어놓은 기계에 의해 정신이 작동당하며 인간 정신마저도 파괴되고 있는 것이 실상이다. 이를테면 누구나 들고 다니는 스마트 폰은 친절, 정보, 소통, 비밀, 저장 능력 등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길잡이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그것은 아버지와 같이 "아는 것을 뽐내거나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을 보호해줘야 할 아버지가 무책임하게 사라져버렸을 때에도 "W에게 의지하는 수밖에. 다행히 W는 자신의 인맥을 동원해주었다. 최선을 다해 도윰에게 협조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산속 깊숙한 곳에서 초근목피 하는지, 외딴 섬에서 해초와 물고기로 연명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도윰은 포기하지 않았다. W의 힘을 믿었다. 그리고 결국 아버지를 찾아냈다." 모든 것을 갖춘 스마트 폰은 "가장 친한 친구이며 선배이고 스승이자 아버지이고 어머니"로서 현실에 그것이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서 숨이 멎을 것 같'은 상태에 놓여 있다. "이 작은 기기에 W를 완벽히 구현한 자들에게 영광 있으라. 아무 때나 영접이 가능케 한 자들에게 무한한 축복 있으라." 아이러니한 현실에 대한 역설적 찬양으로서 현실을 풍자하며 "그렇게 발가벗겨져 객관화된 나는 생각보다 보잘 것 없"(「더미」)는 테크놀로지 세계에 접속되어 있는 실존의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3.
위 작품의 주요 테마가 되는 차 안과 스마트 폰이라는 공간은 안으로 닫혀 있지만 밖으로 연결되면서 안 보다 바깥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다. 또한「에레원 캐슬」「태평원룸 202호」의 집이라는 공간 역시 인간의 지각과 실재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면서 사회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작가는 실업, 빈곤, 억압, 단절, 모순 등 피로한 사회를 자신이 가공한 '소설의 집'으로 초대하면서 소외된 주체들의 욕망성과 접촉시킨다.
"거실에는 온갖 물건들이 흩어져 있다. 아가리를 떡 벌린 채 빈 속을 보이는 과자 봉지, 샤워를 하고 던져둔 수건과 티셔츠· 양말짝, 나무젓가락이 꽂힌 채 방치된 컵라면 용기, 국물이 떨어져 울퉁불퉁해진 만화책, 그리고 뒤엉킨 이어폰줄과 케이블선, 전단지들. 갈 데 없는 이재민 막사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품 있고 세련된 가구들 사이에서 팝아트의 한 컷처럼 빛난다.(「에레원 캐슬」) 에레원 케슬은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를 담고 있는 공간으로 묘사되고 있지만 이것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나거나, 방치된 젊음과 꿈이 나뒹굴고 있는 '청춘의 막사'다. "전체적으로는 어둡고 칙칙하게 보였다. 날씨가 흐린 탓도 있지만 변변한 창이 없는 이 집의 구조 때문이기도 했다. 책상과 침대 사이에 번듯하게 난 창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창은 굴절된 약간의 빛과 공기만 투과시킬 뿐, 하루 종일 옆 건물의 시멘트벽만 담고 있었다."(「태평원룸 202호」) 어둡고 칙칙한 이 집 역시 밖을 바라다 볼 창이 없는 현실의 단절을 형상화하면서 시멘트벽 밖에 보이지 않는 자아와 타자, 타자와 타자, 타자와 세계 간 소통이 거세된 사회의 답답한 구조를 드러낸다.
역시 단단한 벽과 굳게 닫힌 문들. 영조는 호흡을 가다듬고 오른쪽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아무런 기척이 없다. 돌아서서 반대편 집의 초인종을 누른다. 그 집도 마찬가지다. 영조는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거기에도 사람은 없다. 배달하는 사람이 동을 착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영조는 어스름 속을 걸어 앞 동으로 간다. 마침 같은 호수에 사람이 있다. 영조는 우리 집에 온 두부가 혹시 이 집의 것이 아니냐고 묻는다.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우아하고 나른하게 생긴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두부는 다시 냉장고 속으로 들어간다.
-「에레원 캐슬」 부분
집 안에 많은 냄새가 뒤섞였다. 침대에 걸터앉은 여자의 얼굴에도 많은 표정이 어렸다. 여자는 불을 끄고 다시 침대에 앉았다. 어둠 속에서 소주를 한 모금 마시고 잘근잘근 오래도록 멸치를 씹었다. 우울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구더기나 나방 같은 미물조차 자신을 괴롭히자고 작당한 것 같았다. 나쁜 놈들. 여자가 소리쳤다. 화답하듯 전화벨이 울렸다.
-「태평원룸 202호」 부분
「에레원 캐슬」에서 타자와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연결통로는 '계단'이며, 계단을 빼고는 '전부 벽'으로 막혀 있는 현실을 절감한다. 또한 "그 벽에 난 철문들은 하나같이 굳게 닫혀", "조금 전에 자신이 빠져나온 재건이 집의 문, 열리지 않는 앞집의 문, 엘리베이터 문, 소화전과 양수기함의 문. 문득 자신을 둘러싼 벽과 문들이 싸늘하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 문들은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 되어 있지만 소통 불가능하고, 감정 교환 불능 상태의 현실을 보여주는 상정 매체다. 취업 준비생인 영조 자신은 마치 '그 벽이 뱉어낸 오물처럼 여겨'질 정도로 현실의 암담함을 불가치한 존재로 비유하며, 가로막힌 현실에서 사회로 진입한다는 것 자체가 비관적이라는 사실을 암유한다. 누군가 현관 손잡이에 놓고 간 깨지기 쉬운 사각의 두부는 '에레원 캐슬', '벽'과 같이 겉모양은 깨끗한 흰색을 띄고 있으나, 변질되기 쉬운 자본주의에 대한 모순을 나타낸다. 영조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돌파구 없이 신선도가 떨어져가는 두부로 치환된 인물일 뿐이다.
「태평원룸 202호」에서 남자와 여자의 등장과 조우는 해학적으로 그려지지만 이들이 처한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이 집은 서로 의도치 않게 당장 몸을 부릴 방조차 없이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피신하듯 스며든 남자와 동생의 빚 때문에 끈질긴 협박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여자와의 동침을 통해 기대와 배반이라는 반전을 보인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 둘은, 같은 원룸에서 남자는 약에, 여자는 술에 취한 상태로 서로 다르고 낯선 욕망의 어긋남에서 생기는 섹슈얼리티를 익살스럽게 그려내고 있다. 이 가운데 "세상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구더기나 나방 같은 미물조차 자신을 괴롭히자고 작당한 것"을 원룸이라는 장소에 클로즈업해서 "집 안에 많은 냄새가 뒤섞였다. 침대에 걸터앉은 여자의 얼굴에도 많은 표정이 어렸다." '많은 냄새'와 '많은 표정'은 벗어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후각과 촉각 이미지로 변주되고 있다.
4.
차선우 작품은 테크놀로지 시대를 살고 있는 디지털 문명에 대한 인간 존재의 고독과 권태, 기대와 배반, 물질과 정신 등에 대한 다양한 삶의 패턴을 보인다. 작가는 과학 문명 속에서 익명화되고 은폐된 현실을 우회적인 방식으로 형상화하면서도 소외된 도시의 인간 운명을 구체적으로 직시한다. 그에게 세계는 문명의 최첨단의 결정체로서 치열하면서 냉소적인 공간으로 인간 존재를 단절된 주체로 전락시키며 인간 정신 또한 기계문명에 반상쇄된다. 거기서 존재의 고립과 개방, 자유와 억압, 절망과 희망이 충돌하며 좌절하는 실존의 갈등과 반목을 볼 수 있다. 자율이라는 도식화된 경쟁 사회를 있게 한,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우리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간주된 인간의 면면을 파악하게 된다. 이 가운데 "사람 때문에 정신과에 다니면서도 사람 속에 있어야 산다는 애. 죽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일을 한다는 애. 그런 애를 사지로 몰아넣었다." (「보람의 끝」) 물질화된 사회와 문명화된 시대의 풍요로움은 아이러니하게도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되지 못하는 근본적 문제로 피폐해지고, 그러한 병든 사회에 살아남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억압과 모순의 매립지'에서 죽음은 검은 입을 벌리고 있다. "죽지 않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면서 한 무더기의 죽음자루"(「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 속에는 주검이 들어차 있지만 인간의 욕망 때문에 묻어둔 주검에서 귀환한 죽음은 전염병처럼 번지는데, 이것은 세계의 욕망이 빚어낸 현실의 카테고리일 수밖에 없다.
옛날부터 땅에는 많은 것이 묻혔다. 자연사나 사고사를 당한 인간 말고도 불온 불순한 모든 것들이 다 묻혔다. 지난 오 년 동안만 해도 돼지 콜레라로 돼지가 묻혔고, 몇 번의 조류독감으로 수백만 마리의 닭이 묻혔으며, 브루셀라에 걸린 소가, 구제역에 걸린 소와 돼지가 무더기로 땅에 묻혔다. 인간에게 키워져 인간의 혀에 봉사하는 것 말고는 따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던 그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인간을 위협했다. 그래서 전부 땅에 묻혔다.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부분
슬라보예 지젝은 '억압은 반드시 돌아온다'라고 말 한 프로이드의 무의식을 빌려 '채무 변제를 위해 죽은 자가 귀환한다'고 했다. 죽은 자의 회귀는 죽어서도 잠들지 못한 원혼들을 무의식에서 소환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옛날부터 땅에는 많은 것이 묻혔다. 자연사나 사고사를 당한 인간 말고도 불온 불순한 모든 것들이 다 묻혔다." 땅에 묻혀 있는 존재자들은 불온하고, 불순하다고 판단된 세계에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죽음이 선고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폐기된 존재는 '억압의 매립지'라는 세계―내 무의식에 머물렀다가 자신을 처형한 '주체의 폐기'를 위해, 두려운 사물과 공포로 귀환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가해진 폭력의 완전한 단절 속에서 폐기처분되었지만 제거되지 않고 분노와 공포로서 세계를 향해 복수를 감행한다. 결국 억압된 폭력은 또 다른 폭력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페르소나를 드러내며 현실을 위협하고 있다. 이를테면 "돼지 콜레라로 돼지가 묻혔고, 몇 번의 조류독감으로 수백만 마리의 닭이 묻혔으며, 브루셀라에 걸린 소가, 구제역에 걸린 소와 돼지가 무더기로 땅에 묻혔다. 인간에게 키워져 인간의 혀에 봉사하는 것 말고는 따로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던 그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인간을 위협했다." 죽음의 매립지에서 나오는 존재들은 분명 분노에 사로잡힌 원혼이며, 보이지 않는 그 정체는 공포일 수밖에 없다.
차선우 작품은 '욕망의 네트워크' 안에서 벌어지는 억압된 주체들을 세계로부터 소환하여 그것들의 무의식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주체들이 거주하는 공간은 불안정한 세계이며, 주체들의 무의식에 억압된 욕망이 매립되어 있다. 작가는 무의식을 뚫고 나오는 욕망에 대해 "검은 아가리는 몸통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조금이라도 방심해 빨려 들어가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입이 몸통을 지배하는 '검은 아가리'와 같이 우리가 사는 시공간은 욕망이 지배하는 '아귀의 세계'라는 점이다. 아귀의 세계는 악을 규정짓고 선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은 욕망의 지배 방식에 따라서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단편집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대부분은 검은 아가리 깊숙한 곳에 있는 '욕망의 도그마'에 접근하며, 그 사이 우리는 선과 악이 욕망이라는 가명으로 지배하는 현실의 네트워크와 접선하게 된다. 이때 선과 악은 서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선이 악에게, 악이 선에게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은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악의 가면일 뿐이다. 물질은 잔학하고 외설적인 사물에 의한 음란한 강박관념의 가면일 뿐인 것이다. 선의 배후에는 근본적인 악이 존재한다. 선은 특수하고 병적인 위상을 갖고 있지 않은 '악의 또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현실의 안과 밖에서 존재하는 선과 악이, 그의 소설에서 욕망이라는 세계의 네트워크와 연결될 때, 우리는 주체들과 세계의 무의식에서 차지하고 있는 욕망의 민낯을 만나게 된다. 차선우 소설가의 작품은 안과 밖에 있는 모순과 배반,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이라는 이중층의 세계를 문면에 구성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공간에서 부유하는 주체들의 욕망을 목격하게 만든다.
- 권성훈(문학평론가)
소설가 차선우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넓고 깊다. 친자확인, 신장 밀매, 프로그램에 의한 인간 통제, 미스터리 쇼퍼, 치매, 탈모, 야마카시, 취업전쟁, 성형중독, 조류독감, 폭력 문제 등 다양한 인물군의 삶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을 독자에게 제시하여 해결 방법을 묻는다.
이런 노력은 창작집을 관통하여 드러나는 작가의 현실 인식인 동시에 동시대 사회적 리얼리티의 객관적 표현을 통한 비판의 칼날로 작용하고 있다.
작가는 삶의 질곡에 빠져 허우적대는 인간들의 면면을 보여주는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일상적 삶에서 훼손되어가는 인간성의 문제점을 제시하고 회복하려는 방법론 모색에 힘을 쏟는다.
수식화되어가는 사회현상의 비인간성을 고발,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상실되어가는 인간성 회복을 위해 인간의 증명, 존재의 증명에 천착하는 작가의 노력은, 그래서 비장하면서도 처연하고, 의연하면서도 아름답다.
- 김양호(숭의여자대학교 교수, 소설가)
겨우내 나무들은 새 발가락 같은 가지로 도시를 지켰다.
어느 순간 바람결이 순해지고 나무들이 호들갑스레 웃으며 제 이름을 외쳤다.
오랜만에 만난 K가 해맑은 얼굴로 돌복숭아 꽃을 보러 가자고 했다. 기대로 들뜬 K와 J 그리고 내가 차를 타고 강변을 달렸다. 한참을 달려 산언저리의 허름한 건물 앞에 차를 세웠다. 건물 옆을 지나 산과 강을 연결한 데크 길에 들어섰다. 강가의 나무들은 일제히 연둣빛이 되어 있었다. 그 부드럽고 풍성한 연둣빛은 수종마다 미묘하게 차이가 났다. 순연한 연두, 노랑을 품은 연두, 파랑을 품은 연두, 갈색을 품은 연두. 연둣빛 나무들 너머에는 물비늘이 고운 강이 누워 있었다. 우리는 그 몽환적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의 걸음 사이로 간간이 연분홍 산벚꽃이, 진분홍 돌복숭아꽃이 섞여 들었다.
K와 J가 이 고운 것들에 경탄하며 카메라에 담았다. 나도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웃음을 흩뜨린 것도 같다. 가끔 자전거를 탄 사내들이 곁을 지나갔다.
집에 돌아온 나는 지난봄에 담았던 튤립을 버리고 카톡 배경을 돌복숭아꽃으로 바꿨다. 그것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이 아름다운 것들을 다시 눈에 담지 못할 이들이 떠올랐다.
인간의 수명은 유한하다.
사고가 아닌 한 누구도 생몰을 같이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난 초겨울 황황히 떠난 이들이 놓아지지 않는다.
함께한 시간의 겹이 쉬이 풀어지지 않는다.
기온이 오른다. 한 계절이 또 가고 있다. 그들은 불쑥불쑥 나를 찾아온다. 자신들에게 고마워하라고, 때론 미안해하라고 내게 종용한다.
살아 있었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당신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광이와 광혁, 수연, 건우 그리고 내가 아는 많은 이들에게 고마운 마음 전한다.
모든 이들이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작가의 말
목차
목차
수상한 대합실 ○ 35
악어를 사주세요 ○ 63
우리는 많은 것을 땅에 묻는다 ○ 91
W ○ 119
에레원 캐슬 ○ 149
쓸모 ○ 173
태평원룸 202호 ○ 201
보람의 끝 ○ 223
해설 | 욕망의 네트워크와 부유하는 주체들 |권성훈 ○ 252
작가의 말 ○ 269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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