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달에 쓴 연서
최영옥 시집
최영옥의 시집 『새벽달에 쓴 연서』. 이 시집은 최영옥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크게 3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을 통해 독자를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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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등단 20여 년 만에 펴내는 최영옥 시인의 『새벽달에 쓴 연서』는 우선 제목이 주는 참신함에 눈길이 갔다. 가령 "달 옆에 비켜선 별빛에 쓰인 초서" 같은 표현은 오랜 시적 내공 끝에 나온 것이리라. "어머니 머리 수건 위로 / 고요히 내리던 달빛 언어로 / 뜰앞에 서니 / 별빛에 얼핏 비친 어머니 / 눈물 같아"라는 시적 진술에서 보듯 어머니에 대한 애절한 회상이면서 동시에 시인 자신의 삶을 노래하고 있다.
최영옥 시인은 「재단사의 하루」 「워낭소리와 고모」「그리움」 「화려한 외출」 등 자신의 가족사에 얽힌 회상을 드러낼 때 독자들은 그 시적 절실성에 공감하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꽃들과 풍경 ㅡ 나팔꽃, 꽃고무신, 달무리, 대들보, 달맞이꽃, 꽃무릇, 은하수, 코스모스, 들국화, 능소화, 수세미꽃, 칡꽃 ㅡ을 묘사할 때 이 시인만의 새로운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인 자신의 삶과 동화되지 않은 채 시적 묘사에만 치중할 때 그 새로움은 반감될 수 있다.
등단 20년 만에 우리 앞에 새로이 등장한 최영옥 시인에게 이제부터 중요한 시적 작업은 시적 아류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 있는 문체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운 시(문학)는 전혀 예기치 못한 그 무엇을,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을 독자들에게 수태고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 이승철(시인, 한국문학평화포럼 사무총장)
■ 어루만지고 끌어안는 소박한 무명의 질감
최영옥 시인이 기록해 온 일련의 풍경에서 한 개인의 시선과 마주치는 일은 흥미 있는 일이다.
일방적인 바라보기의 태도를 배제하고 개입할 대상을 살펴 상상을 작동시킨다. 사실과 허구를 오가며, 인지하고 존재하는 것에 친밀한 일상, 그 틈을 확인하고 사유하며 시를 짓는 시인의 감정적 안정이 이채롭다.
시인은 나아가 주변에 유기적으로 연결된 현실을 담담하게 '소통하는' 방법으로 구사하고 있다. 일상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또 다른 대상과 관계를 설정하고 삶에 몰입하는 시어들에서 에너지가 발생한다. 또한 개인의 정서에 균열이 갈 때 시인은 침묵하며 말을 아낀다. 때론 시어를 찾아 한 지점에서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며 기억을 재생시키고 오류를 수정하는 시인의 작은 몸부림을 엿볼 수 있다.
오류를 변명하는 말이 나열되기도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어찌 치유할까 하는 고민을 엿볼 수 있어 다행이기도 하다. 이미지가 넘치는 시대의 시선은 화려한 영상으로 집중되지만 이렇게 소박하고 정갈한 시선도 있다. 최영옥 시인은 의미의 양면성을 자신만의 필법으로 색다르게 변주하였다. 그리고 시인은 '결핍'과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 자아를 실현하려는 소박한 언어를 구사함으로 '소통'의 구조에 대한 시적 얼개를 짜고 있다.
그 질감들로 시 곳곳에 담긴 삶의 열정과 에너지로 어머니라는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누군가에겐 생과 사의 길목
시치미를 뚝 떼
달빛에 걸어둔
흔들림을 기웃거리는 허공이 있다
영롱한 비단실로 어둠을 통제하는 전사
먹이사냥도
영역표시 방패막이도 아닌 작은 몸집 큰 의미의
신기한 곡예가 아득하다
착각하는 순간의 흔들림을
포착하는 촉수가 환해
정신을 추스른다
은근과 끈기가
생존 술인 거미,
그가 쳐둔 거푸집에
또 한 生이
자멸의 길목에 날갯죽지 퍼덕이면
빈 공간의 덫이 하얀 소곡을 연주한다
정신을 추스른다
다시 은근과 끈기를
거미줄에 보태어주고
허공에 거미줄을 응시한다
- 「거미」 전문
거미의 인내란 모름지기 '인지' 하는 것과 '존재'하는 것에 대한 모순적 친밀함이라 할 것이다. 시인은 여인에서 어머니로 할머니가 되기까지의 여정에 대한 인내를 '포착'의 순간에 대입시키지 않고 있다.
거미의 순간적 살상을 배제하고, 영롱한 '비단실'과 '허공'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먹이에 대한 '욕망', 다가서는 것에 대하여 곡예로 표현하고 있다. 지극한 인내와 사랑이 없다면 하나의 먹이사냥에 대한 처절한 살육만 묘사하겠지만 시인은 이를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고 친밀한 일상의 재료에 대한 미적 혜안과 안정적 심상의 기능을 사유하여 오브제로 구성한다.
또한 시인은 현재를 구성하는 시심의 요소들과 다양한 관계를 거부하고, 오로지 대상에 몰입하므로 개인적 정서에 균열이 가는 것에 대한 자극을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시인의 취향은 시적 확장에 제한이 따를 수 있으나 독자와의 '소통'에 '소유와 존재'로서만 가능하도록 하는 함축된 진실을 서정적으로 전달하고자 한다.
혹자는 서정시는 자아와 대상 사이에 대립이라는 극함이 없어 행과 행, 연과 연 사이 간격이 없다고 하지만 최영옥 시인은 각박한 현실과 대립하지 않고 고정되고 안정된 삶으로부터 역순하는 과정에 '소통'이라는 지표를 세우는 리얼리즘이 있다 할 것이다.
떠나간 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듯
물안개는
바위섬에 하얀 띠 두르고
좀처럼 섬을 허락하지 않았다
뱃길 따라 삼십 분
초록빛 융단 같은 바다 물길을
가르는 거센 물보라
위대했고
인간은 한없이 작아 보이는 뱃길
군무를 추는 듯 울창한 바위
골짜기 사이 사잇길에 누런 대지가 젖줄을 캐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섬, 가의도
뭍으로 떠난 이들이 돌아오지 않아
늘어난 빈집 문설주에 소라 이야기는 없었고
양쪽 포구를 내려다보고
아이들 없는 교실 묵묵히 지키고 선 섬 끝자락엔
고동과 홍합이 장을 열었다
오염되지 않은 인심이 소롯한 바다
짠 내만 가득
기억하는 섬,
가의도는 무심히 수평선을 지키고 있었다
- 「가의도를 가다」 전문
최영옥 시인이 많은 여행을 다니고 있다는 것을 이 시집의 전편에서 느낄 수 있다. 여행이란 비우거나 채우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다. 이런 소박한 의미에서 보면 시인은 대체로 삶의 편린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지극히 실용주의라 할 것이다.
실용주의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낸 철학자 '퍼스'의 기호실재론의 일부인 지표를 요약해보면 방향이나 목적, 기준 따위를 나타내는 지표指標에는 대상체 사이에 인과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시인의 여행에는 방향과 목적, 기준에 대한 분명한 지표들이 시심의 본능과 유기적으로 '심리적 거리'psychic distance를 좁혀내는 감각의 틀을 유지하고 있다.
시인은 떠난 이들의 빈 공간으로서 작아진 섬을 이야기한다.
떠나간 이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듯 /……/ 늘어난 빈집 문설주에 소라이야기는 없고 기회가 있다면 뭍으로 떠난 이들, 그들이 떠난 자리는 공간으로 확장되고 그 안에서 섬은 작아진다는 것, "아이들 없는 교실 묵묵히 지키고 선 섬 끝자락엔" 이 시집의 모티프는 경쟁시대를 살아내는 치열한 삶에 대한 이해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한 개인의 역사이며 기록이기도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동시대인 것이다.
시인은 주관적 정서나 내면세계를 과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때론 고정된 인식과 '감각의 틀'을 벗어나려 노력한다. 골짜기 사이 사잇길에 누런 대지가 젖줄을 캐는, 오염되지 않은 인심이 소롯한 바다, 삶의 유속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옹골찬 비의悲意를 충족하려는 결핍을 충족하고자 애쓰는 모습이 시편들 곳곳에 내제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인은 충족되지 않는 '결핍'을 체험하고자 낯선 길로의 여행을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새벽 어스름 매캐한 연기
군불을 지피던 고모의 자지러지는 해소기침
사립문 옆 외양간 누렁이 여물을 씹는다
부엌 옹솥의 밥, 뜸 들고
화롯불 된장찌개 바글바글
안방에 아침상 차려지면
고모 걸음이 바빠진다
누렁이 목줄에서 딸랑이 울릴 때
받아온 첫 소똥
두 발둥이 맹꽁이배처럼 소복한 큰언니 발
서울서 인천 소사까지 통학을 하다
동상에 걸린 치료약 처방으로
아버지가 재봉으로 만들어주신
광목 주머니에 소똥이 채워지고
두 발을 담근 큰언니
열두 살 소녀는 그것이 당연한 듯
고종사촌 오라버니들도 군소리 없이
아침을 먹고
착하디착한 고모 낯빛은 천사처럼 해맑았다
누렁이도 헤벌쭉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여물 먹는 아침
방학 한 달 동안
고모와 누렁이 수고로
동상은 완치되어
누렁이 워낭소리 크고 맑게 울리고 또 울렸다
- 「워낭소리와 고모」 전문
시인의 시편에는 가족에 대한 애틋함이 많이 드러나 있다. 시에서 '미적 거리'는 미美를 인식할 때 주관적 감정에 몰입되면 합리적 시심에 대한 개별적이고 독창적인 창작의 특징을 찾기 어려워진다.
대상을 인식하는 과정에서 '미적 거리'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대상과의 거리가 좁을 때나 초과될 때 작품은 사적으로 흐르거나 관념에 머물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창작의 미적 완성도를 위해서는 대상과의 거리가 필요하다.
시인은 정갈한 삶 속에서 참으로 고즈넉해 보인다. 팔십여 시편들은 대립이 없다. 어쩌면 이것이 시인의 시에서 확장성을 억제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심상이 시어로 발현되는 과정에서 대립적 요소가 억제 된다면 시의 긴장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대상을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로 응축할 수도 없다.
세상은 다양한 슬픔이 있고 분노가 있다. 적정한 거리가 유지될 때, 시는 확장성을 갖는다. 기억 속에 침잠된 가족의 애환과 사랑만으로 시적 확장성을 갖긴 어렵다.
그러나 시는 우리의 익숙한 습관에 질문을 던진다. 잊고 살아가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작은 소요들에 주목하거나 본질을 깊이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詩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은 삶의 유속에 침몰되지 않으려는 저항의 방향 조절타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여겨지는 것이다. 시인은 시 속에서 휴식을 찾는다는 의미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사립문 열린 사이로 산발한 달빛이 초라하다
숭고함 잊은
파란 샛별 미간으로
신비한 밤바람의 희미한 가락이 흐른다
빛은 아련한데
양털구름은 저들만의
정겨운 행진을 하고
에워싼 무리의 빛, 그 빛도 유성처럼 포물선을 그린다
하나둘
홀연히
밤하늘 달무리 되어 떠나가는 인연의 숲,
그 아픔을 애도하듯
처연한 빛살은
그리움의 타악기 되어 밤을 지키고 있다
종탑에 어리는 빛 오래도록 정지시켜
실오라기 같은 여백의 마음, 고삿길 가로등에 턱하니 걸쳐둔다.
마음 여백 복잡함을
씻어내고
열일곱 코스모스 빛 꿈을 꾸던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할 채비를 하련다
- 「달무리」 전문
시인은 일상의 경험에서 체득한 작은 떨림을 자연의 질서 안으로 끌어들여 소통하는 통로로 사용한다.
시인의 시는 대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사유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일 것이다. 시는 닿을 수 없는 너머의 세상을 보여주는 창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언어에도 온도가 있듯이 시에도 체온이 있다.
시상이란 구체적 개념이 관찰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으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이때 문득 시인은 기억에서 벗어난 부재의 시간을 깨닫는 것이다. 또한 최영옥 시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의 시는 따뜻하다.
그 아픔을 애도하듯 / 처연한 빛살은 / 그리움의 타악기 되어 밤을 지키고 있다
이 시에서 채도와 명도는 밝다. 그러나 촉감과 질감은 소박한 무명과 같다. 하지만 단순히 고운 감정만으로는 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자칫하면 시의 채도가 낮아 무채색의 소유물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모든 시인에게 매너리즘은 익숙함에 길들여져 창의성이 무너지는 경계의 대상이다. 시인은 이 시대에 난무하는 실험적이고 어려운 시적 구성들로부터 정서를 복원시키는 조용함이 있다. 대상과 대상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소박함이 있고 대상의 숨결을 고스란히 바라보는 익숙한 시편은 순수한 언어의 직조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수많은 세월 나이테를 간직하고
숨 쉬는 우직함
버리려 했었다
옛것의 소중함보다
새것의 편리함 찾아다니던 시간, 시간 속
조상의 숨소리 받들고
선비의 기개를 사랑한 너의 향기
믿음직한 자태
마음 모아놓고
생각 모아놓고
갓끈 다시 매게 하였다
옛것을 잃지 않았다는 자부심
그 곁에
새것이 이루는 조화로움
조선기와 지붕 밑에
곱게 단장하고
춘향목 은근한 향내 두른
수백 년 몸태
더 길고 긴 세월의 주인으로
새 나이테 두르고
행복한 궁궐 지켜갈 정녕 귀한 버팀목이여
- 「대들보」 전문
시인은 지나온 삶의 공간에서 '생각의 재료'를 추출해낸다.
과거를 스캔하고 이면에 내재된 의도와 사유를 끄집어내는 시의 육화肉化 과정이 섬세하면서도 때론 야멸차다. 시인은 언제나 역동성을 지닌 새로운 시적 문장을 탐색함으로써 시적 언어의 긴장도를 높여야 한다. 상투적이고 상식적인 감각을 탈피할 때만이 무한대로 시는 확장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 「대들보」는 과거를 현대에 접목시키는 심미적 거리가 적당히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상의 숨소리 받들고 / 선비의 기개를 사랑한 너의 향기 / 믿음직한 자태 / 마음 모아놓고 / 생각 모아놓고 / 갓끈 다시 매게 하였다
무음無音인 활자 속에 시적인 선율, 시인의 색채와 질감, 색다른 미각까지 포함되었으니 이는 곧 독자와 '소통'이라는 구조를 완성한 절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시인이 간절히 바라는 '소통'엔 소리와 풍경 그리고 느낌(맛)이 다 들어있으니 독자의 마음에 침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시를 짓는 일은 단순히 보고 듣는 것으로 그쳐선 안 될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철학이 시와 비슷하기에 시작詩作은 '철학의 누이'라고 인정한 바 있다. 시를 짓는 것이 설령 의도적이었다 해도 차곡차곡 고인 마음을 퍼 올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전부를 감출 수는 없을 것이다. 하여 시에게도 품격이 주어지는 것이다. 유려한 문장도 사람 냄새가 나지 않으면 뜬구름처럼 허무함만 남는다.
이 시대의 시와 시인은 진화하는데 독자는 대부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시와 독자의 거리가 아득하다. 생산자인 시인이 시의 소비자가 되어가는 현실은 시인의 책임이 크다. 평생에 걸쳐 통일을 염원하며 통일시를 지으셨던 김규동 선생의 살아생전에 "시는 구호가 아니다"라는 말씀이 새롭다.
보라빛 염낭에 별꽃 피워 수줍은 잉태를 시작한다
한 올, 유년의 기억 화선지에 핀 꽃
어머니 저고리 빛이 촘촘한데
해소기침 잦았던 고모님
낯빛으로 다가서는
애잔한 꽃 결이 푸른 불씨를 매달고 앨범 밖을 서성이면
한여름 뙤약볕도 신비한 가사를 걸치고 있다
개울에 걸린 나무다리
보도랑을 따라
오리나무 길을 지나면
수국꽃이 만발했던 사립문
바람에 흔들리는 꽃모가지에
무거운 눈꺼풀이 흔들리면
혼절한 추억의 갈피에 성성한 주름 안고 휘적휘적 내가 걷고 있다
- 「도라지꽃에 대한 필사」 전문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대한 저술 중 이십 퍼센트 이상은 생물학에 대한 탐구라 한다. 여기서 거창하게 아리스토텔레스를 언급하는 것은 최영옥 시인의 첫 시집에서도 자연과 꽃에 대한 시편이 삼십 퍼센트를 넘는다는 것이다.
늦깎이로 출발해 시를 쓰느라 밤을 밝히는 시인은 마음을 졸이며 조급해 할 때가 참으로 많다.
시 쓰기란 자신의 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인체에서 소외된, 즉 몸의 그늘 같은 등을 굳이 궁금해하는 것, 하릴없이 타인에게 고백해야만 하는 것, 보이지 않는 막막한 대상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시는 몸의 언어이고, 눈의 언어이다. 그럼으로 끊임없이 만지고 더듬고 바라보아야 한다. 그래서 시인은 많은 여행을 목적하는지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기다림을 끌어와 전혀 다른 대상을 수직선상에 놓을 수 있어야 한다.
시제 「도라지꽃에 대한 필사」에서 보듯 자연을 베낀다는 역설, 이것이야 말로 시에 대한 경외함인 것이다. 시인은 자연의 생명체에 대한 존재 목적을 밝히는 학자가 아니지만 그것을 분류하고 기관과 기능을 예찰하지 않고서는 자연에 대한 시상의 언어를 풀어낼 수 없다.
그리운 얼굴인가
아쉬운 연서인가
아직도 잠들어 있는 고요를 간직하고
달 옆에 비켜선 별빛에 쓰인 초서
유년 삽화처럼
아득하니
어머니 머리 수건 위로
고요히 내리던 달빛 언어로
뜰 앞에 서니
별빛에 얼핏 비친 어머니
눈물 같아
아궁이에 타는 군불
어머니 눈물이며 따뜻한 손길이었다
혼탁한 세월
고통 끌어안고도 내색 없었던 침묵은
출렁이는 파도였을까
이제
아내로 어머니로
새벽을 여는 여인이 되고 보니
그이의 일상은 늘 기도로
눈밭에 핀 복수초로
첫새벽 무거운 눈꺼풀 열었었지
잔설에 친구 되고
꽃 잔에 벗이 되었던 내 나지막한 고향이신
어머니! 묵언으로 불러본다
그 어머니
소식 묻고 싶어 새벽달 따라
한 발 한 발 다가가니
어느새
오늘이란 땟자국만 겹겹이
나를 위로하고
내가 엄마 되는 사이
먼동 희뿌연 틈새로 휘어가는 그림자
그만, 어머니는 화석이 되었다
- 「새벽달에 쓴 연서」 전문
최영옥 시인의 첫 시집 표제작이 된 시다.
어머니란 단어의 본향은 어디일까? 그 어머니의 어머니인가. 이 단어에는 그저 먹먹한 아쉬움만 맴돈다. 시인은 그 단어에 연서를 그것도 새벽달을 향해 초서같이 시로 지었다. 아마 새벽달을 볼 수 있는 시간까지 잠들지 못한 시인의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시인은 십오 세 무렵 어머니를 여의었던 것 같다. 그 아픔의 바탕 위에 시적 의미와 파장을 넓히고 있다. 시인은 감정을 낭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찌 어머니란 단어 앞에서 감정을 낭비하지 않을 수 있으랴만, 최영옥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절제된 흔적이 보인다.
잔설에 친구 되고 / 꽃 잔에 벗이 되었던 내 나지막한 고향이신 / 어머니! 묵언으로 불러본다
말은 있으나 소리가 없는 묵언 '어머니' 그 안에 또 무슨 감정이 필요하겠는가. 시인의 내밀한 사적 언어는 짐작으로 가늠할 뿐이다.
시인에게 부재의 시간은 모두 삶의 중심으로 함몰되고 흔적만 남았다. 시인이 그토록 골몰한 것, 어머니는 기실 꿈의 밖이었던 것이다. 시인의 '어머니'에서 소슬한 여운이 깊다. 기억한다는 것은 자신의 내부인 내적 세계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마주한다는 것이고 시인은 언제나 습관처럼 파문을 따라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의 일생은 길거나 짧은 한 편의 꿈이 아닐까? 어머니는 자식 된 입장의 언어로는 표출하지 못할 깊고 애잔함이 있다. 결국 시인의 평정심으로 그리움의 긴 여정을 거쳐 내면을 기록한 시편은 시인으로 하여금 개인의 자성은 물론 주변에 상호주관적 관계를 유지하며 '소통'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시인은 아버지에 대한 유년기 기억을 더듬고 있다.
골덴텍스Golden Tex양복감을 편편하게 펴신 아버지
삼각형 분필로 재단하신다
순식간에 윗도리 옷본이 생기고
바지 본이 만들어지니
가위 지나는 길마다 보릿고개 허기가 지워진다
- 「재단사의 하루」 부분
최영옥 시인은 양복점을 운영하던 아버지로 인해 유년기를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간을 보낸 것으로 회상하고 있다. 어쩌면 시인은 이러한 유년기의 기억을 기록하고, 현재의 행복이라는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시 짓는 일에 열정을 쏟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생의 마침표는 결국 신이 정해놓은 공식이지만 순서는 따로 있을 수 없다.
'부재'란 늘 뼈아픈 언어이지만 우리는 망각이라는 기막힌 탈출구를 준비해 두고 있다. 시인에게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득히 멀어진 생물학적 '부재'의 이름이다. 그러나 시인의 기억하고 기록하려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시편에서 애처롭다. 텅 빈 시간과 흐르지 않는 공간에 멈춰선 시인의 발걸음에서 애초 인연이란 어긋난다는 사실을 부정해 보고픈 슬픔을 읽는다.
남편을 수술실로 보내놓고 삼 층 성당으로 향했다
성체조배하며
하느님께
무릎 꿇고 간절한 기도 속에 묻혀
믿고 맡기는 평온한 기다림이었다
미사 중에 문자가 떴다
세 시간의 수술
회복실로 옮긴다고,
중환자실 행도 다 물리치고
간호사 여섯과 의사와 입원실로 거창한 입성을 했다
아들에게 인증 샷을 남기란다
환자의 여유로움은 기도의 바람이었을까
입원실은 환해지고
함박웃음이 번지는 가족들 얼굴빛
두 손 모은 감사의 기도였다
- 「병실에서」 전문
시인은 남편을 묵묵히 따라가는 조신한 실의 모습이다. 실은 좁은 '바늘귀'를 통과해야 하고 바늘은 실이 끊어지지 않게 끌고 가야 하니 서로에게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 남편은 시인의 염려를 자신의 고통과 맞바꾸고 있다.
세 시간에 걸친 수술 후 환자 자신의 고통보다는 두 손 모아 기도에 여념 없었을 아내를 생각한다는 것이 어디 말 만큼 쉬운 것이겠는가. '인증 샷'을 남기라는 환자의 한마디는 아내와 가족에 대한 배려의 다름 아닐 것이다. 참 따뜻한 장면을 시편으로 담담히 그려낸 시인의 안정적 삶, 그 언저리를 볼 수 있다.
최영옥 시인은 이렇듯 부모님의 기억을 기록하며, 현재의 안정적 삶으로 인해 본성이 따스하다. 이 행복감이 시인의 눈을 아름답게 꾸민 긍정적 힘의 원천이라 한다면 시인의 시는 좁은 것이다. 인간은 삶이 안정적일 때 확장을 꿈꾸게 되는데 꿈이 없는 안정은 결국 안주하는 소극적 심연을 갖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확장을 화두로 잡아야 한다. 내가 아닌 주변에 주목하지 않으면 슬픔도, 분노도 허구일 수 있다. 굳이 슬프고 분노하기 위해 나를 '결핍'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시인이기에 자신을 '결핍'시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시적 확장을 담보할 수 있다.
'시의 힘'은 시인이 아는 유일한 묵언이다. 점도粘度에 따라 분화구 근방에서 굳어지거나 먼 곳까지 흘러가는 용암처럼 시에도 점도가 있다면 단연 먼 곳을 향할 것이다. 시는 뜨거워야 하고 흘러가야 한다.
한 곳에 유착되지 않고 대중에게 두루 스며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할 때 시인은 '결핍'할 수 있고 시는 확장할 수 있다.
줄다리기하던 마음 길 열고
이억만 리 건너온 억겁의 인연이 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사랑 텃밭 찾아온 코 큰 사위 덕에
금발 파란 눈 높은 코
멋진 추임새까지 가지런한 안사돈과 바깥사돈 맞이했다
내 생애 이런 인연일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한국에서 마련된 유럽식 만찬
여유와 격의 없는 행동에서 견제하고 탐색하는 지루한 시간은 없었다
어색함 녹아내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
문화적 시간에서 곰삭아 다져진 여유 바른 인성에
두 손 모은 크리스천 역사로
선연한 휴머니즘이 눈빛과 몸짓을 자극하지 않았다
무궁화를 사랑하는 한국
장미향 그윽한 영국
국경을 초월한 사랑 밭을 일구는
나와 씨줄날줄로 엮인 딸과 사위!
- 「사돈」 전문
어느 엄마가 딸에게 관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말을 최영옥 시인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유독 딸에게만 관대하여 이 시를 쓴 것이 아니다.
여러 시편들, 「둥지 Ⅰ」?과 「둥지 Ⅱ」?에서 시인은 자식에 대한 애련함이 깊다 못해 시리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떤 부모인들 자식에 대한 사랑이 엷을 수 없다. 자식을 떠나보내는 시인의 가슴은 허허虛虛하다. 그러나 시인의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마음의 용량을 시에 담고 있다. 과거 사회적 관습을 차분하고 절제된 언어와 영혼을 채근하며 자식과의 접경接境에서 믿음과 호의, 긍정이라는 일면을 담담히 그려 내고 있다.
시인은 이십여 년 간 시력詩歷에도 불구하고 이제 첫 시집을 내게 된 것은 스스로 과거로부터 또는 현재로부터 자유로워지려는 이유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시에 대한 확장을 꿈꾸며 한 꺼풀의 허물을 벗고자 하는 바람이라 생각한다. 시에 대한 모색이라 가족들의 이해를 바라는 것이다.
모로 시인은 불안과 절망을 통해 이 시대의 환부를 들여다보려는 자각도 있으리라 본다. 그것은 곧 시에 긴장감을 흐르게 하는 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되었건 과거 우리의 관습은 내적 소용돌이였다면 글로벌 시대를 향유하는 작금의 기준에서 시인은 외국 사위에 대해서도 애틋한 정을 주고 있고 '사돈'에 대한 정감도 남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 사랑 텃밭 찾아온 코 큰 사위 덕에 / 금발 파란 눈 높은 코 / 멋진 추임새까지 가지런한 안사돈과 바깥사돈 맞이했다
시인의 서양 사돈에 대한 극진한 심성을 엿볼 수 있는 행과 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최영옥 시인은 여러 시편들에서 자연, 꽃에 대한 연민이 남다르다 할 수 있다. 작품 「그리움 사계」에서 노래한 "화사하게 피어나는 애련한 모습은 / 채 여물지 못한 생명들이 / 안타깝게도 기억의 저편에서 아른거리고 // 단풍들 아우성 / 낙엽 따라간 생명의 흔적이어" 자연에서 현실을 보는 눈이 이채롭다.
작품 「능소화」의 "애써 피워낸 주홍빛 고운 자태 / 초록 잎 사이로 흐드러졌으나 위선은 향기가 없다 // 치명적인 꽃가루는 / 주홍글씨 목록에 편입되었고" 이렇듯 시인은 자연을 경외하며 끊임없이 세상과 연결고리를 찾으려 무던히 애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낙타」 "낙타의 순종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 다지고 사는 삶, / 그 노고는 / 힘차게 일어서는 / 묵묵한 낙타의 침묵으로 얻는다" 아픔과 고단을 직관하는 작업에도 소홀함이 없어 다음 시집을 주목하는 이유다.
또한 최영옥 시인은 손녀에 대한 '설법' 같은 마음의 연민이 있다. 작품 「신생아」에서 "애기야 / 자고 먹거라! 네 험한 길은 우리가 가지런히 / 닦아 놓을 것이니" 이 얼마나 사랑이 넘치는 대화인가. 그런가 하면 시인엔 孫을 잃은 아픔의 질곡이 가슴 언저리를 기록하고 있기도 한다. 작품 「인연」에서 그러하다. "허망한 열 달 태교에 야속한 만남의 허락은 / 꼭 이틀간이었다 / 해당화 꽃잎 같은 생명을 / 한낮 꿈으로 가슴에 묻던 날, // 그렇게 아가는 이틀간 소풍 마치고 천사의 날개를 달았다" 단 이틀간의 소풍, 현대의 의술을 원망하며 제 어미(아기의 엄마) 가슴보다 더 옹골차게 손녀를 묻고 기록한 아픔, 이 아픔이 얼마나 오죽했으면 손녀에 대한 마음이 애착이나 집착일 정도로 이 시집에 여러 시편들이 실리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작품 「꽃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내 손녀 예영아! / 네게 아주 예쁜 꽃신 한 켤레 / 신겨 어려움 헤쳐 나아가길 무던히 지켜보련다" 시인 자신의 미래보다 손녀에 대한 미래를 더 지켜보려는 시인의 마음에서 애잔함과 더불어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시인의 첫 시집은 첫 뚜껑이고 그 뚜껑은 버진 팁virgin tip과 다름없다 할 것이다. '시詩의 초경'은 시작되었다. 소멸되어 가는 기억을 기록하는 일도 상당히 중요한 시의 요소이긴 하다. 그러나 박제된 과거의 서늘한 기억으로 들어가 상처를 재확인하는 것은 공허한 '잠복적 고통'일 수 있다. 그렇기에 시는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결기가 있어야 한다. 시인은 늘 시의 '지각판'이 어디쯤 매장되어 있을지 찾아 헤매야만 '시의 고리' '시의 밑절미', 불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은 불안과 절망, 고통을 통해 이 시대의 환부와 마주할 수 있다. 이것이 전제될 때 시인의 눈은 사물의 깊이에 침잠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최영옥 시인은 자유로운 장식을 얻었다.
이젠 멸막을 지나야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되고 그것이 형상화될 때 결백을 볼 수 있는 혜안을 가질 것이다. 외부의 세계는 프리즘으로 빛이 굴절되어 들어오듯 충만한 내용과 뒤섞이며 우리의 의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색채 심리를 분석한 연구에서 표현주의 작가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주로 색을 통해 드러냈다고 한다. 시에도 분명한 색깔이 있다. 그 작품이 지닌 이미지가 곧 색인 것이다. 시인은 명심하길 바란다.
거듭 당부하지만 매너리즘을 거부해야 한다. 그럼으로 시인이 늘 새로운 시어를 찾을 때, 순간 간절한 기도처럼 시는 발화되고 드높이 날 수 있을 것이다.
문학이라는 무한한 창공을 배회하는 시의 얼개들, 그래서 시인은 끊임없이 태어나고 시는 존재한다. 절망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인은 천생天生 외로운 방랑자여야 한다. 타자에게 시인 자신을 고백해야만 하는 시인은 자신의 내밀한 통로를 독자와 소통해야 비로소 시는 완성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르트르는 "시에 있어서는 패자가 곧 승자이다. 그리고 진정한 시인은 승리하기 위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패배하기를 선택한 사람"이라고 하였다
시인은 시를 찾아 떠도는 유목민이란 사실을 명심하고 다음 시집을 위해 정진하길 바라며, 첫 시집의 무게가 적당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첫 시집 상재를 축하드린다.
- 박희호(시인)
세월을 부둥켜안고 가슴앓이 하던 날, 글을 접하며 아픈 언어들을 글로 풀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로,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세월은 녹녹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일이 먼저였고, 자식 셋을 출가시키고 나니 결혼생활 사십여 년이 훌쩍 넘어 버렸습니다.
이제 저 자신을 돌아보며 부족하고 미흡했던 일상들을 모아 부끄럽지만 예순여섯의 늦은 나이에 첫 시집을 엮었습니다.
대학의 평생 교육원에서 시 강의를 들으며 글밭을 일구었던 지난 시간들, 특히 이십이 년 세월의 성상을 함께 쌓아온 『너른고을』 문우님들은 제겐 보배로운 글 고향의 동지들입니다.
제 생은 신앙 안에서 키워졌습니다.
주저앉은 제게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빛나는 시간을 엮어갈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느님께 두 손 모아 감사드립니다.
첫 시집을 내도록 많은 힘을 주신 박희호 선생님과 항상 용기를 주는 남편과 큰아들, 큰 며느리, 작은 아들, 작은 며느리, 딸, 사위에게도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저를 아끼는 지인들에게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목차
목차
1부 ― 워낭소리와 고모
나팔꽃 소묘 ― 12
꽃고무신 애사哀思 ― 14
거미 ― 16
재단사의 하루 ― 18
꽃 아닌 꽃을 제거하다 ― 20
달무리 ― 22
대들보 ― 24
씀바귀에 부쳐 ― 26
한산섬 동백 ― 28
가을편지 ― 30
세연정 ― 32
콧등치기 국수 ― 34
비 오는 날 오후 ― 36
눈 내리는 밤 ― 38
그리움 사계四季 ― 40
달맞이 꽃 ― 42
대관령을 넘으며 ― 44
만종晩鐘 ― 46
편지 ― 48
살구나무 전언Ⅰ ― 50
살구나무 전언 Ⅱ ― 52
약수터의 기록 ― 54
꽃무릇 ― 56
워낭소리와 고모 ― 58
은하수 ― 60
코스모스 ― 62
허물 ― 64
2부 ― 백야
새벽달에 쓴 연서 ― 66
옮겨 심은 국화 ― 69
수놓는 여인 ― 70
병실에서 ― 72
도라지꽃에 대한 필사 ― 74
현충일 ― 76
들국화 ― 78
둥지 Ⅰ ― 80
둥지 Ⅱ ― 82
매미 울 ― 84
바닷가 별빛 아래 서다 ― 86
그리움 ― 88
능소화 ― 90
가의도를 가다 ― 92
낙타 ― 94
수세미 꽃 ― 96
백야 ― 98
화려한 외출 ― 100
천진암 촛불 기도 ― 102
지팡이에 대한 심상 ― 104
청산도 ― 106
고독한 여백 ― 108
벌치기 애환 ― 110
칡꽃 ― 112
기차여행 ― 114
활화산 ― 116
성묘 ― 118
3부 ― 사돈
분만 ― 120
사돈 ― 122
In-laws ― 124
첫돌 손녀 ― 126
꽃신 ― 128
신생아 ― 130
이방인 ― 132
인연 ― 133
신의 선물 ― 134
눈이 큰 아이 ― 136
미련 ― 138
겨울 텃새 ― 140
벌새 ― 142
나비 ― 143
아버지의 설득 ― 144
해송과 바다 ― 146
고독 ― 148
수채화 ― 150
연꽃 ― 151
메꽃 ― 152
홍콩 비경 ― 154
스위스 여행 하나, 둘, 셋 ― 156
베르겐의 언덕 ― 158
마카오의 거리 ― 160
철쭉 ― 162
발문 어루만지고 끌어안는 소박한 무명의 질감 (박희호) ― 164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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