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나는 정말 한국 사람일까
'사람사랑'이 '하나님사랑'임을 믿는 재미교포 조월호의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꿀벌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며 낯선 땅인 미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저자의 삶과 꿈 이야기가 펼쳐지는 에세이다. 퍼 주는 재미뿐 아니라, 사랑의 맛을 아는 저자의 유쾌한 도전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평생을 배짱과 자존감으로 살면서 자신의 약점을 성장의 바탕으로 삼아 홀로서기에 성공한 작은 거인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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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빌 클린턴 대통통령이 알칸소 주지사 시절인 1985년 올해의 여성상 수상
"저, 조월호 씨인가요?" 미국에서 그가 경영하는 바느질가게에 조심스럽게 들어선 손님은 직장 동료의 소개로 처음 만나는 사람이다. "네, 제가 경우에 따라서는 조월호이기도 합니다만…." 그 손님은 그의 엉뚱한 대답에 배꼽을 쥐고 웃는다. 그리고 만난 지 1분도 채 안 되어 얼음이 여지없이 깨진다. 소인국 출신이니 키 작은 것은 당연하다고 큰소리치면서 6척 장신의 미국인들에게 호통 치는 한국여자 조월호. 그 에너지, 유머감각, 말솜씨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조월호, 그는 분명히 한국 사람이다. 지난 197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서 30년이 넘게 살고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한국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그는 미국에 살려면 미국문화와 언어를 마스터한 미국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초친 새우처럼 펄펄 날뛰며, 무슨 분야에나 덤벼들어 배우고 익힌다. 그러나 단 하루도 한국 사랑을 멈춘 적이 없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그는 '사람사랑'이 '하나님사랑'이라고 믿는다. 남녀노소 구별 없이 달려들어 도와줄 일을 찾는다. 발 벗고 나설 뿐만 아니라 아예 가게 문을 닫거나 사람을 채용해 일당을 줘가면서 남의 일을 봐 주러 다닌다. 바느질가게에 오는 손님들도 그녀의 마력에 끌리고 있다. 맡길 옷이 없어도 그냥 샌드위치 한 개 사들고 그녀를 보러 오는 이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우울한 일만 있으면 불쑥 그녀를 찾아온다. 조월호의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기운이 난단다. 가족으로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딸 진주는 현재 시카고에서 BCG(Boston Consulting Group)라는 금융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멤피스에서 86세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주부생활사 수기 <이제 우리들의 기도는> 금상(1985), 주부생활사 시 <침묵의 소리><춤을 추시겠어요?> 당선(1985),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춘문예 수필 <길> 입선(1985), 한국일보 여성생활수기 <뿌리> 입선(1986), 여원사 여성수기 <진주, 우리 아기> 금상 수상(1987), 한국일보 뉴욕지사 신춘문예 수필 <아파트 풍경> 당선(1988) 24회 한국일보 여성생활 수기 <두 배로 소중한 아이>가 당선(2006)되었다. 그리고 수필집 <아메리카 콩쥐 팥쥐> 시집 <홀로 사랑하기>가 있다.
[추천사]
조월호, 그녀는 평생 배짱과 자존감으로 살아왔다. 자기 창고에 보물을 쌓고, 쌓고 또 쌓느라고 그런 배짱을 부렸으면 진작 신의 눈에, 사람 눈에서 벗어나 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나누어 주고 함께 살아가느라고 아낌없이 뿌렸다. 새벽 4시, 어두운 새벽길을 달려 출근해서 바느질을 한다. 그렇게 번 것을 아낌없이 나누면서 살고 있다. 애초에 그는 그렇게 살도록 선택받은 목숨일 게다.
그녀가 세상풍조를 따라갔으면 부자(?)가 되어 있을 수 있겠지. 그러나 그녀는 행복한 사람은 되지 못했을 거다. 그녀는 혼자 잘 먹고 잘 살면서 마음 편하게 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남의 나라에 가서 오히려 그들을 도와주며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코리아에서 온 조그만 여자가 미국에서 거인으로 살고 있다.
-최해숙(기쁜어린이도서관 관장)
내가 꿈꾸는 열정적인 삶을 대신 살아주고 있는 듯한 조월호 씨. 나는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발이 크고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리틀 빅 맨이란 바로 그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한국인들이 이민 와서 겪는 어려운 일들, 교통사고와 세금문제, 장례식, 결혼식, 보험처리까지 솔선해서 도와준다. 또한 요리하기 좋아하는 취미를 살려 자신이 출석하는 미국교회의 온 교인을 정기적으로 집에 초대해서 한국의 김치까지 좋아하게 만들었다. 교회에선 '시스터 조' 하면 남녀노소 즐거워하고, 법원에선 변호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는 그의 삶이 이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김민희(작가, 요가강사)
미니 인터뷰 *** 조월호는 [ ]이다.
1. 조월호는[머리 아프다]. 하루 24시간을 36시간으로 사니까. -이수희
2. Wolho Cho is a woman of many many capabilities.
조월호는 [수많은 재능을 가진 여자]다. - Bettie Hartman
3. 조월호는 [자신을 태우는 촛불]이다, 21세기[심청]이다. -멤피스 안디옥교회 정항량 목사
4. 조월호는 [작은 거인, 선한 사마리아인]이다. - 멤피스 안디옥교회 사모
5. Wolho Cho is God's Loyal Angel. 조월호는 [하나님의 충실한 천사]다. -Jerry Banks
6. Wolho Cho always gives and loves fully
조월호는 [언제나 전부를 주고 완전히 사랑한다]. - Olivia Buffington.
7. Wolho Cho is my reason to smile.
조월호는 [내가 웃을 수 있는 이유]다. - Margaret Ann Brickey
8. Wolho Cho is super special!. 조월호는 [가장 특별하다!] - Elida Lopez
9. 조월호는 [오뚜기, 봉사자, 도우미, 효자 중에 효자, 만인의 길잡이]다. - 서윤환
10. 조월호는 [도라지꽃]이다. - 김복심
11. 조 월호에게는 [어려운 일이 없고 만사에, 만인에게 열정적]이다. - 이정애
12. 아! 조월호!! [우주를 그 쬐끄만 품에 안으려고 덤벼드는 못말리는 순 한국산]이다. -박수근
13. 조월호는 [다 퍼주고 빈 털털이인 세계 제일의 갑부]다. - 천미순
14. Wolho Cho? Simply God sent!!!
조월호요? [한마디로 하나님이 보내준 사람!!] - James Haley
15. 조월호는 [유관순 누나]다. 왜냐하면 애국자니까 -이중천
16. Wolho Cho is THE cooliest person in whole wide world!!!!
[조월호는 세계에서 가장 쿨한 사람]이다. - Jessica Lee
17. 조월호는 [걸어다니는 사전]이다 ,모르는 것이 없으니까. - 음은경
18. 조월호는 [천사]다. - 이순화
19. 조월호는 [오아시스]다. - 오세정
<책속으로 추가>
용서의 길이, 넓이, 속도
아주 오래 전에 나는 엄마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한여름 밤이었는데 평상에 누워서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보고 계시는 엄마 곁에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어떻게 아버지를 용서하실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남편이 밖에서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아이까지 낳아오는 것을 어떻게 여자로서, 아내로서 용서가 되느냐고 말이다. 엄마는 조용히 웃으시면서 "너희 아버지 가정을 버릴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너희들의 아버지다. 용서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그리고 알아 두어라. 용서는 빨리 할수록 좋다. 용서를 받아야 할 상대가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정하는 것은 하나님 몫이고 내 몫은 용서하는 것이다."
그 후로 나는 용서하는 것은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사상을 여러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용서하려고 노력했다. 사실은 내가 13년간의 결혼생활을 접고 이혼을 결심한 것도 아무리 노력해도 용서할 수가 없어서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나의 전 남편은 사람들이 윌리엄 홀덴을 닮았다고 할 만큼 잘 생기고 인상이 좋아 보이는 사람이었다. 내가 많이 아팠기에 나를 미국으로 데리고 와서 병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이 아마 컸을 것이다. 그렇게 인정 많은 사람이었으나 내가 몰랐던 것은 그가 술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의처증의 중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나와는 열일곱 살 나이 차이가 났고 이혼을 두 번씩이나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좀 의아스러운 점도 있었지만, 그가 거듭 내게 말해 준 이혼 사유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었다. 두 사람 다 남편 몰래 바람을 피웠다는 것이다. 참 안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에 대한 연민과 고마움으로 더욱더 잘해 줘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콜로라도에서 내 병이 많이 회복되고, 그도 제대하고 고향으로 가서 살게 되면서 서서히 그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엄청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단 한번도 이혼을 생각한 적은 없다. 용서하고 또 용서했다. 1985년 내가 빌 클린턴 알칸소 주지사에게 '올해의 여성상'을 받으면서 신문에 나고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서 그의 학대는 점점 심해져 갔다. 겉으로는 사람들에게 자랑스런 아내라고 칭찬했으나 집에 오면 돌변했다. 정말 아무도 몰랐다. 친정식구에게도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모두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런데 그가 갑자기 교회 집회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가기만 하면 교우들이 자기 흉만 보고 쳐다보면서 쑥덕거린다는 것이다. 사실 희망은 신앙뿐이었다. 아무리 술을 먹고 나를 때리고 의심해도 하나님을 의지하는 한 고쳐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는데, 그는 사형선고와도 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일절 집에 교우들을 초대하지 말라고 했다.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같은 교회에 다니는 한 자매님께 상담했다. 그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조용히 말씀하셨다.
"조 자매, 하나님이 아버지이신 걸 믿습니까?"
"네."
"그럼 조 자매가 아버지라면 딸이 그렇게 엄청난 고초를 겪고 있는데도 성경말씀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그 환경에 그대로 두시겠어요?"
나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아닙니다. 당장 그 환경에서 구해낼 것입니다."
그는 내 손을 잡으며
"기도 많이 하고 결정하되 그 이유로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떠나지는 말라"고 했다.
나는 1989년 10월 초에 남편에게 선언했다.
"2주일 안에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겠어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정신적인 문제를 인정하고 치료를 받겠다면 곁에 머물면서 돕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에게 치료를 받자고 애걸했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내가 문제라며 완강하게 거절했다.
마침내 나는 "당신은 지금 당신 생애에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고 말하고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내가 만들어 걸었던 모든 커튼을 빨아서 걸고 세탁기, 건조기 사용법 등을 잘 적어서 벽에 붙였다. 그는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계 사용법을 몰랐다. 은행 잔고 확인하는 방법 등을 잘 적어놓고 집안 대청소를 했다. 양육비도 대학 학비도 1센트도 못 준다고 으름장을 놓는 그에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기 때문에 당신 돈 가져가라고 해도 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법원에 가서 모든 것을 남편에게 넘기겠다는 각서를 써서 제출하고 이혼재판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판사는 "13년씩이나 결혼생활을 했으니 속옷만 입혀 쫓아낼 수가 있는데, 위임장이 웬 말이냐. 무슨 사연이 있느냐?"고 했다. 나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도 않겠다"고 대답하고 나왔다.
1989년 10월 29일, 떠나는 날도 그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지금이라도 알코올 중독자 치유센터에 가고, 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는다면 떠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친 사람은 넌데 내가 왜 치료를 받느냐?"는 것이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고마운 내 친구 이여자 씨는 나를 혼자 보낼 수 없다면서 자기 차를 운전하면서 내 뒤를 따라와 멤피스까지 동행해 주었다.
그 수많은 사연들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이 글을 쓰면서 어느 먼 훗날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그를 떠난 후 2010년 여름, 21년 만에 그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그의 장례 절차를 밟아 주면서 많은 추억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으나 아픔은 없었다. 세월이 약이라던가. 그러나 내가 그때까지 완전히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아시고 나도 안다.
그가 떠난 후 나중에 집을 팔기 위해 집 청소를 하다 보니 내가 짠 스웨터, 조끼, 머플러 등이 잘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떠날 때 적어 준 세탁기, 건조기 사용법, 은행 잔고 확인 방법 등이 적힌 종이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다. 한국에서 내 앞으로 보낸 편지들을 남자친구들이 보낸 것이라며 빼앗아 가곤 했는데, 그 편지들도 그대로 있었다.
나는 모두 태웠다. 그의 지난날, 나의 지난날을 모두 불태웠다. 그래도 가슴 깊은 곳에 자리한 그 앙금 하나, 그 분함과 미움 한 덩어리, 진주에게는 용서하라고 하면서 나는 아직도 용서할 수 없는 그 사연 하나는 태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평강이 없었다.
그가 죽은 이튿날 장의사에 그의 시신이 잘 단장되어 있는지 보러 갔을 때도 그 앙금은 풀리지 않았다. 용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장례식 당일에 가족실에서 진주 손을 잡고 앉아 있는데, 관을 가지고 와서 가족에게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관에 누워서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드디어 21년 만에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속으로 되뇌었다.
"가십시오. 용서하겠습니다. 당신이 저지른 그 엄청난 죄, 용서하겠습니다. 편히 가십시오." 사람 마음은 참 기묘한 것이다.
그 즉시, 그 엄청난 앙금을 풀어 버리는 순간, 내 마음은 그리도 편할 수가 없었다. "진주야, 내 마음에 평강이 왔어. 내가 참 잘 왔어"라고 고백했다. 죽는 날까지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으나 그 사람이 죽어서 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서 용서가 이루어진 것이다. 불과 몇 분 사이에 가슴 깊이 자리한 미움 덩어리가 풀렸다. 그리고 진정한 평강이 자리한 것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진주의 엄마 자리와 아빠 자리를 함께 지키기 위해 더욱 내 새끼를 사랑하고 아끼고 다독거려 주는 것이다.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면서 용서의 길이, 넓이, 속도….
모두를 단 한 번의 용서에 담아 그의 시신과 함께 보냈다.
가슴으로 낳은 내 딸
딸의 입양기를 쓰자면 하는 수 없이 내 자랑을 좀 해야 하는데 자랑을 위한 자랑이 아니다. 말하다 보면 은근히 내 자랑이나 하고 싶어 하는 얼간이로 보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나는 송탄에 살 때 미 공군 기지에 있는 미국 은행에 취직하기 위해서 이력서를 낸 적이 있다. 물론 미국 군인가족 자격으로서다. 미국인 은행장이 있었고, 그 아래 부은행장이나 대부분의 직원들은 한국인이었다. 인터뷰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갔더니 미국인 은행장에게 인사만 하고 인터뷰는 한국인 부은행장이 진행했다. 몇 가지 질문을 한 후에 나에게 영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다.
"예, 별 불편 없이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겸손하지 못하고 잘난 척하는 게 그리 호감이 가지 않았는지 "상당히 자신만만하시군요" 하더니 영자 신문을 가지고 와서 읽어 보라고 했다.
나는 은근히 화가 났다. 내 실력을 무시한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툭 쏘아붙이는 어조로 말했다. "영어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구어체로 된 것까지 읽을 수 있지요." 나는 계속 잘난 척했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신문을 소리 내어 읽어 보세요"라고 했다.
사실 읽기가 회화보다 훨씬 쉬웠다. 학교에 다닐 때도 나는 영어를 좋아했다. 그리고 미군부대에서 오래 근무하신 외삼촌이 우리집에 함께 살면서 어려서부터 우리 7남매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발음도 정확한 편이었다. 영어에 취미와 소질이 있던 외삼촌이 미군부대에서 미국인 발음 그대로 우리에게 전수해 주신 것이다. 그때 외삼촌은 우리에게 주옥같은 팝송도 가르쳐주셨는데, 지금도 가끔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들이다.
아무튼 나는 그 부은행장이 던져 준 신문을 소리 내어 읽었다. 창구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흘끔흘끔 쳐다보며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했다. 허리 아래까지 치렁치렁 늘어뜨린 머리에 깡마른 체구, 전혀 예쁘지도 않은 얼굴을 가진 여자가 요란하게 영어신문을 줄줄 읽어내려 가는 것이 몹시 신기했던 모양이다.
나는 즉시 채용되어 은행 창구에서 일하게 되었다. 은행은 평소에는 별로 바쁘지 않았다. 그러나 월급날이 한 달에 두 번 있었는데, 그때는 몹시 바빴다. 나는 그때 최해숙 사모님 외에 또 다른 한 여인을 만났는데, 미 공군 여자 대위 패트리샤였다. 애칭으로 '패트'로 통했다. 노랑머리에 파랑색 눈을 가진 전형적인 백인 여자였다. 그녀는 아무리 줄이 길어도 꼭 기다렸다가 내 창구에 와서 일을 보고 갔다. 다른 한국 직원에 비해 내 발음이 알아듣기가 쉽다는 것이 이유라고 했다. 하지만 아마 내가 하도 수다를 잘 떠는데다 손님인 그녀를 오랜 친구처럼 대하면서 자꾸 말을 걸어서였을 것이다.
그의 남편은 한국인 산부인과 의사 이세풍 박사님이었다. 그녀는 남편 못지않게 한국을 사랑하고 된장국을 좋아했다. 그리고 유니폼을 입지 않아도 될 때에는 반드시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자기가 끓인 김치찌개 맛이 일품이라고 떠들어대는, 생김새만 미국여자이지 완전한 한국여자였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날, 그가 눈이 붉으스름한 채 내 창구 앞에 서 있었다. 분명히 운 흔적이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아무도 키우기를 원하지 않는 한 신생아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자기 남편 이 박사가 근무하는 오산기독병원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난 미숙아가 있다고 했다. 임신 6개월 만에 산모가 출혈이 심하여 아기를 포기하기로 하고 제왕절개를 강행하여 산모를 살렸다는 것이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고 있어서 그대로 구석에 방치해 둔 채 산모의 수술을 끝내고 보니 2킬로그램도 채 되지 않는 조산아가 숨을 쉬고 있더란다. 서둘러 아기를 인큐베이터에 넣었는데, 산 모는 병원비를 낼 수도 없을 뿐더러 당시 아기의 아버지인 산모의 남편이 집안 살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이혼 이야기까지 오가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박사가 입양을 권면했다. 그의 아내가 미공군 장교 부인회에 의뢰했는데, 네 쌍의 장교 부부가 가서 아기를 보더니 한결같이 고개를 저으며 "저렇게 약한 아기를 키울 수가 없다"고 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패트 대위님, 그 아기 제 딸입니다. 제가 3년간 기도해서 얻어낸 응답입니다."
"어? 내가 알기로는 한국 여자들 아들만 좋아하지 않나요?"
그는 의아해했다.
"아닙니다. 저는 아들은 싫고 딸이 좋아서 딸을 구했어요."
나는 그에게 당장 아기가 있는 조산아실로 나를 데려가 달라고 했다. 그래서 곧 생후 3일 된 내 아기를 만나러 갔다. 결혼식을 올렸지만 아직 수속이 끝나지 않은 남편과 함께였다. 아기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태어나기 전 모습 그대로 웅크린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그런데 나와 이 박사님만 빼고는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기가 눈을 뜨지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은 채 겨우 숨만 쉬고 있어서 간호사들이 눈을 뜨게 하려고 손가락으로 눈을 벌려 보기도 했지만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던 아기가 내가 조산아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 작은 눈을 뜨더니 눈동자를 문 쪽으로 굴리면서 새끼손가락을 움직인 것이다. 이 박사는 "아, 아기가 엄마를 기다렸군요" 하면서 박수를 치며 기뻐해 주었다.
그러나 남편은 고아원에 가서 건강한 아이 몇 명도 좋으니 입양하자면서 나가 버렸다. 저런 아이를 어떻게 키우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아기를 만나기도 전에 이미 정해져 있었다.
의사가 아기를 가질 수 없다고 말했을 때 즉시 딸 하나 달라고 하나님께 3년간 떼를 썼다. 그런데 어찌 포기할 수 있겠는가. 결국 내가 울고불고 그 아이 없이는 미국에 가지 않을 테니 당신 혼자 가라고 협박 공갈(?)을 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가보자는 말을 듣게 되었다.
며칠 후에 다시 가보니 아기는 황달까지 걸려서 누렇게 떠 있었다. 남편은 전과 똑같이 빨리 고아원에 가서 건강한 아이를 입양하자고 했다. 저런 아기 키우다가 잘못되면 그 죄책감을 어찌할 거냐며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결국 나는 단식투쟁에 들어갔다.
식음 전폐하고 누운 지 일주일 만에 탈수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 입양하기로 결정했다. 남편은 울며 겨자 먹기로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 박사는 산모 수술할 때 아이를 한 시간쯤 방치해 두어 산소 공급이 되지 않아 뇌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고, 조산아여서 심장이 완전히 발육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면서 함께 최선을 다해보자고 했다.
"손가락이 하나여도 내 새끼요, 심장이 반쪽이어도 내 새끼니 잔소리 그만하십시오." 이 명언(?)을 남기면서 나는 가슴으로 내 딸 진주를 낳았다.
- 본문 중에서
목차
목차
추천사 내 일상을 흔들어 깨운 작은 거인 9
머리말 삶의 흔적을 남긴다는 것 1 5
1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한 남자의 죽음 2 5
미국행 비행기 2 9
영어야, 꼼짝 마라! 3 3
내 이름은 이혼녀 3 6
컴맹 탈출 4 0
나는 정말 한국 사람일까? 4 3
용서의 길이, 넓이, 속도 4 6
선머슴이 바느질을 한다고? 5 2
공짜 서비스의 위력 5 6
2 낯선 땅에서 홀로서기
열릴 때까지 두드리라 6 3
나의 출근시간은 새벽 4시 66
응접실 별곡 7 0
올해의 여성상 7 3
저먼 타운에 가게를 열다 7 7
뇌물 작전 8 0
벼랑 끝, 때로는 배짱으로 8 3
9. 11 사태를 보는 눈 8 6
3 내 생애 최고의 선물, 진주
가슴으로 낳은 내 딸 9 3
사랑스런 나의 선생님 9 8
열여섯 번째 생일선물 102
당신을 채용할 수 없는 이유 105
스웨덴 출장 사건 108
55번 고속도로 112
하얀 눈송이처럼 115
4 특별한 만남, 잊지 못할 사람들
같은 생일을 가진 세 여자 121
마이클, 내 뚱보 아들 125
고춧가루 사모님 129
오십 번째 생일 여행 133
손 흔드는 할아버지 136
든든한 후원자, 우리 여행사 141
캐나다에서 얻은 친구 144
우리 가게에서 쫓아 낼 권리 147
한국에서 오신 사장님 151
5 멤피스에서 만난 이웃사촌들
퍼 주는 재미 157
둘째 주 토요일은 '소녀들의 날' 161
천사의 도우미 164
유학생 유감시대 167
사랑의 맛 171
인생을 마무리할 무렵에는 174
내가 만난 멤피스 가족 177
입양아 제이슨과 메리 179
의학박사가 된 진짜 이유 184
인생을 가르쳐 준 스키너 여사 189
6 희망 전주곡
별난 프러포즈 195
새털구름처럼 198
무지개를 보기 위해 맞은 비 200
새벽이 열리는 그 시간은 203
일출과 일몰 사이 207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210
서울 찬가 213
한풀이 217
나그네 220
가을날의 꿈 223
7 추억의 앨범
시래기죽 229
꿈 233
화이트 하우스 236
사월이 가면 239
아버지를 그리며 242
우리 집 며느리들 245
미국 이모할머니 248
8 사랑의 편지
내가 살아야 할 이유, 진주에게 253
진주의 생모, 유숙자 님께 256
가장 오래 된 새 친구, 이인자 님께 258
예쁜 여우 예빈아, 유빈아 260
미국 이모할머니 부대 막내, 준석이 261
든든한 내 친구, 영동이 2262
정아의 결혼반지 264
해남부대 용사들 267
내 쌍둥이 동생 동일이, 동복이 269
저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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