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해 오디세이(박용민의)
지중해 윗동네 아랫동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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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아랫동네 윗동네 이야기를 별난 외교관과 함께 만나본다!
외교관 박용민의 두 번째 인문 기행학『지중해 오디세이』. 너무 다른 모습이면서도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음을 감추지 못하는 두 곳, 지중해 둘레의 유럽과 중동을 1993년도부터 2004년까지 유학생이나 외교관으로 살거나 여행하며 기록한 내용을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의 첫 해외생활 무대가 되어 준 유럽대륙의 이야기들, 냉전이 끝나던 1995년부터 9.11 사태 이후 중동의 사회상, 생활상 등을 외교관이라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안목으로 살펴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명 충돌은 문명이 서로 대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닮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저자는 조금 독특한 장소들을 세계사의 이야기와 함께 조목조목 들려준다. 페이지마다 저자가 직접 그린 네 컷 만화들은 읽는 재미를 더했다.
외교관 박용민의 두 번째 인문 기행학『지중해 오디세이』. 너무 다른 모습이면서도 같은 뿌리에서 비롯되었음을 감추지 못하는 두 곳, 지중해 둘레의 유럽과 중동을 1993년도부터 2004년까지 유학생이나 외교관으로 살거나 여행하며 기록한 내용을 재구성한 책이다. 저자의 첫 해외생활 무대가 되어 준 유럽대륙의 이야기들, 냉전이 끝나던 1995년부터 9.11 사태 이후 중동의 사회상, 생활상 등을 외교관이라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안목으로 살펴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문명 충돌은 문명이 서로 대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서로 닮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저자는 조금 독특한 장소들을 세계사의 이야기와 함께 조목조목 들려준다. 페이지마다 저자가 직접 그린 네 컷 만화들은 읽는 재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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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지중해 윗동네 유럽,
지중해 아랫동네 중동을 가다
싸움꾼들과 장사꾼들이 그토록 바삐 오갔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지중해. 그 지중해의 윗동네인 유럽과 아랫동네 중동은 한때 로마제국의 손바닥이었던 곳이다. 현직 외교관이라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안목으로 인문기행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외교관 작가 박용민이 이 두 곳을 한 권의 책에 묶었을 때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두 아들이 한 배에서 나왔으면서도 서로 그토록 다른 것처럼, 한때나마 하나의 위대한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기억이 무색할 만큼 오늘날의 유럽과 중동은 이질적이다. 한편, 제 아무리 다르게 행동해도 가만 보면 형제는 한 배에서 나온 티가 나게끔 되어 있는 법. 유럽과 중동은 지중해 문화의 유산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품고 있기도 하다."(7~8쪽)
1. 유럽 1993~2001
"살아 숨 쉬는 중세의 도시" 옥스포드에서 첫 해외생활을 시작하고, 그 도시에서 아버지가 되고, 그 대학의 학생으로 영국 의회를 방문해 내각책임제의 진면목을 경험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겨서는 '중동평화과정' 현장학습단의 일원으로 중동을 방문하여, 유럽통합과 중동 평화과정을 두루 조망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의 운전면허를 따며 "도로에서 만나는 문명"을 실감하고, 탈냉전과 더불어 밀어닥친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던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를 방문한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게르만은 고대에는 늘 야만족이라 불리는 천덕꾸러기였을지 몰라도, 독일 통일 직후의 그곳은 간결하고 효율적이어서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현대성의 단면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땅이었다. 코소보라는 작은 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NATO본부를 방문한 작가의 눈에 "지나가는 뱀을 본 십대 소녀들처럼 호들갑"을 떠는 듯 보였다. 초국가적 통합의 상징인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는 "이런 식의 관료주의가 과연 비용에 값할 만큼 제 역할을 하는지" 마땅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현실진단뿐만이 아니다. 문명진단들도 풍성하다. "입을 벌리고 올려다보았던 에펠 탑이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의 얼굴에 맺힌 결정적 표정"이라며 파리를 즐기고, 패션잡지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 밀라노에서는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분리독립을 원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헤아리며, 안달루시아의 태양이 따뜻하게 바스러지는 말라가 공항에 내리면서는 "피로를 이슬처럼 증발시켜버"리는 공기를 들이마신다. 스위스에서 룩셈부르그로 가면서는 틀림없이 몇 개의 국경을 넘었을 테지만 어디가 국경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며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에 대한 색다른 진단도 내놓는다.
"하나가 되는 게 좋기만 한 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행자는 다른 것을 보려고 여러 곳을 간다. 다른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서로 다른 것들끼리 구별되는 독특함이 없다면, 그것은 문명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문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 문명이 역사적 개념이라면, 문화는 그보다는 훨씬 더 지리적인 개념인 것이다. 문명은 시간을, 문화는 장소를 체화하는 셈이다."(113쪽)
NHK의 후원으로 복원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 벽화를 두고 "베네통 톤의 미켈란젤로"라는 비아냥이 일어나는 등 논란이 일었음을 소개하면서 "인생세간에서는 언제는 '왕보다 더 왕당파적인'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자들이 항상 큰 목소리를" 낸다고 살핀다. "바위 덩어리에서 욕정을 깨워낸" 르네상스 예술가인 베르니니의 작품들은 넘치는 생동감으로 꿈틀대면서도 고전주의적인 엄격함을 지켜냈기에 "어떤 틀 속에 머물기 때문에 비로소 최고의 경지가 될 수 있는 역설"을 입증한다는 필자의 미학적 견해를 읽으면서는, 작가 박용민을 두고 진선미와 지정의의 조화를 이룬 "전인적 인간"이라고 추켜세운 소설가 최인호의 추천사가 새삼 떠오른다.
로마의 은둔 황제 티베리우스(165쪽), 뻔히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길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사랑을 닮은 도시 베네치아(155쪽) 등의 에피소드도 기행문학의 가능성을 더 다채롭게 해준다.
2. 중동 1995~2011
냉전의 종식이라는 거대한 조류 속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의미심장한 평화협정인 1995년의 '오슬로 협정' 직후, PLO 중심의 자치정부가 탄생하던 현장을 찾아간 작가는 거기서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정치공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곳은 행정행위와 저항행위가, 기대감과 좌절감이, 협조와 반목이, 찬성과 반대가 혼재하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는 협정을 이행하려고 애썼고, 양측 주민의 여론은 마치 서로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슬로 협정에 대한 실망감을 쏟아냈다."(181쪽)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난민이었다. 스스로 학대를 당해본 민족이 그들을 받아들여준 아랍 민족에게 어떻게 자신들이 당한 것과 같은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194쪽)는 팔레스타인의 입장과, "케임브리지에서 온 어린애들로부터 정착촌이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묘사되는 것을 듣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우리는 … 국가 건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으로 와서 평생 동안 정착촌을 가꾸었다. 이제 와서 무슨 정치적 협상의 결과를 들이밀면서 우리더러 이곳을 비우라고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210쪽)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번갈아 확인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곳의 갈등을 짚어보는 데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외부의 적의 존재는 언제나 내부의 사소한 차이를 덮는다."(203쪽)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미국, 우리에게 분단, 팔레스타인에게 이스라엘이 그러했다는 진단으로부터는 "타자성의 모순 속에서 자아의 위기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평소 주변의 모든 사소한 모순들을 중요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처방이 뒤따른다.
타임머신을 타는 듯한 기분으로 찾은 9/11 직후의 텅 빈(관광객이 다 사라져)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의 불가사의함만큼이나 그것을 만든 인간의 불가사의함을 헤아리며, 이어 "현대에도 독재자들이 만드는 건축물일수록 크고 웅장"함을 간파한다. 또한, 선사시대부터 전승되어온 이집트 특유의 전통이 정복자 로마의 문화를 압도했다는 이집트 읽기도 인상적이다. "문화적 공백상태와도 같던 갈리아, 이베리아, 다키아 같은 곳은 금세 로마의 문화에 동화되었지만 이집트에는 이미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집트가 간직한 '이국적 색채'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240쪽)
2001년부터 2년간 오만대사관에 근무한 필자는 서라벌을 거닐던 처용, '고대의 세계화'를 이끌던 해상활동, 누드화 같은 바위산, 뒷골이 당길 만큼 달디 단 대추야자 등에서 오만의 흔적, 오만의 추억을 짚어낸다. '사막의 소리'를 묘사한 에피소드는 기행문학가 특유의 빼어난 산문을 음미하게 해준다.
"사막에서 보내는 밤의 압권은, 사실은 모래도 아니고, 지는 해도, 뜨는 별도 아니다. 잠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별빛에 한참 취해 있을 무렵, 캠프 직원들은 탈탈거리며 돌아가던 발전기를 끄고 호롱불을 나누어 주었다. 발전기 소리가 막아주고 있던 절대적인 고요가 우리를 덮쳐 왔다.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풀벌레소리도, 다른 어떤 두런거림도 없던 그 정적은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짙었다. 밀실에서라면 모를까, 야외에서 이런 고요함을 경험하는 일은 더없이 낯설었다."(276쪽)
석유부존자원이 적다는 약점을 슬기로운 방식으로 극복한 두바이 방문기 및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토후국 이야기, 사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의 철권통치가 사라진 진공상태가 어떻게 메워질지 걱정스러워 보이던 거대한 나라 이라크 방문기도 흥미롭다.
3. 인문기행문학 읽기의 즐거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교류하고 전파되고 섞이지 않는 문화는 생명력이 없다"(140쪽)는 문화론의 소유자인 필자는 전작 『별난 외교관의 여행법』에서 복잡한 땅 중동에 공존하는 여러 가치와 전통들이 세계화에 직면한 형국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랍세계는 매우 느린 천이과정 속에 있는 저수지와도 같았다. 이제 세계화의 거센 해일이 이 둑을 허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헌팅턴 식의 '문명 충돌'로 보는 데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문명이 대립하고 대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쩌면 서로 닮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은 너무 앞서 갔고 중동은 너무 뒤처져 있었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유럽이 이룩한 후기산업사회적인 통합은 아마도 미국의 안전보장이 없었다면 이루기 어려웠을 상태라는 점에서, 어딘가 가상적인 측면이 있었다." 중동은 중동대로 "자신들의 세속적인 삶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해줄 철학과 사상"을 시급히 만들어내야 할 대목에 이르렀다. 그런 공동체적 합의의 모색은 장차 북한을 포함하는 동북아 지역에서도 긴요하게 될 것이라는 게 국제정치 전문가인 필자의 지적이다.
이렇듯 '별난 외교관' 박용민과 함께하는 여행은 값지다. 희한한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문득 '세계사'라는 여행지로 우리를 인도하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안목은, 즐거운 기행문학 독서에 뒤따르는 알찬 덤이다. 시공을 넘나드는 그의 글에서 호메로스는 후쿠야마와 만나고, 미켈란젤로는 이탈로 칼비노와 만난다. 외교관 작가가 직접 그린 재기 넘치는 네 컷 만화들을 만나 빙긋 웃음 짓는 재미는, 여행지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난 별난 캐릭터들처럼, 기행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지중해 아랫동네 중동을 가다
싸움꾼들과 장사꾼들이 그토록 바삐 오갔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 지중해. 그 지중해의 윗동네인 유럽과 아랫동네 중동은 한때 로마제국의 손바닥이었던 곳이다. 현직 외교관이라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안목으로 인문기행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는 외교관 작가 박용민이 이 두 곳을 한 권의 책에 묶었을 때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나의 두 아들이 한 배에서 나왔으면서도 서로 그토록 다른 것처럼, 한때나마 하나의 위대한 제국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기억이 무색할 만큼 오늘날의 유럽과 중동은 이질적이다. 한편, 제 아무리 다르게 행동해도 가만 보면 형제는 한 배에서 나온 티가 나게끔 되어 있는 법. 유럽과 중동은 지중해 문화의 유산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품고 있기도 하다."(7~8쪽)
1. 유럽 1993~2001
"살아 숨 쉬는 중세의 도시" 옥스포드에서 첫 해외생활을 시작하고, 그 도시에서 아버지가 되고, 그 대학의 학생으로 영국 의회를 방문해 내각책임제의 진면목을 경험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옮겨서는 '중동평화과정' 현장학습단의 일원으로 중동을 방문하여, 유럽통합과 중동 평화과정을 두루 조망하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영국의 운전면허를 따며 "도로에서 만나는 문명"을 실감하고, 탈냉전과 더불어 밀어닥친 세계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던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를 방문한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는' 게르만은 고대에는 늘 야만족이라 불리는 천덕꾸러기였을지 몰라도, 독일 통일 직후의 그곳은 간결하고 효율적이어서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게 하는 현대성의 단면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땅이었다. 코소보라는 작은 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한 유럽의 '강대국'들은 NATO본부를 방문한 작가의 눈에 "지나가는 뱀을 본 십대 소녀들처럼 호들갑"을 떠는 듯 보였다. 초국가적 통합의 상징인 스트라스부르의 유럽의회에서는 "이런 식의 관료주의가 과연 비용에 값할 만큼 제 역할을 하는지" 마땅한 의문을 품기도 한다.
현실진단뿐만이 아니다. 문명진단들도 풍성하다. "입을 벌리고 올려다보았던 에펠 탑이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의 얼굴에 맺힌 결정적 표정"이라며 파리를 즐기고, 패션잡지에서 막 걸어나온 듯한 사람들이 거리를 메운 밀라노에서는 "북부 이탈리아 사람들이 분리독립을 원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헤아리며, 안달루시아의 태양이 따뜻하게 바스러지는 말라가 공항에 내리면서는 "피로를 이슬처럼 증발시켜버"리는 공기를 들이마신다. 스위스에서 룩셈부르그로 가면서는 틀림없이 몇 개의 국경을 넘었을 테지만 어디가 국경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며 하나가 되고 있는 유럽에 대한 색다른 진단도 내놓는다.
"하나가 되는 게 좋기만 한 건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여행자는 다른 것을 보려고 여러 곳을 간다. 다른 것은 우리를 즐겁게 한다. 서로 다른 것들끼리 구별되는 독특함이 없다면, 그것은 문명일 수는 있어도 더 이상 문화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 문명이 역사적 개념이라면, 문화는 그보다는 훨씬 더 지리적인 개념인 것이다. 문명은 시간을, 문화는 장소를 체화하는 셈이다."(113쪽)
NHK의 후원으로 복원한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 벽화를 두고 "베네통 톤의 미켈란젤로"라는 비아냥이 일어나는 등 논란이 일었음을 소개하면서 "인생세간에서는 언제는 '왕보다 더 왕당파적인'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진 자들이 항상 큰 목소리를" 낸다고 살핀다. "바위 덩어리에서 욕정을 깨워낸" 르네상스 예술가인 베르니니의 작품들은 넘치는 생동감으로 꿈틀대면서도 고전주의적인 엄격함을 지켜냈기에 "어떤 틀 속에 머물기 때문에 비로소 최고의 경지가 될 수 있는 역설"을 입증한다는 필자의 미학적 견해를 읽으면서는, 작가 박용민을 두고 진선미와 지정의의 조화를 이룬 "전인적 인간"이라고 추켜세운 소설가 최인호의 추천사가 새삼 떠오른다.
로마의 은둔 황제 티베리우스(165쪽), 뻔히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도 길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사랑을 닮은 도시 베네치아(155쪽) 등의 에피소드도 기행문학의 가능성을 더 다채롭게 해준다.
2. 중동 1995~2011
냉전의 종식이라는 거대한 조류 속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의미심장한 평화협정인 1995년의 '오슬로 협정' 직후, PLO 중심의 자치정부가 탄생하던 현장을 찾아간 작가는 거기서 해방 직후 우리나라의 정치공간을 연상시키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그곳은 행정행위와 저항행위가, 기대감과 좌절감이, 협조와 반목이, 찬성과 반대가 혼재하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정부와 팔레스타인 자치기구는 협정을 이행하려고 애썼고, 양측 주민의 여론은 마치 서로 거울을 바라보는 것처럼 오슬로 협정에 대한 실망감을 쏟아냈다."(181쪽)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난민이었다. 스스로 학대를 당해본 민족이 그들을 받아들여준 아랍 민족에게 어떻게 자신들이 당한 것과 같은 불의를 저지를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194쪽)는 팔레스타인의 입장과, "케임브리지에서 온 어린애들로부터 정착촌이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묘사되는 것을 듣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 우리는 … 국가 건설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이곳으로 와서 평생 동안 정착촌을 가꾸었다. 이제 와서 무슨 정치적 협상의 결과를 들이밀면서 우리더러 이곳을 비우라고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210쪽)는 이스라엘의 입장을 번갈아 확인하는 일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곳의 갈등을 짚어보는 데 중요한 시금석이 된다.
"외부의 적의 존재는 언제나 내부의 사소한 차이를 덮는다."(203쪽) 프랑스 지식인들에게 미국, 우리에게 분단, 팔레스타인에게 이스라엘이 그러했다는 진단으로부터는 "타자성의 모순 속에서 자아의 위기를 맞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평소 주변의 모든 사소한 모순들을 중요하게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처방이 뒤따른다.
타임머신을 타는 듯한 기분으로 찾은 9/11 직후의 텅 빈(관광객이 다 사라져) 이집트에서는 피라미드의 불가사의함만큼이나 그것을 만든 인간의 불가사의함을 헤아리며, 이어 "현대에도 독재자들이 만드는 건축물일수록 크고 웅장"함을 간파한다. 또한, 선사시대부터 전승되어온 이집트 특유의 전통이 정복자 로마의 문화를 압도했다는 이집트 읽기도 인상적이다. "문화적 공백상태와도 같던 갈리아, 이베리아, 다키아 같은 곳은 금세 로마의 문화에 동화되었지만 이집트에는 이미 무언가가 가득 들어차 있었다. 로마인들은 이집트가 간직한 '이국적 색채'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240쪽)
2001년부터 2년간 오만대사관에 근무한 필자는 서라벌을 거닐던 처용, '고대의 세계화'를 이끌던 해상활동, 누드화 같은 바위산, 뒷골이 당길 만큼 달디 단 대추야자 등에서 오만의 흔적, 오만의 추억을 짚어낸다. '사막의 소리'를 묘사한 에피소드는 기행문학가 특유의 빼어난 산문을 음미하게 해준다.
"사막에서 보내는 밤의 압권은, 사실은 모래도 아니고, 지는 해도, 뜨는 별도 아니다. 잠들 무렵이 되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별빛에 한참 취해 있을 무렵, 캠프 직원들은 탈탈거리며 돌아가던 발전기를 끄고 호롱불을 나누어 주었다. 발전기 소리가 막아주고 있던 절대적인 고요가 우리를 덮쳐 왔다. 바람소리도, 물소리도, 풀벌레소리도, 다른 어떤 두런거림도 없던 그 정적은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짙었다. 밀실에서라면 모를까, 야외에서 이런 고요함을 경험하는 일은 더없이 낯설었다."(276쪽)
석유부존자원이 적다는 약점을 슬기로운 방식으로 극복한 두바이 방문기 및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토후국 이야기, 사담 후세인이라는 독재자의 철권통치가 사라진 진공상태가 어떻게 메워질지 걱정스러워 보이던 거대한 나라 이라크 방문기도 흥미롭다.
3. 인문기행문학 읽기의 즐거움
"시대와 장소를 막론하고, 교류하고 전파되고 섞이지 않는 문화는 생명력이 없다"(140쪽)는 문화론의 소유자인 필자는 전작 『별난 외교관의 여행법』에서 복잡한 땅 중동에 공존하는 여러 가치와 전통들이 세계화에 직면한 형국을 이렇게 묘사했다. "아랍세계는 매우 느린 천이과정 속에 있는 저수지와도 같았다. 이제 세계화의 거센 해일이 이 둑을 허물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헌팅턴 식의 '문명 충돌'로 보는 데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실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문명이 대립하고 대결하는 과정이 아니라, 어쩌면 서로 닮아가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은 너무 앞서 갔고 중동은 너무 뒤처져 있었다"는 게 필자의 진단이다. "유럽이 이룩한 후기산업사회적인 통합은 아마도 미국의 안전보장이 없었다면 이루기 어려웠을 상태라는 점에서, 어딘가 가상적인 측면이 있었다." 중동은 중동대로 "자신들의 세속적인 삶을 합리적으로 뒷받침해줄 철학과 사상"을 시급히 만들어내야 할 대목에 이르렀다. 그런 공동체적 합의의 모색은 장차 북한을 포함하는 동북아 지역에서도 긴요하게 될 것이라는 게 국제정치 전문가인 필자의 지적이다.
이렇듯 '별난 외교관' 박용민과 함께하는 여행은 값지다. 희한한 장소들을 둘러보면서 문득 '세계사'라는 여행지로 우리를 인도하는 국제정치 전문가의 안목은, 즐거운 기행문학 독서에 뒤따르는 알찬 덤이다. 시공을 넘나드는 그의 글에서 호메로스는 후쿠야마와 만나고, 미켈란젤로는 이탈로 칼비노와 만난다. 외교관 작가가 직접 그린 재기 넘치는 네 컷 만화들을 만나 빙긋 웃음 짓는 재미는, 여행지의 어느 길모퉁이에서 만난 별난 캐릭터들처럼, 기행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더한다.
목차
목차
책머리에: 본 것 이상의 기억을 위하여 6
오디세이, 그 고의적 방랑 10
오디세이, 그 고의적 방랑 12
유럽, 지중해의 윗동네 18
______ 영국이라는 이름의 대국 ______
런던, 나의 첫 외국 경험 21 | 옥스포드, 꿈꾸는 첨탑들의 도시 24 | 첫 자동차 여행: 바스,
솔즈버리, 사우샘프턴 27 | 옥스포드에서 아버지가 되다 31 | 영국 의회는 뜨거웠다 37 | 춥고,
축축하고, 어둡고, 맛없는 40 | 웨일스, 잉글랜드도 영국도 아닌 43 | 도로에서 만나는
문명 49 | 호수지방과 스코틀랜드 53 | 나의 두 번째 영국 도시, 케임브리지 62
______ 섬에서 대륙으로 ______
영국과 유럽대륙, 1993~1994 69 | 하나 된 베를린 72 | 유럽 수학여행, 벨기에-독일-스위
스-프랑스 77 | 프랑스의 담청빛 남해안 88 | 동생을 데리고 서유럽 일주 95
______ 안달루시아와 태양의 해안 ______
달콤한 흙냄새를 머금은 119
______ 미뤄둔 행선지, 이탈리아 ______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카프리, 피렌체 141
중동, 지중해의 아랫동네 172
레반트에서 마그레브까지 174
______ 거룩한 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______
중동평화, 그 험난한 화해의 길 179
______ 나일강을 거슬러 오르며 ______
9/11 직후의 이집트를 가다 225
______ 오만에서의 2년 ______
무더위의 결정판 242 | 처용과 신밧드의 고향 246 | 산의 누드 254 | 오만의 사람들 264 |
사막의 소리 273
______ 빠르게 변하는 아랍에미리트 ______
머나먼 돼지고기 279 | 두바이의 수직성장 282 |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도시들 288
______ 전쟁 직후의 이라크 ______
바빌론으로의 첫 여정 295 | 쿠르디스탄을 가다 299 | 술레마니아의 산악 304
책꼬리에: 미래의 여행자들에게 308
오디세이, 그 고의적 방랑 10
오디세이, 그 고의적 방랑 12
유럽, 지중해의 윗동네 18
______ 영국이라는 이름의 대국 ______
런던, 나의 첫 외국 경험 21 | 옥스포드, 꿈꾸는 첨탑들의 도시 24 | 첫 자동차 여행: 바스,
솔즈버리, 사우샘프턴 27 | 옥스포드에서 아버지가 되다 31 | 영국 의회는 뜨거웠다 37 | 춥고,
축축하고, 어둡고, 맛없는 40 | 웨일스, 잉글랜드도 영국도 아닌 43 | 도로에서 만나는
문명 49 | 호수지방과 스코틀랜드 53 | 나의 두 번째 영국 도시, 케임브리지 62
______ 섬에서 대륙으로 ______
영국과 유럽대륙, 1993~1994 69 | 하나 된 베를린 72 | 유럽 수학여행, 벨기에-독일-스위
스-프랑스 77 | 프랑스의 담청빛 남해안 88 | 동생을 데리고 서유럽 일주 95
______ 안달루시아와 태양의 해안 ______
달콤한 흙냄새를 머금은 119
______ 미뤄둔 행선지, 이탈리아 ______
로마, 베네치아, 나폴리, 카프리, 피렌체 141
중동, 지중해의 아랫동네 172
레반트에서 마그레브까지 174
______ 거룩한 땅,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______
중동평화, 그 험난한 화해의 길 179
______ 나일강을 거슬러 오르며 ______
9/11 직후의 이집트를 가다 225
______ 오만에서의 2년 ______
무더위의 결정판 242 | 처용과 신밧드의 고향 246 | 산의 누드 254 | 오만의 사람들 264 |
사막의 소리 273
______ 빠르게 변하는 아랍에미리트 ______
머나먼 돼지고기 279 | 두바이의 수직성장 282 | 아랍에미리트의 다른 도시들 288
______ 전쟁 직후의 이라크 ______
바빌론으로의 첫 여정 295 | 쿠르디스탄을 가다 299 | 술레마니아의 산악 304
책꼬리에: 미래의 여행자들에게 308
저자
저자
박용민
저자 박용민은 주유엔대표부, 주오만대사관, 주미국대사관, 그리고 주인도네시아대사관을 거쳐 2012년 현재 주일본대사관에 근무하고 있는 대한민국 외교관이다. 그가 미국과 인도네시아에서 겪은 여행담은 2009년 『별난 외교관의 여행법』(바람구두)이라는 책으로 출간되었다. 영화 감상이 취미인 그는 『영화관의 외교관』(2009, 리즈앤북)과 『사랑은 영화다』(2011, 리즈앤북)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연필로 스케치한 그림들뿐만 아니라, 훗날 PC와 타블렛으로 그린 그림들, 만화, 사진 등 수록 이미지들은 작가가 직접 그리고 찍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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