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억(무궁화 선비)(한국기독교 지도자 작품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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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신앙으로 나라를 구하려는 뜻을 삶으로 보여준 남궁억 선생의 일대기를 조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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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출판사 리뷰
한서 남궁억은 당대 중추적인 언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이나 잡지에 많은 글을 기고하지 않았다. 까닭에 우리는 그가 남긴 교육용 교과서와 역사책을 통해서만 그의 삶과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은 남궁억이 저술한 책들, 그와 관련된 일화, 그리고 일본 경찰들이 남긴 심문기록 등을 묶어 크게 네 가지 주제로 분류했다.
제1부는 한서 남궁억과 관련된 일화를 정리하여 묶었다. 젊은 시절의 일화, 특별히 모곡으로 낙향한 이후의 일화들을 통해 우리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대비판과 말뿐이 아닌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남궁억을 회고해 보고자 했다.
제2부는 한서 남궁억이 짓거나 보급했던 노래들을 모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었다. 그는 100여 곡이 넘는 노랫말을 지었으나 많은 곡들이 일제에 의해 금지되거나 폐기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10여 곡이 넘는 노래들은 지금까지 보존되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즐겨 불려지고 있다. 남궁억은 불안한 국운의 한가운데서 자신이 지은 노래 가락을 통해 무궁화처럼 희망을 피어내었다.
제3부는 관료시절 언론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에 그가 남긴 글을 모아 정리하였다. 남궁억이 회장으로 활동하였던 대한협회나, 그가 창간하였던 <황성신문> 외에도 그가 남긴 창간호 축사 및 논설을 원문과 함께 독자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대어로 풀이한 번역문을 담았다.
제4부는 교육인 남궁억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낙향 이후 저술하였던 《동사략》, 《조선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신교육을 쉽게 접하도록 만든 <교육월보>, 여성 근대교육 지침서인 《가정교육》 등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실었다. 《가정교육》은 여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는 저서이다.
《조선이야기》(전5권) 중 우리는 그 마지막 권인 제5권에 기록되어 있는 한말 상황과 3·1 운동기, 일제 잔혹사 등을 정리하여 담았다. 실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일본으로부터 모진 학살과 고문을 견뎌냈던 사람들의 구술은 다른 역사책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들까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5부는 1933년 보안법위반으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을 당시의 기록인 심문조서를 담았다. 일흔이 넘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 앞에서 담담히 고백한 조선독립과 민족의 과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크나큰 도전이 되는 말들이다.
우리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해당 자료들의 사진과 관련 자료들을 함께 담아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한서 남궁억 개인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에 남궁억의 삶과 뜻, 그리고 무궁화 한 그루의 의미를 심어주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책속으로 추가
개가 웃을 일이다
같은 민족이면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의 지도자들을 억압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을 몰래 탐문하고 잡아 심문하던 신현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신현규의 심문에도 선생이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비굴해 보이지 않자 도미다 서장이 선생을 따로 모셨다. 과자와 차를 대접하면서 선생의 뜻을 꺾어 보고자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때 신현규와 도미다, 선생이 나눈 심문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조선을 독립시켜 주면 당신들이 능히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신현규의 질문에 서슬 퍼런 선생의 꾸지람 섞인 대답이 이어졌다.
"5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있는 민족임을 그대가 알진대 어찌 무능한 민족으로 보는가."
"독립이 곧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아는가?"
"일본은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여러 열강 국가들을 멸시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너무 악해서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임할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단 도미다가 끼어 들었다.
"나는 선생을 잘 이해하고 있소.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소. 대부분의 조선인도 일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소. 선생도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소?"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은 선생이 비장하게 말했다.
"내 나이가 칠십이오. 다 산 몸인데 생각을 바꾼다면 개가 웃을 일이오. 어서, 법대로 하시오." -pp.37-38
실천수양 13년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던 시절, 진정한 싸움의 적은 자신이었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3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손수 우물물을 길어 세수하고 냉수마찰을 했다. 그리고 뒷동산 유리봉에 올라 풀숲에 엎드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다시 마을로 내려온 선생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청년들을 깨워 풀을 베고 벌레를 잡게 했다. 자신은 헌 짚신들을 한데 묶어 오줌에 담근 후 무궁화 동산에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선생은 아무리 추워도 목도리나 장갑을 사용하지 않았다. 평생 인력거도 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웃에 김을 매러 갈 때도 자기 점심은 꼭 챙겨 가지고 갔다. 노령의 나이에도 지게를 지고 직접 나무와 돌을 날랐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도 유리조각이나 위험한 돌 조각들이 떨어져 있으면 꼭 치워놓고 다녔다.
1933년 11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갇힐 때까지 13년을 시골 모곡에서 그렇게 사셨다. 그렇지만 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자네들은 낙심하지 말게나. 나는 못 보아도 자네들은 독립을 꼭 볼 것일세."- p.40
제1부는 한서 남궁억과 관련된 일화를 정리하여 묶었다. 젊은 시절의 일화, 특별히 모곡으로 낙향한 이후의 일화들을 통해 우리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시대비판과 말뿐이 아닌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남궁억을 회고해 보고자 했다.
제2부는 한서 남궁억이 짓거나 보급했던 노래들을 모아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었다. 그는 100여 곡이 넘는 노랫말을 지었으나 많은 곡들이 일제에 의해 금지되거나 폐기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10여 곡이 넘는 노래들은 지금까지 보존되고, 사람들의 입을 통해 즐겨 불려지고 있다. 남궁억은 불안한 국운의 한가운데서 자신이 지은 노래 가락을 통해 무궁화처럼 희망을 피어내었다.
제3부는 관료시절 언론인으로서 활발히 활동했던 시기에 그가 남긴 글을 모아 정리하였다. 남궁억이 회장으로 활동하였던 대한협회나, 그가 창간하였던 <황성신문> 외에도 그가 남긴 창간호 축사 및 논설을 원문과 함께 독자들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현대어로 풀이한 번역문을 담았다.
제4부는 교육인 남궁억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낙향 이후 저술하였던 《동사략》, 《조선이야기》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신교육을 쉽게 접하도록 만든 <교육월보>, 여성 근대교육 지침서인 《가정교육》 등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발췌하여 실었다. 《가정교육》은 여성의 중요성을 인식한 그의 생각을 볼 수 있는 저서이다.
《조선이야기》(전5권) 중 우리는 그 마지막 권인 제5권에 기록되어 있는 한말 상황과 3·1 운동기, 일제 잔혹사 등을 정리하여 담았다. 실제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과 일본으로부터 모진 학살과 고문을 견뎌냈던 사람들의 구술은 다른 역사책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모습들까지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제5부는 1933년 보안법위반으로 체포되어 심문을 받았을 당시의 기록인 심문조서를 담았다. 일흔이 넘는 노구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 앞에서 담담히 고백한 조선독립과 민족의 과제는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크나큰 도전이 되는 말들이다.
우리는 이 책 전반에 걸쳐 해당 자료들의 사진과 관련 자료들을 함께 담아 독자들의 이해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한서 남궁억 개인에 대한 단순한 기록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가슴에 남궁억의 삶과 뜻, 그리고 무궁화 한 그루의 의미를 심어주는 도구가 되길 바란다.
책속으로 추가
개가 웃을 일이다
같은 민족이면서 일본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의 지도자들을 억압하던 사람들이 많았다. 선생을 몰래 탐문하고 잡아 심문하던 신현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신현규의 심문에도 선생이 조금도 흐트러지거나 비굴해 보이지 않자 도미다 서장이 선생을 따로 모셨다. 과자와 차를 대접하면서 선생의 뜻을 꺾어 보고자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이때 신현규와 도미다, 선생이 나눈 심문 내용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었다.
"조선을 독립시켜 주면 당신들이 능히 유지할 수 있다고 보는가?"
신현규의 질문에 서슬 퍼런 선생의 꾸지람 섞인 대답이 이어졌다.
"5천년의 역사와 문화가 있는 민족임을 그대가 알진대 어찌 무능한 민족으로 보는가."
"독립이 곧 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아는가?"
"일본은 지나치게 자신감을 갖고 있으며 여러 열강 국가들을 멸시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너무 악해서 머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임할 것이다."
옆에서 보고 있단 도미다가 끼어 들었다.
"나는 선생을 잘 이해하고 있소.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었소. 대부분의 조선인도 일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소. 선생도 이제 생각을 바꾸어야 하지 않겠소?"
더 이상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은 선생이 비장하게 말했다.
"내 나이가 칠십이오. 다 산 몸인데 생각을 바꾼다면 개가 웃을 일이오. 어서, 법대로 하시오." -pp.37-38
실천수양 13년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매우 어려웠던 시절, 진정한 싸움의 적은 자신이었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3년 전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손수 우물물을 길어 세수하고 냉수마찰을 했다. 그리고 뒷동산 유리봉에 올라 풀숲에 엎드려 민족의 독립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리고 다시 마을로 내려온 선생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청년들을 깨워 풀을 베고 벌레를 잡게 했다. 자신은 헌 짚신들을 한데 묶어 오줌에 담근 후 무궁화 동산에 밑거름으로 사용했다.
선생은 아무리 추워도 목도리나 장갑을 사용하지 않았다. 평생 인력거도 타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이웃에 김을 매러 갈 때도 자기 점심은 꼭 챙겨 가지고 갔다. 노령의 나이에도 지게를 지고 직접 나무와 돌을 날랐다. 그리고 길을 가다가도 유리조각이나 위험한 돌 조각들이 떨어져 있으면 꼭 치워놓고 다녔다.
1933년 11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 감옥에 갇힐 때까지 13년을 시골 모곡에서 그렇게 사셨다. 그렇지만 늘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고 자네들은 낙심하지 말게나. 나는 못 보아도 자네들은 독립을 꼭 볼 것일세."- p.40
목차
목차
신앙으로 구국의 일념을 실천한 사람 한서 남궁억
제1부일화
이놈, 벼슬은 네가 준 벼슬이냐?
너희 놈들은 나라도 모르느냐?
하모니카 선수 백발 소년
여러분이 바로 걸어야
나만 잡아가면 그만 아니요?
우울할 때면 무궁화 묘포로
개가 웃을 일이다
손끝이 갈라지고 터지며 뽑아낸 무궁화
십전짜리 밀집모자
실천수양 13년
독립의 일꾼이 되자
과목나무 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
제2부노래 속에 깃든 사상
설악산 시조 (독립의 노래)
시절 잃은 나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조선지리가
기러기노래
주일[모곡]학교가
무궁화 예찬시
무궁화 동산 (우승가)
조선의 노래
조선의 일꾼
조선의 꽃
용사의 노래
우리의 낙원
운동가
배화학당 교가
제3부언론인 남궁억
사상과 능력의 상수相須
사회조화
창간호 축사 모음
<대한협회회보> 창간호 축사
<기호흥학회월보> 창간호 축사
<장학월보> 창간호 축사
<황성신문> 창간호 논설
제4부교육인 남궁억 : 여성, 우리말, 그리고 역사
《가정교육》
<교육월보>
《조선문법》
《조선이야기》와 《조선최근사》
제5부 일제 하 심문조서
남궁억과 모곡학교
남궁억과 창가교육
남궁억과 무궁화
역사교육
조선의 독립
연보
참고문헌
제1부일화
이놈, 벼슬은 네가 준 벼슬이냐?
너희 놈들은 나라도 모르느냐?
하모니카 선수 백발 소년
여러분이 바로 걸어야
나만 잡아가면 그만 아니요?
우울할 때면 무궁화 묘포로
개가 웃을 일이다
손끝이 갈라지고 터지며 뽑아낸 무궁화
십전짜리 밀집모자
실천수양 13년
독립의 일꾼이 되자
과목나무 밑에 묻어 거름이나 되게 하라!
제2부노래 속에 깃든 사상
설악산 시조 (독립의 노래)
시절 잃은 나비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조선지리가
기러기노래
주일[모곡]학교가
무궁화 예찬시
무궁화 동산 (우승가)
조선의 노래
조선의 일꾼
조선의 꽃
용사의 노래
우리의 낙원
운동가
배화학당 교가
제3부언론인 남궁억
사상과 능력의 상수相須
사회조화
창간호 축사 모음
<대한협회회보> 창간호 축사
<기호흥학회월보> 창간호 축사
<장학월보> 창간호 축사
<황성신문> 창간호 논설
제4부교육인 남궁억 : 여성, 우리말, 그리고 역사
《가정교육》
<교육월보>
《조선문법》
《조선이야기》와 《조선최근사》
제5부 일제 하 심문조서
남궁억과 모곡학교
남궁억과 창가교육
남궁억과 무궁화
역사교육
조선의 독립
연보
참고문헌
저자
저자
남궁억
저자 남궁억은 1863년 한성 서부(현 서울 정동) 왜송골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 구한말의 관료로서 서구와 일본의 세력 앞에서 쓰러져가던 시대를 살아왔다. 그의 나이 48세에 기독교로 입교하고, 56세에 강원도 홍천 모곡으로 낙향한 뒤 학교와 예배당을 지어 교육과 복음전파 그리고 독립운동에 남은 생을 바쳤다. '신앙으로 나라를 구하고 교육으로 나라를 세운다(信仰救國 敎育立國)'라고 외치며 그가 있는 곳에 강렬한 생명력을 잇는 무궁화를 심어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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